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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2화 (12/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2화

제5화. 어나더 레벨(1)

첫 녹화 이후로 1차 미션 평가까지.

주어진 시간은 고작 3일뿐이다.

하루가 지났으니,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은 셈.

이번 평가를 통해서 순위를 차례대로 매기고, 1위부터 8위까지 추가로 베네핏을 주겠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연이 그토록 바라던 베네핏이란 존재가 마침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청자 투표에서 만 표, 이만 표. 이런 식으로 더해서 계산해 주겠다는 건가? 아니면 다른 형태로 메리트를 주겠다는 뜻일지도 모르고.’

내용이 어찌 되었든, 다른 연습생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임에 틀림이 없다.

이걸 이연이 놓칠 리 없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화장을 지우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양반다리를 한 채 앞, 뒤로 몸을 움직이니 낡은 의자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리드미컬한 덕분에 생활 소음이라고 인지하기 힘들 정도였다.

“…….”

머리를 빠르게 굴려보는 이연.

꼼수 없이, 순수하게 실력만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공략법이 보일 거야.’

이번 1차 미션은 심사 위원들의 평가가 100퍼센트 적용된다고 했다.

심사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면 된다.

‘문제는 그게 쉽게 안 떠오른다는 거겠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음유시인으로서 무대에 오르기 전에 자격 시험 같은 걸 치러야 할 때가 있었다.

루웰이 당대 최고의 음유시인으로 명성을 떨치기 전.

신인으로 활동할 당시, 그는 이 세계의 오디션이라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자격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때 봤던 시험도 이 1차 미션하고 내용이 비슷했었지.’

평가단이 노래를 지정해 주면, 음유시인 지망생들은 그것을 그대로 부르며 안무를 소화하면 된다.

그러나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같은 무대라도 완전히 똑같은 느낌을 주진 못한다.

이연은 이것을 이용할 생각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게 가능한지 한번 확인이나 해봐야겠어.’

되겠거니 하면서 혼자서 진행해 버리면 큰일이다.

그래서 보험의 의미로 매니저에게 문자 하나를 보내뒀다.

전송 버튼을 터치하자마자 타이밍 좋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이연의 어머니나 남동생이라면, 굳이 초인종을 누를 필요가 없다.

어차피 현관문 비밀번호는 두 사람 다 알고 있으니까. 알아서 누르고 들어오면 그만이다.

“누구십니까.”

고장 나서 화면이 안 보이는 인터폰을 향해 물었다.

-택배입니다. 요 앞에다가 두고 가면 될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날씨가 더워진 탓에 이연은 짧은 돌핀팬츠와 반팔티만 걸치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의자에 걸려 있는 얇은 가디건을 걸쳤다.

현관문을 연 순간, 이연이 주문한 물건과 동시에 갑자기 열린 현관문 탓에 깜짝 놀라는 남자 두 명이 보였다.

둘 다 남동생과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들인데?’

실제로 이연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연에게 주입된 기억 속에는 이들의 얼굴과 이름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었다.

“네가 주형운, 그리고 네가 양인박이지?”

이연이 한 명씩 가리키면서 이들의 이름을 읊었다.

그러자 두 소년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아, 안녕하세요, 누나!”

“민준이가 저희하고 같이 오다가 갑자기 급똥…… 아니, 속이 안 좋아져서 화장실 들렀다가 갈 테니 저희보고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해서요. 그래서…….”

이연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로 말을 더듬었다.

친구라는 기억이 확실히 남아 있으니까.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이연은 둘에게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말했다.

“누나는요?”

“나는 이거 옮겨야 해.”

요즘 이연이 꽂힌 제로 시리즈 탄산음료가 40캔씩 들어 있는 박스였다.

딱 봐도 여자가 혼자 들기에는 상당히 무거워 보였다.

“제가 들게요, 누나.”

“아니요.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유도 배우고 있잖아요? 힘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왜 이래, 인마. 너, 나한테 팔씨름 졌잖아.”

“팔씨름 하나 가지고 몇 달을 X랄이냐? 그거 하나 이겼다고 다 이긴 줄 아냐?”

“다 이겼지, 뭐!”

“이 새끼가?”

가만히 있으면 둘이 주먹다짐이라도 할 기세다.

집 앞에서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뒷수습을 해야 하는 이연만 귀찮아질 게 뻔했다.

그래서 그녀는 간단하게 해결책을 내놓았다.

“내가 알아서 옮길 테니까 얌전히 들어오기나 해.”

“예? 하지만…….”

두 사람이 말리기도 전에, 이연이 먼저 박스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것도 한 손으로.

“누, 누나?”

“어떻게 그걸 한 손으로…….”

두 손으로 해도 힘든 걸, 이연은 힘 하나 안 들이고 쉽게 들어 올렸다.

순수하게 근력만으로 들어 올리진 못한다.

하지만 마법을 사용하면, 가녀린 이연도 이렇게 천하장사가 될 수 있다.

음료 박스를 주방까지 가져간 후, 칼로 포장지를 뜯어 냉장고에 하나하나씩 진열해 두기 시작했다.

두 캔을 따로 빼더니, 소파에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는 두 소년에게 건넸다.

“마셔.”

“가, 감사합니다!”

이연이 건네준 거라면 돌이라도 씹어 먹을 기세였다.

두 소년의 태도를 쭉 관찰하던 이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니들, 나 좋아하냐?”

“푸읍!”

마시던 콜라를 뿜고 말았다.

물론 입에서 튀어나온 내용물들이 이연에게 닿진 않았다.

반사신경이 워낙 뛰어났기에 저들의 이상행동을 직감하자마자 바로 몸을 옆으로 슬쩍 뺐기 때문이었다.

대신, 거실이 엉망이 되는 것까진 막지 못했다.

당황한 형운과 인박이 사과에 사과를 거듭했다.

“죄, 죄송합니다, 누나!”

“저희가 치울게요!”

보통은 ‘괜찮아, 내가 치울 테니까 가만히 있어’라는 반응이 나오겠지만.

이연은 아니었다.

“그래. 대장부 녀석들이. 너희가 벌인 일은 너희가 알아서 수습해야지.”

걸레는 어디에 있는지. 위치까지 알려주면서 손수 치울 것을 이들에게 명령했다.

이 와중에 한발 늦게 집에 돌아온 민준은 청소하고 있는 두 친구와 감독 겸 지시를 하고 있는 친누나를 보면서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 하고 있어. 니들은 왜 우리 집에서 청소나 하고 있냐?”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그래.”

남동생의 친구들이 이연을 친구의 누나가 아닌 좋아하는 여자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 바로 기억의 잔재 덕분이었다.

두 소년이 중학생이었을 당시, 나란히 고백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반응을 보아하니, 지금도 여전히 이연을 좋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래도 남자라고 고백 하나는 시원하게 했군. 그건 칭찬해 주마.”

자신의 일인데, 마치 제3자의 일처럼 이야기를 하는 이연의 모습에 형운과 인박은 당황스러웠다.

마침 매니저로부터 문자에 대한 답장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난 잠깐 통화 좀 하고 있을 테니까. 민준이, 네가 지시 감독 잘하고 있어라.”

훌쩍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이연을 보면서 민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또 왜 저런대? 하여간 내 누나지만 이해를 못 하겠네. 니들도 그렇지?”

그러나 두 소년은 민준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연 누나한테 저런 화끈한 면도 있었구나.”

“오히려 더 좋을지도…….”

질색하는 민준의 표정은 덤이다.

* * *

1차 미션 촬영일.

SSS 측에서 제공한 오리지널 곡을 들어보면서 머릿속으로 안무를 정리하던 이연은 준비가 다 되었다는 말에 플레이리스트를 정지시켰다.

SSS 촬영팀과 함께 연습실을 찾은 홍류현 실장은 이연에게 확인차 다시 물었다.

“도수한테 들었는데. 정말 그대로 촬영할 거야?”

“네.”

이연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녹화까지 이틀 정도 남았을 때.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낸 이연의 요구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PD님이 상관은 없다고 하셨는데…… 그러다가 괜히 실수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까도 말했지만, NG 나도 녹화는 계속할 거야. 이거 가지고 너 1차 미션 평가 보는 거라고.”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연은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32명의 연습생이 개별로 영상을 만들고, 이것을 심사 위원들이 쭉 돌려보면서 각자 점수를 매길 것이다.

그러나 선공개 촬영 때처럼 좋은 장면이 나올 때까지 촬영을 되풀이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했다.

홍류현 실장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모처럼 이연이 가진 재능이라는 이름의 꽃이 피려고 하는데.

이번 한 번의 실수로 다시 봉우리로 돌아가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이연은 도전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음악 틀어주세요.”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홍 실장이 촬영팀에게 그대로 진행해 달라고 손짓했다.

음악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이연의 단독 공연이 펼쳐졌다.

3분 32초 동안 춤과 안무를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고난도의 미션.

게다가 안무도 꽤 격렬한 편이었기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연습생들은 1절 후렴구 파트부터 호흡 조절 실패로 인해 음정이 눈에 띄게 불안해졌었다.

우미와 비아도 마찬가지.

그런 와중에서 이연은 다른 연습생들보다 한 단계…… 아니, 두 단계나 더 난도를 올려 버렸다.

카메라 앞에 선 이연보다도 더 긴장한 홍류현 실장.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 * *

모든 연습생의 녹화가 끝나고.

1차 미션 평가를 위해 심사 위원들만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여기에 한 명 더.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앞에 녹화가 지연돼서 좀 늦었습니다.”

MC를 맡은 이은솔도 특별히 심사 위원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는 평가까지 하진 않고. 대신 현역 가수로서 이 연습생의 무대는 어떤지에 대한 의견만 내비치는 역할로 참여할 예정이다.

오 대표가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전부 모였으니까. 바로 시작할까요?”

고개를 끄덕인 서 PD가 1번 진절혜의 무대부터 차례로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기대한 것처럼 진절혜의 영상은 무난했다.

하지만 이게 곧 ‘잘했다’라는 것과 같은 뜻은 아니었다.

“뭔가 뻔한 영상을 본 거 같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진절혜 연습생의 무대는 금방 잊혀지겠네요.”

민주린의 날카로운 일침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른 연습생들의 영상을 볼수록, 민주린의 생각이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엉망진창이네요.”

“그나마 1번 연습생이 제일 잘한 거 같지 않나요?”

“진절혜 연습생보다 잘한 연습생도 몇 명 있긴 하지만요.”

오리지널 곡과 안무, 그리고 단 3일뿐이라는 시간의 압박이 연습생들에게 너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결과물들이 다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드디어 마지막인가요.”

“32번 연습생, 권이연. 요주의 인물이죠.”

모두가 나현아의 말에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딸깍 소리와 함께 준비 동작을 취한 이연의 모습이 영상을 통해 비쳤다.

반주가 나오는 순간, 심사 위원들 모두가 다 경악했다.

“잠깐만요.”

“지금 이거…… 2키 높은 거 아닌가요?”

이번에도 이연의 무대는 심사 위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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