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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6화 (6/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6화

제2화. 이상한 연습생(3)

안무에 대한 감상평은 없고.

완전히 달라진 권이연의 댄스 실력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언니, 저번 달까지만 해도 맨날 선생님들한테 지목받아서 보충 레슨 받고, 그랬었잖아. 근데도 도통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고 하면서 나한테 진지하게 상담도 요청했었는데.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말해봐!”

속사포처럼 이연을 닦달하는 비아.

그녀처럼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사실 우미도 비아와 같이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연은 두 사람 몰래 한숨을 삼켰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

두 사람에게 자신의 환생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귀찮고.

그래서 그냥 열심히 혼자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물론 우미와 비아는 이걸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촬영본을 넘겨야 했기에 추궁은 나중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원래 TH는 5인조 그룹이다.

다섯 명이 소화해야 하는 안무였기에 3명으로 각색을 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완성도가 있었다.

“이걸 하루 만에 다 짠 거야?”

우미가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하루 정도면 충분하지.”

이연에게는 어려운 난이도는 아니었다.

음유시인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이보다 더한 환경에서 급하게 무대를 꾸며야 했던 적도 있었다.

보컬뿐만 아니라 안무 역시 수준급 실력을 지닌 그녀.

춤에 대한 이해도는 굉장히 높은 편이지만, 이 세계에 대한 문화는 아직 적응 중이었기 때문에 지금 짠 안무도 100퍼센트 만족스럽진 않았다.

약간의 부족함은 연습생이라는 신분으로 얼추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이연은 여기까지 머릿속으로 다 계산해 뒀다.

차라리 잘됐다.

너무 완벽하면, 우미와 비아처럼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은 다 봤으니까. 바로 맞춰보도록 하지.”

“엑? 자, 잠깐만! 지금 바로?”

“한 번 보면 됐지, 더 시간이 필요한가?”

“한 번에 어떻게 이걸 다 외우냐고!”

루웰은 자신의 일반인 연기가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연습 무대 촬영까지 D-3.

권이연의 빡센 하드 트레이닝 덕분에 우미와 비아의 실력은 짧은 기간 동안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이들이 어느 부분이 약한지. 족집게처럼 집어주는 이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크나큰 도움이 된 거였다.

잠시 쉬는 시간.

수건으로 목덜미에 맺힌 땀들을 훔친 비아가 이연을 향해 존경을 담은 눈빛을 보냈다.

“이연 언니가 트레이너 쌤들보다 더 잘 가르쳐 주는 거 같아.”

비아도 동생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그러게. 쌤들은 윽박지르기만 하시고.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좋을지 세심하게 알려주시진 않던데.”

이들 말고도 가르쳐야 할 연습생들이 워낙 많으니까.

디테일한 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이연은 우미, 그리고 비아. 딱 둘만 데리고 하는 거였기 때문에 이들이 원하는 세심한 가르침이 가능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실제로 이연이 더 잘 가르치는 건 맞는 말이다.

강사로 일한 경력만 놓고 본다면, 이곳에서 일하는 트레이너들보다 권이연이 더 길 테니까.

현역이면서 동시에 후배 양성에도 힘을 썼던 권이연이었기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익숙했다.

덕분에 우미와 비아의 안무 이해도를 끌어올리는 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다 쉬었다 싶을 때.

권이연이 돌연 자신의 스마트폰을 찾았다.

“왜, 이연아? 연습 안 해?”

“한 번만 맞춰보고, 바로 시작하게.”

“뭐를?”

이연이 한쪽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촬영.”

너무 빠른 진도 때문에 우미와 비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 *

이연한테서 톡 메시지를 받은 매니저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준비 다 끝났으니까 오늘 저녁에 바로 녹화 진행하자는 내용의 톡을 보고 또 봤다.

확실히 그가 잘못 본 건 아니었다.

확인을 위해서 매니저는 잠시 사무실을 나와 권이연 팀이 있는 안무 연습실을 찾았다.

“진짜로 오늘 바로 촬영할 거야?”

“네.”

당당하게 말하는 권이연이었지만.

그녀의 뒤에 서 있는 팀원들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고개를 좌우로 거세게 흔들면서 우리는 동의한 적 없다는 뜻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었다.

매니저는 사실 권이연의 이런 결정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직 3일이나 남았는데. 그 시간에 좀 더 오랫동안 연습해서 안무 퀄리티를 높이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연은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다.

“1이 100이 되는 과정은 끝났습니다. 여기서 더 해봤자 100이 101, 102밖에 안 될 거예요.”

시간 대비 효율이 너무 안 좋다.

권이연이 느끼기엔, 남은 시간 동안 차라리 방송에 대비한 훈련을 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였다.

매니저도 이연의 결단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시간을 어떻게 쪼개고 활용하느냐. 여기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이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회사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기본적인 것들은 확인해야 했다.

“알았어. 그러면 일단 내가 보고 결정할게.”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양보할 수 있다.

권이연은 우미와 비아에게 손짓을 했다.

별다른 말이 없어도 알아서 척척 대열을 갖춰 자리에 서는 이들.

매니저는 이들의 서 있는 위치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연이가 센터인가. 하긴. 그 편이 좋겠지.’

비주얼로 따지면 32명 중 단연 권이연이 톱이다.

키도 크고. 모델 뺨치는 신체 비율을 자랑하고 있기에 그녀가 센터에 서면 무대가 확 살아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보컬과 댄스 실력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무대가 시작되자마자 눈 녹듯 사라지게 되었다.

TH의 ‘리스펙트’ 반주가 흘러나오자마자 매니저는 귀를 의심했다.

노래도 노래지만.

‘리스펙트’는 아이돌 그룹들의 안무 중에서도 상당히 격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럼에도 권이연은 마치 이 노래가 자신의 노래인 것처럼 능숙한 춤선을 뽐냈다.

촤락!

기다란 손을 뻗자, 아름다운 곡선의 형상이 표현되었다.

팔도, 다리도 가늘고 길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감탄이 절로 흘러나올 정도로 화려한 동작이 펼쳐졌다.

원, 투, 쓰리, 포.

그리고 중앙까지 걸어간 다음에 턴.

발레를 연상케 하는 완벽한 360도 회전 동작에 매니저는 감탄을 삼켰다.

초반부터 강렬한 포스로 무대를 사로잡은 권이연이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섰다.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뒤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우미와 비아의 차례가 펼쳐졌다.

‘이연이에 비하면 약간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확실히 많이 나아졌어.’

본인이 매니저다 보니, 연습생들의 안무 연습 과정을 다 한 번씩 직접 볼 수밖에 없었다.

32명. 총 8개의 팀으로 나뉜 연습생들 중에서 단언 권이연 팀이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연과 우미, 비아. 셋의 눈빛이 교차했다.

동시에 약속처럼 세 사람이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오른팔을 위로 들어 올린 채 물결을 그리듯 웨이브를 표현해 냈다.

마치 싱크로나이즈를 보는 듯했다.

몸을 일으킨 이연이 두 팔을 수평으로 뻗은 채 당당한 워킹을 뽐내며 매니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한 손으로 긴 머리카락을 빠르게 훑었다.

찰랑이는 머릿결.

자신감이 묻어 나오는 이연의 표정을 보면서 매니저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모든 무대가 끝난 뒤.

짝짝짝!

매니저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데? 잘했어!”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극찬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이연은 기쁜 표정보다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우리 이연이, 연습 많이 했구나. 놀랐네, 놀랐어.”

이전의 평가가 어떻게 되었든 상관없다.

지금 당장의 무대가 너무나도 훌륭한 탓에 쓴소리를 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선곡, 안무, 그리고 무대 매너와 표정 연기까지.

모든 게 다 완벽했다.

이연이 괜히 오늘 저녁에 바로 녹화를 시작하자고 호언장담했던 게 아니었다.

“촬영팀한테는 내가 연락해 둘게. 준비해둬.”

“예, 알겠습니다.”

매니저 심사에서 무사히 통과한 권이연 팀.

꼴찌 라인이 보여준 예상외의 선전에 매니저는 자신도 모르게 기대감이라는 것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 * *

아직 기한까지 3일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촬영을 하고 싶다고 자원한 팀이 있다는 소식에 제작진은 의심부터 했다.

심지어 그 팀의 정체가 소위 ‘꼴찌 팀’이라 불리고 있으니.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권이연 팀의 연습 무대를 보기 전까지는 다들 이런 식으로 매니저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퍼포먼스를 보고 난 뒤에는 이런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촬영을 마치고 늦은 밤, 방송국으로 복귀한 제작진.

외부 미팅을 마치고 돌아온 서윤철 PD가 뒤늦게 편집실을 찾았다.

“첫 연습 무대 촬영 끝났다면서.”

“네, 선배님.”

“이연 양 팀이지? 어땠어?”

단체 소개 이후, 권이연을 향한 서 PD의 관심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캐릭터.

묘하게 현실적이고, 그리고 묘하게 꼰대스러운 면을 갖춘 여자 아이돌은 PD로 일하면서 처음 보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오늘 제작진이 권이연 팀을 대상으로 촬영하고 오겠다고 했을 때에도 상당히 아쉬웠다.

내가 갔었어야 했는데. 이런 아쉬움 말이다.

“어땠어?”

“직접 보시겠어요?”

말로 하는 것보다 눈으로 한번 보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서윤철 PD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조연출이 곧바로 영상을 재생했다.

센터에 서 있던 권이연이 앞으로 치고 나오면서 먼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이드 스탭 이후에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포메이션 전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후렴구에 접어들자마자 이 곡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파워풀한 안무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남자 아이돌 그룹 노래를 픽해서 그런지, 걸크러쉬 콘셉트가 아주 잘 살아났다.

마무리로 이연이 다시 센터에 서면서 카메라 방향 쪽으로 힘 있는 앞차기를 선보였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녀의 얼굴에 붙었다.

거친 호흡을 내쉬며 조금씩 들썩이는 권이연의 상체.

이 한 번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좋네. 역시 내가 눈여겨볼 만한 연습생다워.”

“서 PD님, 완전히 권이연한테 꽂혔나 보네요.”

“이전에는 진절혜, 그 아가씨를 위한 오디션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근데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고 있어.”

메인 PD의 관심을 사로잡기 시작한 건 좋은 현상이다.

그만큼 카메라에 더 자주 얼굴을 비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커진 거니까.

하지만 데뷔 그룹은 제작진이 만드는 게 아니다.

LC 엔터테인먼트 관계자.

그리고.

“결국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습생이 승자로 남겠지.”

권이연의 이런 개성이 과연 대중들에게도 먹힐 수 있을까?

그건 서윤철 PD도 장담할 수 없다.

신선한 캐릭터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신선하다’와 ‘매력적이다’라는 건 매번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서 PD가 조연출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이거 미리 편집해 두고, 나중에 다른 팀 녹화도 끝내면 그때 같이 영상 업로드해.”

“네, 선배님. 근데 바로 퇴근하시게요?”

“응? 왜?”

“저는 또. 선배님이 사무실에 다른 볼일이 있으셔서 미팅 끝나자마자 집에 안 가시고 이곳으로 오신 줄 알았었는데…….”

“볼일 다 끝났잖아.”

권이연의 연습 촬영본을 보기 위해서.

이게 서 PD가 재출근을 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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