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4화
제2화. 이상한 연습생(1)
촬영은 한 달 남짓 남은 상황.
빠르면 빠르고, 느리면 느리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이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교복을 입은 남동생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누, 누나.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이연의 시선이 벽에 걸린 작은 시계로 향했다.
평일 오후 2시.
남동생은 지금,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넌 왜 집에 있나?”
“…….”
남동생이 이연의 시선을 억지로 피했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건, 찔리는 게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이다.
이연의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권민준의 정보에 의하면, 그는 모범생과 거리가 먼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행실이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고, 이로 인해 남동생은 점점 더 학업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땡땡이라도 쳤냐?”
“때, 땡땡이친 거 아니야. 오늘 학교 일찍 끝나는 날이라고.”
“시험 보는 날도 아니었을 텐데.”
변명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다 차단하는 한마디.
순간 민준은 욱하고 말았다.
“X같네. 누나면 다야? 누나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데!”
이연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녀는 귀족 가문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형제자매의 서열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었다.
이런 와중에 민준이 욱하고 면전에서 소리를 지르는데. 이연이 남동생을 좋게 볼 리가 없었다.
마침 집에는 오직 그녀와 남동생, 둘뿐.
이연이 갑자기 먼저 자세를 취했다.
오른손을 까닥, 까닥.
“덤벼라.”
“……뭐?”
“오늘, 내가 너한테 위계질서라는 게 뭔지 혹독하게 알려주마.”
예상치도 못한 누나의 폭탄 발언에 민준은 크게 당황했다.
원래의 민준이라면,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고 먼저 백기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 말, 후회하지 마.”
이제는 더 이상 누나에게 잔소리 받기 싫다는 고집 때문인지, 민준 역시 금방이라도 누나에게 달려들 듯한 기세를 보였다.
사실 힘으로 따지면, 여자인 이연이 남자인 민준을 당해낼 수가 없다.
그래서 민준은 누나에게 그냥 겁만 주고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민준의 허튼 생각에 불과했다.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던 이연의 몸이 순식간에 시각 범위 밖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쿵!
천장과 바닥, 그리고 다시 천장이 번갈아가면서 민준의 시야를 채웠다.
그제야 민준은 자신이 누나에게 뭔가를 당해 바닥에 철푸덕 널브러진 신세가 되었음을 인지했다.
공격을 당했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통증도 뒤늦게 밀려왔다.
“허, 허리가……!”
“남자가 그거 한 방에 나가떨어지나?”
너무 약한 남동생의 모습에 도리어 화가 날 정도였다.
반대로 민준은 눈앞에 벌어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누나는 태어나서 주먹 한번 써본 적 없는 사람이다.
본인보다 힘도 약하고. 그리고 누군가를 때리거나 한 적도 없었다.
자신이 너무 방심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자, 다시 화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누나, 이번엔 진짜로 안 봐줄 거야.”
독기가 뚝뚝 묻어 나오는 남동생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여유만만이었다.
“내가 네놈, 오늘 위계질서가 뭔지 알려준다고 했지? 계속 덤벼봐라.”
이 말이 허세가 아님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 *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권씨 집안에 민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신을! 차리자!”
“엉덩이 더 안 내리냐?”
빠악!
이연의 발이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고 있는 민준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여리여리한 여성의 발차기라고 믿기 힘든 묵직함이 느껴졌다.
“목소리 더 크게! 하나!”
“정신을!”
“둘!”
“차리자아아!!!”
민준이 놓친 게 하나 있었다.
지금 이연은 자신이 알고 있던 며칠 전까지의 그 착한 누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음유시인, 루웰은 유명인답게 매번 신변 보호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경호원도 경호원이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스스로를 지킬 힘 정도는 길러둬야 했다.
그래서 루웰은 왕실 친위대 기사단장에게 직접 검술을 포함해서 각종 무술을 배웠다.
명목상 호신술이지만, 스승이 스승인지라 중급 던전은 혼자서 클리어할 정도까지 강해졌었다.
그 강함은 저승사자와의 환생 계약, 그 두 번째 조건을 통해 그대로 승계되었다.
동네 양아치 수준에 불과한 민준이 애초에 힘으로 누나를 이길 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누나, 아이돌 수업이 아니라 무술 훈련받고 온 거 아니야?”
“시끄럽다.”
퍽!
다시 한번 가해지는 참교육.
결국 민준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 채 백기를 들어야만 했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다고! 그러니까 그만 좀 때려! 뼈 부러지겠어!”
자세를 낮춰 민준과 시선 높이를 맞춘 이연이 살벌한 목소리로 물었다.
“앞으로 주먹질 때려치우고 학교 제대로 다닌다고 나하고 약속해라. 그러면 봐주마.”
“그건…….”
“더 맞고 싶다고? 원하는 대로 해줄까?”
“아아아아아아니야! 미안해! 누나 말대로 할게! 하면 되잖아!”
“진작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건 적극적인 설득도, 상냥한 언행도 아니다.
주먹이다.
주먹만큼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
이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착하고 수업 잘 듣는 학생이 되겠다고 여러 차례 맹세를 하고 나서야 겨우 누나로부터 자유의 몸이 된 민준.
이때, 장을 보고 돌아온 남매의 어머니가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집안 분위기를 느낀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일 있었니?”
엄마의 물음에 이연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이렇게 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치, 동생?”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찌릿.
따가운 누나의 눈총에 의해 민준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에 동참해야만 했다.
“펴…… 평소대로 집 잘 지키고 있었어요. 누나 말대로요.”
“그럼, 그럼.”
탁, 탁!
민준의 어깨를 토닥이는 이연의 손에 유독 힘이 실렸다.
* * *
데뷔 방송 출연을 앞두고 LC 엔터테인먼트에서 자체적으로 선정한 32명의 연습생이 처음으로 전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이 중에는 권이연에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고 있는 진절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유독 따가웠다.
이유야 뻔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지가 월말 평가 때 1위 했었겠지.’
아이돌 세계는 무한 경쟁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다.
무대는 한정적이고. 그 무대에 설 수 있는 아이돌은 무수히 많다.
같은 소속사라고 모두가 다 전우는 아니다.
나에게 올 수 있는 기회가 다른 이에게 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연이 절혜의 시선을 정면으로 응수하자, 그녀가 크게 당황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쪽팔리겠지.’
자신보다 밑이라고 생각했던 연습생이, 정작 본인보다 높은 순위를 받았으니까.
루웰이 권이연의 몸으로 들어온 이상.
‘그쪽한테 질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LC 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해서 데뷔조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총괄할 메인 PD가 그녀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윤철 PD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부터 차례대로 소개를 하자면…….”
카메라 감독부터 시작해서 헤드 스태프들을 빠르게 소개하는 서 PD.
그가 한 명 한 명 소개를 할 때마다 32명의 연습생은 최대한 밝은 미소로, 그리고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를 외쳤다.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어둬야 나중에 방송도 수월해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스태프들의 소개가 끝나고.
“우리 연습생분들도 한번 자기소개 해볼까요?”
“연습생들도요?”
실장이 크게 놀라며 물었다.
32명이나 되는 인원들을 언제 다 소개하나.
그러나 서 PD의 생각은 달랐다.
“어느 연습생들이 어떤 스타일을 지니고 있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저희가 파악하고 있어야 나중에 편집할 때도 수월하거든요. 아, 자기소개 하고 나서 저희한테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 하나 정도는 하셔도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연습생들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진절혜부터 먼저 시작된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LC 엔터테인먼트에서 귀여움과 청초를 담당하고 있는 진절혜입니다! 궁금한 거는…… 딱히 없고, 제작진 여러분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노골적인 접대 멘트에 루웰은 순간적으로 헛구역질을 할 뻔했다.
귀여움이 넘치는 진절혜의 자기소개에 스태프들은 작게 웃었다.
진절혜만 그런 건 아니었다.
연습생들 대부분이 다 질문 대신 제작진을 향한 구애의 한마디를 흘렸다.
점점 다가오는 이연의 차례.
실장이 서 PD에게 슬쩍 귓속말을 했다.
“저번에 월말 평가 때 보컬로 1위 했던 연습생입니다.”
“오, 그래요? 기대되네요.”
오채일 대표를 통해서 권이연에 대한 소식을 들은 모양인지, 서 PD의 눈에 생기가 감돌았다.
스태프들 앞에 선 권이연.
“안녕하십니까. 권이연입니다. 질문 하나 하고 싶습니다만.”
“네, 하세요.”
다른 연습생들처럼 자신을 어필하기 위한 애교 멘트라도 준비한 걸까.
제작진의 기대치가 높아졌을 때.
이연이 들려준 말은 이러했다.
“상금이 얼마나 됩니까?”
매니저가 이마를 탁! 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연습생들의 애교 멘트를 선보이는 동안, 권이연은 속으로 쓴소리를 삼켜야 했다.
‘질문하라고 했더니, 이상한 헛소리만 나불대는군.’
그래서 권이연이 대표로 연습생들 모두가 다 관심을 보이는 질문을 꺼냈다.
상금.
아직 구체적인 액수를 듣지 못했다.
연습생들도 궁금해하긴 했지만, 너무 속물처럼 보일까 봐 일부러 하지 않았던 질문을 그녀는 대놓고 했다.
매니저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냥 농담으로 던져본 말인데.
설마 그걸 진짜로 내뱉는 눈치 없는 연습생이 어디 있을까 싶었는데.
여기 있었다.
반면, 제작진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지어졌다.
서 PD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확정된 건 아닙니다만, 데뷔조 안에 드는 것과는 별개로 1등을 한 연습생에게는 아마…… 7천만 원 정도의 상금이 주어질 거 같습니다. 부상으로 준중형 SUV 한 대도 줄 겁니다.”
“신형입니까?”
“네. 저희 스폰서 중에서 국내 자동차 업체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쪽에서 제공할 겁니다. 근데 신형인지 중고인지도 많이 중요한가 보네요. 하하.”
권이연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상금 받고, 차는 수령하면 바로 팔아버리고.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 여유 자금이 생길 거 같다.
한편, 서 PD는 너무나도 솔직한 이연의 질문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상금에 관심이 많은가 보군요.”
“예.”
“더 질문 없나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PD에게 기대하라고 했던 실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런 걸 기대하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의도가 많이 비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