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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9화 (9/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9화

제4화. 관심 독점(1)

사실 권이연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대개 티비에 나오는 아이돌들이 어떤 복장으로 대중들 앞에 서는지를.

무대에 섰을 때만큼은 세상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예쁘고 멋져야 한다.

그게 바로 아이돌의 숙명 같은 것이다.

의상팀이 가져온 옷은 객관적으로 봐도 예쁘다.

디자인도 훌륭하고.

문제가 있다면, 이연이 정말로 피하고 싶은 치마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연습생들은 예쁘다고 아우성이다.

“우와, 옷 완전 예뻐요!”

“이거, 누가 디자인해 준 거예요? 저, 나중에 촬영 끝나면 이거 기념으로 가져가도 될까요?”

“녹화 아닌 날에 입어보고 싶을 정도예요.”

고생한 의상팀을 위해서 일부러 듣기 좋으라고 하는 사탕발림 같은 게 아니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이었다.

“다들 각자 옷 가져가서 입어보세요.”

“네!”

걸린 옷을 들고 빠른 속도로 해산하는 연습생들.

가장 늦게 출발한 이연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귀족으로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욕지거리를 입 밖에 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이 금기를 처음으로 어길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안 입고 버틸 수도 없으니까.’

눈 딱 감고 입어보기로 결심했다.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벗고.

흰색 상의와 핑크빛이 감도는 스커트를 입었다.

거울 앞에 선 이연은 이런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예쁜 건 둘째치고, 어색해 죽을 맛이다.

그러나 옷을 갈아입고 나온 비아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어머어머어머! 뭐야, 언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어울리잖아!”

손으로 이연의 가녀린 팔을 찰싹찰싹 치면서 당사자보다 더 호들갑을 떨었다.

다른 연습생들도 서로 의상을 입은 모습들을 봐주면서 어떤 점이 부족한지, 수선이 필요한 곳이 있는지 등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우미가 이연의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이연아. 너, 허리 사이즈 좀 더 줄여야 하는 거 아니야? 헐렁헐렁해 보이는데.”

“이연 언니는 원래부터 허리 얇은데. 그새 살이 더 빠졌어?”

남자이자 귀족 출신이었던 그가 하루아침에 낯선 처자의 몸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니. 남들이 모를 몸 고생, 마음고생이 많았다.

그 여파가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라는 결과물로 나타나게 되었다.

핏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연은 우미의 말대로 치마 수선을 맡기기로 했다.

“기왕이면 스커트 길이도 좀 늘일 수 있을까? 하다못해 무릎까지는 내려왔으면 좋겠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지금도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데.”

줄이질 못할망정. 더 늘이겠다고 하니, 우미와 비아는 당연히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씨알도 안 먹힐 주장이라는 걸 깨달은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완벽한 무대에 서보는 것이 목표인데.

의상부터 이미 에러다.

* * *

마침내 다가온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첫 녹화 날.

일찍 집을 나서기 위해 새벽에 눈을 뜬 이연은 식탁 위로 가득 차려져 있는 아침상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머니. 아직 안 나가셨습니까?”

“오늘 우리 딸이 처음으로 방송 녹화 있다고 해서. 가게 사장님한테 1시간만 늦게 출근하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어. 기념비적인 날인데, 엄마가 우리 딸 밥이라도 먹이고 보내주고 싶어서. 와서 앉으렴.”

이전에 권이연이 차렸던 아침상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호화스러웠다.

“촬영이라는 거, 엄청 길게 한다며? 첫 끼를 든든하게 먹어야 힘도 나는 거니까 오늘은 마음껏 먹고 가.”

“감사합니다, 어머니.”

숟가락을 들고 된장찌개 국물을 떠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딸을 향하는 사랑처럼 국물 역시 굉장히 따뜻했다.

‘그리고 맛도 있고.’

이 나라의 음식에 익숙해진 모양인지, 이연의 숟가락과 젓가락은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사이, 남동생 권민준의 방문이 열렸다.

“누나, 아직 안 갔네.”

학교 가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다.

그럼에도 민준은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이들의 어머니는 민준이 왜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누나 응원해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구나?”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정곡을 찔렀다.

민준은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큰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이연의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자식이 부모님께 함부로 소리치게 되어 있나?”

“또 이상한 소리 하네.”

“뭐?”

한층 더 날카로워진 이연의 눈빛에 민준은 황급히 백기를 들었다.

“아, 알았어. 내가 잘못했다고. 아침부터 무서워 죽겠네.”

말은 퉁명스럽게 해도 민준이 누나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건 이연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녀의 선공개 무대 영상이 아카튜브에 업로드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친구들을 대동해서 조회 수를 올려주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의 응원.

이연은 옅은 미소를 흘리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무조건 1등 할 거니까 마음 편히 시청하고 계세요.”

이미 이연에겐 계획이 다 있었다.

* * *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가 나간 뒤,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를 향한 대중들의 관심은 매우 뜨거웠다.

LC 엔터테인먼트에서 오랜만에 선보이는 걸 그룹. 그것도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하겠다는 소식은 사람들의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낳았다.

대중들로부터 관심 끌기는 어느 정도 성공한 상황.

덕분에 데뷔를 향한 참가자들의 열망은 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녹화 시작과 동시에 넓은 스튜디오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1번 연습생, 진절혜.

소속사에서 거는 기대가 굉장히 큰 연습생인 만큼, 그녀가 프로그램의 첫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진행자도, 심사 위원도. 아무도 없다.

텅 빈 스튜디오에 오직 그녀 한 명뿐.

“우와……! 신기해라!”

진절혜는 순진무구한 척 연기를 하면서 스튜디오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그런 뒤, 연습생들이 앉을 의자가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이어 2번 참가자의 등장.

이렇게 쭉 순서가 이어지고. 이연과 같이 활약했던 우미와 비아도 카메라 앵글을 받으며 지정석으로 향했다.

마지막 32번 참가자의 등장.

또각, 또각.

힐굽 소리와 함께 무대를 가로질러 스튜디오로 모습을 드러낸 권이연의 모습에 연습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왜 저렇게 예쁘대?”

“역시 비주얼은 이연이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

SSS 의상을 입고 메이크업을 받은 채 긴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 나온 이연의 모습은 그야말로 여신이 따로 없었다.

스태프들 역시 놀랐다.

한껏 꾸민 이연의 비주얼이 이 정도일 줄은 그들도 예상 못 했던 것이다.

카메라 감독이 서윤철 PD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게 속삭였다.

“카메라가 32번 연습생 미모를 다 못 담을 거 같은데요? 사람이 아니라 무슨 CG 보는 기분이네요.”

“저런 사람이 아이돌 하는 거 아니겠어?”

연예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

무대에서의 이연은 더욱 돋보였다.

부채꼴 형태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연습생들을 올려다보면서 이연은 주먹을 작게 말아 쥐었다.

‘앞으로 3개월 동안 데뷔할 때까지 이곳에서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되겠지.’

짧은 시간 동안, 이연은 이에 대한 각오를 굳혔다.

자리로 향하는 와중에도 진절혜와 다른 연습생들은 이연한테서 눈을 뗄 줄 몰랐다.

그녀는 모두가 생각하는 견제 대상 1호로 거듭났기 때문이었다.

등장과 함께 연습생들 한 명 한 명씩 포커싱하는 과정은 이것으로 끝.

갑자기 조명이 무대 안쪽을 비췄다.

동시에 흘러나오는 배경음.

익숙한 노래가 연습생들의 귀를 자극했다.

“이 노래, 설마……?”

“세상에! 벡스 선배님들 노래잖아!”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7인조 보이 그룹, 벡스.

서브보컬을 맡고 있는 인기 멤버, 은솔이 큐시트를 들고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여성 못지않을 정도로 고운 외모를 자랑하는 미청년의 등장에 연습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꺄아악! 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우자, 이연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조금씩 진정이 되고 나서야 은솔이 겨우 오프닝 멘트를 시작했다.

“특별한 별들을 가리기 위한 서바이벌 오디션,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은솔입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감미로운 목소리에 연습생들은 다시 한번 크게 열광했다.

물론 이연을 제외하고 말이다.

연습생들을 바라보던 은솔이 옅은 미소를 띠었다.

“이렇게까지 뜨겁게 저를 맞이해 주실 줄은 몰랐네요. 저는 내심 여러분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선배님, 사랑해요!!!”

“선배님! 선배님! 선배님!”

여기가 SSS 녹화 현장인지, 아니면 벡스의 팬미팅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항상 눈빛에 독기를 머금고 있던 진절혜조차도 은솔의 달콤한 미소에 흠뻑 빠져든 상태였다.

“여러분들에게 아직 소개시켜 드려야 할 분들이 더 계십니다. 그분들이 등장하실 때에도 지금과 같이 열정적으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평가해 주실 중요한 분들이시거든요.”

진행자에 이어 심사 위원의 등장이 이어졌다.

LC 엔터테인먼트 대표, 오채일.

댄스 담당이자 1세대 아이돌로 활동했던 이석호 트레이너.

보컬 담당으로 수많은 가수들의 보컬 트레이닝을 담당했던 나현아 트레이너.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주린 선배님이십니다.”

현 LC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는 솔로 여성 가수로, 과거에 ‘밀크티’라는 이름의 4인조 걸 그룹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은솔에게도 대선배님으로 불릴 정도로 오랫동안 가수 활동을 이어왔다.

민주린의 등장에 연습생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심사 위원이라는 중책 때문인지, 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연습생들 앞에 나란히 섰다.

그중에서도 특히.

“민주린 선배님, 너무 무서우신데…….”

비아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언니들에게 말했다.

마치 사냥감을 눈앞에 두고 있는 호랑이의 눈빛과 매우 흡사했다.

이런 걸로 주눅이 들 이연이 아니었지만.

‘심사 위원들 중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일지도 모르겠어.’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데뷔조가 오롯이 대중들의 투표로만 정해지는 건 아니다.

LC 엔터테인먼트 소속 걸 그룹으로 데뷔할 멤버들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심사 위원들의 의견도 꽤 비중 있게 작용할 예정이다.

비율로 따지면 심사 위원 측이 4, 그리고 시청자 투표가 6.

적지 않은 수치다.

이 시스템이 연습생들에게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대중들로부터 표를 많이 받지 못해도, 심사 위원의 권한을 통해 무사히 생존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

심사 위원에게 찍히면,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그대로 아웃될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이 되느냐에 따라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기분 탓인가?’

이연은 민주린이 유독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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