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5화
제6화. 팀플레이(2)
권이연은 어떤 노래가 주어지든, 어떤 안무가 배정되든. 어려움 없이 다 소화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럼에도 닭싸움 경기에서 1위를 노린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우선 선택권을 거저 주겠다는데. 이걸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이연이 치열하게 1위를 차지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1팀이 곡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쥐게 되었다.
은솔이 1팀 멤버들에게 물었다.
“잠깐 상의할 시간 드릴까요?”
“네!”
작전 타임의 시간.
팀원을 모은 이연이 이들에게 의사를 물었다.
“혹시 하고 싶은 노래 있어?”
“하고 싶은 건…….”
“딱히 없긴 한데.”
동갑내기라서 말을 놓기로 한 앨리샤가 이번에는 이연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너는? 픽했으면 하는 거 있어?”
“나는…….”
이연이 어느 한 노래를 가리키자, 연습생들이 전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걸로 가자.”
“나도 찬성.”
“괜찮을 거 같은데?”
이로써 의견이 하나로 합쳐졌다.
다시 은솔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이연은 마이크를 건네받자마자 팀원들과 상의한 결과를 바로 알려줬다.
“저희는 밀크티 선배님들의 ‘라스트 찬스’ 고르겠습니다.”
2000년도 초반에 유행했던 밀크티의 히트곡, ‘라스트 찬스’.
5년 가까이 무명 그룹으로 취급받던 그녀들을 단숨에 스타로 올려놓은 고마운 존재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연습생들이 이연의 선택에 놀란 게 아니었다.
밀크티라는 그룹의 원년 멤버 중에 민주린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돌한 권이연의 선택에 은솔이 관심을 보였다.
“밀크티 선배님들의 노래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
“저희 그룹의 색깔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골랐습니다.”
“그렇군요. 1팀의 색깔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연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답했다.
“다재다능입니다.”
* * *
자정에 가까운 시간.
이때까지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낸 민주린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피곤함을 느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
운전대를 잡은 그녀의 매니저가 웃음소리를 흘렸다.
“회사 들렀다가 가야 한다면서.”
“내가 미쳤지. 거기에 가방을 두고 오다니.”
“내일 가져가면 되잖아?”
“내일 비번인데 출근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진 않아. 그럴 바에야 차라리 그냥 오늘 찾으러 가고 말지.”
매니저도 이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민주린의 집이 아닌, LC 엔터테인먼트로 향하고 있었다.
“다 왔어.”
“시동 끄지 말고 잠깐 기다리고 있어. 가방만 가지고 금방 내려올 테니까.”
“오케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마침 일 때문에 회사에 남아 있던 직원이 민주린을 보자마자 그녀가 찾던 물건을 내밀었다.
“이거 맞죠? 실장님께서 다음부터 회사에 물건 두고 다니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홍 실장한테 나중에 밥이라도 한 끼 사야겠네요.”
그가 아니었더라면, 민주린은 가방을 어디다 두고 왔는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회사에 온 목적을 달성했으니, 주린은 다시 매니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 전에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잠시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어? 주린아!”
“대표님 아니세요? 이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 계셨던 거예요?”
오채일 대표가 손에 든 커피를 잠시 내려놓았다.
“할 일이 좀 있어서. 오늘은 아예 회사에서 자고 가야 할지도 몰라.”
“왜요?”
“SSS 때문에. 어제 첫 방송이었잖아? 난리도 아니더라고. 너도 봤지?”
한동안 오디션 프로그램이 없었고.
그리고 LC 엔터테인먼트와 방송국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이 첫 방송으로 쏠렸다.
평가도 상당히 좋았고.
벌써 다음 편이 기대된다는 반응이 들끓고 있었다.
“이번에 잘만 하면, 우리 회사 당분간 먹여 살릴 걸 그룹 하나 탄생하는 거라고. 어때?”
“대표님이 좋다면야, 저도 좋죠.”
“그보다 소식 들었어?”
“어떤 소식이요?”
“애들, 2차 미션에 대한 거. 아직 못 들었지? 스포일러 살짝 해줄까?”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거린다는 사람처럼 보였다.
오 대표는 은근히 소심한 면이 있다.
모른 척하면서 바쁘니까 나중에 듣겠다고 하면 칭얼칭얼거릴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잠깐만 그에게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말해주세요.”
“이번에 이연이가 네 곡 골랐어.”
“밀크티 노래요? 설마 ‘라스트 찬스’예요?”
“어. 대박이지?”
오 대표도 민주린이 은근히 이연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소식을 전해준 거였다.
민주린의 반응은 미묘했다.
“제 곡이라면, 더 엄격하게 평가해야겠네요.”
“그렇다고 너무 박하게 말해주진 말고. 네가 울린 연습생들 눈물만 모아도 웬만한 호수 공원 하나는 뚝딱 완성될걸?”
“오버예요, 그거.”
“하하! 그런가?”
대중들에게는 성격 좋은 가수로 알려져 있지만, 회사 내에선 무섭고 엄격한 선배다.
그렇다고 연습생들이 싫어서 일부러 이런 이미지를 굳히게 된 건 아니었다.
그만큼 확실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연습생들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알려준다.
“이연이 팀이 가장 기대되더라. 빨리 무대 보고 싶네.”
“이번 주에 중간 점검 있지 않나요?”
“그렇지. 너도 볼 거지?”
“그래야죠. 저희 그룹 노래로 무대에 오를 거라는데. 확인 안 하면 안 되니까요.”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준 미달이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대답이야 뻔했다.
“노래 다른 걸로 바꾸라고 할 거예요.”
단호한 그녀의 말에 오 대표는 허허 웃을 뿐이었다.
* * *
첫 방송이 나간 이후, 이연의 스마트폰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이연과 조금이라도 연이 닿았던 사람들은 죄다 그녀에게 축하한다고, 방송 잘 봤다고 연락을 해왔다.
덕분에 이연은 한동안 스마트폰을 끈 채로 지내야 했다.
그래도 첫 방송은 이연의 기대 이상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그녀의 비중이 훨씬 컸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선공개 영상 순위가 컸겠지.’
권이연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면 클수록, 받는 카메라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시청률을 생각해야 하는 제작진이라면 당연한 조치인 셈이다.
그로 인해 이연이 가장 큰 수혜를 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
연습실로 향하는 이연은 부쩍 오른 자신의 인기를 지하철 내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혹시 권이연 씨 맞으시죠?”
“사진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앉아서 부족한 수면 시간을 채우려 했지만, 팬 서비스를 부탁해 오는 사람들의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괜히 매몰차게 대했다가 인터넷에 악소문이 올라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찰칵!
“감사합니다!”
“꼭 1등 하세요! 응원할게요!”
다시 마스크를 끌어 올린 이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일은 안경하고 모자도 쓰고 와야겠다고.
그렇게 약간의 후회를 껴안고서 회사에 도착한 그녀는 미리 와 있던 팀원들과 짧은 인사를 나눴다.
첫 방송이 나간 지 이틀째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된 이야깃거리는 방송에 관한 것들이었다.
“나하고 우미 언니는 거의 안 나오던데.”
“나도 똑같아.”
“앨리샤 언니는 다음 화에 비중 있게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탑 8 안에 들었잖아.”
“그러려나?”
“문제는 우리라고, 우리. 우미 언니, 우리 어떻게 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지, 뭐. 별수 있겠니?”
자신이 화면에 얼마나 나왔는지. 이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1화의 진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연은 이런 것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다.
“어차피 시청자 투표 들어가려면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고. 그리고 이번 경연에서 인지도 많이 끌어올리면 돼.”
한마디로 말해서.
열심히 해라. 결국 이거였다.
우미와 같은 대답을 한 권이연은 팀원들을 한곳에 모았다.
“여기 말고 저쪽으로 가자.”
“왜?”
“저기가 카메라 더 많으니까.”
안무 연습실에는 어느새 이들이 연습하는 것을 촬영하기 위한 관찰 카메라들이 다수 설치되어 있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 역시 같이 다뤄지게 된다.
관찰 카메라들의 위치를 확인한 이연이 비아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너, 왼쪽이 더 잘 나온다고 했지?”
“우와, 이연 언니. 그런 것도 다 기억하고 있어?”
대화를 나눌 때 아주 잠깐 흘리듯 내뱉은 말을 이연은 전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력이 워낙 뛰어났기에 이연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위치까지 손수 잡아주는 이연을 보면서 앨리샤가 물었다.
“연이, 너는? 우리한테 다 양보하면, 넌 좋은 위치 못 앉을 거 아니야?”
비아가 쯧쯧쯧 하면서 앨리샤의 걱정 어린 말에 태클을 걸었다.
“언니. 우리 이연 언니는 어느 각도든 다 예쁘게 나온다고.”
“하긴. 그렇겠다.”
첫 방송이 나갔을 때에도 시청자들은 이연의 미모를 칭찬했다.
물론 이 때문에 선을 넘는 댓글들도 꽤 많았지만, 이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전생에서 멘탈을 충분히 단련해 온 그녀였기에 웬만한 악플 가지곤 이연의 강철 멘탈을 흔들 순 없었다.
미리 챙겨온 노트북을 꺼낸 비아가 이연의 지시대로 밀크티의 ‘라스트 찬스’ 안무 영상을 재생했다.
커버 예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원곡의 재해석’을 넘어서 ‘제멋대로 해석’이라는 결과물이 나와 버리면 안 된다.
원곡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각색을 해야 한다.
우미가 갑자기 궁금증이 들었는지 앨리샤에게 영상을 가리켰다.
“리아는 이거 본 적 있어?”
“응.”
“너 미국에 있을 때 나온 건데.”
“엄마가 케이팝을 좋아했거든. 아이돌 노래, 트로트, 이런 거 가리지 않고 많이 들으셨어. 밀크티 노래도 좋아하셨고.”
고국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을까.
어머니의 영향으로 인해 앨리샤는 미국에서 한국 가수가 되는 꿈을 키워올 수 있었다.
“한국으로 넘어와서 가수가 될 거라고 했을 때,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는데?”
비아가 관심을 보이며 묻자, 앨리샤는 얼굴에 짙은 미소를 그렸다.
“응원해 주셨어.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래서 어떻게든 엄마의 나라에서 가수가 되고 싶어. 그게 내 꿈이야.”
포부가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비아는 짙은 감동을 느꼈는지 앨리샤에게 그녀의 전매특허인 스킨십을 시도했다.
“나도 응원할게, 언니!”
“고, 고마워. 근데 나 말고도 가족들한테 응원받는 건 다 똑같잖아. 안 그래?”
“그야 그렇지!”
이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독 한 명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양우미. 그녀가 억지로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수, 수다 그만 떨고 영상 봐야지. 오늘부터 연습 들어가기로 했잖아. 안 그래?”
억지로 화두를 돌리는 우미의 모습에 이연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말 못 할 개인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신경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