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3화 (3/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3화

제1화. 듣도 보도 못한 연습생(2)

월말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 권이연.

매니저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이비아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언니! 들었어? 언니가 이번 월말 평가 1위래! 방송 출연이라고, 방송 출연!

LC 엔터테인먼트에서 타 케이블 채널과 협업해서 이번에 새롭게 걸 그룹 데뷔 프로젝트를 촬영하기로 했다.

회사 소속 연습생들의 얼굴을 대중들에게 알리면서 동시에 새롭게 공개할 걸 그룹 홍보도 되고. 여러모로 좋은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모든 연습생들이 이 기회를 거머쥘 수 있는 건 아니다.

두 가지 조건이 걸려 있다.

첫 번째. LC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이어야 할 것.

두 번째. 월말 평가에서 성적이 좋아야 할 것.

이 중에서 눈여겨봐야 할 건 두 번째 조건이다.

여태껏 성적이 안 좋아도 딱 한 번, 이 한 번이라도 1위를 차지한 연습생이 있다면 방송 출연권이 주어진다.

어제의 월말 평가가 막차였던 셈.

이 막차에서, 권이연은 1위라는 기적을 이루게 되었다.

-축하해, 언니! 이제 나하고 언니, 그리고 우미 언니까지. 셋이서 다 같이 방송 나갈 수 있게 됐어!

“그래?”

-응! 사실 나하고 우미 언니, 둘이서 이연 언니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 엄청 했거든! 오늘에서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네. 어휴! 정말. 하여튼 동생 걱정 좀 그만 시켜.

본의 아니게 자신보다 두 살 어린 동생에게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도 이비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언니와 같이 방송 출연권을 따낸 게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여전히 하이톤을 유지했다.

-아무튼 고생했고. 내일 회사에서 봐, 언니.

그대로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루웰은 다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다, 이거지?’

새로운 세계.

그리고 새로운 무대.

권이연의 심장이 벌써부터 뛰기 시작했다.

* * *

오전 7시 반.

몸을 일으키자,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기다란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긴 머리는 루웰 시절 때에도 익숙했던 거였기에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체형도 마른 체형으로, 전생과 비슷하고.

‘생리 현상의 차이는 있겠지.’

침대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그래도 이 여성, 화장 같은 걸 전혀 안 했는데도 나름 괜찮군.’

보면 볼수록 탐이 나는 얼굴이다.

하지만 루웰의 미모 기준은 상당히 높다.

아침부터 자신의 미모에 홀리거나 하진 않았다.

‘일단 좀 씻어야겠어.’

귀족 출신이다 보니, 청결에 굉장히 민감했다.

우선은 샤워부터.

이연은 닫혀 있는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볼일을 보고 있던 남동생이 화들짝 놀랐다.

“우왓! 뭐, 뭐 하는 거야! 누나, 미쳤어?”

“여기는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나?”

“그럼 하나뿐이지. 우리 집에 또 뭐가 있겠어?”

전생의 버릇이 나오고 말았다.

루웰이 살던 대저택은 화장실이 두 자릿수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자신의 집에 거주하는 하녀, 집사들도 그만큼 많았을뿐더러, 넓게 마당도 펼쳐져 있었다.

이에 비해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은 지어진 지 40년이 막 넘어가는 낡디낡은 4층짜리 빌라다.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던 기억을 가진 루웰이 여기에 만족할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돈은 벌어야겠군.’

모처럼 얻은 2회차 인생인데. 가난 속에서 평생 고통받으며 썩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샤워할 거니까 나가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먼저 왔잖아.”

“어허! 형제자매 사이에도 지켜야 할 순서가 있거늘. 그런 것도 모르나?”

“누나, 뭐 잘못 먹었어? 말투도 그렇고. 아까부터 왜 그래? 아야야! 밀지 마! 밀지 말라고!”

말이 안 통하면, 무력을 행사하면 된다.

남동생을 강제로 쫓아낸 루웰은 충격에 휩싸였다.

‘뭐지? 이 좁은 공간은.’

자신이 살았던 대저택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좁고 허름한 화장실의 모습에서 루웰은 약간의 두통을 느꼈다.

여성의 몸으로 샤워를 하게 된 일보다 화장실의 상황이 더 충격적이었다.

‘우리 가문이 몰락했을 때의 시절이 떠오르는군.’

루웰이 음유시인으로 대성공을 거두기 전에는 이와 비슷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어려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그를…… 아니, 그녀를 다시 찾아왔다.

그녀의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된 현대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아-

민망해서 전면에 있는 거울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샤워를 하기로 했다.

여자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를 거부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샤워를 마친 루웰은 수건으로 빠르게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화장실을 나오자, 부엌 쪽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그곳에 피곤한 얼굴로 앞치마를 두른 채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 이연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딸, 일어났니?”

새벽 늦게까지 일하다가 아침에 겨우 들어온 어머니.

“네. 안 주무세요?”

“너희 아침 챙겨주고 자야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싶진 않은지, 주걱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문득 루웰은 전생의 그녀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내가 음유시인으로 성공하기 전까지, 어머니께서 고생을 참 많이 하셨었지.’

그때나 지금이나. 루웰과 권이연의 어머니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힘내고 있었다.

불행한 건, 그럼에도 여전히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방에 걸려 있는 옷가지 중에 아무거나 꺼내 입었다.

현관문을 닫고 밖으로 나선 그녀는 우편함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야 했다.

‘뭐가 이렇게 많이 쌓여 있지?’

본인과 가족들이 살고 있는 402호 우편함을 열었다.

그러자 온갖 체납 고지서가 쏟아졌다.

‘많기도 하군.’

집이 가난하다는 건 대충 알고 있었지만, 공과금에 병원비, 심지어 월세가 3개월 치나 밀려 있다는 쪽지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우편함을 다시 닫은 루웰은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무대’를 꿈꾸는 것도 좋지만.

‘이른 시일 내에 돈 문제도 해결해야겠어.’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최대한 빨리 데뷔라는 걸 하는 수밖에 없어.’

데뷔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해졌다.

* * *

주입식 교육을 통해 억지로 새겨진 권이연의 기억을 더듬으며 LC 엔터테인먼트 앞에 도착한 루웰은 헛웃음을 흘렸다.

‘회사가 크긴 하군.’

평소처럼 옷을 갈아입고 연습실로 향하자, 미리 와 있던 우미와 비아가 이연을 반겼다.

“언니, 언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실장님 하는 말 들었어? 저번에 네가 노래하는 거 보고 오 대표님, 완전히 반하셨대. 팀장 회의 때에도 네 칭찬만 거의 20분 가까이 했다던데?”

데뷔하기도 전에 본의 아니게 LC 엔터테인먼트의 기대주로 거듭나게 된 이연.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이런 그녀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니저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등장했다.

“어, 이연이 왔구나. 회의실로 들어와. 마침 잘됐네. 우미하고, 비아하고. 셋이 회의실로 와. 방송 건으로 할 이야기 많으니까.”

회의실로 향하면서 이연은 사무실 전경을 빠르게 살폈다.

화려했던 회사 건물의 외형처럼, 내부도 넓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돈 잘 버는 연예 기획사는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달랐다.

한쪽 벽에는 LC 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소속 연예인들의 사진과 사인이 걸려 있었다.

‘하나같이 다 유명한 사람들뿐이군.’

가수, 배우, 심지어 인플루언서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회의실에 도착하자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각각 자리를 잡은 세 사람.

가장 연장자인 양우미가 매니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송에는 총 몇 명이 출연하는 건가요?”

“내가 들은 건 32명.”

“그중에서 몇 명까지 데뷔하는 거예요?”

“글쎄. 이건 이야기 해봐야 알 거 같은데. 일단은 다섯 명? 여섯 명? 이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어.”

다른 서바이벌 경연 프로젝트 출신 걸 그룹과 달리, 이번에 만들어질 걸 그룹은 LC 엔터테인먼트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꾸려지기 때문에 소속사 간의 마찰이라든지. 일정 조율이라든지. 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특정한 기한을 정해서 그때까지만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잘나가면 계속해서 그룹을 이어가면 된다.

“다른 연습생들한테는 이미 설명한 내용인데. 일단 방송은 바로 다음 달부터 시작한다고 하더라. 1차에서 22명으로 추스르고 2차는 12명, 그리고 마지막 3차에서 최종적으로 데뷔조가 선정될 거야. 몇 명이 마지막으로 데뷔조가 될지는 아직 미정이라고 하던데.”

소수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서바이벌 경연.

루웰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경연 방식은 그녀의 전생 세계에서는 전혀 없던 거였다.

‘무대에 설 수 있는 자격을 거머쥔다는 게 어렵다는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잔인한 방식이군.’

아침에 봤던 우편함 속 체납 통지서들이 자꾸만 그녀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 꽃길만 걸으란 법은 없으니까.’

제대로 실력 발휘해서 데뷔조에 들면 된다.

그러면 전부 해결된다.

이미 전생의 능력치를 전부 다 이 몸으로 승계한 덕분에 루웰은 노래, 그리고 춤으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감과 능력을 가졌다.

자신이 가진 이점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데뷔조에 들어서 걸 그룹으로 데뷔를 하고, 그리고 단기간 내에 돈도 쓸어 담으면 된다.

그러면 허름한 집에서도 탈출이다.

‘완벽한 시나리오야!’

계산이 끝났다.

터엉!

손으로 책상을 강하게 내려친 루웰이 매니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데뷔하면 회사에서 빵빵하게 지원해 주는 거, 확실하겠지?”

갑자기 반말로 나오는 루웰의 태도가 살짝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매니저는 그러려니 하면서 넘기기로 했다.

“그거야 뭐. 당연한 거 아니겠어? 이미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는데. 대표님이 그거 회수하고 싶어서라도 팍팍 밀어주자고 하시겠지. 궁금하면 나중에 제작진 왔을 때 PD한테 직접 상금이 얼만지 물어보든가.”

물론 매니저 입장에선 그냥 웃자고 한 말이었다.

루웰이 음유시인으로 활동했을 때의 세계에서도 독보적인 춤과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무대는 싫지만, 춤과 노래 실력은 돈이 된다.

이 법칙이 이 세계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매니저한테 확답도 받았으니.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방송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뭐지?”

의욕의 불씨를 활활 불태우는 루웰을 보면서 매니저는 작게 웃었다.

“월말 평가 볼 때에는 대놓고 하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굴더니만.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네?”

“돈이 걸려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지.”

“뭐, 가수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다양하니까. 필요한 것들은 다 정리해서 너희들한테 메일로 보내줄 테니까, 오늘 내가 말해준 내용이 너무 많아서 다 기억할 자신이 없으면 집에 가서 그거 한 번씩 훑어봐. 알았지?”

“좋아!”

군기가 바짝 든 권이연의 대답에 우미와 비아는 깜짝 놀랐다.

하루 단위로 사람이 확 달라지니,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