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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화 (2/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2화

제1화. 듣도 보도 못한 연습생(1)

자신이 바라는 완벽한 무대.

그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아무렴 좋다.

루웰은 분명 저승사자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운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 저승사자란 존재가 의도적으로 나를 이 몸으로 들어오게 했는지 모르겠군.’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는 와중에, 루웰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월말 평가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LC 엔터테인먼트에서 쌓은 춤과 노래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 연습생들을 보면서 루웰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무슨 애들 장기 자랑 하는 것도 아니고.’

그녀 입장에선 노래 실력 수준이 너무 떨어져 보였다.

노래라는 분야에 있어서 이미 정점에 오른 음유시인인데. 고작 연습생에 불과한 이들의 실력이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보다도 지금 루웰이 들어와 있는 여성, 권이연이 훨씬 더 심각했다.

루웰은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된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이돌 지망생이지만, 노래와 춤에는 재능이 없는 권이연.

빼어난 미모 덕분에 비주얼은 받쳐주지만, 가수는 결국 노래와 춤 실력이 필요하다.

만약 연습생이 100명이 있다 치면, 권이연의 실력은 99등에서 98등을 왔다 갔다 한다.

재수가 좋아봤자 95등 정도.

일반인들 중에서는 나름 끼가 있다고 생각했던 권이연이지만, 그 정도로 가수가 될 순 없다.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권이연은 미처 그걸 깨닫지 못했다.

‘이 세계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

루웰도 이미 경험했던 일들이다.

그렇기에 낯선 세계임에도 왠지 모를 공감대가 깊게 형성되었다.

권이연의 기억들을 하나하나씩 파헤치던 때였다.

“야, 턱걸이.”

한 여성이 노골적인 시비조로 권이연에게 말을 걸어왔다.

연습생들 사이에서 방금처럼 권이연을 ‘턱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눈앞에 있는 여성, 진절혜였다.

“어제 매니저님한테 그랬다며? 너는 아이돌 못 할 거 같다고. 그만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된다고 징징거렸다면서.”

“…….”

“얼굴 하나 믿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용한데. 이제 그만 알아서 빠지지 그래? 너, 노래도 못 부르고 춤도 못 추잖아. 다른 애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옆에 있던 이비아가 진절혜를 찌릿 노려봤다.

“절혜 언니. 대표님한테 저번에 싸운 거 들키고 싶어서 그래? 싫으면 조용히 있지?”

“어쭈? 쪼그마한 게…… 아무튼 뭐, 백날 노력해 봐라. 어차피 너흰 방송 출연도 못 하고. 5년 10년 계속 연습생 신세에서 못 벗어날 테니까.”

연습생들의 세계는 매우 치열하다.

데뷔조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서로가 동료이자 곧 라이벌이다.

한 명이라도 제쳐야 자신이 사는 법.

진절혜의 어투에서 이런 생각이 가득 묻어 나왔다.

다음, 진절혜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대표와 회사 간부들 앞에 섰다.

반주가 흘러나오자, 진절혜의 라이브가 시작되었다.

루웰의 평가는 이러했다.

‘잘하긴 하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상대적인 평가에 불과하다.

연습생들 중에서 잘하는 축에 속한다는 거지.

‘나한테 입 털 정도는 아니군.’

대표와 간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차례를 마친 진절혜.

그녀가 갑자기 권이연을 바라보더니.

씨익.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냈다.

그 모습에 루웰은 아무런 심적 타격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트레이너가 권이연의 이름을 불렀다.

“다음, 이연이.”

심사 위원들도, 다른 연습생들도.

그렇게까지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태어나면서 처음 받아보는 무관심한 시선에 루웰은 속으로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최고의 음유시인이라 칭송받았던 루웰인데.

이런 푸대접이 어색한 건 당연했다.

매니저가 루웰에게 물었다.

“노래 바로 틀어줄까?”

권이연이 사전에 선곡했던 노래는 같은 LC 엔터테인먼트 소속사 출신 아이돌 그룹의 ‘오늘, 어제’라는 곡이었다.

그러나 루웰은 이 선곡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다른 걸로 바꿔도 될까요?”

“다른 걸로?”

“예. 트라이클의 ‘선(Sun) 데이’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Sun) 데이는 박자가 상당히 빠르고 변칙적인 리듬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템포 잡기가 굉장히 어려운 곡으로 손꼽힌다.

게다가 권이연은 연습생들 사이에서 열등생으로 손꼽히는 여자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난도를 확 올려 버리니, 주변 반응이 좋을 리가 없었다.

예상대로, 매니저의 쓴소리가 날아들었다.

“권이연. 너, 월말 평가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 지금 대표님도 다 보고 계신 마당에…….”

“만약에 만족 못 시켜 드리면, 연습생 생활 때려치우고 나가겠습니다.”

“뭐?”

모 아니면 도.

제대로 출사표를 던졌다.

무대든, 어디든. 노래를 부르는 자리가 있다면, 루웰은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무대에 대한 자존심.

만약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루웰은 나가도 제 발로 나갈 생각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권이연의 강한 모습에 매니저는 크게 당황했다.

권이연의 폭탄 발언으로 인해 일순간 공기가 얼어붙었을 때. 오채일 대표가 입을 열었다.

“틀어줘.”

“예? 대표님, 하지만 갑자기 노래를 바꾸는 건…….”

“바꾸면 안 된다는 규칙도 없잖아. 그리고 가수에게 있어서 때로는 촉이란 것도 중요해. 준비한 곡보다 즉흥적으로 떠올린 곡이 더 좋을 거 같다고 느껴지면, 직접 해봐야지. 안 하면 후회하거든.”

“……알겠습니다.”

회사 내에서는 대표의 말이 곧 법이다.

오채일의 허가가 떨어진 덕분에 루웰은 수월하게 월말 평가 곡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처음 듣는 곡이 안무 연습실을 빠르게 채워갔다.

잠시 눈을 감았던 그녀가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흘러나오는 현악기의 연주에 맞춰서 부드럽게 목소리를 흘리는 그녀.

음정 하나하나에 세심함이 묻어 나왔다.

노래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 수단이다.

-태양이 밝게 비추는 하루.

우울하기만 했던 내 마음의 먹구름을 치워내. Sun Day.

그댄 내 마음의 태양. Shining Day

도중에 루웰은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트릭 하나를 섞었다.

바람 계열의 기초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마치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것처럼 아름답게 퍼졌다.

기본적인 마법을 익혀둔 것도 전부 무대 효과를 위해서였다.

시각적인 효과를 더하면, 루웰의 무대를 감상했던 사람들은 늘 만족스러운 리액션을 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머리카락 움직임 하나하나조차 너무나도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다는 표현을 넘어서.

“예술이야…….”

오채일 대표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흘렸다.

평범한 춤이 아닌 예술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상당히 높은 음정이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전혀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켜보던 연습생들조차 입을 쩍 벌린 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턱걸이 주제에 어떻게…….”

“저, 저게 말이 돼?”

“쟤, 언제부터 저렇게 실력이 늘었대?”

웅성거리는 소리에 매니저가 쉬잇! 하고 조용히 하라는 경고를 보냈다.

연습생들 중에서 유일하게 권이연만이 2절까지 완곡해서 월말 평가 무대를 마쳤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너 있는 마무리까지.

오채일 대표가 먼저 일어서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다른 회사 간부들 역시 오 대표를 따라 그녀의 무대에 환호했다.

다시 한번 짧게 인사를 한 권이연은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기 직전.

진절혜를 향해 씩 웃는 것을 잊지 않았다.

* * *

집에 돌아오자마자 권이연의 남동생, 권민준이 그녀를 반겼다.

“어서 와, 누나. 밥은 먹었어?”

“생각 없다.”

오늘 아침에 본 누나와는 차원이 다른 무뚝뚝한 대답.

의아해하는 남동생을 무시하고, 권이연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처음 오는 낯선 장소.

그런데도 머릿속으로는 너무나 익숙한 방이다.

아이돌 지망생이라서일까.

방 한쪽 구석에 스탠드형 전신 거울이 있었다.

이연은 곧장 거울 앞에 선 채로 자신의 새로운 몸을 관찰했다.

“확실히 예쁘긴 예쁘군.”

진절혜 같은 원수조차도 권이연을 몰아붙일 때 노래, 춤은 다 깠지만 외모 하나는 볼만하다고 인정했었다.

그만큼 권이연의 비주얼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환생 계약서를 작성할 때, 저승사자가 했던 말이 있었다.

환생의 조건으로 전생의 기억과 능력. 두 가지를 그대로 가지고 환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루웰의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외모였다.

남자, 여자를 불문하고 미의 표본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그의 외모는 여자가 되었어도 여전했다.

오히려 성별이 바뀌고 나니 미모가 한층 더 돋보이는 듯했다.

아름다운 얼굴 덕분에 남자였을 때에도 종종 여장을 하고서 무대에 올랐던 경험이 있던 루웰.

그래서일까. 진짜로 여자가 되었어도 멘탈이 가루가 될 만큼 깨지진 않았다.

‘동식물로 환생할 수도 있을 거라고 경고했었는데. 성별이 바뀐 것 정도는 감수하는 수밖에 없겠군.’

못다 이룬 꿈을 위해서. 참고 넘어가야 했다.

털썩.

침대에 눕자, 옆에 있던 다이어리가 아래로 툭 하고 떨어졌다.

이전에 이 몸의 주인인 권이연이 직접 쓴 일기장이었다.

[3월 19일. 엄마에게 여러 차례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괜찮다고 계속해서 내 제안을 거절했다. 파스 하나로 참아가며 식당 일을 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

루웰은 말을 아낀 채 일기장을 넘겼다.

[언젠가 가수로 크게 성공해서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 절대로 남 부럽지 않게 호강시켜 줄 거다. 이것이 내 인생의 목표다.]

그 밑에 써 있는 문구 하나가 유독 루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성공하고 싶다.]

“성공이라.”

이미 성공의 맛을 본 루웰로선 권이연이 어떤 심정으로 이 일기장을 썼는지 어렴풋이 알 거 같았다.

인간은 누구든 성공을 갈망한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열매를 손에 거머쥘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선택받은 자.

선택받지 못한 자.

이것을 가르는 기준은 명확하다.

재능의 차이.

실제로 바로 어제 자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안해, 엄마. 난 재능이 없나 봐. 너무 힘들어서 못 버티겠어.]

루웰의 시선이 그녀의 책상 위로 향했다.

유독 눈에 띄는 수면제 한 통.

극단적인 선택을 앞두고 망설였던 걸까.

딱 봐도 불면증 때문에 구입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재능도 없고.

집안도 가난하고.

삶의 의지가 날이 갈수록 꺾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이 몸으로 들어오게 된 건가.’

하아.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할 때.

매니저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그녀를 방해했다.

피곤함 때문에 그냥 무시해 버릴까 했지만, 계속해서 울려대는 벨 소리가 너무나도 신경이 쓰여서 그냥 받아버렸다.

“여보세요.”

피로에 절은 목소리를 내는 그녀.

반대로 매니저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넘쳤다.

-월말 평가 결과 나왔다!

이제 막 끝났는데.

상당히 빨랐다.

-이번 월말 평가는 네가 1위야. 축하한다, 이연아. 너, 데뷔조 선출 방송 출연, 확정됐어.

이 말을 듣자마자 이연이 내뱉은 첫마디는.

“당연한 결과 아닙니까.”

당찬 자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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