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0화
제4화. 관심 독점(2)
처음에는 이연의 단순한 착각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연은 민주린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자신에게만 고정되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설마 시작도 하기 전에 저 여자한테 찍혔나?’
민주린의 시선에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실려 있었다.
이연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여자한테 찍힐 만한 행동은 딱히 한 적 없을 텐데.’
민주린의 민 자도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녀가 왜 이렇게 살벌하게 이연을 노려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심사 위원들이 나란히 서서 짧게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이때도 민주린의 관심사는 오직 이연에게 향해 있었다.
“민주린입니다. 선배로서, 그리고 여러분들을 평가할 심사 위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연습생들의 박수와 함께 심사 위원들은 본인들의 지정석으로 향했다.
은솔이 처음 등장할 때와 달리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아니, 진지해졌다고 보는 게 옳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생존 싸움의 시작이 될 테니까 말이다.
은솔이 큐시트에 적힌 대로 차례를 이어나갔다.
“번호 순서대로 4명씩 무대에 올라서 심사 위원과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어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춤과 노래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코너다.
첫인상이 가장 중요한 법.
그렇게 연습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했다.
가장 먼저 1번부터 4번 연습생이 무대에 올랐다.
이석호 트레이너가 마이크를 들고서 진절혜를 먼저 언급했다.
“선공개 2위팀 리더네요.”
“네, 그렇습니다!”
진절혜가 큰 목소리로 이석호의 말에 반응했다.
뒤이어 오채일 대표가 입을 열었다…….
“무대부터 먼저 보도록 할까요?”
“예!”
2, 3, 4번 연습생들이 뒤로 물러섰다.
선공개 영상 촬영이 팀전이라고 한다면.
이번 무대는 개인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걸로 점수를 매기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존재를 모든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보여주는 무대인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진절혜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반주가 흘러나오자마자 격렬한 안무를 선보이는 그녀.
연습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연은 속으로 이런 걱정 아닌 걱정이 들었다.
‘다 큰 처자가 저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서 잘도 움직이는군.’
속바지를 입은 탓에 첫 방송부터 노출 논란에 휩싸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연은 남자였던 입장에서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1분 30초간의 짧은 무대를 절도 있는 마무리 동작으로 끝낸 진절혜.
연습생들의 소극적인 박수 소리가 들렸다.
“잘하긴 잘해.”
“오디션 볼 때에도 1등으로 합격했다고 하던데.”
선공개 영상 대결에서 이연에게 진 게 분했던 것인지, 개인 무대는 칼을 제대로 갈고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사 위원들도 나름 괜찮게 본 모양인지, 대체로 준비를 잘했다는 의견을 들려줬다.
무대를 내려갈 때, 진절혜는 이연이 앉아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더니 씨익 웃으면서 기선제압 싸움에서 자신의 승리를 일찌감치 점치는 모습까지 보였다.
민주린에 이어 진절혜까지.
‘왜 다들 나만 신경 쓰는지 모르겠군.’
이쯤 되니,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 것도 죄인가 싶기도 하다.
* * *
시간이 지날수록 이연은 자신의 순번에 대한 불만이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자그마치 32명의 연습생이 펼치는 개인 무대를 오늘 안에 다 봐야 한다.
사람이다 보니 스태프도, 심사 위원도, 그리고 연습생도.
모두가 다 지치는 건 당연하다.
이렇다 보니 가면 갈수록 관심과 집중력이 저하된다.
우미, 비아의 차례에도 진절혜 때만큼의 리액션은 없었다.
점수가 걸려 있지 않기에 그냥저냥 마음을 비우고 넘겨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현장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그만큼 편집될 확률이 늘어나니까.’
이연은 단지 이게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적어도 심사 위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만한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32번 연습생, 앞으로 나와주세요.”
드디어 권이연이 메인 무대로 등장했다.
예상대로, 심사 위원들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지친 기색이 엿보였다.
“안녕하세요. LC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권이연입니다. 저는 자기소개 길게 안 하겠습니다. 바로 무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도발성이 짙은 그녀의 선언에 심사 위원들의 관심이 조금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흘러나오는 반주를 들으면서 오채일 대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지? 들어본 적 없는 노래인데?”
오채일 대표는 업계인들 사이에서도 데이터베이스라 불릴 정도로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관계자들의 얼굴과 이름을 웬만하면 다 기억하는 건 물론이고, 대중가요의 역사까지 줄줄 꿰차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오 대표조차 권이연이 선곡한 노래의 정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안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31명의 연습생들과는 다른 콘셉트의 안무를 선보이는 권이연.
마치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연상케 하듯, 이연은 부드러운 동작을 이어갔다.
하우스? 브레이킹? 그런 류가 아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웨이브에 가까웠다.
춤을 추면서 직접 노래까지 불렀지만, 여전히 정체는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퀄리티는 상당했다.
이연의 1인 공연이 끝나자, 짧은 정적이 스튜디오를 감쌌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심사 위원은 바로 민주린이었다.
짝짝짝.
그녀를 따라서 연습생들도 얼떨결에 박수를 쳤다.
마이크를 든 민주린이 이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여태껏 본 적이 없는 독특한 무대였습니다. 혹시 준비한 곡, 권이연 양이 직접 만든 건가요?”
“네. 제가 작사, 작곡한 오리지널 곡입니다.”
어쩐지.
오채일 대표가 고개를 갸우뚱한 이유가 있었다.
권이연이 만들었다는 말에 이번에는 오채일 대표가 깊은 관심을 보였다.
“우리 쪽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코드들이 많던데. 연주는? 직접 한 겁니까?”
“네.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손수 다 했습니다.”
프로그램 다루는 법부터 포함해서 각종 악기 다루는 것까지.
이연은 단시간 내에 모든 것들을 전부 해냈다.
그녀는 음유시인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이명이 있었다.
노래하는 천재.
레디너스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현자들조차도 인정할 정도로 이연은 머리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마법과 전투 기술도 남들보다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도 빨리 익힐 수 있는데. 좋아하는 분야라면 더 자신이 있다.
악기와 녹음 부스의 경우에는 소속사에서 대여가 가능했기에 어렵지 않게 한 곡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전생에 사용했던 악기들하고 비슷한 게 꽤 많아서 다루기가 쉬웠지.’
이연에게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연습생 중에서 이렇게 독특하고 완성도 높은 곡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적어도 32명의 연습생 중에는 없다.
민주린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작사, 작곡, 그리고 악기 연주까지 가능하실 줄은 몰랐네요. 분명 큰 메리트가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심사 위원이 이렇게까지 언급을 했으니, 이 장면은 웬만하면 편집 없이 그대로 방송을 타게 될 것이다.
민주린의 나이스 어시스트.
무대를 내려오는 동안, 이연은 슬쩍 민주린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서로의 눈빛이 교환했다.
시선이 교차했다는 소리는.
‘아까처럼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는 소리인데.’
민주린은 과연 아군인지, 아니면 적군인지.
아직까지 알 수가 없었다.
* * *
장시간의 녹화로 인해 모두가 지쳐갈 무렵.
서윤철 PD가 출연진들의 귀가 쫑긋 움직일 만한 말을 들려줬다.
“잠깐만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30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마자 연습생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하게 스튜디오를 벗어났다.
오랜 시간 동안 녹화가 계속 진행되다 보니,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결과물이었다.
이연도 비아의 재촉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꽉 찼던 스튜디오가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심사 위원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기지개를 쭉 펴던 오채일 대표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현아, 민주린에게 음료를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물었다.
“커피라도 한잔할래?”
“좋죠.”
흔쾌히 허락하는 나현아와 달리, 민주린은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비쳤다.
“죄송해요, 대표님.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의사가 당분간 커피는 피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니까. 아니면 커피 말고 차라도 마셔. 내가 살 테니까. 잠깐 이야기할 것도 있고.”
마지막 말이 신경쓰였던 걸까. 민주린은 오 대표를 따라 방송국 안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 * *
거의 주문하자마자 바로 커피가 나왔다.
따스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손에 직접 들고 나서야 오채일 대표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나 같은 샐러리맨은 커피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거든.”
나현아 트레이너가 쿡쿡 웃었다.
“대표님도 샐러리맨이라고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뭐, 출퇴근하는 건 피차일반이니까. 그나저나 애들 무대, 어떻게 봤어?”
아무래도 방송이다 보니 스튜디오 내에선 솔직한 심정을 100퍼센트 그대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
듣는 귀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특별히 신경 쓰이는 연습생 있어?”
오 대표의 물음에 나현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절혜는 말 안 해도 아실 거고. 앨리샤도 꽤 잘하더라고요. 한국말 연습 많이 했나 봐요. 그리고…….”
그녀가 말끝을 흐리는 사이.
민주린이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 답했다.
“권이연. 32번 연습생이 보통내기가 아니던데요.”
“그렇지. 생각해 보니까 아까 너, 이연이만 계속 뚫어지게 바라보던데.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었어?”
“아니요. 그런 거 없어요.”
민주린은 음료 잔을 기울이면서 말을 아꼈다.
어찌 되었든 오채일 대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방송이라고 하니까 애들이 기합 팍 넣고 준비했다는 티가 나더라. 하여간 녀석들. 평소에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했으면 좀 좋아? 오디션 방송이 괜히 성공하는 게 아니구나 싶더라니까.”
“글쎄요.”
오채일 대표에게는 미안하지만, 민주린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영 별로예요.”
“왜?”
“사람의 꿈을 가지고 장사하는 기분이거든요. 참가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데, 어른들은 그걸 재미로만 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에 심사 위원 제의를 받았을 때에도 몇 차례 거절했던 거예요.”
그녀 역시 오디션 출신 가수다.
그렇기에 앞으로 연습생들에게 어떤 고난이 펼쳐질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거야?”
부정적으로만 보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생각을 달리 먹게 된 계기.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녀의 의미심장한 발언 덕분에 오 대표와 나현아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