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24화
524화. 전설로 남을(13)
맞네. 사고네.
근데 그냥 사고도 아니고, 아주 대형 사고네.
“허.”
지영은 헛웃음을 흘렸다. 친구들도 어이가 없는지. 와, 와…… 미친. 헐. 등의 감탄사를 흘리고 있었다.
이성진은 이 나이 또래가 칠 수 있는 사고 중에서도, 가장 예민하고 민감한 사고를 쳤다. 황금세대의 나이 이제 고작, 스물둘이다.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성인으로 인정받는 시기는 사실상 아니다.
언제부터 성인인가. 이 부분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한국은 법적 성인 나이는 스무 살이다. 이때 만으로 18살이라도 편의점에서 성인만 살 수 있는 담배나 술을 살 수 있는 성인 취급받는다. 근데 이건 법적으로다. 사회 통념상, 사실상 대학생에 속하는 나이는 어른으로 안 보는 게 대부분이다. 중고등학교 때도 부모의 케어를 받지만, 대학생이 되더라도 여전히 케어는 받는다. 다만 그 정도가 조금 자유로워질 뿐이지, 여전히 아이 취급을 받는다.
왜냐고?
간단했다.
교육의 연장에 있을 뿐이고, 그래서 직업이 없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부모의 품에 있는 게 대학생 나이다. 물론 전부라 할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학생들도 넘치고 넘쳤으니까.
하지만 인터넷이란 공간은 거기까지 신경 써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여전히 어리게 본다.
그래서 이런 학생들이 사고를 아직도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포장하려고 애쓴다. 물론 사고 친 쪽에서.
그런 사고 중에서도 용서받기 힘든 사건 사고가 몇 개 있다.
그리고 이성진이 친 사고는, 그 범주에 들어갔다.
“후우.”
강한결이 골을 짚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성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자기도 아는 거다. 자기가 얼마나 큰 잘못을. 아니, 사고를 쳤는지. 임효중은 아오, 아오, 진짜…… 이러고 있었고, 황석은 그냥 담담한 시선으로 이성진을 보고 있었다. 다들 생각이 많을 것이다. 지금 지영도 그랬다.
‘이게 무조건 잘못한 건 아니지.’
지영은 일단 거기서부터 생각을 시작했다.
연인이다.
이성진이 어디 가서 처음 보는 여자와 자고 사고 친 것도 아니고, 이성진이 몇 년이나 쫓아다니며 구애를 했던 정소영과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온 사고다. 그래서 이건 반드시 잘못됐다고는 볼 수 없었다.
‘실수?’
그래, 그쯤 될 것 같았다. 잘못이 아니라, 실수.
그러나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지영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대중의 시선이 문제였다. 그리고 문제의 이유는 이성진이다. 이성진은 공인이다. 사실상이 아니라, 이제는 그냥 공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현재 연예계 전체로 봤을 때, 가장 많은 기사 지분을 가진 건 지영이었다.
나의 무사님부터 무신 척위준까지 이어진 대 히트가, 벌써 천만을 넘긴 무신 척위준의 인기를 생각하면 지금 연예계에서 지영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배우나 가수, 방송인은 없었다.
넘사벽 원탑.
그게 강지영이다.
그럼 그 뒤로는?
당연히 여러 아이돌과 배우, 가수들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당연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예인은 있었다.
바로, 우정혁이다.
그리고 그런 우정혁이 가장 아낀다는 이성진의 기사도 만만치 않았다. 기자들이 이성진의 기사를 많이 쓰는 이유는 간단했다. 먹히기 때문이다. 지영의 기사와 더불어, 많이 찾아보기 때문이었다.
기사를 사람들이 많이 찾아본다는 것은, 그 자체를 ‘인기’로 치환할 수 있었다. 사고 쳐서 올라간 기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성진은 황금세대 중에서 지영 다음으로 인기가 많았다. 특히 누나 팬이 정말 많았다.
이는 이성진의 가정사 때문인데, 외모가 주는 느낌이 나이 차이가 많아 자기가 업어 키운 막냇동생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나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게 가장 팬덤이 큰 이성진이, 아빠가 된다?
‘아, 지끈지끈하네…….’
그냥 잠깐 생각한 건데도 벌써 골이 띵했다.
“후우……. 피임은 안 했어?”
침묵을 깬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얘기를 해봐야 한다. 이건 진짜 그냥 대충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 선발전에서 굳이 다 같이 놀러 가자는 말까지 꺼낸 거니까.
“그게, 놀러 갔다가 갑자기 불이 붙어서…….”
“갑자기, 갑자기.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피임은 했어야지. 이 바보야.”
강한결의 질책에 이성진은 죄를 지은 사람처럼 미안…… 하고 대답했다. 그게 또 너무 안쓰러웠다. 이성진은 가족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는 친구였다. 이건 황금세대뿐만이 아니라, 그의 팬들은 전부 아는 얘기였다. 그 이유야 당연히 불우한 그의 어린 시절 때문이었고. 지영에게도 트라우마가 있다. 그러나 둘의 트라우마는 서로 다르다. 지영은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였고, 이성진은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성진은 가족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지만, 반대로 그래서 가족을 원했다.
‘친구가 아닌, 진짜 가족.’
법으로 묶인, 피가 섞인.
그런 진짜 가족을 원했다. 이는 황금세대가 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사고가 아닐 수도 있겠는데?’
이성진이라면, 아마 노렸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분명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책임하게 친 사고는 아닐 것이다. 이성진은 더 런닝을 포함한 모든 예능에서 이미 지능캐로 판명이 난 친구다.
유도선수라는 이점이 있는데도, 몸보단 머리로 미션을 깨가는 타입이다.
애초에 정상급 운동선수가 머리가 나쁠 거라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순수한 피지컬로 정상까지?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그런 선수는 전 종목의 역사를 뒤져도 찾기 쉽지 않았다. 단순 훈련은 그냥 기본이고, 고도의 머리 회전이 필요한 게 예체능 계열이었다. 그중 스포츠에서 정상급 선수가 이성진이다. 그것도 세계 정상. 그런 이성진이 무책임하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사고를?
이성진이 예전에 노는 언니들에 나가서 친 사고를 생각하면, 이번 일도 역시 그럴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지영은 이 생각을 아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좀 더 듣고, 지켜보고 얘기할 생각이었다.
“일단 다시 한번 물어볼게. 확실한 거지?”
“응. 같이 병원도 갔다 왔어.”
이성진의 목소리도 차분해졌다.
꺼내기는 힘들었지만, 꺼내고 나니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이것도 이성진의 본모습이었다. 자신감. 지영은 헛웃음이 났다.
“몇 주래?”
“12주…….”
“아이고. 일찍 알았을 건데 그걸 여태 말 안 했어?”
“응. 소영이랑 얘기하느라고…….”
아 어쩐지.
그때 다 같이 놀러 갔을 때도 정소영은 물에도 안 들어갔고,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속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그리고 잘 생각해 보니, 평소 정소영은 소식좌에 어울린다. 김밥 한 줄도 배불러서 다 못 먹는. 체구도 그렇고,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다. 입이 짧은 건 이미 몇 년을 보며 확실히 알고 있던 사항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많이 먹었다. 음, 삼겹살로 따지면 한 근 좀 안 되는 정도로? 배가 고팠다고 하기엔, 먹는 양이 급격히 늘었다. 고기를 지영이 구워서 많이 가져다줬기에 기억에 분명 남아 있었다.
“그동안 얘기는 왜 안 했어?”
다시 강한결의 질문.
솔직히 안 해도 되는 질문이었다. 질문한 당사자인 강한결도 알고 있을 거고, 이성진을 제외한 전원이 왜 이제 와서 얘기했는지 정도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으니까.
“얘기를 많이 했어. 아무래도 너무 민감한 문제잖아.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만나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고민했어.”
“그래, 그게 맞지. 그래서 답은 냈어?”
“응.”
“표정 보니 낳기로 정한 거네. 후우.”
강한결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함 때문에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강한결은 리더였다. 많은 걸 생각해야 하는 위치였다. 그렇다고 지영이나 다른 친구들이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강한결은 언제나 팀의 방향을 정할 때 최선의 결과가 나오도록 고민하고,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그러고 있었다.
“좋아. 하나씩 짚어 보자. 낳겠다는 건 결혼하겠다는 거지?”
“응. 근데…… 상황 여의치 않으면 그냥 혼인 신고? 그것만 하고 같이 살려고.”
거기까지 생각했냐?
지영이 다시 헛웃음을 터뜨릴 때, 강한결의 엄한 목소리가 칼날처럼 이성진에게 날아갔다.
“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할래? 뭔 혼인 신고만 하고 살아. 죄지었어? 죄지었냐고.”
그답지 않게 강경한 어조였다.
그에 안정을 찾았던 이성진이 다시 깨갱, 수그렸다. 강한결답지 않게, 정말 드물게 미간에 화가 쌓여 잔뜩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근 몇 년간, 진짜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지영이 생각하는 마지막은 미국에서였다. 이성진이 아베 히후미의 무릎에 얼굴을 가격당했을 때, 딱 그때 기자 회견장에서 강한결이 ‘일본’이라는 나라에 공개적으로 날을 세웠을 때의 표정이 딱 이랬다.
그런 표정이, 지금 나왔다.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한 건 두 사람 다 각오가 선거야. 그렇다면 이제 평생 함께하겠다는 건데, 결혼식을 안 하겠다는 말이냐, 똥이냐. 네 생각만 해? 너야 건너뛰어도 상관없겠지만, 소영이한텐 일생에 한 번인 거야. 누구보다 축복받고 싶을 거라고. 만약 소영이가 결혼식 안 해도 괜찮아했는데, 아 그래? 했으면 넌 병신인 거고.”
와, 와……우.
강한결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진짜 처음 봤다. 그만큼 깊게 몰입했고, 진지하다는 증거다.
“설마 그랬냐?”
“…….”
“어후, 아오, 이…… 후우.”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며 화를 참는 강한결.
얼굴에 올라온 짜증이 잔뜩 보여서, 지영도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다.
“결혼식은 한다. 일단 소영이 부모님은? 말씀드렸어?”
“응. 찾아가서 말씀드렸어.”
“거기까지 진행했는데도 말 한마디 안 하고, 너도 참 대단하다.”
“……미안.”
“그래서 어머님은 뭐래?”
“허락하셨어. 소영이 잘 부탁한대.”
“화는 안 내셨고?”
“응. 그냥 고맙다고…….”
정소영의 가족사도 참 기구하다.
지영이 아니었으면, 아마 큰 사고가 났을 거다. 스스로가 잿빛 세계의 주민이었기에, 그때 복도에서 스쳐 갈 때 알아보지 못했으면 정소영은 아마 지금쯤 이 세상에 없었을 거다. 그 이유는 가정폭력, 을 넘어선 더러운 짓 때문이었다.
그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던, 어머니는 이제는 쾌차하셨다.
마트에서 캐셔 일을 하고 계셨다. 당연히 이혼했고, 지금은 안전했다. 딸의 임신, 그리고 결혼. 마음이 불편하셨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래도 어려울 때 딸을 도와주고, 비록 사고는 쳤지만, 끝까지 책임지려는 이성진을 인정하신 게 분명했다.
“그건 다행이다.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좀 짚어보자.”
“…….”
“팬에게 어떻게 말할 거야. 어떻게 인정받을 거야? 어떻게 축복받을 거야? 설마 이거 생각 안 한 건 아니겠지?”
“솔직하게 말할 거야. 있는 그대로. 조금의 거짓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말할 거야.”
역시, 여기까지 생각했다.
그리고 지영은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일반 대학생 둘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가져 결혼하는 게 아니었다. 이성진은 연예인, 공인이다. 그것도 사랑을 잔뜩 받는. 연예인으로 공인이 된 사람들은 아주 많은 간섭을 받는다. 관심과 비교해 간섭은 반 정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연애.
이것조차 팬이 통제하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겠나? 절대 안 되지. 열애설만 나도 팬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게 실망한다. 왜? 그들은 스타가 ‘공공재’ 개념이기 때문이었다.
너는 누구 거여도 안 돼.
그냥 그렇게 혼자 빛나줘.
그런데 이런 마음가짐에, 스타가 이성과 연애한다? 그럼 속이 뒤집히는 거다. 단순 열애설이 아니라 진짜 연애가 인정되는 순간 팬은 대거 이탈한다. 나이 많은 배우들이나 가수들은 그나마 인정받는다. 왜? 알기 때문이다. 그들도 결혼하고 싶을 거라는걸. 하지만 아이돌이나 20대 배우의 열애? 얼마나 팬이 떨어져 나갈지 예상도 안 된다. 물론 그 스타의 대처에 따라, 팬의 이탈은 최소화될 수도 있다.
그가 쌓아온 이미지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무려, 혼전 임신.
좋게 끝나길 바라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이성진이 스물 중후반만 됐어도 조금은 희석되겠지만, 황금세대는 이제 스물둘이다. 단순 결혼과는 결 자체가 다른 거다. 이건 문제가 될 소지 자체가 그냥 농후했다. 그런데도 문제가 되는 건.
이게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