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28화
528화. 아시안 게임(1)
그날 저녁, 식단은 더 단출해졌다. 이제 본 계체 첫스타트까지 일주일 남았다. 이 안에 1㎏를 빼야 한다. 고작 1㎏? 뭐 별거 아니네.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지영을 포함한 감량 선수 전원이 이미 수분을 싹 날린 상태였다. 여기서 물을 1L를 마셔도, 아마 소변으로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거다. 그 정도로 수분을 뺀 상태다. 이런 와중에도 컨디션 조절을 하는 중인 건데…… 예상했던 체중 이상으로 빼야 한다.
이 과정은 가히, 지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 씨…… 하.”
이성진이 샐러드를 먹다 말고 짜증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한숨은 마치 전염병처럼 남자, 여자팀 할 것 없이 옮기고 다녔고, 다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도는 헤비급 한두 체급을 제외하면 전원 감량한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마백을 뛰는 황석도 7㎏ 가까이 감량한다.
그래서 한국팀 선수 중, 감량하지 않는 선수는 딱 둘뿐이었다.
남자 여자 헤비급 선수, 딱 둘.
그리고 이건 한국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유도 종목 자체가 복싱이나 레슬링처럼 감량 스포츠라서, 감량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선수는 100명 중 10명인 거다. 그래서 짜증은 전염되었고,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이때는 강한결도 분위기를 따로 잡지 않았다.
전기정 감독이 아까 시합장에서 몸풀기 전에 말한 것처럼, 감량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걸 건드리는 건, 진짜 싸우자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강한결 본인도 아마 올라오는 스트레스를 컨트롤 하느라 필사적일 것이다. 지영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감량 시나리오를 다시 짜고 있었다. 일단 기존 계획대로 가려면, 먼저 600그램을 커팅해야 한다.
감량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이 정도로 몸에 수분이 없는 상태에서 먹지 않고 감량하는 건 절대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국 훈련과 식단이 병행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제대로 작전 짰네, 진짜…….’
이미 지영도 심기가 뒤틀렸다.
수분이 말랐다는 건, 땀도 잘 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같은 훈련량에서 따진다면, 평소에는 1㎏도 빠지는 게 수분이 마르면 300그램도 겨우 빠진다. 그리고 같은 훈련량이라고 해도, 몸과 마음이 몇 배나 더 힘들다.
“후…….”
지영은 한숨을 내쉬고 꾸역꾸역 식단을 먹었다. 이거라도 먹어야지 몸이 그래도 제대로 움직이니까, 안 먹을 수가 없었다. 물로 입안을 헹구고 뱉었다. 그리고 입안에 묻은 물만 모아서 침과 삼킨 지영은 숙소로 올라왔다. 그나마 다행인 게, 숙소는 제법 안락하다는 점이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서 쉬던 지영은 7시 30분이 되자 샤워실로 가서 씻었다. 뜨거운 물을 욕조에 가득 받아 안에 들어가 몸에 열을 잔뜩 올린 지영은 나와서 물기만 닦아내고 곧장 땀복을 챙겨 입었다.
“뛰게?”
“…….”
같이 방을 쓰는 임효중의 말에 지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최소화하고 싶었다. 그걸 아는 임효중도 딱히 뭐라 하진 않았다.
“나 위에 헬스장 가서 뛰고 있을게.”
“응. 나도 씻고 올라갈게.”
씻으러 들어간 임효중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호텔 상층 트레이닝 룸으로 올라갔다. 선수가 제법 있었다. 지영은 스트레칭으로 몸을 충분히 풀어줬다. 그리고 러닝 머신에 올랐다. 걷고 뛰기. 감량이 상당히 진행됐을 때 몸에 부하를 주지 않고 땀을 빼는 가장 좋은 운동이다. 지영은 10분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슬슬 천천히 뛰기 시작할 때쯤, 지영처럼 땀복을 챙겨 입은 강한결이 올라와서 옆에 자리 잡았다.
보통이면 왔어? 하고 말할 텐데, 강한결도 지영도 말없이 머신만 탔다.
근데 땀이 나질 않는다. 이래서 힘들다고 하는 거다. 반신욕으로 몸에 열을 내고 비닐 재질의 땀복을 입었다. 그리고 20분 넘게 머신을 타는데, 땀이 나질 않는다. 몸에 수분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어서, 나올 수분이 없는 거다. 격투기 선수들은 이럴 때 전신에 발열 크림을 바르기도 하지만, 지영은 그게 체질에 맞지 않았다. 일단 피부가 화끈거리면서 통증이 올라오는데, 이때 심각할 정도로 정신이 무너졌다. 지영은 고통을 싫어했다. 특히 자상이나 화상 종류의 통증은 격렬하게 혐오했다. 이는 당연히 회귀 전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래서 발열 크림은 아예 머릿속에 있지도 않았다.
30분쯤 걷자, 티가 젖는 게 느껴졌다.
이마에 땀이 방울방울 찼다. 하지만…… 그만큼 힘들었다. 몸이 나른한 게, 딱 적당한 온도로 채워 놓은 욕조에 들어간 것처럼 느껴졌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유도팀이 전원 올라와 머신에 올라가 있었다. 고작 600, 무려 600그램의 체중이 선수들의 눈빛에 독기가 가득 머물게 했다.
지영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신지만 아니었으면…….’
신지가 아니었다면, 다른 선수였다면 지영은 그 선수를 정말 개처럼 끌고 다녔을 거다. 한판을 던질 수 있어도 던지지 않고, 졸랐다가 풀어주고, 꺾었다가 풀어주고, 눌렀다가 놔주고, 그렇게 철저히 박살 냈을 거다. 그건 본래 지영의 스타일이 절대 아니었다. 지영은 정도를 안다. 유도에서. 아니, 스포츠에서 상대를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게 결코 스포츠맨십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예외였다.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일본이란 나라에 적개심이 피어났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일본에서 73체급에 나오는 선수는 종주국이자, 강국인 일본에서도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미야모토 신지다.
그런 선수를 상대로, 그런 마음가짐으로 덤볐다간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날아갈 거다. 신지와 지영의 재능은 한 끗 차이다. 사실상 이 정도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도 지영이 패배하지 않은 건, 딱 하나의 이점 때문이었다.
바로, 회귀.
이 하나의 차이가, 지영에게 절대적인 이점이 됐다.
그런데 그런데도 신지와의 경기는 언제나 피가 말랐다. 온몸에 수분이, 정신력과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질 때쯤에서야 승부가 났다.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그랬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야지, 상대를 괴롭히려는 안일한 마음으로 붙는 건 미친 짓이었다.
기가 막히게도, 그게 아쉬웠다.
그렇게 머신을 타다 보니 어느새 50분 가까이 지났다. 땀도 제법 났다. 최소한 저녁에 먹은 건 빠졌을 것 같았다. 그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정신력은 진짜 바닥까지 떨어졌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조깅하듯이 뛰는데 다들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만 뛰고 싶은 마음이. 아니, 욕구가 미친 듯이 폭발하는 중이어서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내일이 또 힘들다. 각자가 계산한 만큼 빼려고, 다들 이를 악물고 뛰고 있었다.
참 신기한 게, 선수들은 감량 중 땀을 빼면, 그 양이 어느 정도가 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수없이 뛰고, 체중계에 올라가고를 반복했기 때문에 그냥 직감적으로 깨달아버린 거다. 지금까지 운동한 게, 목표했던 수치가 아니니 다들 저렇게 이를 악문 거고.
“하…….”
이게 대체 뭔 꼴인가.
완벽하게 준비하고 넘어왔는데, 체중계에 때린 수작질 하나에 저 많은 선수가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질 정도로 머신을 타고 있었다.
가라앉았던 심기에 다시 불이 붙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지영은 몸의 열기가 식기 전에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아 씨…….”
스트레칭마저 힘들다.
건너뛰고 싶다. 그냥 이 땀복을 벗어 던지고, 쉬고 싶다. 하지만 절대로 이 과정을 건너뛰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서 지영은 이를 악물고 몸을 풀어줬다. 친구들도 하나씩 주변으로 와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다들 말이 없었다. 진이 쫙 빠진 모습. 안쓰러웠다. 특히 이성진의 표정은 진짜, 살벌했다.
이를 꽉 깨물고 있는데, 진짜 눈빛만 보면 누구 하나 잡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말없이, 꼼꼼하게 몸을 풀어주고 다시 숙소로 내려왔다.
몸에서 나는 열기가 숨이 막혀서 들어오는 순간 곧장 옷부터 벗어치웠다. 실내의 공기가 낮지는 않은데도, 마치 선풍기를 튼 것처럼 시원한 느낌이 났다. 하지만 또 이 상태로 방치하면 99%의 확률로 감기몸살 확정이다.
임효중과 함께 샤워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와,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감량할 때는 정말 관리할 게 너무나 많았다.
“아…… 꼼짝도 못 하겠네.”
임효중이 옆 침대에 털썩 누우며 한 말에 지영은 동감…… 하고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힘이 하나도 없다. 현지에서 이런 감량은 지영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시합장 도착하기 전에, 딱 맞춰서 움직이기 때문에 굳이 이런 운동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쉴 수도 없었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지영이 일어나자 임효중도 전에 없이 지친 얼굴로 일어났다. 체중을 다시 잴 시간이었다. 지영은 창고로 쓰는 방으로 가, 팬티만 입고 체중계에 올라갔다. 73.40. 적정 체중이다. 개회식이 일주일 남은 걸 생각하면, 절대 무리가 없는 체중이다. 하지만 저기에 600그램 추가해야 하니, 74다. 딱 100그램 뺀 거다. 자고 일어나면 더 빠지긴 하겠지만, 밥도 먹어야 하니까 또 그게 그거다.
“하, 하하.”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났다.
“지영이 너 웃음 보니까, 일본 수작이 진짜 제대로 먹혔네.”
“동감. 이번엔 진짜 머리 잘 썼다. 와, 체중계에 장난질 치는 건 생각도 못 했네.”
“그러니 먹힌 거지. 아, 똑같다, 난.”
“어후…….”
진짜 욕 나온다…….
따로 연락도 안 했는데, 다른 친구들도 올라와서 체중을 쟀다. 그리고 다 거기서 거기였다. 진한 한숨이 공간을 휘감았다. 여자팀도 체중을 재봐야 하니, 자리를 비켜줬다.
“일주일, 일주일만 잘 참자.”
“엉…….”
“효걸이는 첫 세계 대회 신고식이 너무 세네. 힘들면 형한테 와. 알았지?”
“네, 선배님…….”
네! 네! 하고 잘 대답하던 친구가 지금은 기세가 완전히 꺾여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10시. 피곤함이 확 몰려왔다. 지영은 그냥 옷을 챙겨 입고, 침대에 누웠다. 말할 힘도 없어서, 그냥 기절했다.
그 시간.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는 일본.
-중국 욕할 게 아니다. 일본 유도협회 체중계 조작, 피해받는 선수들.
-강력한 항의. 일본은 문제없다 발뺌.
기사가 속속 터지기 시작했다.
한국 협회는 각 나라의 협회에 연락을 싹 돌렸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중국에도 돌렸다. 중국 선수단은 이틀 전에 온다. 하루 적응하고, 다음날 계체다. 그런데 600그램 오버면 선수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다. 그래서 인도적으로 체중계에 문제 있으니 600그램 더 감량하는 게 좋겠다는 공문을 정식으로 쏴버렸다.
공문을 받은 모든 협회가 나서서 일본협회에 항의했지만, 일본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더불어, 컨디션이 완전히 터져 버리기 시작했다.
이튿날, 계체까지 6일이 남았다. 눈을 뜬 선수들은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다시 체중계에 올랐다. 한밤에 자면서 소모된 에너지 때문에 선수별로 차이가 있지만 300에서 많게는 600까지 빠진 선수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웃지 못했다. 왜?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대회 시작까지 이제 6일 남았다. 여기서 최소한의 식단으로 끼니를 때우는 건, 그 자체로 또 몸과 마음을 망가트린다.
저녁, 선수들은 전부 100그램 이상씩 뺐다.
하지만 마음도 같이 빠져서, 울음을 터뜨린 여자 선수도 있었다. 감량은 그만큼 혹독했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 또다시 하루.
선수들은 말라비틀어져 갔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에 나온 선수들은 전부 프로다. 감량의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 엿 같은 현실에 적응하면서, 독기를 줄줄 뿌리기 시작했다. 이걸 일본협회 관계자가 봤다면, 아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했을 정도로 눈빛이 살벌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개회 하루 전.
지영은 전기정 감독, 강한결, 그리고 여자팀의 에이스 강유진과 함께 기자회견 단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