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화
프롤로그
인생의 절반 이상을 무대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위대한 음유시인, 루웰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신조차도 반해 버릴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그.
여성 못지않은 빼어난 외모는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쟁으로 인해 대륙이 피로 얼룩질 때에도 루웰의 무대는 늘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심지어 그의 공연이 있는 날에는 대륙 전체가 임시 동맹을 맺을 정도로 루웰이란 존재는 유명했다.
하지만 하늘이 그의 빼어난 재능을 질투라도 한 걸까.
35세.
상당히 이른 나이에 그는 죽음이라는 종장으로 삶의 무대를 내려오게 되었다.
그의 죽음으로 레디너스 대륙 전체가 슬픔에 잠겨 있을 무렵.
정작 루웰 본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자리 잡은 여성을 노려봤다.
“그러니까, 그대가 사신이라고?”
알록달록한 색상의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은 루웰의 퉁명스러운 말에도 불구하고 싱긋 웃으면서 답했다.
“네. 일단은요.”
“저승사자치고는 상당히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있군.”
“한복이에요. 한국이라는 나라의 전통 복장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한국? 그런 나라는 듣도 보도 못했는데?”
“당신의 차원에는 없는 국가거든요.”
“…….”
루웰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후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설은 마법사 학회에서도 여러 번 접했었다.
물론 자신의 눈으로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말이다.
루웰은 눈앞에 있는 책상에 두 다리를 탁, 탁 소리가 나게 꼬아 올렸다.
“그래서, 난 이제 어떻게 되나?”
한복을 입은 여성은 이런 루웰을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제가 듣기론, 루웰 님은 인품이 상당히 좋고 친절하신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무대 매너도 좋고. 사람들 앞에선 늘 웃는 얼굴이었다.
단 한 번도 화낸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
여성이 의구심을 드러내자, 루웰이 코웃음을 쳤다.
“대중들에게 보이는 또 다른 내 모습일 뿐이야.”
“아, 원래 성격은 이렇게 꼰대스러우시군요.”
“……나하고 싸우자는 건가?”
귀족 출신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루웰이 태어난 나라의 문화가 그래서인지, 삼십 대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루웰의 머릿속과 행동거지는 유교 사상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보는 루웰이지만, 그럼에도 여성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한숨을 푹 내쉰 루웰은 과거 자신의 삶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아직 못다 이룬 꿈이 많은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몰랐군.”
“젊은 나이에 요절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공감이 되는군.”
그렇게 말하면서 루웰은 자신의 긴 금발을 한 차례 쓸어 넘겼다.
근처에 할 일 없이 지나가던 여성 저승사자들조차 루웰의 이런 외모에 시선을 빼앗길 정도였다.
남자, 여자를 불문하고 반해 버릴 정도로 조각 같은 외모.
그러나 이 아름다운 외모의 이면에는 남들에게 한 번도 말하지 못한 루웰의 고충이 숨겨져 있었다.
“내가 왜 음유시인의 길을 택했는지 아나?”
“대충은요.”
죽음을 한 차례 겪어서일까.
입이 가벼운 편이 아닌 성격의 루웰임에도 자신의 과거사를 낯선 이에게 스스럼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가 몰락한 귀족이셨지. 한때는 개국공신으로 남들 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으며 사셨는데. 안 좋은 일을 계기로 궁에서 쫓겨나셨어.”
“귀족들 간의 세력 싸움에서 희생당하셨죠?”
“역시 잘 아는군.”
몰락 귀족.
루웰의 아버지는 어떻게든 이 딱지를 떼고 싶었다.
다시 왕궁으로 돌아갈 방법을 물색해야 했다.
그러다가 눈에 띈 것이 바로.
“마침 내가 태어난 거지.”
가문의 차남으로 태어난 루웰.
그러던 중에 루웰의 부모는 그가 가진 음유시인으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그를 유명인으로 만들 계획을 짰다.
루웰의 재능과 가문의 적극적인 후원 덕분에 그는 전 세계를 사로잡은 음유시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전하께서도 내 공연을 좋아하셨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게 노래를 들려달라고 하셨을 정도였으니까. 그 덕분에 우리 가문은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았고.”
“성공한 삶을 사셨군요.”
“그렇지.”
그럼에도 루웰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여주는 그를 보면서 저승사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성공한 삶을 살고 이곳에 온 루웰.
그녀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부족함이 느껴지셨나요?”
“당연하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
“너무 빨리 죽었어.”
자신이 벌어놓은 재산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쓰지 못했다.
“레디너스 대륙의 평균 수명은 65세인데. 그런 것치고는 난 너무 빨리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죠.”
“그리고 하나 더.”
가장 큰 불만이 아직 남았다.
“난 아직 내가 원하는 무대에 서질 못했어.”
그동안 수많은 무대에 올랐지만, 음유시인으로서 100퍼센트 만족할 만한 무대에 선 적은 없었다.
관객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인정할 만한 완벽한 무대.
그 꿈의 무대에 서는 것이 루웰의 목표다.
저승사자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음, 삶에 미련이 많이 남아 계시면, 성불하기가 힘드실 텐데. 난감하네요.”
왠지 모르지만, 루웰은 그녀가 일부러 고민하는 척 연기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륙 최고의 음유시인 출신인 그의 눈은 역시 날카로웠다.
“어쩔 수 없죠. 당신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줄게요.”
“마치 준비된 대본을 읽는 느낌이군.”
“눈치채셨나요?”
들켰음에도 저승사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목적이 있었다.
사락.
종이 한 장을 내미는 그녀.
그러나 종이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이게 뭐지?”
퉁명스럽게 묻는 루웰에게 여성이 차근차근 설명을 들려줬다.
“환생 신청서예요.”
“환생…… 뭐?”
“이걸 작성하면 환생하실 수 있어요. 대신, 루웰 씨의 사인이 필요해요. 어디 보자.”
저승사자가 루웰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환생할 때 전생의 기억과 함께 지금 가지고 있는 루웰 씨의 능력치, 전부 가지고 다시 태어날 수 있게끔 해드릴까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네.”
저승사자가 말한 두 가지 조건이 환생 계약서에 그대로 문구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환생의 조건으로 아까 말한 전생의 기억과 능력, 두 가지를 넣어뒀어요.”
“좋네. 단점이 없는 거 같은데?”
무조건 하는 게 이득으로 보였다.
옆에 놓인 펜을 들고 사인을 하려던 순간.
저승사자의 말이 그의 행동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얻어가는 게 있는 대신, 포기해야 할 것도 있어요.”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아찔했던 순간이다.
본인의 2회차 인생에 관련된 중요한 계약서다 보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게 뭐지?”
“사람이 아니라 다른 걸로 태어날 수도 있어요.”
“동식물 같은 거 말하는 건가?”
“네.”
웃으면서 말하는 저승사자와 달리, 루웰은 굉장히 심각했다.
전생의 기억과 능력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지게 될 수도 있다.
“확률은?”
“낮은 편이에요.”
“……그래?”
도박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루웰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거절하면 이대로 죽는 것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럴 바에, 차라리 도박이라도 해보는 게 좋다.
“알았다. 쓰도록 하지.”
마침내 완성된 환생 계약서.
이제 남은 건 루웰의 사인뿐이다.
슥슥.
거침없이 자신의 사인을 환생 계약서에 새겨넣었다.
그것을 계기로, 그의 눈앞이 아늑해지기 시작했다.
환생 계약서를 챙긴 저승사자는 의식을 잃어가는 루웰을 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두 번째 인생은 후회 없이 잘 마무리 짓고 오시기를 기다릴게요.”
평범한 배웅 인사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루웰에게는 이상하리만치 불안감을 안겼다.
* * *
공중에 몸이 붕 뜬 느낌이 루웰을 감쌌다.
위도, 아래도. 왼쪽도, 오른쪽도.
방향감각을 상실해 버린 채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리.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
난생처음 듣는 언어가 루웰의 귀를 간지럽혔다.
누군가가 갑자기 루웰의 어깨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 #($*#(%!!”
‘뭐라고 하는 거야.’
말은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때.
갑자기 원인 모를 두통이 루웰을 엄습했다.
‘으윽……!’
머리가 깨질 듯한 감각.
통증과 함께 루웰이 몰랐던 낯선 지식들이 그의 머릿속을 강제로 헤집고 들어왔다.
‘대한민국? 지금 이 사람들이 말하는 게 한국어라는 건가?’
언어를 깨닫는 순간, 알아듣지 못했던 낯선 사람들의 말이 알아서 해석되었다.
“언니! 곧 월말 평가 시작하는데, 뭐 하고 있어!”
“언…… 뭐?”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에게 오빠도 아니고, 언니라고 다급하게 부르고 있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이해 못 할 장면이 연달아 펼쳐졌다.
‘이 여자가 미쳤나.’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몸의 감각이 점점 돌아왔다.
배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
금발이었던 루웰과 달리, 지금 자신의 모습은 흑발이었다.
‘뭐야, 내 옷차림이 왜 이렇지?’
딱 달라붙는 쫄티와 미니스커트를 입은 자신의 모습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이 유독 신경이 쓰였다.
‘설마……!’
루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이 와중에 루웰의 외침에 방금까지 그를 언니라고 지칭했던 단발 여성이 화들짝 놀랐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언니!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좁은 연습실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 몇몇이 이쪽을 돌아봤다.
루웰의 시선이 눈앞의 여성에게 고정되었다.
분명 처음 보는 사이일 텐데도 불구하고 루웰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비아. 바로 옆에서 루웰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여성의 이름은 양우미.
그리고 루웰까지.
이렇게 셋은 현재, 대한민국 유명 기획사 중 한 곳인 LC 엔터테인먼트에 연습생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가만. 연습생이라고?’
두 사람 몰래 루웰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그제야 루웰은 자신이 남자가 아닌, 여성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저승사자의 경고가 머릿속을 스쳤다.
인간이 아닌 동식물이 될 수도 있다고.
그 말은 곧.
남자가 아닌, 여자로 환생할 수도 있다는 말과도 같다.
어렸을 때부터 귀족으로서 예절과 매너를 숱하게 교육받아 왔기에 루웰은 낯선 여자의 몸에 들어온 것 자체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새로운 몸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권이연. 이것이 여자로서 루웰의 새로운 이름이다.
패닉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 연습생들의 댄스 트레이너를 맡고 있는 남자가 헛기침을 크게 하면서 심사 위원석에 앉아 있는 소속 관계자들에게 말했다.
“슬슬 월말 평가 시작하겠습니다. 대표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케이.”
자리에서 일어선 중년 남성, 오채일 대표가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연습생들에게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오늘 월말 평가는 나중에 서바이벌 형식으로 펼쳐질 데뷔조 선정 방송에 출연할지 말지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니까. 각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이상.”
데뷔.
이 말을 듣자마자 루웰의 얼굴이 변했다.
루웰이 원하는 ‘무대에 서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건 좋은데.
‘성별이 바뀔 줄이야.’
시작부터 커다란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