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22화
522화. 전설로 남을(11)
무신은 흥행하고 있다.
아주 성공적으로. 아주 광풍의 속도로. 아시아인 주인공의 영화가 이렇게 흥행한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징어 게임, 패러사이트 등.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한국 영화가 이미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아시아인 주인공의 영화에 빠져드는 것에 딱히 크게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를 찾아보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특히 젊은 세대는 SNS에 무신 관람 후기를 올리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유행.
남들에게 뒤처지면, 어느 자리에 나가더라도 아 뭐야. 아직 안 봤어? 하고 무시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젊은 층들은 어떻게라도 예매를 해서 무신을 봤다. 하나 재밌는 건, 개봉 한 달이 됐을 때도 영화관에 가서 예매한 사례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일주일 간격으로 풀리는 예약이 거의 오픈과 동시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엄청났다.
당연히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의 모든 언론이 이런 무신 척위준의 광풍 행보를 다뤘다.
한국은 개봉 1달 만에 800만을 넘기고 있었다.
이에 강지영은 이제, 확실하게 신계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축구팬 사이에서. 아니, 축구에 관심이 없는 남자들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게, 메시와 호날두 이 두 선수만큼은 그냥 정말 잘한다, 이 정도로 분류하지 않는다. 아예 따로, 신계 클래스를 만들어 둘을 그곳에 놓았다.
당연히 한국에도 그것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 연예인이 있었다.
여러 가지 무성한 소문이 있지만, 연기력 자체는 배역에 맞춰 전혀 어색함이 없는 경지이면서, 외모는 아주 당당하게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배우를 압살하는 ‘빈’이 바로 그랬다. 잘생긴 남자나 예쁜 여자는 당연히 질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진짜 초월 계로 넘어가면, 질투심 따위는 들지도 않는다.
빈이 그랬다.
질투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배우.
‘우성, 고비드’와 더불어 무지막지한 실물을 자랑하는지라, 여배우조차 옆에 서는 걸 기피 할 정도의 배우가 바로 빈이었다.
그런데 빈은 우성, 고비드와도 행보가 달랐다. 그나마 앞에 둘은 활동을 제법 하는데, 빈은 아저씨 이후 활동 자체가 아예 없었다. CF는 찍지만, 영화나 드라마 그 어떤 작품에도 출연한 적이 없었다. 2010년도에 그 작품을 찍었으니, 거의 17년간 작품 활동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회자하고, 탑 배우로 분류할 때는 반드시 꼈으며, 그의 동향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파급을 낳았다.
그래서 그는 신계였다.
강지영은 그런 신계에 입성했다. 할리우드에서도 제대로 흥행 파워를 가졌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는 말도 많았지만, 그의 행보와 성적은 신계로 분류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단순 몸값으로만 따졌을 때 천하의 빈조차 압살하는 게 강지영이었다. 빈의 몸값은 최대로 잡아도 100억을 넘기기 힘들다. 아니, 최대로 잡아도 그 절반 정도 나올까 말까다.
하지만 강지영은 무려 600억에 가까운 계약을 했다.
세계구로 따져도 순위권에 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계약료였다. 그러니 이것만 해도 그냥, 몸값 하나만큼은 그를 넘어섰다. 지영은 그런 단계에 올랐다. 하지만 정작 이런 거대한 흥행을 일으키고, 이제는 분류 카테고리조차 신계로 올라간 그는 여전히 같은 행보를 걷고 있었다.
무슨 행보냐고?
구슬땀을 흘리는 행보였다.
* * *
쿵!
세계 대회 스케줄이 좀 변동되면서, 3차 선발이 좀 이르게 열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달 전에는 공지했기에,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컨디션을 무리 없이 조절해 선발전에 참가했다.
국가대표 3차 선발전.
여기에서 모든 게 갈린다.
구혁이 1차 1등, 2차 2등이고 세계 대회 성적도 나쁘지 않다. 지영도 올림픽을 포함해 세계 대회 성적이 있지만, 3차 선발에서 지면 점수에서 조금 밀린다. 그래서 지영도 점수 자체로는 안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체급도 마찬가지였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전부.
거기에 이번 대회에서 아시안 게임 티켓이 결정된다. 한국은 모든 체급 티켓과 단체전 티켓도 다 확보한 상태였다.
그 자리의 주인이 오늘 대회에서 전부 결정된다는 뜻이다.
거기에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든 체급이 1등, 2등 선수가 누구냐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그래서 피어난 투지는 어마어마했다.
이런 열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계적으로 현재, 가장 유명한 한 배우를 보기 위함일까? 3차 선발전은 참가 선수가 얼마 안 된다. 이유는 보통은 그 체급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 한둘이 해 먹는 경우가 많아서, 점수 자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출전하는 선수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았다. 많아야 한 체급에 8명에서 12명, 그 정도였다. 인원이 적으니 시합도 금방 끝나 시합장도 보통 크게 잡는 경우는 없었다. 어쩔 때는 다른 대회와 겹쳐서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 체급 전부 돌린다고 해도, 그렇게 경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유도협회는 시합장을 2만 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을 잡았고, 아주 당연히 체육관 티켓은 모조리 팔렸다.
협회는 정신을 차렸는지, 이 티켓값을 자기들이 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체육관 측과 나누고 협회로 들어온 금액은 전액 기부하겠다는 공지를 올리면서, 장삿속이라는 생각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결과적으로 정말 잘한 판단이었다.
이 선택으로 유도협회가 정신을 차렸다는 기사가 꽤 나왔으며, 이 기사를 통해 ‘유도’란 스포츠를 좀 더 긍정적으로 대중에게 인식시켰다.
그렇게 시작된 최종 선발전.
열기는 뜨거웠다.
선발전에 참가한 선수는 전원 선발전에서 성적을 냈고, 1등을 하면 적어도 아겜 출전 2에서 3순위 정도는 차지할 수 있을 정도의 선수들이다.
이런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마지막 선발전을 준비했다.
아시안 게임.
올림픽보다는 아래 취급받지만, 유도처럼 리그가 아예 없는 종목 선수들이 가장 영예롭게 생각하는 대회다. 아시아 지역권 선수들만 참가하지만, 그래도 이 대회는 올림픽 다음가는 대회다. 남자 선수들에겐 군 면제도 걸려 있는 아주 중요한 대회였다. 물론 군 면제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은 그 나라에서 최고의 선수만이 참가하는 대회고, 그렇기에 흘린 땀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대회였다.
참가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대회.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은 그런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그렇기에 모든 선수의 표정이 비장했다. 다들 건너건너 알거나, 건너 알거나, 아니면 그냥 친하거나 한 사이다. 그런데 대화는 거의 없었다. 서로 인사는 하지만, 사적인 대화는 거의 나누지 않았다.
“분위기 살벌하네.”
이성진의 조용한 말에 다들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세대는 여유가 있었다. 여유의 발로는 자신감이었다. 분명 방송과 병행하며 운동했지만, 훈련 중 그 누구도 설렁설렁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독하게 연습에 매진했다. 아무리 재능이 타고났다지만, 훈련이 동반되지 않는 재능은 반쪽짜리라는 걸 모두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자신 있었다.
황금세대의 리더가 정한 목표가 코앞이기도 했다. 여기서 실수하면, 자기뿐만이 아니라 황금세대란 이름 자체에 먹칠하는 것이라는 걸. 누구도 그런 부담은 주지 않았다. 만약 진다고 해도, 친구들은 분명히, 반드시 진심으로 괜찮아. 다음에 잘하자. 하고 이해해 주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황금세대는 자신감만큼의 자존심도 강했다.
특히 유도에 대한 것은 다들,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다. 재능의 크기 차이를 떠나, 절대 지고 싶지 않단 호승심쯤은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들 이 악물고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자신감의 발로였다.
이번 시합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지영도 2주 정도 빠지긴 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일까, 황금세대가 단체로 배정받은 대기실은 묘한 열기가 있었다. 그 열기를 다들 감지했지만, 각자의 루틴대로 경기를 대비하고 있었다.
“효중아.”
그때 그사이를 푹 자르며 울리는 목소리.
이성진의 부름에 임효중이 응? 하고 대답했다.
“대회 끝나면 뭐 할 거야?”
“나? 음, 유진이 만나고, 좀 쉬어야지. 그리고 입촌하려고. 왜?”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갑자기?”
“응.”
이성진의 말에 시선이 스르륵 그에게 돌아갔다. 갑자기 여행이라. 이성진의 말에 다들 왜 갑자기?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받으며 스트레칭을 하던 이성진이 툭 말을 던졌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우리끼리 다 같이 놀러 간 적이 있나?”
“없다고? 아니, 있을…… 어.”
임효중이 대답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지영도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숙소 마당에서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논 적은 있어도, 같이 방송에 나가기 위해 이곳저곳 간 적은 있어도, 단순하게 ‘여행’을 위해 함께 움직인 적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번에 지영이 미국에 갈 때 친구들은 같이 놀러 가긴 했지만, 그땐 또 지영이 빠졌었다. 한 번쯤은 갈 법도 한데, 진짜 없던 거다.
“진짜 없네?”
지영의 말에 이성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응. 우리 저번에 여자친구들이랑 다 같이 간 거 빼면, 없어. 시합하러 딴 나라 간 건 솔직히 놀러 간 건 아니잖아.”
“음, 그렇긴 하지.”
“그냥 아겜 전에 가고 싶어서. 다들 생각 어때?”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진이 굳이 임효중을 찍어 말한 거지만, 사실은 전부에게 한 말이다. 그만큼 가고 싶었다는 뜻이었다. 뭔 일 있나 싶었지만, 시합 중이라 따로 묻진 않았다. 그래서 지영은.
“난 콜.”
바로 콜을 던져줬다.
어차피 입촌까지는 일주일 시간 있다. 그 시간 동안 어디 갔다 오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친구들도 지영이 먼저 대답하자 바로 콜이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기분 좋게 웃는 이성진. 그를 향해 임효중이 말했다.
“외국으로 나갈 건 아니지? 그건 우리끼리 못 간다.”
“알지. 우리 외국 나가면 가드 형들이랑 회사 형 누나들도 붙어야 하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서 그냥 조용한 데 찾아보려고. 그래도 다행히 아직 휴가철은 아니라서 꽤 있을 것 같아.”
“응, 조용한 곳으로 잡자. 장소는 네가 잡을 거지?”
“그럼. 내가 가자고 했으니까 경비부터 전부 내가 낼게.”
“그건 됐거든? 자, 휴가 정했으니까 이제 시합에 집중하자.”
“오케이.”
싱글벙글.
이후 다시 말이 없어졌다.
다들 다시 시합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의 첫판은 장범이었다. 8명이 나왔고, 세 판 이기면 우승이다.
장범은 확실히 많이 늘었다.
기술, 체력, 그리고 시합 운영까지. 지영은 선수촌에서 같이 훈련하며 장범에게 자기 스타일 전수를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지영이 보기엔 자기를 제외하곤, 미야모토 신지와 해볼 만한 선수로는 장범이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장범을 정말 후계자처럼 키웠다. 이렇게 아끼기 시작한 후배의 성장이 기껍고, 기분도 좋았다. 하지만 지영은 그렇다고 장범에게 아겜을 양보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9시 40분.
잠시 뒤 10시부터 경기가 시작된다는 진행 이사의 안내가 대기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러자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던 강한결이 눈을 떴다. 스르륵, 차분하게 빛나는 눈빛. 웃음기 없는 입가. 이미 시합에 몰입한 강한결의 입술이 열렸다.
“가자.”
“…….”
다들 그의 말에 말없이 일어나 대기실을 나섰다. 선수들이 나오고 있었다. 출전 선수가 얼마 없어서 경기장 한편에 대기석을 따로 만들어놨고, 그 앞에는 몸을 풀 공간도 있었다. 밖으로 나와 몸을 다시 풀기 시작했다. 이미 8시에 도착해 몸을 충분히 풀었지만,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예열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금방 굳어서, 선수라면 아무리 귀찮아도 이 과정을 절대 피해서는 안 된다.
참가하는 모든 선수가, 2만 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치열하게 몸을 풀고 난 뒤, 10시.
경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