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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533화 (533/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33화

533화. 아시안 게임(6)

저거다, 저거.

저걸 깨지 못하면, 신지는 이번에도 강지영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참 신기한 친구였다. 일 년의 절반은 배우로 활동하면서, 실력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확실히 성장한 느낌이 난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네?”

혼잣말에 스태프로 참여한 아내, 히카리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신지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이제는 아내다. 아니, 정확히는 아내가 될 사람이었다. 그녀의 건강 문제 때문에 식을 아직 못 올렸다. 함께 살고는 있지만, 아직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던 중에 아이까지 생겼다. 아직 배가 불러오진 않았지만, 조심해야 할 때였다. 몸도, 마음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면 귀찮게 생각한다고 오해할까 봐, 솔직하게 말했다.

“지영 말이야. 일 년의 절반을 배우로 활동하잖아?”

“네,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저런 실력이 유지될까? 신기하지 않아?”

“음…… 맞아요. 사실 신기한 정도를 넘어선 게 아닐까요?”

“맞네. 신기한 걸 넘었지, 저 정도면. 불가사의란 말을 써도 되겠어.”

“후후, 맞아요. 지영은 정말 불가사의해요. 특별한 훈련법이라도 있는 걸까요?”

“그건 아닐걸? 따로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선발전을 치르면 입촌하잖아. 거기서 특별한 훈련을 했다면 황금세대 말고도 성적이 말도 안 되게 나왔겠지.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잖아?”

“…….”

신지의 말에 히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여자 유도는 약했다. 전에 자신을 꺾은 사오리를 빼면, 한국 유도 선수 중 세계 정상을 노려볼 만한 선수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만약 정말 특별한 훈련법이 있었다면, 한국 여자 유도도 강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니, 지영과 황금세대만 특별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히카리, 지영의 저 필승 전술을 어떻게 깨야 할까? 당신이 봤을 땐 어때?”

“음. 당신의 실력?”

“하하, 내 실력? 난 지영과 붙어서 전패인데?”

“종이 한 장 차이였잖아요. 당신도 분명히 강해요. 아니, 지영만큼 강해요. 그저, 지영이 아주 조금 더 잘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알죠? 유도에서 종이 한 장 차이는 사실 없는 차이예요. 그러니 당신이 잘하면, 이길 수 있어요.”

히카리의 말에 신지는 웃었다.

하지만 속은 웃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이 맞긴 맞다. 유도에서 종이 한 장은 정말 큰 차이는 아니었다. 한 수 아래라면 큰 차이겠지만, 종이 한 장은 거의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신지는 느끼고 있었다.

그 한 장의 차이가, 현재 자신과 강지영의 사이를 얼마나 벌려 놨는지.

그리고 그걸 증명하는 게 바로 전적이다.

3전 0승 3패.

즉, 전패였다.

아시아 청소년권, 아시안 선수권, 그리고 올림픽에서 지영을 만나 전부 패했다. 심지어 올림픽에선 강지영에게 정말 큰 부상이 있었는데도 잡지 못했다. 그렇게 명명백백한 전적은, 그 자체로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는 아주 정교한 척도가 된다.

신지는 그걸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실제로 지영과 자기의 실력 차이가 진짜 크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모든 시합이 그랬다.

처절한 경기.

두 선수 다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90% 이상을 본능에 의지한 채 시합했다. 숨이 턱 막혔다가 풀리면서 마라톤 선수들이 겪는 각성 효과를 느끼기도 하면서, 정말 처절하게 맞붙었다. 그러다가 어, 했을 때 어느 순간 끝나 있었다. 어떤 경기는 어떻게 졌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아서, 나중에 영상을 돌려보고 나서야 어떻게 졌는지 깨달았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아쉬운 거다.

지영도 아마 자기와 비슷할 테니까.

한 발, 정말 딱 한 발만 더 나가면 되는데, 그걸 내딛지 못해서 졌다. 이 아쉬움이 신지를 괴롭게 했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히카리가 신지의 손을 꼭 쥐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신지 당신은 승리할 거예요. 누구보다 열심히, 간절히 훈련했잖아요. 그러니 이번엔 여신이 당신의 손을 들어줄 거예요.”

히카리의 차분한 말에 신지는 웃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고마워.”

“고맙기는요. 우리는 부부잖아요.”

“그래, 부부지.”

신지는 이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사람이 품은 루미를 위해서라도, 이번 대회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를 다시금 세웠다.

“일어나요, 이제 당신 슬슬 차례네요.”

“응.”

거인이 일어섰다.

일어선 그 거인은, 전에 없이 다부진 각오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그는 모르지만, 그는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된 모습을 지영은 단숨에 파악했다.

* * *

다르다.

저건, 좀 느낌이…… 다르다.

‘평소 신지의 느낌이 아냐.’

지영은 감히 자부할 수 있었다.

유도에 한해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미야모토 신지를 사람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신지는 기본적으로 오만한 천재였다. 더없이 뛰어난 재능. 아니, 세계에서 제일가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보통의 인간은 자기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평생을 살아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거기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 재능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잘 찾는 사람도 있고, 못 찾는 사람도 있고.

신지는 자기 재능이 최고의 효율을 보일 수 있는 분야를 택했다. 지영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승승장구했다. 남들보다 적은 노력으로 남들의 배 이상의 효율을 지금까지 봐 왔다. 그렇기에 또래에는 적수가 없었다. 비슷한 훈련이면, 이미 또래보다 아득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지는 오만한 천재였다.

여기서 무서운 건, 노력까지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적당히 훈련만 때우는 동료를 경멸했고, 실력도 없으면서 허세만 부리는 선수는 증오했다. 초기의 신지는 분명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안호진을 상대로 보여줬던 그 경기가 딱 오만함의 정점을 찍을 때쯤이었다.

그게 지영에게 두 번째 졌을 때 꺾였다.

그다음 신지의 모드는, 잘 벼려진 한 자루의 카타나였다.

올림픽에서 만난 신지는 예기가 줄줄 흐르는 칼이었다.

필승의 의지와 투지로 전신을 무장한, 건드리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칼날이란 느낌이 강했다.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신지의 표정은 어떻게 봐도 예리한 칼도, 오만한 천재도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묵직하면서도, 차분했다. 시린 예기도 없고, 상대를 업신여기는 조소도 없다. 그런데도 지영은 신지의 표정을 보자마자, 등골이 시렸다. 모골이 송연해지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식었던 열이 다시 나는 느낌.

지영은 이게 긴장으로 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정도로 긴장하는 이유는 당연히 신지 때문이고.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영은 확신할 수 있고, 단언할 수 있었다.

“변했어, 분명…… 변했어.”

중얼거리는 지영은 이게 위기감이구나 싶었다.

잘못하면, 진짜 질 수도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는 순간 피부로 느껴 버렸다. 신지가 입장했다. 일본 관중이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냈다. 체육관이 떠나가라 환호를 보냈다. 차분하다던 일본인을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같이 입장하던 상대 선수가 순간 움츠러들 정도로 격렬한 환호였다.

그런 환호를 받으며 입장한 신지는, 역시나 미야모토 신지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신지는 이전의 오만한 경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지영처럼 정말 차분하게, 자기 방식대로 시합을 풀어나갔다. 지영이 운영을 묘를 살린 방어 유도라면, 신지는 그냥 방어와 공격, 운영까지 전부 레벨이 높다.

특히 기술은 진짜 무섭다.

기술의 완성도 하나만 봤을 때는 지영보다도 윗선이었다. 그의 기술은 정말로 카타나에 비교할 만했다. 지영은 이성진의 업어치기 완성도를 최고로 쳤다. 그런데 신지의 업어치기도 그 정도는 된다. 숫자로 수치를 재라면 이성진의 업어치기 점수가 99점, 신지는 95점 정도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지가 이성진보다 더 무서운 이유는, 신지는 허리 기술도 그 정도 점수를 매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도에 필요한 스텟 전체가 90점 이상인, 완벽한 올라운더 플레이어가 바로 신지였다.

그런 신지가 2회전을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이었다.

딱 한 번의 기술.

소매를 뜯는 척하며 역으로 감싸 빗당겨치기.

200년대 초중반 한국의 레전드 선수였던 한판승의 사나이의 시그니처 기술이었다. 너무 깔끔해서 상대는 텅! 하고 굴러 매트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자기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상황 파악도 안 된 상태다. 그만큼 빠르고 깔끔했다. 유도 기술은 1초면 끝난다. 진짜 제대로 걸리면 보고 있는 사람도 어떻게 넘긴 거지? 뭐야, 끝났어? 하는 게 유도 기술이다. 한눈팔면, 진짜 골로 가는. 그래서 일반인이 유도 선수와 레슬링 선수 등과 절대 시비가 붙지 말라는 거였다. 턱 한 대 맞는 거로 안 끝나니까.

지영은 제대로 지켜보고 있어서 그나마 어떻게 끝났는지 딱 보이긴 했다.

‘최소한 간결하게, 하지만 정확한 타이밍에. 진짜 칼 갈았구나.’

달라진 건 기세만이 아니었다.

신지는 역시나 성장했다. 군더더기 없다는 것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인사를 하고 신지가 나왔다. 다시 열렬한 환호가 이어졌다. 신지는 그런 환호에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특유의 오만한, 거만함 등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완벽하게 이 대회에 몰입한 모습이었다.

그런 신지가 다가왔다.

신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영을 향해 웃지도, 인상을 구기지도 않았다. 그냥 그 표정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그런 신지의 모습에 오히려 웃음을 지은 건 지영이었다. 잘 됐다. 신지의 경기를 이렇게 보기를 잘했다.

만약 저렇게 변한 것을 몰랐다면 지영은 분명 이전의 신지로 예상하고 경기에 임했을 거다. 물론 마주 보고서는 순간 느꼈을 테지만, 그건 좀 늦다. 경기 직전 알아채고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과 적어도 몇 시간 전에 알아채고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히 차이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했다.

마음이 풀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지영은 은연중에 신지가 희대의 천재는 맞지만, 그래도 회귀자의 특전으로 자기 자신이 조금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역시 전적이었다.

부상을 입고도, 결국엔 이겼다.

끝끝내 승리를 거둔 것은 자신이었던 거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고. 그러나 신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이번엔 진짜다.

대기실로 돌아온 지영의 얼굴을 본 스태프들이 또 일어나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 반개한 것처럼 감긴 눈에, 질끈 깨문 입술과 얼굴에 있던 여유가 모조리 사라졌다. 그 모습에서 변화를 눈치 못 채면, 선수 케어 스태프로서는 아예 자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특급 선수를 케어하는 스태프로는 더더욱.

그래서 대기실엔 이성진만 남았다.

“성진아.”

눈을 감고 있던 지영이 부르자, 이성진이 왜? 하고 대답했다.

“신지 또 변했더라. 얜 진짜 괴물인가 봐.”

“야, 누가 누구한테 괴물이라고 하냐?”

난 좀 달라.

‘말은 해줄 수 없지만.’

나는 괴물이 아니라, 그냥, 그냥…….

“내가 요즘 꽃밭이기도 했고.”

“뭐지, 뭔데 갑자기 센치해져서 말까지 돌리지?”

이성진은 씩 웃으며 지영의 말을 받았고, 지영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받았다.

“그냥 그랬다고. 무패 그랜드 슬램이란 위업을 이루고, 올해 안에 유진 누나랑 결혼도 하고, 미뤄뒀던 연기도 제대로 배워서 해보고 싶었고, 그런 생각이 솔직히 이번 대회보단 앞섰어.”

“아아, 건방을 떨었구나?”

“하하, 맞아. 건방 떤 거지.”

진짜 건방 떤 거다.

신지가 있어서 무난한 우승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승은 할 거라고.

인터뷰한 것도 있는데, 강지영이란 한 인물의 역사를 두고두고 따라붙을 흑역사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데, 그래도 경각심이 크게 없던 거다. 아주 그냥, 정신 나간 짓을 했다. 미쳐가지고, 진짜.

“뭐 그래도 이제 알았으니까 됐네.”

“늦지 않았지?”

“흐흐, 안 늦었지. 만약 늦은 것 같으면, 그거라도 틀어.”

“어? 뭐?”

“지영의 그 날.”

“아…….”

맞다, 그런 게 있긴 했다.

그냥 뭔가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세계에 들어가는 날이. 너무 인간적이지 못해서 억지로라도 들어가지 않았던 그런 세계가 있다.

“그럴까?”

“그래라?”

“하하.”

괜히 웃음이 났다.

이성진과의 짧은 대화를 끝낸 지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런 지영을 가만히 보던 이성진은 자리를 피해줬다. 시간이 흘렀다. 패자전이 진행되는 동안 지영은 변해 있었다.

투지, 각오. 다짐. 독기까지.

이런 것들이 한데 뭉쳐서, 눈을 뜬 지영의 얼굴에 잘 버무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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