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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535화 (53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35화

535화. 아시안 게임(8)

사람들이 변한 지영의 기세를 알아차렸다면, 마찬가지로 변한 미야모토 신지의 기세 또한 똑같이 알아차렸다.

-이건 또, 강과는 다른 변화군.

-올림픽 때 저 친구는 마치 일본이 어떻게든 띄워보고 싶어 안달이 났던 사무라이의 재림을 보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또 정 반대야.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나?

-강이 미야모토의 올림픽 때 같다면, 미야모토는 강의 올림픽 때 같군.

-솔직히 뭐가 더 좋은지는 판단하지 못하겠어. 하지만 하나는 알겠군. 둘 다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

-인정이야. 신지, 후. 저 친구도 자존심 좀 상했을 거야. 누구보다 우월한 재능을 타고났는데, 하필이면 동시대에 강이 있었으니까.

-동감. 미야모토라면 자존심 상하는 정도로 끝나는 것도 인정이지. 하지만 부럽군. 저 친구는 나처럼 절망감을 느끼진 않았을 테니.

해외 유도 커뮤니티는 강지영보다는, 미야모토 신지에 대한 얘기가 좀 더 흥미롭게 다뤄지고 있었다. 많은 주제가 다뤄졌지만, 특히 둘의 라이벌리에 관한 얘기가 많았다.

-저런 건 정말 어떤 기분일까? 모차르트를 보는 살리에리의 기분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건, 느낌이 비슷하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신지의 저런 득도한 고승 같은 변화가 이해도 돼. 나였으면, 저렇게라도 변하지 않았으면 감히 강과 다시 마주하기도 싫었을 테니까. 아니, 엄두조차 못 냈겠지.

-맞아. 한 상대에게 세 번이나 진다는 건, 정말 끔찍한 거지. 단체 종목이면 몰라도 개인 종목에서는 더더욱.

-괴로울 거야. 그만두고 싶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저 친구는 결국 마음을 추스르고 변화를 추구했어. 그리고 그건 좋은 방향으로 그를 이끈 것 같군.

-이번 결승전도 박빙이겠는데? 친구들은 승리는 누구의 것이 될 거라고 보나?

-글쎄, 이런 개인전에서 상대 전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주의라서, 나는 강에게 한 표를 보내고 싶어.

-나도 강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은데, 이번에는 좀 달라. 강은 유도에만 오롯이 집중하지 못했잖아. 무신 척위준이 어마어마한 메가 히트를 쳐서 그래도 칭찬받지만, 결론적으로 강은 운동을 반년이나 하지 못했어. 이 부분을 좀 생각해 보면, 이번엔 처음으로 저 사무라이 친구가 강을 잡지 않을까?

-나는 기권. 오늘 둘의 경기력을 보니까, 도무지 점칠 수가 없어.

-나도 기권. 실력은 백중세야.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았지. 그러니 결국엔 승리의 여신이 미소 짓는 사람이 이길 거야.

-그렇게 따지면, 강이 유리하지. 지난 3경기 모두 백중세였어. 하지만 승자는 항상 강이었지. 그게 곧 실력을 뜻하는 거야.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돼.

-맞아. 그게 실력이지.

-나는 조금 다르다고 봐. 이 경기의 포인트는 바로 전략이야. 사무라이가 강의 운영 전술을 깨지 못하면, 나는 강이 승리라 생각해. 반대로 강의 운영에 제동을 걸면, 사무라이가 승리하겠지.

-맞네, 이게 정답이야.

-나도 동의해. 결국엔 실력 싸움이야. 승리의 여신이 누구에게 미소 짓는가에 따라 승자가 결정된다니, 이봐들. 이걸 영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야. 현실이야.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하고 냉정한 스포츠 월드지. 이 세계는 실력이 전부야. 잘하는 놈이 모든 걸 따먹는 냉정한 세계라고.

-맞아. 그래서 잔인하지.

-잔인하지.

-그럼 승자는?

-잘하는 놈!

-잘하는 뻑킹가이!

-미친놈들.

답이 나왔다.

결론은, 잘하는 놈이 이긴다.

정답이었다.

* * *

신지의 준결승 상대는 몽골 선수였다.

유도의 변화기에서도 스타일을 바꾸지 않은 나라는 물론 있었다. 유럽은 힘 유도를 포기하지 않았고, 일본은 기술유도를 고수했고, 한국 유도는 말아업어치기와 같은 변칙적인 스타일을 버리지 않았다.

몽골도 마찬가지였다.

몽골은 옛날에도 힘을 베이스로 했고, 지금도 힘을 베이스로 했다. 압도적으로 강한 힘. 유럽권 선수에게도 부족하지 않은 힘으로 아시아권 선수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려고 했다. 그 의도는 그럼 성공했을까?

전혀.

실패였다.

기술과 변칙, 그리고 좀 더 강한 힘은 그들이 고수하던 것을 언제나 넘어섰다. 그 증거가 바로 성적이다. 정상급 선수를 배출한 적은 있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도, 어느 체급에도 그 선수보다 잘하는 선수는 존재했다.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몽골 선수는 준결승까지 특기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올라왔다. 아시아권에서 힘 유도의 종주국 소리를 듣는 중국 선수조차, 몽골 선수의 힘찬 기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힘으로 찍어누르는 것도, 실력이 어느 정도는 비슷할 때의 얘기였다. 미야모토 신지는 역으로 힘도 부족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체지방이 아마 10%도 되지 않을 거고, 민첩성이 떨어지지 않은 선에서 근력 강화 프로그램을 이미 수행했을 거다. 지영처럼 말이다. 그런 선수를 힘으로 찍어 누른다?

불가능하다.

게다가 신지는 잡기가 수준급 이상, 스페셜리스트라 상대의 힘을 이용한 잡기쯤은 이골이 난 선수다. 그런 선수를 힘으로 찍어누르려고 하다간…… 홰액! 쿵!

“와자리!”

저렇게 날아간다.

밀고 오는 힘을 받아 몸을 비스듬히 돌려, 어? 하는 순간 빗당겨치기. 막판에 소매를 놓치지만 않았어도 무조건 한판이다. 유도는 힘이 좋다고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힘이 좋다는 건 지극한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지독한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유는 괴물 같은 근력과 유연성, 민첩성은 공존할 수가 없어서였다.

유도 기술은 이 셋이 전부 합쳐져야 한다.

힘으로 공간을 만들고, 빠르고 유연하게 파고들어야만 기술로 성립되는 게 바로 유도다. 그런 유도에서 힘이 무진장 좋다는 건 다른 단점도 무진장 크다는 거다. 신지는 그걸 당연히 놓치지 않았다.

좀 전에도 그랬다.

신지는 지영처럼 중심축을 유연하게 둔 채로 잡기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작정하고 잡기를 할 때는, 굉장히 날카롭게 손을 뻗어 상대의 혼을 빼놓는다. 신지의 아귀힘 하나만큼은 세계 탑 레벨이라서, 이게 굉장히 골치 아프다. 내가 불리하게 잡히면 어떻게든 상대의 손을 뜯어내야 하는데, 아귀힘이 좋으니 뜯어내는 데 공이 너무 들어간다. 재밌게도 여기서 뿌리치는 동작이 크면 클수록 심판은 그걸 수비적인 모습으로 해석한다. 이건 거의 모든 심판이 그렇다. 유도는 잡아야 경기가 제대로 시작되는 종목인데, 상대는 잡았는데 나는 잡지 않고 뜯어내면 그건 어떻게 봐도 수비적일 수밖에 없는 거다. 이런 부분에 대한 경계는 당연히 모든 선수가 가지고 있다.

그러니 반사적으로 밀고 오는 거다.

내가 수비적이지 않다고 어필하기 위해서. 이 타이밍을 신지나 지영만 노리는 게 아니다. 유도 선수는 다 이런 틈을 노린다.

유능제강의 원리가 가장 잘 접목된 종목 중 하나가 유도라서,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건 도복 입고 반년이면 본능적으로 깨우친다. 그런데 최소 10년 이상 전념한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이 이런 틈을 놓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놓칠 수 있지. 놓칠 수야 있지만…….”

그런 선수는 애초에 정상급이라 할 수 없었다.

그걸 놓치지 않는 선수가, 정상급이라 할 수 있는 거고. 신지는 정상급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냥, 구름 위의 신계에 올라간 선수다.

지영은 저 몽골 선수가 절대 신지를 넘을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사실상 결승전 상대는 정해졌다고 생각했다.

경기 시작 2분 만에 나온 절반.

신지는 지영의 운영과는 결이 다르게 몽골 선수를 코너로 몰았다. 신지는 확실히 공격 성향이 짙었다. 절반을 따내면, 안정적인 운영으로 승리를 끝내는 게 지영이다. 지영은 굳이 한판으로 이기지 않아도 승리라 생각했다.

축구에서 1-0으로 이기나, 5-0으로 이기나 똑같은 승리라 생각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특별한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이상, 중요한 건 이겼다. 이거 하나면 되는 거다. 하지만 신지는 그런 지영과는 반대로 상대를 한판으로 끝내기 위해 공격을 다분히 건다. 지금도 그랬다.

몽골 선수는 수세로 몰렸다.

신지의 가공할 압박은 지영조차 뒤로 물러나게 하는데, 몽골 선수는 이기고 있으면서도 우직하게 밀고 들어오는 신지의 공세에 상당히 당황하고 말았다. 유도는 1초를 남기고도 게임이 터지는 상황이 많기도 하지만, 지영은 저 경기에서 그런 상황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맛테!

30초 남았다.

시도!

반칙 하나가 더 몽골 선수에게 들어갔다. 사실상 게임은 기울었다. 아까 지도 하나씩을 받아서 몽골 선수가 지도 두 개, 신지가 하나다. 남은 시간은 30초, 이 정도면 사실상 끝난 거다. 그리고 지영의 예상처럼 시합은 이변 없이 끝나며 일본 관중의 환호성이 가득 일어났다.

지영은 신지가 인사하고 나오는 걸 보고서도 몸을 돌리지 않았다.

시합장에서 나온 신지는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지영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직진해서 걸어왔다. 오오…… 하는 기대감 가득한 탄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신지의 시선이 지영을 향해 있고, 지영을 향해 신지가 걸어가는 그림이다. 최소한 이 경기장에 있는 사람 95% 이상은 강지영과 미야모토 신지의 관계를 알고 있다. 그러니 이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벤트였다. 지영은 자세를 바로 했다.

뚝, 뚝.

싱그럽게 떨어지는 땀방울을 훔쳐내며 다가온 신지가 지영의 앞에 섰다.

“이번 대회 끝나고 무조건 은퇴야?”

신지의 어조에는 적의나 이런 건 없었다. 그저 순수한 궁금증만 들어있을 뿐이었다. 지영은 그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솔직하게 대답해 줬다.

“아니, 그랜드 슬램이 목표야. 무패면 더 좋겠지만.”

“그럼 이번에 내가 이기면 은퇴 안 하겠다는 얘기지?”

“응.”

“…….”

“…….”

신지의 눈빛이 변했다.

시합을 끝내고 가라앉지 않은 흥분이 더욱 고조됐다. 시합 중에도 하지 않았던 강렬한 기세가 신지의 눈빛에 머물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주체하기 힘든 격정이 올라온 것처럼 피어나는 환한 미소였다.

“기회가 있는 거네, 그러면…….”

“…….”

지영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저 신지를 바라보며 비슷한 느낌으로 웃어줬다. 기회, 그렇다. 만약 신지가 이번에 자신을 넘으면, 기회가 다시 생길 거다. 신지는 웃음을 거두고 돌아갔다. 지영은 그런 신지의 등을 보다가 대기실로 돌아갔다. 대기실엔 이성진만 있었고, 조용했다. 이제 결승전만 남았다. 그래서 지영의 컨디션과 마인드 컨트롤,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뭐 하다가 이제 와? 빨리 와, 밥 먹게.”

“아, 잠깐만.”

이제 쉬는 시간이다.

패자결승과 결승전을 위해 매트를 정비하는 시간으로 30분 정도 쉰다.

지영은 도복을 벗고 보온성이 좋은 상의를 걸쳤다. 땀이 많이 나지 않아 도복 바지는 벗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은 지영은 이성진의 앞에 앉았다. 지영이 앉자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서 이성진이 죽을 가득 퍼서 줬다.

전복을 듬뿍 넣은 죽, 소고기를 듬뿍 넣어 끓인 죽으로 배를 채웠다.

많이 먹는 건 오히려 역효과라서 지영은 딱 속이 따뜻하게 찰 정도만 배를 채웠다. 그리고 바나나도 하나 먹어주고, 물도 조금 마셨다. 배가 살짝 찰 정도라 졸음이 오진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더 예민하게, 날카롭게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결승전에 대한 기대감, 흥분이 온몸을 잠식하고 있는 거다.

지영은 이렇게 변하는 심기를 굳이 통제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들 때면, 당연하게 긴장감도 뒤따라간다. 적당한 긴장감은 모든 종목의 선수가 필수로 유지해야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상대는 미야모토 신지.

지영이 상상 속에서 택하는 수많은 선택지는 역시,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영은 실망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서 신지에게 이긴 경우가 없기 때문이었다. 머리로 만든 그림이 통하지 않는 상대, 그렇기에…… 소중하다.

더 없이, 신지가 있음은 지영의 유도 일생에, 축복이었다.

우와!

환호성이 울렸다.

어느새 재개된 경기.

지영은 눈을 뜨고, 대기실을 나섰다.

대미를 장식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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