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34화
534화. 아시안 게임(7)
유도, 정말 애정한다.
사랑하는 마음 말고, 슬플 애다. 너무나 원했었지만, 가질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가졌다가 뺏겼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뺏겼다. 지영은 순수한 선의였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뺏기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았다.
철이 일찍 들어 아버지의 애정 표현에 건성이 되었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몇 날 며칠을 울며 후회했던 것처럼, 지영은 빼앗기고 나서야 유도가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깨달았다.
거의 반 불구가 된 뒤에, 지영은 재기를 위해 안 해본 게 없었다. 의사는 불가능이란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지영은 그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지영은 재활에 매달렸고, 2년이 넘어 포기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유도와 멀어졌다.
가능하면 소식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아시안 게임도, 세계 선수권도, 올림픽도, 전부. 그러나 안 보고 싶어도, 알고 싶지 않아도 현대 사회는 너무 그러기 힘들었다. 가끔 SNS를 켜도 알고리즘은 지영을 유도로 인도했고, 인터넷 기사도 잠시 살펴보다 보면, 불쑥 유도에 관한 정보가 지영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먹고살아야 해서, 연희 재단이 준 코치 자리를 수락했을 때부터는 포기했다.
유도와 자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내가 아무리 버리고 싶어도, 유도가 나를 물고 놔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부터 포기했다. 하지만 마음은 절대로 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옥에 빠진 것처럼 너무나 괴로웠다.
손에 넣고 싶다.
손에 쥐고 싶다.
그러나 허락하지 않았기에.
그게 지영을 미치게 했었다.
그걸 다시 손에 넣었을 때는?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아주 특별한 일을 통해 다시 내 손에 쥐었을 때는? 놓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절대로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위기가 온다고 해도, 절대로, 정말 절대로, 절대로…… 두 번 다시는 지독한 상실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영은 언제나 유도가 간절했다.
그랜드 슬램 이후, 은퇴라는 계획을 세웠고 이제 8부 능선을 넘는 중인 지금도, 그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눈앞의 이 간절한 선수의 눈빛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시리아 선수였다. 마헤르 알 카티브. 이제 나이 스물이 된, 사실상 유망주라 봐도 무방한 선수였다.
그러나 이 선수는 스토리가 있다.
시리아는 아직도 전쟁 중이었다. 종교, 외교, 그리고 이권이 더럽게 섞여서 아직도 전쟁의 불길이 꺼지지 않은 곳이었다.
마헤르 알 카티브는 그래서 스토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 사랑, 민족, 국가.
스토리가 끼어들 틈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사실 이런 마헤르의 이야기는 이미 짧게 외신에서 소개됐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 전쟁을 멈춰달라는 호소를 하고 싶다는. 철없는 소리다. 하지만 지극히 순수하고, 정상적인 호소이기도 했다. 슬픈 건 그런다고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의지를 품었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한다. 유도를 어떤 의지의 표출 대상으로 삼은 것도, 그것도 이해한다. 물론 이해만 한다. 인정하고, 넘어 가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간절함? 그건 지영에게도 있었다.
그렇기에 간절한 그의 표정에도, 지영의 눈빛은 한없이 차가웠다.
철저한 그의 스타일 또한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지영의 유도는…… 잔인하게 보였다. 아니,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차가운 사냥꾼의 느낌이 너무나 물씬 났다.
그러니 그 모습에, 사람들이 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와, 나 유알못인데, 원래 유도가 저렇게 살벌한 것임?
-아니, 투기 종목이니까 파이팅 넘치는 게 맞긴 맞는데,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지. 솔직히 저런 눈빛은…… 와 씨.
-누구 매트 위에 나의 무사님을 던져놨냐?
-저건 강지영이 아니라, 재인데?
-ㅇㅇ 칼만 안 들었지, 그냥 누가 봐도 재…….
-아니, 이쯤 되니까 솔직히 궁금하지 않음?
-뭐가?
-원래 강지영이 저런 모습이어서 재가 찰떡이었던 건지, 아니면 반대로 재를 연기하면서 그 자체가 강지영에게 흡수되어 저런 모습이 나온 건지.
-ㅇㅇ 궁금하긴 하닼ㅋㅋㅋ 진짜 눈빛 개살벌하네. 꿈에 나올까 봐 무서움;;
-근데 그렇다고 막 사이코패스 같은 눈빛은 또 아닌 듯,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신념? 단순 쾌락살인마나 공감 능력이 없는 범죄자와는 다른 게, 눈빛에 보이는 저 차가운 신념? 그 차이인 듯.
-ㅇㅇ 맞다그거;;
-신념, 와. 솔직히 강지영 정도면 유도 그만두는 게 훨씬 이득 아님? 솔직히 무신 척위준 전 세계 메가 히트 쳤고, 시2 때 몸값 어마어마하게 뛸 건데 그거 생각하면 그냥 작품에만 집중하는 게 훨씬 이득 같은데?
-이득 정도겠음? 아겜이나 올림픽만 상금 있는 게 유도인데, 그거 3연속 우승해서 받는 돈이 지영이 나의 무사님 시즌1 재방료보다도 안 나올 거임ㅋㅋ
-ㅇㅇ 지금 나의 무사님 재방도 엄청나고, 해외에서도 진짜 잘 팔리잖아요. 애초에 유도 자체가 상금도 얼마 안 되고요. 미국처럼 메달 딸 때마다 점수 계속 늘어서 상금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는 딱 커트라인에 걸리면 그것밖에 안 나오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돈으로만 봤을 때, 진짜 코 묻은 돈만큼 적은데도 저 눈빛 봐요. 진짜 진심임. 나는 절대로 질 수 없다. 온몸으로 포효하는 것 같아요, 진짜.
-아 개멋있어…….
-저게 지영이 매력임; 뭘 하더라도, 절대로 허투루 하지 않음;
-ㅇㅈㅇㅈ 전에 무신 척위준 메이킹 필름에서 강지영 연습하는 거 봄? 1시간짜리 풀 영상. 그거 본 사람 있음?
-저요! 근데 그거 안 본 사람도 있을까요? ㅋㅋ 우리 지영이 팬이면 필수시청각 자료인데?
-ㅋㅋㅋ맞아요. 그거 다 보고, 중간 지점에 나오는 문제 맞혀야 팬클럽 가입승인 남 ㅋㅋ
-나 그거 세 번 틀림;; 팬클럽 가입하기 오지게 힘들었다요 ㅠㅠ 근데 그게 왜요?
-그거 보면, 그냥 연습인데도 진짜 치열하게 하잖아요. 진짜 이 악물고, 정말 싸우는 것처럼.. 실수로 목검에 맞아 막 피도 터지고, 그 정도로 한 작품을 위해서 노력하는 인간임; 물론 모든 배우가 작품을 위해 연습하겠지만, 강지영은 그중에서도 또 특출난 듯.
-특출하기만 해요? 특별하지……. 솔직히 지금까지 강지영 같은 인간은 본 적도 없음……. 솔까 저게 가능한 건가 싶던데.
-그래도 눈빛은 무서움.
-시리아 선수 간절함도 간절함인데, 그걸 모조리 깨부수는 저 차가운 눈빛이 정말…… 아 지리겠당 ㅠㅠ
-그래도 무서워요 ㅠㅠ
강지영의 경기는, 모두에게 충격적이었다.
그가 저런 살벌한 눈빛을 하는 것도, 이미 연기 쪽으로는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가고 있으면서도, 유도라는 또 다른 스포츠에서 저렇게까지 진심인 것을 보면 정말이지, 숨이 막혔다. 특히 각이 선명하게 잡힌 가슴이 드러날 때면, 여심이 폭발하기도 했다.
질리는 건 질리는 거고, 멋있는 건 또 멋있는 거였다.
그렇게 전 세계 커뮤니티가 폭발 중인 것도 모른 채, 지영은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고, 이는 능선 하나를 더 넘기 위해서였다.
* * *
지영도 안다.
시리아 선수의 스토리를.
‘미안하지만, 그건 당신 사정일 뿐이야.’
나에게도 사정이 있다.
누구도 믿지 않을 사정이.
그리고 자신에게도 목표가, 목적이 있었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그런 게. 절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었다. 그 상대에게 그 어떤 사정이 있다고 해도, 절대로.
쿵!
맛테!
소매 끝을 손가락을 고리처럼 구부려 잡은 뒤, 그대로 빗당겨치기를 꽂아 넣었다. 마헤르 알 카티브는 지영의 기술을 피하지 못했다. 경기 시작 3분, 벌써 이 빗당겨치기에만 다섯 번이나 당했다. 중심이 자꾸 앞으로 가서,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강지영이 기술로 자기의 흐름을 끊고 있다는 걸…… 마헤르는 알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뒤로 물러나면 발기술, 앞으로 나오면 빗당겨치기와 변칙 소매꽂이 같은 업어치기 기술이 들어오고, 가만히 서 있으면 상대도 가만히 서 있었다. 이게 문제였다. 그는 시작과 동시에 위장 공격을 해버렸다. 강지영의 운영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공격을 이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략은 시작과 동시에 들어간 기술을 강지영이 소매를 끊어내면서, 그냥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자비 없이 지도가 들어왔다.
심판마다 달라서 이렇게 위장 공격이 들어가도 한 번 봐주기도 하는데, 하필이면 이번 심판은 굉장히 공격적 판정을 내리기로 유명한 심판이었다. 거기서부터 다 꼬였다. 강지영의 이전 두 경기를 보며 마헤르가 느낀 건, 절대로 지도를 먼저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꼬였으니, 마헤르가 할 수 있는 건 공격 유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공격 유도는…… 강지영이 너무나 원하는 방향이었다.
시도!
도복을 고치기 무섭게 지도가 들어왔다. 마헤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왜 지도냐고 어필하기도 뭐한 게, 이미 그도 지도가 들어오겠구나, 직감한 상태였다. 그러니 지도가 들어왔을 때, 당연하구나, 라고 생각해 버렸다.
밖에서 코치가 열심히 왜 지도냐고 어필하지만, 이게 바뀔 확률은 지극히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메!
어떤 조언도 듣지 못하고 경기가 시작됐다.
마헤르는 간절했다.
이겨서, 강지영을 꺾어 유명해져서, 호소하고 싶었다. 부디 전쟁을 멈춰달라고, 그게 안 되면 부디 연약한 여인과 아이를 향한 총칼만 치워달라고, 그렇게 호소하고 싶었다. 그의 나라엔 죽음이 수두룩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마헤르가 본 아이의 시체와 여인의 시체는 최소로 잡아도 100명을 넘었다.
그렇게 죽은 이들은 전부 길바닥에 방치되어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모른다.
강지영이 그랜드 슬램 이후 은퇴를 발표했을 때, 마헤르는 곧장 SNS에 강력하게 그를 비난함과 동시에 반드시 그를 잡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덕분에 마헤르의 팔로워가 크게 늘었다. 여기서 강지영에게 승리하면 더욱 늘어날 게 분명해서, 그는 필사적이었다. 필승의 각오로 들어왔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높아도 너무 높았다. 잡아본 그는 깨달았다. 왜 강지영이 세계 최고의 선수인지, 왜 강지영의 유도를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이라 칭하는지, 잡아보니까 그냥 너무나 쉽게 깨달아졌다. 벽이다. 진짜 통곡의 벽이다.
그래서 그냥, 간절한 눈빛이 됐다.
“져줘, 제발…… 이번 한 번만. 시리아를 위해 제발…….”
꽉, 가슴 깃을 잡고 사력을 다해 당겨, 당겨온 그의 머리를 머리로 박으면 그에게 애원했다. 제발, 가슴 아프고, 슬픈 시리아를 위해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그렇게 빌었다. 한참을 빌고 머리를 대고 강지영의 눈빛을 봤을 때.
“아…….”
그는 탄식을 흘렸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눈빛은 차가웠고, 흔들릴 조짐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을 보면서 마헤르는 깨달았다. 이 사람의 눈빛은, 또 다른 신념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을.
자기와는 다르지만, 이 사람에게도 절실한 어떤 신념이 보였다.
종류는 분명 다르지만, 그가 조국에서 넘치게 본 눈빛이었다.
마헤르는 잡기를 포기했다.
이 선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고, 자기의 사정 따위도 들어주지 않을 거다. 그런 사람에게 자기는 져달라고 했다. 제발 져달라고,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마헤르는 부지불식간 깨닫고 말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절망에 빠져, 실의 때문에 포기한 건 아니었다. 그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를 깨달아서, 고개를 푹 숙였다. 스포츠맨십에 지독히도 위배 되는 행동을 했으니, 이건 말로는 설명할 수도 없는 커다란 잘못을 한 거다.
경기 포기는, 그에 대한 사죄였다.
꾸벅.
손을 모으고 인샬라, 하면서 그에게 사죄했다.
꾸벅, 지영은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발 물러났다. 하지만 도복을 풀거나 하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한 심판이 그쳐를 선언했다.
“시도! 시도! 소레마데!”
지영은 지도 하나, 마헤르는 지도가 세 개. 그래서 여기까지가 줄줄 나왔다. 8부 능선을 넘어, 9부에 도착한 지영은 도복을 고치고 신지의 경기를 두 눈에 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