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32화
532화. 아시안 게임(5)
사실 지영의 유도는 파이팅이 넘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약아 빠진, 그런 종류의 경기였다. 투기 종목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치고받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주먹질하는 건 범죄에 속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 불구경이라고 할 정도로 인간은 ‘싸움’에 열광한다. 그래서 합법적인 투기 종목은 인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UFC라 불리는 격투기가 인기가 많다. 그 외에도 나라마다 열광하는 종목이 있는 편인데, 어마어마한 판돈과 인기를 형성하고 있는 게 바로 미국의 프로레슬링과 복싱이었다.
프로레슬링이야 합을 맞춰 아주 리얼하게 연기하는 게 주긴 하지만, 복싱은 다르다.
어마어마한 대전료.
인간의 외적인 강함을 증명하는 아주 확실한 종목이다. 그러면서도 주어진 룰 안에서 움직이기에 스포츠가 갖춰야 할 건 다 갖췄다. 그런데 이런 복싱도 모든 선수가 인기 있는 건 아니었다.
선수는 승리가 목적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거리를 주지 않고 주변으로 돌며 가랑비에 옷 젖듯이 포인트를 쌓아 승리하는 선수가 있기도 하고, 타이밍을 노려 단방에 상대를 침몰시키는 복싱 스타일을 갖춘 선수도 있다. 그럼 팬은 어느 스타일을 좋아할까? 후자다.
깨작깨작 치고 도망치는 선수보다는, 자기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는, 아주 안 좋은 리스크를 품고서도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어 화끈하게 펀치를 때려 넣는 선수에게 훨씬 열광한다. 일세를 풍미했던 복서 중에 무지막지한 인기를 얻었던 선수는 대부분 그런 스타일이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마이클 타이슨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어마어마한 펀치 파괴력으로 상대를 침몰시키는 인파이터의 전형이지만, 단순히 힘만 좋은 게 아니라 인파이터가 갖춰야 할 모든 기술을 수도 없이 연습해 몸에 안착시킨 지독한 테크니션이기도 했다.
강지영은 딱 그런 마이클 타이슨의 반대쪽에 서 있었다.
상대에게 거리를 주지 않고, 철저하게 거리 밖에서 상대를 조지기 시작한다. 그러는 중에도 반칙을 받지 않기 위해 적당히 기술을 걸어주고, 귀신 같은 타이밍에 상대의 기술을 카운터로 녹여 버린다.
이런 스타일은 어떻게 봐줘도 화끈함이 보일 수 없었다.
특히 작정하고 외곽에서부터 조지기 시작하면, 솔직히 말해 따분한 경기가 된다. 그렇게 되어야 했다. 그런데 강지영의 경기는 달랐다.
연예인이라서?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배우라서?
얼굴이 너무 잘 생겨서?
무패의 전적을 이어가고 있어서?
다 섞인 거다.
그래서 강지영이 입장하자, 어마어마한 함성이 쏟아졌다. 경기장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를 정도로, 커다란 함성이었다. 재미난 건, 그렇게 함성을 지르는 사람 중엔 일본인도 제법 많다는 점이었다.
2회전.
지영의 상대는 카자흐스탄 선수였다.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유도 강국이었다. 유도 스타일은 한국과 비슷했다. 10년대나 그 이전에는 사실 전형적인 힘 유도를 구사했었다. 그땐 다리 잡기를 비롯해 변칙기술이 정말 잘 먹히던 시대였고, 그런 변칙기술의 성공률은 타이밍과 힘에 달려 있었다. 제대로 안 걸려도 그냥 탱크처럼 힘으로 뒤집어버리면 됐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73체급 결승전에 한국의 범죄자 유도 선수가 한판으로 날아간 기술이 딱 힘을 베이스로 한 변칙기술이었다.
그러나 허리 아래 잡기가 금지되면서, 힘 유도 베이스의 선수들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처박혔다. 반대로 바닥에 처박혔던 기술 유도 선수들이 역으로 급부상했다. 힘, 피지컬 그 자체로 승부를 보던 중앙아시아, 그리고 유럽권 선수들의 암흑기가 시작된 게 이때부터였다.
그러나 그 암흑기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줬다.
변칙기술 연마를 아예 빼버리고,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어둠이 걷힌 것이다. 물론 쉽지도 않았고, 금방 해결되지도 않았다.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어마어마하게 공을 들여야 했다. 하지만 유도란 종목을 아예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이는 당연한 흐름이었다.
이런 노력 끝에 결국엔 그 차이를 지우는 데 성공했다.
카자흐스탄은 이후 유도 스타일을 한국과 일본처럼 바꿨다. 기술 유도. 아주 선명한 기술 유도로 바꾸었지만, 사실 세계 대회 성적은 크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피지컬과 기술의 융합을 제대로 이룬 선수가 많지 않아서였다.
지영과 붙는 선수가 그랬다.
왼쪽 허리 기술이 주력이다. 오른쪽은 상대적으로 어설프고. 그런데 피지컬이 허리 기술이 어울리는 선수가 아니었다. 신장이 170이 겨우 됐기 때문이었다. 업어치기와 다르게 허리 기술은 다리로 차올리는 기술이다. 그렇기에 하체, 코어, 이런 당연한 것 말고도 하체의 길이 또한 제법 중요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방에 차올려서 돌리지 못하는 경우 상대의 오금에 걸어 튕겨 올려야 하는데, 다리가 짧으면 애석하게도 오금에 제대로 걸리지가 않는다. 그래서 높은 확률로 업어치기와 허리 기술 선수가 나뉘는 기준이, 바로 신장이다.
카자흐스탄 선수는 투지는 넘쳤다.
하지만 이렇다 할 뚜렷한 장점도 없었다. 거기다가 왼쪽 허리 기술이 전부다.
‘아시아권 대회에서는 먹힐지 몰라도, 해외로 나가는 순간 힘들지.’
유럽 선수들의 피지컬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저 정도는 그냥 피지컬 자체로 압살한다. 그리고 지영은 그런 유럽 선수들을 운영으로 압살한 선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필승 전략은? 유럽 선수처럼 하면 된다. 피지컬로 혼을 빼놓는 운영. 아직까지 이걸 파훼한 선수는 신지 밖에 없는, 그 운영으로 지영은 카자흐스탄 선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맛테!
그런 마음으로 경기를 풀어가기를 1분.
역시 상대에게 지도가 들어갔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걸 그도 느꼈는지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땀에 젖은 머리칼을 마구 털었다.
‘그런데 그런다고 경기가 갑자기 풀리는 건 아니지.’
하지메!
다시 시작.
지영의 장점 중 하나는, 한 번 승기를 잡았을 때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도 하나를 더 받게 하면 경기의 70% 이상은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선수들도 이걸 정말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상대가 지도 하나를 더 받으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공격적 포지션을 잡는다. 그리고 빈틈은 보통 여기서 나온다.
지영은 그런 욕구를 꾹 누르는 데 도가 텄다.
그래서 절대로 무리하지 않고, 차분하게 다시 상대를 압박했다. 오른쪽 자세로 서서 상대가 목깃을 잡도록 그냥 뒀다. 그다음 거의 동시에 상대의 어깨 깃을 잡아서 거리를 유지했다. 사실 이것도 카자흐스탄 선수는 실수하는 거다. 리치는 지영이 훨씬 길었다. 그런 상태에서 잡기 싸움은 지영에게 무조건 유리했다. 특히 방어 쪽은 잡기보다 더 유리했다. 양 깃을 잡지 못한 채 거는 기술은 그냥 타이밍에 맞춰 툭 밀기만 해도 깨진다. 몸이 뒤로 밀리기까지 하면 거긴 아예 카운터 지점이다.
그렇다고 그냥 잡고만 있는 거?
그것도 지영에게 좋다.
지도 하나씩 받으면 상대는 둘, 지영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영은 이 부분까지 계산에 넣고 그냥 잡고만 있었다.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선 채라서, 언제고 기술에 반응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렇게 10초가 지나자, 맛테! 심판이 그쳐를 선언했다.
이번 심판은 좀 공격적인 판정을 내리는 성향인지, 곧장 둘에게 같이 지도가 들어갔다. 카자흐스탄 코치가 손을 올리며 이게 왜 지도냐고 항의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렇게 판정내리는 심판이 세계에 널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주였다.
덕분에 1회전 때와 같이, 지영에게 필승 포지션이 갖춰졌다.
하지메!
다시 시작.
움직임이 확실히 달라졌다.
자세를 낮추고, 지영의 카운터를 그래도 의식한 채로 잡기를 걸어왔다. 그래도 이건 그나마 괜찮았다.
유도는 본능적인 경기지만.
‘본능만으로는 절대 정상에 오를 수 없지.’
모든 스포츠가 그렇다.
스포츠는 복합장르에 속한다. 훈련은 정신력과 체력이, 이미지 트레이닝은 상상력이 필요하고, 실전은 가진 실력을 그대로 낼 수 있는 멘탈이 있어야 하고, 그 멘탈 대로 실력을 낼 수 있게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다. 경기 중엔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면서도, 본능의 감각 또한 필요하다.
육체와 정신의 합일.
이 복잡한 것을 최대치로 융합시키는 선수가 결국엔 정상의 자리로 가는 거고. 그걸 못 하면, 이런 말은 그렇다만…… 그저 그런 선수로 은퇴하는 거다.
“후읍!”
숨을 들이마시며, 압박을 가해왔다.
지영은 그걸 가볍게 스텝을 밟아 거리를 벌렸고, 손을 쭉 뻗어 아직 회수 못 한 소매 깃을 잡았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크게 뿌리치려는 걸 따라 들어가 모두걸기를 쓸었다.
퍽!
발바닥에 제대로 걸렸다.
쿵!
그런데 걸려도 너무 제대로 걸렸다. 조금만 덜 쓸렸어도 등으로 그냥 쿵! 하고 떨어졌을 건데 너무 쓸어서 공중에서 중심이 뒤틀렸고, 그게 카자흐스탄의 사마트 아디예프에게는 오히려 천운이었다.
와자리!
하지만 점수가 안 나오는 건 아니었다.
절반을 빼앗긴 사마트 아디예프는 몸을 뒤틀어 얼른 일어났다. 절반을 뺏겼으니 1초가 이제 아쉬운 상황이 된 거다.
하지만, 맛테!
심판은 그쳐를 선언했다.
그쳐를 외친 심판은 두 선수에게 도복을 고치라는 시그널을 주고, 두 선수가 단정하게 도복을 고치고 나서야 다시 하지메를 외쳤다. 시합이 재개됐다. 얼굴에는 이제 간절함이 떠올라 있었다. 복잡하고, 답답한 감정이 이제 2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녹아서 사라진 것이다.
이건 그를 탓할 게 아니었다.
주변에서 탄식이 가득했지만, 밖에서 카자흐스탄 코치가 진정하라고! 진정해, 사마트! 아직 시간 넉넉해! 룰을 어겨가며 외치고 있지만 이건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다.
보통 저렇다.
투지로 시작해서, 답답함으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다급해지다가, 막판엔 간절해지는. 그런 변화를 지영은 대회마다 보아왔다. 처음에는 그런 변화를 보면 조금 불편했다. 지영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그랬다.
이유는 간단했다.
누구보다 간절했던 사람이, 바로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영은 그래서 깨닫고 있었다. 저런 눈빛을 한다고 해서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오히려 더욱 진심을 담아 상대해 주는 것이 상대를 위한 것이라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그래서 지영의 눈빛은 더없이 차분했다.
아니, 차분함을 넘어 차가웠다. 서늘한 한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의 눈빛이었다.
툭.
밀고 오는 상대를 발목 받치기로 돌리고, 연달아서 모두 걸기를 쓸어 중심을 흩었다. 자세가 낮아서 이번엔 넘어가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뿌리치고, 다시 뻗어오는 소매를 잡으며 맞틀어잡기 포지션으로 넘어갔다.
본래는 똑같은 왼쪽 자세인데, 이번 경기에서 처음으로 맞잡아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전부 생각이 있었다. 지영은 상대의 목깃을 잡고, 소매 깃을 툭 쳐서 딱 받쳤다. 서로 턱으로 팔을 찍어누를 수 있을 거리까지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물씬 나는 잡기였다.
오늘 처음 맞잡았으니,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걸 직감한 사마트 아디예프는 몸을 격렬하게 쓰면서 기술 걸 틈을 만들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몸 쓰기만 해도, 가만히 있던 상대에게 지도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엔 거의 주지 않는다. 모션은 그저 모션일 뿐이고, 뒤로 밀리거나 잡기를 뜯어내거나, 아니면 유효 기술을 두 번 이상 허용하거나, 그 정도가 아니면 지도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이건 사실상 쓸데없는 일이다.
그래서 지영은 긴장만 한 채로,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술이 진짜 들어올 때.
툭, 툭!
목과 소매 깃을 밀어쳐서 끊어 기술을 깨버렸다. 맞잡은 상태에서 허리 기술은 정말 나오기 힘들다. 그게 아무리 주력 기술이라고 해도, 맞잡은 상태에서 허벅다리를 차는 건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거기다가 상대는 지영이었다.
“큭!”
한 번의 끊어 밀어친 게 회전을 막았고, 이어서 허리가 비틀린 상태라 중심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영은 그 순간을 놓칠 인간이 아니었다. 툭. 그냥 무너지는 하체에 발을 툭 대고, 그대로 밀었다.
쿵!
와자리!
합쳐서.
잇폰!
심판이 연달아 외치며 경기가 끝났음을 선언했다.
지영은 일어나서 도복을 고쳤고, 사마트 아디예프는 매트에 누운 채 얼굴을 도복으로 가렸다. 잠시 뒤 어깨가 잘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그래서 심판도 잠시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줬다.
패자의 눈물은 언제나 슬퍼서.
경기장이 숙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