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29화
529화. 아시안 게임(2)
사실, 유도라는 종목은 대회 전에 공식 기자회견을 가지는 종목은 아니었다. 보통 기자회견을 가지는 종목은 구기 종목이고, 야구나 축구, 농구와 배구, 그리고 골프 등이 해당된다. 그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종목이 인기 종목이기 때문이었다. 인기 종목을 빼면, 효자 종목도 추가된다.
대표적인 게 양궁이다.
나갔다 하면 금메달을 쓸어오는 개인 종목도 기자회견을 가진다. 유도는 그런 역사가 거의 없었다. 경기 전 인터뷰, 경기 후 인터뷰 등이 끝이다. 그런데 유도 종목이 기자회견을 열었고, 미리 신청을 받았는데, 엄청나게 많은 기자가 몰려들었다. 오죽했으면 아시안 게임인데도 금발의 푸른 눈빛을 가진 기자들도 보였다.
이는, 유도의 위상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그리고 그 위상의 상승은 한 인물로부터 시작됐다.
뭐, 말할 것도 없이 강지영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런 지영이 공식 기자회견에 나왔다. 요즘 좀 풀어지긴 했지만, 언론과 척 졌던 강지영의 기자회견은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자들이 대거 신청했고, 각 나라 별로 한두 명의 기자만 승인이 떨어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일본은 아예 제외됐다. 이는 언론의 의무 어쩌구저쩌구 떠들었지만, 전기정 감독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렇게 마련된 자리.
전기정 감독은 일단, 일본의 체중계 장난질을 매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들은 부정하고 있지만, 글쎄요? 중국, 대만, 홍콩 팀까지 전부 체중계를 가지고 와서 재봤습니다. 그런데 이쪽은 전부 맞았습니다. 우리가 맞춰온 것과 똑같이요. 그런데 일본 체중계에 올라가면 무조건 500에서 600그램이 더 늘어납니다. 이게 우연이라고요? 설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일본의 기술을 못 믿는다고, 우리 체중계가 잘못된 거라고 오히려 역정을 내는데 저는 솔직히 웃겼습니다.”
후우.
말은 웃겼다고 했지만, 유도계의 레전드가 하는 말은 당연히 날이 바짝 서 있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전기정 감독은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유도는 감량의 스포츠입니다. 경기 때마다 계체하는 복싱보다는 덜할지 몰라도 단순 체중 자체는 거의 가장 많이 빼는 종목입니다. 그런 선수들에게 체중 100그램, 200그램은 그날의 컨디션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합니다. 그런데 무려 600그램입니다. 훈련 스케줄과 감량 스케줄 자체가 완전히 꼬여 버린 선수들이 받은 스트레스는 정말 대단합니다. 아시죠? 어제 대만의 저우쉰 선수가 감량 중에 쓰러진 사실을요. 그 선수는 본래 체중이 62가 넘는답니다. 감량을 통해 뛰는 체급은 그런데 52입니다. 무려 10㎏을 넘게 뺀 겁니다. 그런데 이 선수는 체질상 땀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이 10㎏도 정말 겨우겨우 뺀 건데, 600그램이 늘어났습니다. 그 결과가 탈진으로 인한 기절입니다. 이 선수의 시합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병원에서는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정말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고, 선수 본인은 그래도 뛰고 싶다고 했지만 이미 육체는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시합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
“…….”
진짜 있던 얘기다.
어제 일어난, 아주 따끈따끈한 슬픈 얘기다. 대만의 저우쉰은 나이가 많았다. 노장 중의 노장이라 할 수 있는 서른여섯이다. 그런데도 메이저 대회에 나가고 싶어, 한 체급 감량하고 나간 거다. 본래 체급은 57이었다. 한 체급 올리는 건 부담이 너무 가서, 아예 한 체급 빼서 나간 거다. 그럼 피지컬부터 전부 유리해지니까. 그렇게 이 악물고 감량해 대표에 선발되었다.
그리고 선발전 티켓도 겨우 따서, 이번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다. 그런데 고작 600그램이 그녀의 노력을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렸다. 고작이라고 할 게 아니다. 그만큼 예민한 거다. 일본도 그걸 아는 거고. 딱 그 정도로도 선수의 컨디션을 망쳐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이게 정상입니까? 스포츠 정신은 도대체 어디다 팔아버린 겁니까? 메달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아, 그래요. 중요하죠. 순위가 없는 대회도 아니고, 이벤트 대회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정도라는 게 있습니다. 일본은 그걸 무시했습니다. 양심을 져버렸습니다. 또한 이 사태를 해결하지 않고 묵인하는 세계유도 협회 또한 각성해야 합니다. 이런 일련의 ‘범죄’가, 인기를 얻어 가는 유도란 스포츠를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릴 겁니다.”
강도 높은 비판에 기자들은 따로 질문하지 않고, 타이핑하기 바빴다. 사실 이런 기자회견은 나라별로 거의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원래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었는데, 어제 저우쉰의 경기 포기에 선수들과 감독들이 제대로 열을 받아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강도 높은 비판을 하는 거다.
“그럼 혹시 시합을 포기하시는 겁니까?”
한 기자의 질문이다.
금발의 푸른 눈. 기자증을 보니 영국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다. 그 기자의 질문에 전기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이 대회를 위해 선수들은 피땀을 흘리는 정도를 넘어, 인생을 걸기도 했습니다. 그런 선수들에게 시합 포기하고 짐 싸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시합은 나갑니다, 나가지만.”
“나가지만?”
“한국 유도 대표팀은 제가 감독직을 맡는 한, 일본의 공식 사과 없이는 일본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를 보이콧할 겁니다.”
“…….”
이게 별거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왜? 아시아권 국가 대부분이 이 발언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올해와 내년에 일본에서 열리는 청소년 선수권 포함 대회가 6개다. 그중 가노컵을 제외하곤, 다 아시아권 대회다. 한국에서는 한 대회도 열리지 않는데, 일본에서 저렇게 많이 열리는 이유는 당연히 일본협회의 공작 때문이었다. 유도 대회는 선수 포함, 스태프까지 해서 꽤 많은 인원이 움직인다. 물론 그 인원으로 내수를 활성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활력은 넣을 수 있다.
일본의 관광 에너지는 이미 거의 바닥난 상태라서, 이렇게라도 대회를 열어 위상을 회복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유도 말고도, 타 종목에서도 상당히 많은 대회가 올해와 내년에 일본에서 열린다.
그리고 당연히 그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권 대회다.
어떻게든 다시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서, 대회를 많이 것도 활로로 여긴 것이다. 그 방법은 그리고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정말 악수였다. 자국에서 열린다는 이점을 이용해 이런 수작을 부리는 걸 이제는 사람들이 봐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이 일로, 일본에 대한 여론은 최악으로 떨어졌다.
한국에서는 가히 ‘신’ 취급받는 강지영이 참가한 종목에 이런 장난을 쳤으니, 국민들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전의 불매 운동이 다시 살아났고, 아시안 게임을 보려고 티켓을 끊었던 이들이 대거 환불하는 사태로 번졌다.
한국은 일본과 매우 가깝다. 부산에서 배 타고 출발해도 1시간 조금 넘으면 대마도 도착이다. 그만큼 가까운 게 일본과 한국이다. 그래서 당연히 한국 관광객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야 요즘은 거의 옛날 해금 정책 비슷한 느낌으로 가고 있기에 관광객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인의 대거 취소 사태에, 아시안 게임은 시작하기도 전에 망했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빈 자리를 다른 이들이 다시 메우겠지만, 그 속도가 매우 더뎠다.
이미 가기도 전에 실망한 것이다. 거기에 아시안 게임 뒤로 잡은 휴가 일정까지 전부 취소하는 중이니, 일본 유도협회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유도협회만의 결정입니까. 아니면 다른 종목도 같은 생각입니까?”
한 기자의 질문에 전기정 감독이 바로 대답했다.
“다른 종목에까지 부담을 안기고 싶진 않습니다. 이는 유도 종목 한정입니다.”
“그 선택이 새내기들의 기회를 막는 게 아닐까요?”
“맞습니다. 세계 청소년, 아시안 청소년 권 같은 대회는 유망주들에게 둘도 없는 기회입니다. 따라서 유도 협회에서는 제주 컵을 제외하고도, 유망주 대회를 신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직은 명성이 많이 부족한 대회가 되겠지만, 유망주들에게 충분한 경험과 기회를 선사할 겁니다.”
“그건 나쁘지 않네요. 그럼, 강한결 선수에게 질문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한 기자의 말에 강한결이 마이크를 당겨 입에 대고 네, 하고 대답했다.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현재 체중은 문제없습니까?”
소소한 걱정.
일본 체중계 기준으로 300그램까지 맞춰 놓은 강한결은, 확실히 그리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다. 몸에서 수분을 더 쫙 빼냈으니, 좋길 바라는 게 무리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회복세다.
“네, 체중은 문제없도록 다 빼놨습니다. 컨디션이 그들이 바라는 대로, 좀 안 좋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 시합 날은 뒤쪽이니, 그때까지 천천히 회복할 예정입니다. 아쉽게도 그때쯤이면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겠네요.”
“하하, 누가 아쉬운 겁니까?”
“누굴까요?”
강한결은 여유롭게 웃었다.
그에 기자들도 하하, 하고 웃었다.
“욕도 많이 먹고, 체중계도 만든다고 돈도 썼을 텐데, 좀 미안하네요.”
“뭘 그런 거로 미안할 것까지 있겠어요? 그럼 이번 대회도 자신이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할 거고, 그래도 경기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저도 사람인데 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일본 선수한테 질 것 같진 않아요.”
“지면 큰일 나죠.”
“네, 큰일 납니다. 그런데 그래도 전 일본 선수가 최선을 다해서, 죽을힘을 다해서 덤벼줬으면 좋겠습니다.”
“네?”
기자들이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한결은 그 시선을 받으며 지영을 힐끔 보더니 마이크에 입을 댔다.
“저는 이번 대회에 금메달을 따면, 은퇴합니다.”
“어…… 네? 네?”
“은퇴요. 그랜드 슬램이 목전입니다. 저는 그랜드 슬램을 이루면 은퇴 후 연희 스포츠 재단 일을 시작할 겁니다.”
“어…….”
기자들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게 보였다.
갑작스러운 은퇴 얘기를 꺼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한결의 나이 이제 고작 스물둘이다. 선수로서는 절정일 때다.
완성된 피지컬.
그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절정의 기량이 유지되는 게 바로 이때다. 그런데 은퇴? 그래서 다들 놀란 거다. 유도계의 신성이기도 하지만, 강한결은 그 자체로 유명한 연예인이었다. 그런 그가 은퇴하고 연기도 아니고, 스포츠 재단 일을 하겠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재단 일이요?”
“네, 제 꿈입니다.”
“…….”
“그래서 기회를 주는 겁니다. 일본 선수에게. 저랑 첫판인데, 제대로 준비하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무패 그랜드 슬램, 저지하고 싶으면.”
“와…….”
“그리고 이렇게까지 했는데, 광탈하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와우…….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기자들이 미친 듯이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강한결의 광역 도발이 터졌다. 강한결은 가끔, 이렇게 광역 도발을 시전한다. 미국에서 이성진이 다쳤을 때 그랬다. 더 챌린지를 발전시켜, 유도라는 스포츠를 뒤로 치워버리겠다고 도발했다. 그때 그건 진심이었고, 강한결은 지금은 말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더 챌린지를 제대로 기획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는, 유도를 일찍 그만두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다들 안다.
황금세대가 은퇴하지 않고 꾸준히 평범한 선수처럼 활동하면 전례 없는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반대로 안 좋은 점도 있었는데, 그게 바로 한국 유도의 후퇴였다. 황금기는 맞겠지만, 선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리그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황금세대가 다 해 먹으면 꿈도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그건 장기적으로 보면 분명 좋은 게 아니었다.
그러니 한국 유도의 부흥을 생각하면 오히려 물러나 주는 것도 맞았다.
그러나 그렇게 물러나면 반대로 또 성적은 떨어진다. 이래저래 복잡한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고민 결과, 강한결은 그래도 은퇴를 택했다. 대신, 그 미안함을 더 챌린지를 통해 유도 선수의 활로를 더 열어주는 것으로 갚기로 정했다. 이런 강한결의 생각과 계획을 황금세대는 전부 동의했다.
“그, 하하. 강한결 선수. 멋집니다. 멋있어요.”
한 기자의 말에 강한결은 부드럽게 웃는 거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 기자는 피식 웃더니 지영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그 강지영 배우, 아니, 선수? 강지영 선수는 알고 있었습니까?”
그 질문에 지영이 마이크를 당겨 입에 댔다.
“네, 저희 황금세대끼리는 얘기가 다 된 상황입니다. 그리고 전기정 감독님도 알고 계시는 얘기고요.”
“아 그렇군요. 무패 그랜드 슬램이라, 이거 짜릿한데요? 로열 로더 중에서도 진짜 로열 로더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저도 따라갑니다.”
“네?”
웅성웅성.
기자들의 소란을 잠시 지켜보던 지영은, 강한결의 광역 도발을 카피해, 던졌다.
“저도 이번 대회가 끝나면 은퇴합니다. 이 친구와는 다르게 전 연기에 집중할 생각이고요.”
“아…….”
“그러니 최선을 다해주세요.”
“…….”
퍼엉!
도발 가득 담긴 수류탄을 던진 지영은, 이후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