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7화 (7/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7화

제3화. 이걸 나보고 입으라고?(1)

새벽 여섯 시.

상당히 이른 시간에 눈을 뜬 이연은 침대에 앉은 채로 명상에 돌입했다.

가부좌를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맑아짐을 느낀 이연은 20분의 시간이 지난 그제야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막 식당으로 출근하려던 어머니와 마주쳤다.

“어머, 일찍 일어났네?”

“일 나가시는 건가요?”

“응. 밥 차려뒀으니까 조금 있다가 동생하고 같이 먹으렴. 알았지?”

“예.”

동이 트기도 전에 먼저 현관문을 나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연은 생각이 많아졌다.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선 이연은 능숙한 솜씨로 머리카락을 묶었다.

전생에서도 머리카락이 긴 편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머리카락을 다루는 것에 익숙했다.

가벼운 세수로 잠의 요정을 완전히 쫓아낸 뒤에 부엌으로 향했다.

마침 인기척에 눈을 뜬 남동생도 이른 시간에 거실로 나왔다.

“……엄마는?”

“출근했다. 너도 학교 가려면 슬슬 씻어라.”

명령투였다.

이전 같으면 바로 반항아 모드가 발동되었을 테지만.

이연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부터는 강제로 누나의 말에 곧이곧대로 따르는 착한 남동생이 되어버렸다.

권민준이 씻는 동안, 이연은 손수 아침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다 씻고 나온 민준은 식탁의 상태를 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 누나! 이게 다 뭐야!”

“정말로 몰라서 묻나? 밥상이잖아.”

민준이 놀란 건 이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침 밥상치고는 너무나도 거창해서였다.

현미밥, 김치, 무말랭이, 계란후라이, 시래깃국, 김, 참치 캔, 깻잎, 양파절임 등등.

냉장고 안에 있는 모든 반찬을 다 꺼내 식탁에 쫙 나열해 뒀다.

“아니, 아침이잖아. 그냥 간단하게 먹으면 되는 걸, 반찬을 이렇게 많이 깔아놓는다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생일상이라도 차린 줄로 알 것이다.

그러나 이연의 고집은 꺾일 줄 몰랐다.

“어허! 귀족의 아침상이 허름하면 쓰나! 낮이든, 밤이든.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귀족이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이쯤 되니, 민준은 이연이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뭘 잘못 먹은 것으로도 한참은 부족한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기껏 차린 걸 없던 걸로 되돌리자니 좀 그렇고.

마지못해 자리에 앉기로 했다.

“근데 누나. 회사에서 뭐 촬영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 아카튜브에 먼저 공개될 거라고 들었는데.”

팀 안무 연습 영상을 가리키는 거였다.

“그거라면, 이미 업로드됐다.”

“진짜? 언제!”

“어제 점심쯤.”

“왜 말을 안 했어.”

“말하면 뭐 하게.”

“조회 수라도 올려줘야지. 보나 마나 누나 팀이 꼴찌일 거잖아.”

민준도 이연이 소속사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대충 알고 있다.

이연이 예전부터 민준에게 여러 차례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준은 선공개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친구들을 대동해서 조금이나마 조회 수를 올려줄 생각이었다.

“어디 가면 볼 수 있어?”

“소속사 공식 채널. 케이블 방송국 채널에도 같이 올라갔다고 하더군.”

“잠깐만 있어봐…… 어어??”

동영상 목록을 확인하자마자 민준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 팀 영상이…… 조회 수 1위라고?”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 * *

놀란 건 민준뿐만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실장과 함께 영상을 확인했던 박도수 매니저 역시 기적 같은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두 사람과 동일했다.

업로드된 댓글을 다시 한번 체크해 보는 박도수 매니저.

-세상모든지식 : 미쳤다, 미쳤어 ㅜㅜㅜㅜㅜㅜㅜㅜ 언니들, 사랑해요!!!!!!!!!!!!

-qppp2944 : 연습생들 영상 다 봤는데, 이 팀이 제일 잘 췄다. 바로 걸 그룹 데뷔해도 될 거 같은데?

-리플밴드 : 방송 나오면 무조건 이 팀이 1픽!!! 데뷔 가자!!

권이연 팀의 안무 영상이 모든 연습생 팀을 통틀어서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실제로 찍힌 조회 수는 323,392회.

2위를 달리고 있는 진절혜 팀과는 2배 이상의 격차가 벌어진 상태였다.

“이연이 팀이 조회 수 잘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는데. 설마 절혜네 팀보다 높게 나올 줄은 몰랐네요.”

잔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후릅 마신 실장 역시 박도수 매니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회 수뿐만 아니라 좋아요 수치도 압도적이다.

“커뮤니티에 입소문까지 탄 거 같더라. 다른 애들 영상은 안 보고, 이연이 팀 영상만 보려고 우리 채널 방문하는 사람들도 꽤 돼.”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일단은 안무 퀄리티 자체가 높잖아. 게다가 요즘 대중들이 좋아하는 걸크러쉬 콘셉트도 잘 가져다가 썼고. 이연이가 작전을 잘 짠 거지.”

단순히 춤만 잘 춘다고, 노래만 잘 부른다고 스타가 되는 건 아니다.

내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적인 요소도 커다란 성공 원인이 된다.

다 좋은데.

“이연이가 언제부터 이런 기질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네. 도수, 너는 전혀 몰랐어?”

“예? 아, 네.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마치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거 같더라고요.”

“누가 이연이 몸에 대신해서 들어와 있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가요.”

믿기 힘들겠지만, 정답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추측이었기에 이들은 그냥 가볍게 웃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나저나 절혜가 아주 화가 단단히 났겠네.”

연습 단계에서도 이미 자신이 속한 팀이 무조건 1등이 될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으니.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실제로 홍 실장과 박 매니저가 연습생들이 모여 있는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평소와 사뭇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연습생들이 진절혜의 눈치를 살피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홍 실장이 일부러 헛기침 소리를 크게 냈다.

“어흠! 다들 왔어?”

“아직 안 온 애들 있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세 명의 연습생들.

양우미, 이비아. 그리고 권이연까지.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가장 마지막에 등장했다.

연습생들의 시선이 이들에게 쏠렸다.

우미와 비아가 무의식적으로 홍 실장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아직 10시 안 됐는데, 뭘. 와서 앉아.”

달라진 홍류현 실장의 대우에 우미, 비아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반면 권이연은 홍 실장이 말한 것처럼 당당하게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매니저와도 한 말이지만, 확실히 이연은 달라졌다.

너무 달라진 탓에 홍 실장은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

그래도 좋다, 나쁘다를 굳이 따진다면 당연히 전자라고 할 수 있다.

실적이 모든 것을 용서해 주는 세계.

그곳이 연예계니까.

“다들 아카튜브에 올라간 영상들, 확인했지?”

“네!”

“확인해 보니까 이연이, 우미, 비아 팀이 1등이더라. 다들, 박수 한번 쳐주자.”

홍 실장의 지시에 따라 연습생들이 일제히 이들 셋에게 박수를 보냈다.

진절혜 역시 X 씹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손뼉을 마주쳤다.

1등. 물론 좋긴 좋다.

하지만 아쉬운 게 있었다.

선공개 영상에서 1등을 해봤자 딱히 떨어지는 게 없었다.

홍 실장 역시 그 부분을 언급했다.

“1등 되었다고 뭔가를 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본 방송에서는 성적이 좋을수록 그만큼 베네핏을 줄 예정이니까 다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보자. 오케이?”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다음 주에 있을 사전 녹화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 줄게.”

오늘 32명의 연습생을 한자리로 모이게 한 가장 큰 이유다.

“수요일에 제작진이 한 명씩 불러서 너희 자기소개 영상하고 인터뷰 딸 거야. 이것도 공식 채널에 올라갈 거니까 최대한 예쁘게 하고 찍어. 말하는 것도 순화해서 하고.”

멘트에 대한 주의를 줄 때, 홍 실장의 시선이 권이연에게 잠시 머물렀던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이연의 경우에는 이미 한번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특히나 더 강조해서 말을 한 거였다.

물론 그걸 따를지 말지는 이연의 마음이겠지만 말이다.

“인터뷰 끝나면, 그다음 주에 너희가 그토록 기다리는 첫 녹화 들어갈 테니까 준비 단단히 해두고. 심사 위원으로 대표님도 직접 참가하실 거라는 말, 들었지? 대표님 앞이라고 너무 긴장하지 말고. 평상시 연습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후회 없이 마구 뽐내봐.”

계속 설명을 이어가던 와중에 한 연습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실장님, 질문 있습니다!”

“말해봐.”

“기사 보니까 MC 맡으실 분이 따로 계시다고 하시던데. 혹시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당돌한 질문에 홍 실장이 피식 웃었다.

“그건 녹화 당일 직접 확인해 봐.”

핵심적인 정보는 방송 당일까지 연습생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연은 딱히 상관없었다.

MC가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순위가 가장 중요할 테니까.’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방송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녹화가 시작되기 전.

연습생들은 각자 방송 무대에서 보여줄 자신의 장기를 갈고닦기 위해 연습에 몰입했다.

이연의 경우에는 이미 보컬이며, 댄스며, 비주얼이며. 모든 부문에서 거의 MAX치를 찍었기 때문에 다른 연습생들처럼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하진 않았다.

대신에 자신과 같은 팀을 꾸렸던 우미, 비아의 연습을 봐주는 데에 집중했다.

“비아. 노래 부를 때 비음이 너무 많이 섞여 있어. 특히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그런 경향이 심하게 나오니까 주의해.”

“응, 알았어!”

“그리고 우미 언…… 니는 목에 자꾸 힘이 들어가는 거 신경 쓰고.”

양우미와 같이 연습을 한 시간도 이제는 꽤 되는데. 이놈의 언니라는 호칭은 여전히 이연의 입에 붙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컬 연습은 여기까지.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댄스 연습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고생했어, 언니!”

“우리들 봐줘서 고마워, 이연아. 근데 정말로 괜찮겠어? 너도 연습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미는 이연이 두 사람을 위해 계속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불안했다.

지금도 세 사람이 찍은 선공개 영상이 조회 수 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대중들의 기대감이 올라간 만큼, 본 방송에서도 많은 활약상을 보여줘야 하는데.

정작 이연은 준비를 거의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이러는 게 미래의 나한테 더 큰 도움이 되니까 이러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나중에 때가 되면 다 설명해 줄게.”

아직은 시기상조다.

그래서 당분간 이연은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둔 큰 그림의 정체를 숨길 생각이었다.

궁금하지만, 본인이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 우미와 비아는 굳이 이연을 닦달하지 않았다.

수건으로 땀을 닦아낸 비아가 우미, 이연에게 물었다.

“언니들, 그러면 바로 집에 갈 거지?”

“그래야지.”

우미의 뒤를 이어 이연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같은 뜻을 전했다.

그러자 비아가 잘됐다는 어투로 둘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면 같이 샤워하고 가자. 땀범벅인 상태로 집에 가면 찝찝하잖아.”

“그럴까?”

“응! 이연 언니도 샤워실로 가자.”

이연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낯선 여자들과의 샤워.

그에게 환생 이후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