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31화
531화. 아시안 게임(4)
은퇴 확정.
이성진의 금메달은 당연히 화제가 됐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불안했던 선수로 이성진이 꼽힌 건 당연했다. 혼전 임신으로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그 결혼 때문에 운동에 많은 시간을 쏟지 못했다. 그래서 이성진은 이번에 힘들 수도 있단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전 경기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래서 예체능은 재능이라니;;
-와 업어치기 각도 진짜 예술이다.
-기술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넘기는 순간까지, 동작이 끊기는 게 하나도 없음;; 그냥 끝까지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연결됨; 진짜 업어치기 하나는 장인이다. 와…….
-이성진 욕하던 것들 다 어디감? ㅋㅋㅋ
-빤쓰런 해야지; 인기 좀 얻었다고 어린 새끼가 졸라 문란하게 사는 새끼라고 쌍욕 박았는데 ㅋㅋ
-어린은 개뿔; 이성진이 뭔 중딩이나 고딩도 아니고 어엿한 성인인데. 그리고 갸가 뭔 양다리를 걸쳤음? 자기 여자한테 엄청 헌신하더만 보니까.
-성진이랑 소영이 동창인데, 성진이가 소영이 고딩때부터 지극정성으로 챙겼어요 ㅎㅎ 소영이가 성진이 워낙 잘 생기고, 잘 나가서 부담스러워해서 마음 안 받아줬는데도 대학교 가서까지 꾸준히 밀어붙여서 결국 연인으로 발전!
-상남자면서 순애남이네;;
-솔직히 이성진 정도면 어디서 안 꿀리지 않음? 얼굴 잘생겼지. 유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우정혁 사단이고.
-안 꿀리는 정도가 아니라 방송계에선 현재 제일 잘 나가죠 ㅋㅋ
-그런데도 한 여자에게 올인……. 멋있긴 멋있네 ㅋㅋ
-우리 성진이 욕한 인간들 다 캡처해 놓음 ㅎㅎ 누나가 인생 실전이 뭔지 보여줄게 ^^
여론은 깨끗이 뒤집혔다.
이성진은 왜 자기가 세계 최고의 선수인지를 증명했고, 황금세대가 던진 도발을 유지했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컨디션 괜찮지?”
결승전에 상대 선수의 손에 맞아 부은 눈두덩이가 가라앉지 않은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컨디션은 최고조다. 지랄 맞은 600그램을 빼고도, 지영은 다시 컨디션을 끌어 올렸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끝끝내 정상 컨디션을 만들었다.
거기에 어제 계체가 끝나고 오랜만에 제대로 음식을 먹어서인지, 몸의 기력이 확실히 돌아왔다.
지영은 이보다 더 안 좋은 컨디션으로도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컨디션이 좋으니, 자신감이 차올랐다. 도복 상의만 입은 이성진과 몸을 풀었다. 확실히 수분과 에너지가 차니, 열이 빨리 났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이내 주르륵 흘렀다. 그렇게 땀이 나는 속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호흡도 가빠왔다. 지긋지긋한, 호흡 터뜨리는 과정이라 지영은 꾹 참고 계속 몸을 풀었다.
30분에 걸쳐 유산소까지 곁들여 몸을 풀고 나자 호흡이 터졌다.
후.
몸을 다 푼 지영은 스트레칭으로 뭉친 근육을 풀어줬다. 땀복을 벗고 보온성이 좋은 옷으로 갈아입은 뒤, 이미지 트레이닝은 시작했다.
‘첫판은 박철성.’
북한 선수로, 국제 대회에 몇 번 참가한 전적이 있다. 성적은 3위가 최고고, 북한 선수답게 힘 유도를 구사한다. 경기 영상을 보니 기술은 정말 투박했다. 그 외에는 특별한 특징은 없었다.
시간이 됐다.
지영은 A시드 탑이라, 첫 게임이었다.
똑똑.
“강지영 선수 준비해 주세요!”
스태프의 외침에 지영은 일어나 티를 벗고 도복으로 갈아입었다. 대기실을 나오자 복도에 있던 스태프들의 시선이 지영에게 와다다 달려들었다.
“준비됐지?”
김재정 코치의 말에 지영은 후! 짧게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만전이다. 복도를 지나 진입로에 서자, 인공기 마크를 가슴에 박은 북한의 박철성이 옆에 와서 섰다. 짧은 스포츠 컷과 스물다섯으로 알고 있는데 서른에 가깝게 보이는 외모가 눈에 확 들어갔다.
“잘해봅시다.”
그런데 의외로 먼저 손을 내밀며 아는 척을 했다.
북한 선수들은 가능한 한국 선수와 말을 섞지 않으려고 한다. TV에 잡히면, 나라로 돌아가서 뭔 짓을 당할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코치진을 포함해 전부 한국 사람들과 가능한 말을 섞지 않는다. 그래서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영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내민 손을 잡았다.
“잘 부탁합니다.”
손을 맞잡고, 한 번 흔들었다. 인사는 그게 끝이었다. 건너편 입구에 여자 선수가 나와 나란히 서자,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지영은 파란 도복이었고, 박철성이 백색 도복이었다. 심판은 독일 국적이다. 편파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후우…….”
매트에 오른 지영은 발바닥에 찬 땀을 슥슥 닦았다. 마주 보고 선 박철성은 확실히 표정이 변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지영의 얼굴에서도 미소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대신 다른 미소가 떠올랐다. 희미한 희열이 섞인 미소였고, 경기 전의 긴장감이 주는 떨림에 저절로 피어난 미소였다. 심판이 입장해 자리로 가서 서, 선수를 한 번씩 바라본 다음 입장하라는 수신호를 냈다.
꾸벅, 인사하고, 입장. 꾸벅, 다시 인사하고 한 걸음 앞으로.
경기를 시작하기 전 식전 순서다.
하지메!
선수가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심판이 커다랗게 외친 소리에, 박철영이 아아악! 기합을 내지르면서 덤벼들었다. 소란스럽던 시합장이 박철영이 내지른 기합으로 순간 정적이 생겼을 정도로 커다란 기합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놀라지 않았다.
이렇게 기습적으로 기합을 내질러 순간적으로 타이밍을 뺏는 선수를 지영은 제법 만나봤었다. 거짓말 같겠지만, 처음부터 숨을 크게 마시는 걸 보고 얼추 눈치도 챘다. 그래서 빠르게 덤벼드는 걸 슬쩍 옆으로 돌며, 발목받치기를 툭 댔다.
홰액!
소매를 잡아 빙글 돌리면서 댄 기술이어서, 박철영의 중심이 그대로 무너졌다. 쿵! 시작과 동시에 걸린 기술, 하지만 막판에 원심력이 너무 실려 소매를 놓치는 바람에 기술이 끝까지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조금만 당겼으면 절반은 나왔을 텐데, 좀 아쉬웠다.
맛테!
하지메!
다시 시작된 경기.
박철영은 당연히 신중하게 자세를 낮췄다. 일단 첫 번째 전략이 깨졌기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신중하게 접근해 잡기를 시작한 박철영을 상대해 보니, 확실히 힘은 좋았다. 신장은 170 초중반. 전형적인 탱크 타입이다.
그런데 지영은 이런 타입의 선수를 잘 안다.
구혁.
전형적인 탱크 타입의 피지컬을 가졌으면서도, 기술은 박철영과는 반대로 아주 뛰어난 선수다. 그런 구혁과의 일전에서도 지영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구혁을 압도했던 지영이었다.
박철영은 그런 구혁보다 두세 수 아래였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다. 영상으로만 내린 판단이니까. 하지만 직접 잡아보니 느낌이 확실히 왔다.
‘일단 지도부터.’
지영은 구혁보다 상대가 약하다고 방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특기인 잡기로 상대를 밀어붙였다. 지영의 잡기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잡기를 선호하지 않을 뿐이지, 적극적으로 시작하는 순간 상대를 압도하는 게 지영이었다. 그런 지영의 잡기에 박철영은 확실히 밀리기 시작했다.
맛테!
심판이 그쳐를 선언했다.
하지만 바로 지도를 주지는 않았다. 이건 주의성 그쳐였다. 한 번 더 밀리거나 소강상태로 이어지면 지도를 주겠다는.
하지메!
지영은 다시 움직였다.
이제는 잡기만으로는 사실 부족하다. 잡기에서 한쪽이 밀려도, 심판은 가끔 두 선수에게 전부 지도를 줄 때도 있다. 이때 지도를 받는 걸 피하고 상대에게만 지도를 먹이려면? 간단했다. 유효 기술을 연결하면 된다.
사실 이걸 모르는 선수는 없다.
그런데 시합 때 머리로 생각한 것을 그대로 풀어내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언제나 현실은 이상과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걸 그대로, 고스란히 재현해 내는 선수가 존재하기도 한다. 지영이 그렇고, 자기 시합을 빛나는 눈빛으로 관찰 중인 미야모토 신지가 그랬다.
머릿속으로 그려낸 그림을, 현실에서도 풀어내는 것.
그게 곧 실력이다.
지영은 그런 실력이 매우 출중한 선수였다. 가슴 깃을 잡자마자 이 악물고 뜯어내는 박철영. 악력이 좋아 그냥 뜯기지 않자, 뒤로 물러나며 두 손으로 잡아 쭉 내리며 뜯으려는 그 찰나를 노리고 지영은 쭉 들어가 모두걸기를 쓸었다.
퍼억.
제대로 쓸렸다. 하지만 기울이기가 되지 않아, 이번에도 박철영은 휘청이긴 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철퍽 엎어졌다. 지영은 바로 위로 올라 굳히기 포지션을 잡아 놓고 꾹 눌러놓기만 했다. 지금 그쳐를 한 번 해야, 지도가 들어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박철영이 다시 일어나서 그쳐 없이 공세를 펼칠 상황 자체를 없애는 게 최고의 선택지였다.
맛테!
심판은 그쳐를 선언하고, 역시 예상대로 박철영에게 지도를 줬다. 두 번의 유효 기술, 그리고 잡기 싸움에서 수세에 몰렸으니 지도를 받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박철영이 지도를 하나 받은 순간부터, 지영의 본격적인 운영이 시작됐다.
선수의 피를 말리는.
어떤 선수가 개미지옥이라고까지 했던, 그 운영이었다.
* * *
지영의 경기는 당연히 중계 중이었다.
그것도 전 세계로.
한 유도 커뮤니티에서는 지영의 경기를 중계로 보며,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단해, 움직임을 보면 정말 군더더기가 없어.
-움직임도 대단하지만, 역시 저 운영이 더 뛰어나.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을 현실에서 풀어내는 것도 그렇고. 진짜 배우고 싶어.
-쉽게 배울 수 없을걸. 보면 알겠지만, 저건 강지영이니까 가능한 거라고. 저런 게 쉽게 가능했으면, 애초에 저 선수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없었겠지.
-그것도 그렇군.
-저 친구의 가장 큰 장점은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는 거지. 봐. 상대가 지도 하나를 받으니 스타일을 다시 바꿨어. 이제부터는 안전하게 가겠다는 거지.
-음, 이제 다시 지도 하나씩 받겠군.
심판이 맛테를 외치고, 지도를 줬다.
이번엔 두 선수에게 같이 지도가 들어갔다.
-이제 저 노스 코리아 선수는 지도가 두 개가 됐어. 뒤가 없으니 공격적으로 몰아칠 거야.
-하지만 그게 강이 바라는 거지.
-강의 경기 데이터를 보면, 그의 데뷔 대회를 제외하곤 점수를 먼저 내준 적이 한 번도 없어. 그 말은 곧, 이제부터가 진짜 강의 시간이라는 거지.
-그건 조금 달라. 그 대회에서 강은 먼저 절반을 따긴 했어. 신지가 바로 절반을 만회한 거고. 하지만 결국엔 강이 승리했지.
-데이터를 봤을 때 강은 지도 하나를 먼저 선점하거나, 절반을 먼저 따낸 경기에서 패배가 전무해. 추격조차 허용하지 않지. 아마 이 경기도 그렇게 끝날 것 같군.
유도 커뮤니티다 보니, 선출이거나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강지영의 유도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방어 유도?
이런 유도는 강지영이 등장하기 전까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스타일이 있다는 거야 알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걸 쓰는 선수를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2000년에 들어서며, 떨어지는 유도의 인기를 다시 살리기 위해 경기 자체를 굉장히 공격적으로 풀어가게끔 룰 개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장됐다.
예전엔 지도 하나를 줄 때도 시간을 기회를 많이 줬기에, 방어 유도가 힘을 많이 썼다. 하지만 10년도 넘어서부터는 거의 사라졌다. 그런 스타일을 부활시킨 선수가 바로 저,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연예인인 강지영이다.
그렇기에 미스터리였다.
-봐. 이제 저렇게 달려든다고.
-강이 저걸 노리는 것도 모르고 말이지.
-끝나겠군.
-끝났어.
-역시, 저렇게 끝나는군.
-저게 강의 필승 전략 중 하나야.
채팅이 주르륵 올라왔다.
덤벼드는 노스 코리아 선수를 강지영이 빗당겨치기로 시원하게 돌려버렸기 때문이다.
-저 패턴을 깨지 못하면, 아마 강은 무패 그랜드 슬램으로 은퇴하겠지.
-맞아. 저 필승 패턴을 깨야만 해. 유도인으로서, 무패 그랜드 슬램 은퇴는 솔직히 자존심이 상해. 그래서 솔직히 난 일본의 신지가 강을 꺾어주길 바라. 그래야 내게도 기회가 한 번은 더 올 테니까.
-자네 현역이야?
-응. 그와 붙어본 적도 있어.
-오! 어떻게 됐……냐라고 물어볼 이유가 없겠군.
-후후. 중간에 멈춰줘서 고마워, 친구.
-다음에 자네에게 기회가 간다면, 꼭 승리하기를 바랄게.
-나도, 그걸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
현역은 기대하고 있었다.
강지영이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해, 은퇴가 늦어지기를.
자존심 빼면 시체라 불리는 게 운동선수들이고, 그들은 역사의 희생양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강지영이 아닌, 강지영의 상대를 열렬히 응원했다.
-어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금은 맞붙어서 밀어붙여야지! 또 강이 원하는 대로 경기가 흘러가잖아!
-뻑! 왜 거기서 물러나는 거야! 붙어! 붙어야지만 자네에게 승산이 있는 거라고!
-지도받는 것만큼은 피하라고 이 멍청한 친구야! 1회전 안 봤어? 그가 흐름을 타게 두지 마! 오! 젠장!
그래서 피드백까지 주며 강지영의 상대를 열렬히 응원했지만, 현실은 그들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