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37화
537화. 아시안 게임(10)
경기장은 고요했다.
그런 경기장의 고요를 찢는 건, 선수의 기합이 아니라 각 나라 방송사의 중계진이었다.
“아, 두 선수 신중합니다. 잡고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서로 간 보는 중일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조인선 해설위원님?”
배영우의 말에 조인선 교수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마 간 보는 중은 아닐 거예요. 두 선수는 이미 세 번이나 붙어봤고, 오늘 경기를 지켜보며 전체적인 감은 잡았을 거예요. 그러니 굳이 간을 볼 필요는 없죠. 그리고 저 정도 되는 선수들은 굳이 그런 귀찮은 짓은 하지도 않아요. 시합 시작과 동시에 끝까지, 오로지 진심만 있을 뿐.”
“오 그렇습니까? 하긴, 그럴 것도 같습니다. 강지영 선수의 시합을 보면, 상대가 오히려 간을 보려는 느낌은 있어도, 강지영 선수는 그런 기색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 유도 중계를 오래 하다 보니 보는 눈이 느셨는데요?”
“하하!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읽다 못해 천지현황은 쓴다지 않습니까?”
“요즘은 그런 것도 쓰나요?”
“네, 성장하는 거죠. 서당 개도 그러한데, 인간인 저는 더 성장하지 않겠습니까?”
“네, 네네.”
“농담입니다. 자, 그럼 두 선수는 지도 하나를 받겠군요.”
그 말에 조인선 교수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둘 다 그런 리스크를 안고 가진 않을 것 같아요.”
“네?”
“지도 하나가 있는 상태와 두 개가 있는 상태는 너무 달라요. 그리고 아예 없을 때는 또 다르죠. 서로 하나씩이면, 신지 선수는 오히려 그걸 불리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강지영 선수는 반칙을 이용한 운영을 기가 막히게 하니까요. 그러니 아예 하나도 안 받는 방향으로 경기를…….”
“업어치기! 신지 선수! 깜짝 업어치기를 터뜨립니다! 외깃 업어치기인가요?”
“네. 사장됐다가 다시 살린, 외깃 말아업어치기 같네요.”
한쪽 깃을 양손으로 잡은 뒤, 몸을 틀어 댄 다음, 그대로 말아버리는 기술. 말아업어치기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최민호 선수의 필살 기술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잘 쓰지 않는 기술이었다. 일본은 정통파를 고집하니까.
“하지만 강지영 선수! 잘 방어했습니다! 예측한 것 같습니다! 들어오는 순간 자세를 쭉 낮추며 말려가는 걸 피합니다!”
“아니요. 예측이 아니에요. 저건 알고 피한 게 아니라, 몸이 그냥 반응한 거예요.”
“네?”
“반응이요. 업어치기가 들어가는 동시에 자세를 낮추고 방어에 성공한 거라고 보셔야 해요. 예측했다면, 강지영 선수라면 차라리 도복을 끊어 위장 공격을 먹였을 거예요.”
“아…….”
“서당 개 3년이 넘어도, 이건 잘 안 보이나 봐요?”
“크흠, 잘못했습니다. 심판, 그쳐를 선언합니다! 자! 혹시 저것도 유효 기술로 판정될까요?”
얼른 대화 주제를 바꾸는 배영우.
결승전의 무거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중계다. 당연히 이미 사전에 미리 얘기된 진행이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너무 무거웠다. 거기에 강지영의 은퇴 경기가 될 수도 있어서, 심지어 숙연한 느낌도 있었다.
아시안 게임이란 커다란 축제다 보니, 이런 분위기도 나쁘진 않지만, 배영우는 이런 분위기에서 만약 지영이 지기라도 하면, 진짜 분위기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기면 좋지만, 캐스터의 입장에서 중계가 우울해지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조금씩 농담을 해가며, 아니, 만담을 해가며 경기중계를 했다. 물론 이게 쉬운 건 아니다. 유도는 쉭쉭! 금방 지나간다. 축구처럼 긴 시간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쳐까지 합치면 길어야 7분이면 한 게임이 끝난다. 연장전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 안에 만담도 하고, 중계도 하고, 이건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둘은 그래도 제법 오래 호흡을 맞췄다. 본래 호흡을 맞췄던 전기정 교수가 국가대표팀 통합 감독으로 떠난 뒤부터 호흡을 맞췄으니, 3년 가까이 됐다.
그래서 둘은 호흡이 참 잘 맞았다.
오히려 좀 딱딱한 전기정 교수와는 다르게 유들유들하고, 장난기가 있는 조인선 교수라 가능한 중계였다.
“아니요, 강지영 선수의 방어가 너무 완벽했어요. 신지 선수가 업긴 업었지만, 강지영 선수의 몸이 조금도 뜨지 않았거든요. 위기라고 할 게 없는 방어였기 때문에 유효 기술로 들어가진 않을 거예요. 특히 데이비드 심판은 선수가 자유롭게 경기할 수 있도록 여유롭게 판정을 주는 편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게 또 모르는 거거든요. 다음에 신지 선수가 먼저 유효 기술을 하나 따면, 지도가 들어갈 수도 있어요. 좀 전에 제가 한 말은 어디까지나 심판의 성향을 생각한 제 개인의 의견이에요. 유도는 심판 놀음이라는 말도 있어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어요.”
“음…… 그렇군요. 도복을 고치고 마주 선 두 선수! 하지메! 경기 다시 시작됩니다!”
배영우는 크게 외치며 헤드셋을 잠시 귀에서 떼어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주변 반응을 살폈다. 시합장은 여전히 조용했다. 경기 시작 때 딱 한 번 큰 환호성이 들리더니, 다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이런 시합을 배영우는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결승전은 지금과 정반대다. 오히려 역으로 미치게 환호한다.
결승전이 주는 열기, 내 나라, 혹은 내가 관심 있는 선수가 이기기를 바라며 열성적으로 응원한다. 그게 기본이다. 비단 결승전뿐만이 아니라, 예선전도 그런다. 그리고 오늘 예선전도 전부 그랬다. 그런데 결승전에서, 이런 고요함이라니, 그게 정말 믿기지 않았다. 그런 경기의 중계를 맡은 이가 자신이라는 게, 뿌듯했고. 그런 뿌듯함을 안고 다시 시합에 집중했다.
“이번에도 두 선수, 똑같이 잡습니다. 강지영 선수가 먼저 어깨 깃을 잡았어요, 어, 강지영 선수 바로 움직입니다! 허벅다리! 아! 앞으로 떨어지는군요! 미야모토 신지 선수! 바로 목깃을 스스로 잡으며 굳히기 방어에 들어갑니다! 조인선 위원님! 이것도 유효 기술은 아니겠지요?”
배영우의 말에 조인선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번에는 잘 보셨네요? 학습 능력이 있군요! 맞아요. 좀 전과 같아요. 강지영 선수가 허벅다리를 차올리려는 순간을 신지 선수가 바로 포착하고 자세를 낮췄어요. 어설프게 되치기를 하지 않고, 안전하게 방어한 거죠. 하지만 넘어갈 위험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 유효 기술 판정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좀 전에 신지 선수도 비슷하게 기술을 걸었으니, 데이비드 심판의 머릿속의 반칙 기준은 깨끗하게 리셋됐을 거예요.”
“역시! 이제 좀 알겠습니다. 그쳐! 심판 다시 그쳐 합니다. 경기 초반! 두 선수 특기 기술을 한 번씩 주고받습니다. 아직까지는 백중세! 누가 우세하다고 할 수 없는 경기 초반입니다.”
“그러나 두 선수, 확실히 스타일이 변했어요. 강지영 선수는 1회전부터 준결승까지 보여줬던 운영을 버린 거로 보이고, 신지 선수는 반대로 공격적인 성향이 좀 더 누그러졌네요. 분명 그 방식으로는 서로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는 것 같아요. 오늘 경기도 참 오래갈 것 같습니다.”
“네, 오래 갈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 심판, 도복을 고친 두 사람을 다시 번갈아 봅니다. 그리고…… 하지메! 경기 다시 시작됩니다!”
배영우의 통렬하기까지 한 외침.
그 외침을 들은 이들은 아마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이 경기가 오래갈 거라는 부분에 수긍했을 테니까. 그리고 사실 그러길 바라고 있었다. 치열한, 피 터지는, 객은 그런 경기를 원하고 있었다.
* * *
훅.
숨을 토해내고, 마시면서 지영은 호흡을 정돈했다. 짧은 격돌이지만, 힘을 바짝 줘서 근육에 조금 무리가 왔다. 고작 이 정도로? 하겠지만, 고작이 아니다. 괜히 선수들이 몇 경기 뛰고, 몇 날 며칠 근육통에 시달리는 게 아니다. 그렇게 훈련으로 다져 놓은 근육이다. 웨이트를 비롯해서 도복 운동까지, 그 모든 훈련에 적응한 근육인데도, 시합 때는 이상하게 다르다.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올까?
바로 전력이다.
진심으로,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 내니 근육에 무리가 오는 거다. 바로 지금처럼 온몸에 힘을 바짝 줘서 방어하고, 기술을 걸면 아무리 단련한 근육이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무릎이나 팔꿈치로 한 번 찍히면 단단히 알이 박히는 거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신지도 마찬가지라는 거지.’
그도 지영과 별반 다를 리 없을 거다. 진짜 미친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하지만 그런 피지컬을 가졌으면 지영에게 졌을 리가 없다. 인간의 피지컬 상승은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걸 뛰어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올림픽이 끝나고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좋아져도 아주 근소한 수치일 거다. 올림픽 때도 신지의 피지컬은 베스트였으니까. 그리고 그 수치는 지영과 비슷하다.
잠시 잡고만 있는 사이 호흡이 진정됐다.
툭, 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걸기를 한 차례씩 주고받았다. 크게 의미가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그냥 툭 가져다 대기만 하는 거라, 이 정도면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거리만 잡으려고 댄 거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반사적으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댄 거든가.
철저하게 계산된 기술?
그건 깨졌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 신지는 예전에 이미 전략을 철저히 준비한 적이 있었다. 두 번째 붙었을 때인가 그랬을 거다. 그때 신지는 철저하게 업어치기만을 걸었다. 그리고 발기술을 덤으로 넣어서. 지영에게 허리기술이란 선택지를 아예 빼버리려는 전략이었다. 지영은 그걸 연장전에 들어가서야 눈치챘고, 덫을 놨다.
신지는 그 덫을 물었다.
지영의 중심이 붕 뜨며 축이 한쪽에 몰리는 순간, 신지는 정말 온 힘을 다해 허벅다리를 차올렸다. 정말 빛살처럼 빠른 허벅다리였지만, 그건 지영의 덫이었다. 그래서 피한 뒤, 툭 치는 거로 카운터를 갈겼고 게임은 거기서 끝났다.
그래서 올림픽 때는, 그냥 부딪쳤다.
그냥 마구, 막 부딪쳤다.
전술 전략은 버리고, 오로지 실력에 의지해서.
오늘 경기의 흐름도 그럴 것이다.
툭, 툭.
뒤로 물러나며 손끝을 툭툭 채 올리는데, 역시 힘이 좋다. 거기에 타이밍이 정확하다. 물러날 때 살짝 앉았다가, 중심을 세우는 순간을 이용해 채는 거라서, 지영의 몸이 딱 그만큼 끌려갔다. 그러나 끌려가는 순간 지영의 자세는 낮아지고 있었다. 여기에 업어치기를?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들어왔다.
홰액!
벼락처럼 홱! 하고 도는데 그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다른 선수였으면 눈 뜨고 코 베인 것처럼 당했을 거다. 하지만 지영은 감각적으로 업어치기 각도에서 피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깨를 상대의 어깨보다 낫게 내렸다. 납작 엎드린 것 같은 자세지만, 뭐 어떤가. 안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기술을 빠져나온 지영은 앞으로 서서 목깃을 채듯이 잡아 쭉 당겼다. 그에 신지의 신형이 훅 끌려 올라왔다. 순간적으로 채 올린 거라, 미처 반응하지 못한 거다. 하지만 지영은 기술을 걸지 않았다. 몸을 트는 순간 마치 납 벨트라도 찬 것처럼 신지의 몸이 무거워지더니, 그냥 축 늘어졌다.
이런 상태에서 허리기술을 거는 건 그냥 나 되치기 해주세요! 하고 소리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지영은 기술을 멈추고 툭 끌어당기기만 했다.
맛테!
서로 주고받았으니, 유효 기술은 누구도 없었다. 그리고 누구도 방어적이지 않았다. 심판은 손을 양손을 허리로 모아 교차시키며 내렸다. 도복을 고치라는 신호다. 두 선수는 동시에 띠까지 풀어 도복을 고쳤다. 시간을 끌려는 의도가 아니라, 도복이 한 번의 부딪침으로 많이 풀어져서 그냥 넣으려면 귀찮아서, 그냥 띠를 풀어버린 거였다.
두 선수는 거의 동시에 도복을 고쳤고, 다시 거의 동시에 서로를 마주 봤다.
하지메!
심판의 우렁찬 외침에 후우, 후우…… 숨을 크게 마셨다가 뱉은 지영은 다시 앞으로 나섰다. 경기 시간은 벌써 1분 30초를 넘고 있었다. 그쳐 세 번밖에 안 했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난 것이다.
하지만 지영은 그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10분이 될 수도 있고, 지금 바로 끝날 수도 있는 게, 유도니까 말이다.
‘이긴다.’
10분 뒤에 승자도, 1분 뒤에 승자도, 1초 뒤에 승자도…… 내가 될 것이다. 전에 없는 승리욕에 명멸하는 눈빛이 되었지만, 지영은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재미난 건, 신지 또한 마찬가지의 눈빛이었다.
웃음이 났고, 웃고 있었다.
두 선수는 시리도록 환한 미소로 다시 맞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