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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523화 (523/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23화

523화. 전설로 남을(12)

시작.

하지메!

심판의 외침에 장범이 빠르게 붙었다. 전략을 초반에 승부를 보자는 쪽으로 잡은 게 분명했다. 지영이 장범을 많이 도와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를 이길 방법을 제시해 주진 않는다. 그건 그냥, 승부 조작이니까.

그래서 지영을 상대할 전략은 장범 스스로가 짰다. 그리고 지영에게 당연히 얘기도 안 했다. 하지만 초반에 강하게 잡기를 걸어오는 장범을 보니, 어떤 전략을 짰는지 바로 눈에 보였다. 이런 시도? 나쁘지 않았다.

폼이 요즘 최고조로 올라온 장범에게 부족한 것은, 경험이었다. 국제 대회도 그렇고, 국내 대회도 그렇고 장범은 확실히 경험 하나는 부족했다. 이것만 잘 채우면, 세계 정상의 선수로 자랄 것이다.

물론, 지영이 그랜드 슬램 이후 은퇴한다면.

‘힘이 많이 좋아졌네.’

딱 잡아 보니까 알겠다. 장범은 선수촌에서 같이 훈련할 때도 이미 기만술을 걸고 있었다. 지영은 전에 선발전에서 장범에게 근력을 올리라고 조언해 줬다. 그리고 장범은 그런 지영의 조언을 착실히 따랐다. 그래서 분명히 근력이 붙긴 했는데, 그걸 지영과 연습할 땐 좀 조절한 것 같았다.

시합 때, 한 번에 폭발시키려고.

‘이건 인정.’

훈련할 때 잡았을 때보다 확실히 한 단계 위다. 비교할 대상이 있다면, 구혁 정도. 이걸 노린 거다. 지영이 생각 이상의 힘에 당황한 사이 어떻게든 선취점을 따내 시합을 유리하게 가져가려고.

여기서 지영이 밀려 지도 하나만 먼저 받아도 그 전략은 성공한 거다. 장범의 시합 운영은 지영을 제대로 카피해서, 이제 어디 나무랄 데가 없다. 부족하던 것들도 지영의 조언을 듣고 다 정상 이상으로 올렸다. 그런 장범에게 지도를 하나 내주는 건, 지영으로도 피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강지영은, 강지영이다. 세계 대회 데뷔 이후,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는.

힘이 지영보다 조금 좋다고 해서 그를 잡을 수 있었으면, 애초에 지영이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영은 중심축을 귀신처럼 다룬다.

스륵, 스륵.

왼발에 중심을 두고 지영은 보이지 않는 작은 원을 그렸다. 원에서 밀어내기. 가끔 놀이처럼 하는 훈련이다. 상대가 강하게 푸쉬를 걸 때 밀리지 않기 위해 하는 훈련이다. 이거로 지영보다 잘하는 선수는 적어도 선수촌 내에 없었다.

축을 중심으로 잡기를 흘려내고, 돌아서 다시 잡고, 모두 걸기를 치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전진. 이러한 잡기 전략에 장범은 포기하지 않고 돌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밀고 들어오는 게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왜? 어떻게든 중심이 앞으로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렇게 밀고 들어갈 거면, 상대의 힘을 이용해 앞으로 기울이기를 하며 거는 기술을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지금처럼.

툭.

어깨 깃을 잡으려고 뻗은 손을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소매만 잡아당겨, 발목 받치기를 툭 댔다. 가볍게 툭 대는 정도지만, 상대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상태에서 기술이 들어가면 무조건 휘청거리게 되어 있다.

유도는 모든 자세에서 상대를 넘기는 것에 특화된 종목이다.

그러니 당연히 기술도 거기에 맞춰져 있다. 누르고, 꺾고, 조르는 걸 빼면 그냥 다 상대를 어떻게든 매트에 꽂아야 한다. 그거로 승자를 가리는 게임이다.

발목받치기가 그랬다.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데 발기술만 한 게 없었다. 괜히 연결 기술의 시작이 발기술인 게 아니었다. 발기술로 상대 중심을 깨고, 그다음 주기술로 쾅. 이건 거의 정석이다. 그래서 발목받치기, 안뒤축, 안다리, 모두걸기 등, 이 기술들을 주력보단 보조 기술에 조금 더 초점을 두는 선수도 많았다.

그러나 지영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냥, 두 가지 상황에서 전부 쓸 수 있었다. 지금은 보조 느낌으로 쓴 기술이다. 중심을 무너뜨려서, 역으로 네 생각처럼 안 될 거라고 강하게 경고해 주는.

“윽!”

휘청거린 장범이 팔을 억척스럽게 뜯어내며 중심을 잡았다. 단단하던 표정이 조금 무너졌다. 이게 지영이 원한 거였다. 인간이란 게 그렇다. 생각한 계획이 흐트러지면, 평정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누구나 짜증을 느끼고, 분노를 느끼고, 화를 느낀다. 왜 안 되지? 하고 답답해한다. 이게 아닌데? 하며 초조해한다.

계획은, 계획대로 끝나야 그 단어가 가진 뜻이 충족된다.

이런 승부는 내 계획은 충족하고, 상대의 계획은 충족되지 않게 깨야 한다. 여기에서 최소 심리전의 결과가 갈린다.

휙!

이번에는 지영이 먼저 손을 뻗었다.

휘청거린 장범은 지영의 손을 툭 쳐냈다. 예상했다. 그래서 다시 뻗었다. 이번엔 치지 않고, 그냥 위로 손을 교차해 유리한 포지션을 가져가려는 장범. 하지만 지영은 장범이 제대로 도복을 잡기도 전에 가슴 깃을 그대로 말면서, 몸을 틀었다. 머리가 뒤로 눕는 것처럼 넘어가다 말고 홱! 돌았다. 말아업어치기와 빗당겨치기 경계 어디쯤의 기술이 그대로 작렬했다.

텅!

어? 하는 사이 몸이 빙글 돌아 그대로 매트에 꽂히는 장범.

심판은 잠시 뒤, 손을 쭉 들어 올렸다.

잇폰!

한판이다.

한순간에 터진 기술이, 그냥 경기를 끝냈다. 그쳐는 두 번. 경기 시간은 1분 30초 정도. 시원한 한판으로 끝난 경기에 관중이 와! 하고 환호를 보냈다. 지영은 도복을 고쳐 입었다. 허탈한 표정의 장범은 그런 지영을 잠시 보다가, 미련이라고는 절대 없어 보이는 환한 웃음을 지은 뒤에 일어나 도복을 고쳤다. 패배에 승복하는 모습이라서, 그냥 보기가 좋았다.

그렇게 이변 없이 끝난 1회전, 결승전까지 마찬가지였다.

황금세대 전체도, 마찬가지였으니, 아시안 게임 티켓을 모두 손에 쥐었다.

* * *

대회가 끝난 당일이나 그다음 날은 각자 휴식을 취하는 게 보통이다. 훈련과는 달라서 대회를 한 번 치르고 나면 삭신이 쑤시고, 근육통에 끙끙거리기 때문이다. 훈련과 실전은 차이는 치열함에서 나온다. 훈련은 서로 다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게 있어서, 무리한 기술은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합 때는 그냥 막 부딪친다. 다치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라, 반대로 신경을 쓸 겨를 자체가 없어서 그렇다.

그래서 대회가 끝나면, 그냥 삭신이 쑤신다.

하지만 지영은 시간을 내서 양유진을 만났다. 양유진은 지영을 보자마자, 히잉,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눈가를 만지며 울먹거렸다.

“힝, 괜찮아요?”

“그럼요. 이런 멍은 유도하다 보면, 일상다반사와 같거든요.”

“그래두…… 이잉.”

눈가를 문질문질하는 양유진.

양유진이 손을 흔들 때마다 핸드크림 향인지, 스킨로션의 냄새인지 모를 상쾌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기분 좋은 향이라서 지영은 잠자코 있었다. 눈에 난 멍은 잡기 싸움하다가 난 상처였다. 손을 툭 쳤는데, 힘을 빼지 않고 끝까지 뻗는 바람에 눈 옆을 찔렀다. 결승전에서 구혁에게 맞은 건데, 그는 경기 중엔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시합 중에 이런 일은 정말 말했던 것처럼 일상다반사다. 심지어 훈련 중에도 뻑하면 일어난다. 경기가 끝나고 괜찮냐고 물었고, 미안하다고 해주긴 했지만, 시합 중엔 이런 부상은 뭐 그냥 네다섯 경기에 한 번씩은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지영은 괜찮았다. 고의로 찌른 거면 문제가 달라지지만, 신사적인 유도를 하는 구혁이 그랬을 리는 절대 없었다.

“아프죠?”

“조금 욱신거린 정도? 근데 정말 괜찮아요. 누나 보니까 다 나았어. 하나도 안 아파.”

“앗? 잉!”

지영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놓더니, 몸을 꼬는 양유진을 보며 지영은 모자를 좀 더 내려서 눌러 쓰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늦은 저녁은 아니다. 지영도 양유진도 저녁은 먹은 상태라 집 근처 공원에서 가볍게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그럼 여행 가고, 갔다가 오면 주말에 시간 나는 거예요?”

“네. 토요일에 볼까요?”

“네!”

“그때 보면 뭐 하고 싶어요?”

“음! 으음! 수요일에 오는 거죠?”

“네.”

지영의 대답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양유진이 조금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다시 열었다.

“그, 여행 또 가는 좀 그렇죠?”

아 여행.

지영이 여행을 갔다 와서, 또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냐는 말이었다. 그러나 문제 될 건 없었다.

“누나 좋아하는 낚시 갈까요?”

“어! 좋아요! 그, 거기 가요! 전에 갔던 데!”

“그래요. 내일 예약해 놓을게요.”

“네!”

너무 기뻐하는 양유진을 보며 지영의 입가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맺혔다. 30분쯤 운동도 할 겸, 얘기를 나누며 공원을 걷고 헤어진 지영은 숙소로 돌아와서 푹 잠들었다. 다음날은 충주로 내려갔다. 짐을 싸고, 어머니와 하루를 보내고 나니 여행을 가는 월요일이 됐다. 차는 여전히 같았다. 하지만 짐은 많았다.

이성진이 고른 여행지는 계곡이었다.

그냥 경관이 좋은 계곡인데,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애초에 모두가 알고 있었다. 번화가를 낀 곳은 가지도 못한다. 누군가가 지영을 알아보기라도 하면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 게 분명해서였다.

오늘도 황금세대만 가는 건 절대로 안 된다고 해서 경호원 한 팀이 붙었다.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을 거고, 숙소는 혹시 몰라 도감청 장치 검사까지 한다고 들었다. 유난을 떨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지금 핫해도 너무 핫한 5인이다. 혹시라도 숙소 주인이 딴마음을 먹기라도 하면, 크게 문제가 날 수도 있었다. 대화야 어차피 크게 엇나갈 게 없지만, 씻고 나와서 맨몸을 찍히거나 하면…… 그건 최악이 된다.

임은진이 절대로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기에 따른 것도 있지만, 나중에 이유를 듣고는 전부 이해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갑갑하지만,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는 절대 원칙을 지영은 이해하고, 인정한다.

저번 주 대회 며칠 전부터 비가 많이 와서 계곡물이 제법 수위가 높았다. 그리고 딱 봐도 그냥…….

“들어가면 아주 얼겠는데?”

“물놀이는 적당히 하는 거로 하자.”

“예압.”

주차장에 차를 대고, 체크인하고 짐을 풀었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니,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하늘이 좀 우중충해졌다.

“비 오겠는데?”

같은 방을 쓰는 황석의 말에 지영은 그러게. 하고 대답한 뒤에 주변을 둘러봤다. 비가 오면 놀 곳이 있나 해서였다.

“저기서 애들이랑 맥주 마시면 좋겠다.”

황석의 말에 고개를 돌려봤더니 평상이 보였다.

아주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아래로 평상 하나. 그 옆에는 파라솔과 플라스틱 의자가 비치되어 있었다. 평상은 다들 근육질이라 고관절이 아파 패스니, 파라솔에 모여 앉으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친구들이 나왔고, 그리고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윽, 뭐야. 비 와?”

“응, 너 나오니까 바로.”

이성진의 불평에 지영이 대답하자, 이성진은 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이성진에게 지영이 물었다.

“맥주나 마실까?”

“오! 좋지!”

“내가 전 만들게.”

취사가 가능한 곳이다.

그리고 황석이 이것저것 많이 챙겨왔는데, 그중엔 휴대용 버너와 팬도 있었다. 즉석에서 샥샥 만들어지는 해물파전. 한은정이 요리를 잘하다 보니 황석도 이젠 제법 요리 중수 티가 났다.

맥주는 얼음을 갓 넣어 좀 미지근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낮술.

술은 금기하진 않지만, 훈련 때는 외박 나가서도 먹지 않는다. 그만큼 철저하게 관리하다가, 오늘 같은 날 하루씩 풀어준다.

이 정도는 스트레스 관리에도 좋다고 하니, 강한결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과음하는 친구들이 없기도 했다. 그리고 다들 제법 주량이 세기도 했다. 워낙에 강건한 육체에 정신이니, 쉽게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갔을 때, 모두가 알 만할 정도로 이성진이 뭔가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할 말이 있는데, 눈치를 보는 모습. 그걸 다들 눈치챘지만, 그냥 기다려 줬다.

그러나 끝끝내 열릴 기미가 안 보이자 강한결의 시선을 받은 임효중이 나섰다.

“아 뭔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려?”

“어? 어어……. 그게. 하하.”

“뭐냐고. 말 안 할 거면 아예 그런 표정도 짓지 말든가.”

“그…… 후!”

맥주를 그대로 한 방에 넘기더니, 벌떡 일어난 이성진이 머리를 푹 숙였다.

“미안! 나 사고 쳤어!”

사고란 말에 다들 느긋했던 자세를 풀고 이성진을 바라봤다. 강한결의 표정도 달라졌다.

“무슨 사고?”

“그, 그게…….”

“…….”

“…….”

머뭇거리는 대답에 강한결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표정이 멍하니 풀리며 물었다.

“너, 설마…… 소영이랑?”

“……응.”

“…….”

“나, 아빠 된 거 같아…….”

푸웁!

지영은 무방비 상태로 마시던 맥주를 그대로 뿜었다.

이,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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