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30화
530화. 아시안 게임(3)
광역 도발은 조금의 과장도 없이 그대로 언론을 탔다.
-전설의 마침표는 아시안 게임? 황금세대! 은퇴를 논하다!
-무패 그랜드 슬램? 한국 유도사의 전무후무한 기록이나, 굳이 은퇴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강한결은 사실 천부적 어그로꾼?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들 불쾌감 드러내!
-이성진, 황석도 은퇴 의사 SNS에 올리며 강한결과 강지영의 의견 지지!
-무패 그랜드 슬램을 보고 싶지만, 이들의 은퇴는 보고 싶지 않다. 최대한 유도계에 남아 일본을 참교육해 줬으면…….
-이 악문 상대 선수들! 허무맹랑한 꿈으로 만들겠다며 의지 활활!
기사가 나간 즉시, SNS를 하는 유도 선수들은 황금세대를 저격하고 나섰다. 자존심 문제였다. 무패 전설의 신화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직접적으로 무패를 타이틀로 걸어 도발하는 경우는 없었다. 당시의 유도는 그래도 예시예종이 적당히 적용되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선수 대부분이 SNS를 하고, 그 공간을 통해 자기의 감정을 솔직히 내비친다. 특히 상대 선수를 자극하는 심리전을 쓰기도 한다. 그런 SNS는 양날의 검이다. 호기롭게 상대를 저격했다가 지면, 그건 평생 흑역사 중 하나로 남는다. 지워지지도 않는다. 반드시 박제되어, 영원히 그 사람을 따라다닌다.
그래서 요즘엔 시합 전엔 좀 자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한결은 그 분위기는 깨끗이 무시하고, 전체를 향한 광역 도발을 날렸다. 그에 아시안 게임 유도 종목에 참가하는 선수 절반이, 이 광역 도발에 걸려들었다.
그런 상태에서 개회식이 시작되었고, 바로 다음 날부터 남자 여자 경량급 경기가 시작됐다.
양효걸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일본 선수에게 진 건 아니지만, 결승에서 카자흐스탄 선수의 모두걸기 카운터에 제대로 걸려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다. 하지만 이제 고3이라는 걸 생각하면, 양효걸의 성적은 대단한 거였다. 여자는 동메달을 획득하고, 다음날이 밝았다.
분위기는…… 흉흉했다. 확실히 이전 날과는 달랐다.
이성진 또한 SNS를 통해, 그랜드 슬램 후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 원래 이성진은 은퇴를 생각하지 않았다. 한 체급 올려서, 유도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이 결혼과 동시에 바뀌었다.
운동선수는, 특히 개인 종목 국가대표는 선수촌에 있는 시간이 많다.
황금세대야 굵직한 대회만 뛰니까 다른 선수들보다 좀 덜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것조차 이제는 힘들었다. 당장 정소영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고, 아이를 낳으면 그때부터 육아가 시작된다.
그걸 정소영 혼자?
그건 남편으로서 직무 유기였다. 그래서 이성진은 마음을 바꿔, 그랜드 슬램 후 은퇴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런 이성진을 막기 위한 분위기가 너무 흉흉했다. 일단 이성진만 잡아도 황금세대의 도발은 깨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영은 걱정하지 않았다.
왜? 이성진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현재 세계에서 적수가 없는. 그나마 아베 히후미가 이성진을 잡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였는데 그는 그 사고 이후로 강제로 은퇴 당했다. 모든 선수가 아베 히후미가 나오는 대회를 보이콧 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는 협회 차원에서도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은퇴 당했다. 그가 은퇴한 이후, 현재 일본의 누구도 이성진의 근처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번에 나오는 선수, 후지사카 타이코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성진과의 상대 전적은 아직 없다. 하지만 경기 영상을 살펴보니 이성진이 참 상대하기 쉬운 스타일이었다.
오른쪽 업어치기, 빗당겨치기와 발기술이 특기인데, 기술이 날카롭지 않았다. 사실상 기술은 반칙을 받지 않기 위해 넣는 정도고, 진짜는 시합 운영으로 승부 보는 타입이었다. 신장은 그렇게 큰 편은 아닌데, 또 중심은 높다. 뽑는 기술에 확실히 약한 타입이다.
그런 후지사카 타이코는 첫판부터 고전했다.
첫판 상대는 중국 선수였다. 중국도 이를 갈고 나왔다. 황금세대의 도발도 도발이지만, 체중계에 친 장난질에 이 나라 말로 야마가 돈 건 한국팀뿐이 아닌 거다. 그래서 이를 악문 중국 선수의 유도에 후지사카 타이코는 겨우, 정말 겨우 이겼다. 솔직히 심판 빽이 의심되는 판정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경기였다.
반대로 이성진은 대만 선수를 1분 만에 업어치기 한판으로 돌려버리며, 산뜻하게 스타트했다.
“걱정 없겠는데?”
임효중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수작질한 쪽은 컨디션이 엉망인 것 같고, 그 외의 선수들이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그러게. 어제 일본 선수도 컨디션 엉망이더만.”
“욕을 하도 처먹어서 그런가?”
“그런 것도 있겠지.”
확실히 일본 선수들은 몸이 무거워 보였다.
일본의 선수들은 체중계 문제가 터지며 SNS 테러를 당했다. 중국, 한국, 대만, 홍콩, 다른 동남아 국가 국민이 우르르 몰려가 영혼까지 털었다. 다들 SNS를 닫았지만, 그렇다고 그전에 본 게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런 SNS 테러 또한 선수의 멘탈을 터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괜히 SNS를 통해 심리전을 거는 게 아니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컨디션은 딱 봐도 엉망이었다. 첫판에 몸이 풀릴 수도 있겠지만, 얼굴에는 이미 괴로움이 보였다.
자업자득이고,
자승자박이다.
“그런데 효중아, 너도 은퇴하게? 너는 계속한다며.”
베트남과 홍콩 선수의 경기에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지영의 말에, 임효중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계속하려고 했지. 그런데 성진이도 그만두면 나 혼자 해야 하는데, 그건 솔직히 재미없을 것 같아서.”
“아…….”
임효중은 오늘 아침 SNS에 글을 남겼다.
자기도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사실 임효중과 이성진은 계속 운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성진이 그만두면, 좀 전에 한 말처럼 임효중 혼자만 유도를 하는 거다. 그런데 그의 말처럼 그건 확실히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황금세대가 다른 길로 갈 수 있는데도 유도에 집중할 수 있던 건, 다 같이 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왔고, 그래서 운동도 함께하는 게 아주 당연했다. 그런데 자기를 제외하고 나머지가 전부 그만둔다? 지영 같아도 하기 싫을 것 같았다.
“전원 은퇴라……. 유도 팬들은 정말 섭섭하겠는데?”
“근데 한결이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말고도 기회를 줘야지. 내 체급만 봐도 은퇴하거나 포기한 선후배들이 많더라고.”
“음, 그건 그렇지.”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지영의 체급만 해도, 이미 꽤 많은 선수가 은퇴하거나 포기했다. 선발전을 뛰어봐도 알 수 있는 게, 투지를 불사르는 선수는 정상급에 있는 선수 몇이었다. 나머지는 그냥 의무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그 이유? 별거 없다.
자기 체급에 어떻게 해도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이 존재하고, 그 벽을 만든 이는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은 폭군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제대로 잡힐 리가 없었다.
“다른 선수들이 들으면 자존심 진짜 상할 말이긴 한데, 그래도 그게 맞는 것 같더라.”
“음…….”
임효중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지영 본인도 일단 장범과 구혁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 많았다. 둘의 실력은 분명 미야모토 신지의 아래다. 이미 스타일 자체가 완성된 구혁은 신지가 방심하거나, 진짜 제대로 타이밍이 맞아 깜짝 한판을 따내지 않는 이상 신지를 상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장범은 제대로만 성장하면, 충분히 구혁의 대항마가 될 것이다. 그래서 지영도 선수촌에서 그렇게 장범을 챙겼다.
자기 이후에, 73체급을 부탁하기 위해.
그런데 이런 발언 자체가 선수들의 자존심을 꺾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마, 아시안 게임에 참가한 선수들 말고, 한국에 있는 유도 선수들도 상당수가 자존심이 상했을 거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지영은 부디, 그렇게 상한 자존심을 좋은 방향으로 치료했으면 했다.
“성진이 슬슬 나오겠다.”
한 바퀴가 순식간에 돌았다.
먼저 나온 선수는 일본의 후지사카 타이코였다.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 선수와의 2회전에, 후지사카 타이코는 이번에도 겨우 신승을 거뒀다. 심판 빽은 아닌, 10초 남겨두고 방심한 상대를 안다리로 절반을 따내면서 겨우 이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도 2개를 받은 게 후지사카 타이코였고, 우즈베키스탄 선수는 지도가 1개였다. 연장으로 갔으면, 높은 확률로 우즈베키스탄 선수가 이겼을 거다.
경기 내용 자체도 우즈벡 선수가 훨씬 좋기도 했다.
그러나 막판에 경기를 뒤집었다. 숨을 헐떡이는 후지사카 타이코를 보며, 지영은 이성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다음 경기에 나온 이성진은 이번에도 1분 만에 시원하게 한판을 따냈다.
이성진과 후지사카 타이코는 준결승에 맞붙는다.
즉, 다음 게임이다.
아시안 게임은 1회전부터 결승까지 4경기면 끝난다. 이성진부터 황석까지, 전부 결승전까지 4경기다. 그래서 이성진과 후지사카 타이코의 경기는 다음 판이었다. 패자전이 지나고, 이성진과 후지사카 타이코의 준결승A 경기가 시작됐다.
“이성진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지면 죽는다!”
몸을 풀고 온 강한결, 황석과 함께 큰 목소리로 이성진을 응원했다. 이번 경기가 사실상 결승전이었다. 준결승 B경기에 대기 중인 몽골 선수도 잘하지만, 실력과 성적 전부 이성진과 비교할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메!
경기가 시작됐다.
악! 핫!
상반되는 투지가 담긴 기합 뒤에 두 선수가 맞붙었다. 이성진은 자세를 왼쪽으로 바꿔 섰다. 원래 이성진의 자세는 오른쪽이다. 보통은 오른쪽으로 선다. 하지만 업어치기 선수는 필수적으로 양쪽 다 할 줄 알아야 했다. 한쪽만 팔 줄 아는 업어치기 선수는 그냥 반쪽짜리 선수다. 왜? 그 하나만 막으면 기술의 70% 이상이 봉쇄당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양쪽 다 잘 파면? 막아야 하는 방향을 하나 더 늘리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틈을 만들 기회는 극적으로 올라간다.
이성진의 업어치기가 무서운 건, 이 양쪽 업어치기가 정말 어느 한쪽이 부족하지 않은 레벨이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왼쪽, 둘 다 미친 레벨이다.
황금세대 중에서 방어 하나만큼은 최고라 평가되는,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방어를 잘한다는 지영도 이성진의 업어치기에 제대로 파이면, 그냥 날아간다. 근육을 수축해 기술을 방어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뜨는 거다. 업어치기에 걸려 발꿈치가 뜨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 거라고 보면 된다.
홰액!
퍼엉!
저렇게.
와, 와자리!
심판이 절반을 선언했다.
기술은 제대로 걸렸다. 소매 끝을 먼저 잡고 놓치지 않은 이성진이 뿌리치려는 힘을 그대로 따라가 상쇄한 다음, 다른 손으로 가슴 깃을 잡고 외깃 업어치기로 연결했다. 사아악- 마치 면도날이 종이를 베는 것처럼 소름이 끼치는 곡선을 그리며 작렬했다. 하지만 막판에 소매 깃을 놓치면서, 거의 한 끗 차이로 기술이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 그래도 등 전반이 닿으면서, 심판은 절반을 선언했다.
편파 판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성진도 그대로 수긍하고, 굳히기를 이어갔다.
물론 제대로 굳히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일본의 굳히기는 상위 중에서도 최상위 클래스다. 잘못 잡으면 역으로 잡혀서 끝날 수도 있고, 그래서 그냥 상위 포지션만 잡고 그대로 있었다. 이렇게 잡고만 있으면 아래 깔린 선수는 함부로 몸을 뒤집을 수 없다. 적어도 상대의 깃이라도 잡아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못 잡은 상태다. 이때 그냥 뒤집으면 역으로 눌릴 수도 있고, 그걸 후지사카 타이코도 잘 알고 있었다.
맛테!
심판의 그쳐 사인이 나자 이성진은 일어나서 도복을 고쳤다. 그리고 다시 하지메! 시작과 동시에 절반을 뺏긴 후지사카 타이코는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었다.
홰액!
소매 끝을 툭 채서, 양손으로 잡아 판 업어치기에 후지사카 타이코의 몸이 하늘로 붕 떴다.
쿵!
잇폰!
이변 없이, 이성진은 결승에 진출했고, 몽골 선수를 3분 만에 업어치기로 던지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패 로열 로더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