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18화
518화. 전설로 남을(7)
선발전이 끝나고, 이주의 휴가가 주어졌다. 시합과 감량으로 다운된 몸을 추스를 시간을 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휴가를 줬다고 쉬고 싶은 만큼 쉴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특히 선발전 우승으로 소집명을 받은 선수들은 당연히 3일 정도의 휴식을 끝내고 개인 트레이닝에 돌입했고, 파트너로 소집명이 간 선수들도 비슷하게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
황금세대도 마찬가지였다.
스포츠에서 실전 감각과 몸을 쓰는 감각의 중요성은 정말 말로 설명하면 입만 아프다. 그래서 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볍게 몸을 풀어주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은 다시 청주에 모여 3일 뒤부터 훈련에 들어갔다.
체력 훈련과 기술 연구 위주의 훈련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감각은 어느 정도 유지된다. 입촌하면 다시 선수촌 특유의 고강도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거니, 굳이 무리한 하드 트레이닝을 시작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함께 모여 훈련하다 보니,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지영은 다시 짐을 쌌다.
다시 미국에 가야 했다. 이유는 무신의 최종 내부 시사회 때문이었다. 지금 한국과 미국은 무신 척위준의 메인 예고편이 이미 나간 상태였다. 최종 내부 시사회는 아직이지만, 지영의 일정을 생각해 메인 예고편과 캐릭터 예고편을 먼저 내보냈고, 이번에 내부 시사회가 끝나면, 지영이 입촌하고 2주 뒤에 전 세계 동시 개봉한다.
이때 지영은 당연하지만, 시사회를 돌아야 했다.
레인에서 양보하지 못한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이 시사회 일정이었다. 이 시사회 일정이 상당히 타이트했다. 이 부분도 다행히 전기정 감독이 이해를 해줘서, 지영은 내부 시사회가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훈련에 참여, 스케줄이 정해지면 다시 미국으로 출국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권 나라를 돈 뒤에 캐나다로 이동, 그리고 한국에서 마지막 시사회를 거친다. 이 일정이 굉장히 타이트했다.
그래도 무신 시즌1의 스케줄이 그게 전부라, 지영은 크게 불만은 없었다.
“아들 잘 다녀와.”
“네, 잘 다녀올게요.”
어머니의 배웅에 지영은 한 번 안아드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려가자 저 멀리서 친구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늘은 임은진도 챙길 게 많아서, 서울에서 인천공항으로 바로 오기로 했다. 그녀는 다른 로드 매니저를 보내주려고 했지만, 지영은 그걸 거절했다. 주말이라 친구들이 따로 놀러 간다고 모여서, 지영을 인천에 내려주고 다 같이 거기서 섬에 들어갈 거라며 태워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짐은 다 챙겼어?”
황석이 통통거리며 가볍게 달려와 지영의 캐리어를 받았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지영은 그냥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친구들의 마음도 이해해서였다. 황금세대는 다 같이 잘나간다. 하지만 지영은 그중에서 유독 바쁘다. 작품 활동도 활동이지만, 이번엔 시사회를 비롯해 언론사 인터뷰도 잡혀 있다. 평소 지영은 이런 인터뷰를 정말 자제했지만, 이제는 조금 마음이 풀려 메이저 토크쇼도 나갈 예정이었다. 물론 그건 아직 임은진이 그쪽 방송사 측과 조율 중이라 확실한 건 아니었다.
그만큼 바쁜 지영을 조금이라도 챙겨 주고 싶은 친구의 마음을, 지영은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인사는 빼먹지 않았다.
“고마워.”
“고맙기는.”
트렁크에 짐을 싣자, 친구들이 우르르 차에 올랐다. 차는 항상 타던 데스티니 대신, 6인승 국산 SUV 차량이었다. 강한결의 아버지 차량으로, 캠핑을 좋아하는 가족이라 차 위에 루프탑 텐트도 달려 있었다.
차가 출발해,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강줄기를 따라 쭉 달리는 길이 짧아서 아쉬운 생각이 들 무렵, 앞에 앉은 이성진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토크쇼 나가는 거 결정됐어?”
그 질문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조율 중이라는 얘기는 있었지만, 어느 쪽으로 결정이 됐다는 얘기는 아직 없었다.
“아니, 은진 누나가 조율 중이라고 했는데, 아직 이렇다저렇다 해준 말은 없어.”
“그래? 크, 지영이 단독 토크쇼 볼 수 있나 했는데, 나갔으면 좋겠다.”
“뭐 나만 연예인이야? 너도 인터뷰 제의는 한 달에 수십 건씩 쌓이지 않아?”
“그렇긴 하지. 나나 한결이나 효중이나 석이나, 많이 쌓이지. 그런데 우린 안 하잖아.”
“설마 나 때문이라고 하려고?”
“너 때문이겠어? 우리 때문이지. 그래도 지영이 네가 스타트 끊어주면 나도 나가보고 싶은 토크쇼는 있어.”
“결국 나 때문이라는 거네?”
“아 왜 그렇게 받아들이냐? 우리 때문이라니까?”
이성진이 억울해하며 아니라 항변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지만, 조금 더 하면 애가 삐칠 것 같아 지영은 이만하기로 했다.
“하하, 농담이야. 그래서 어디 나가고 싶은데?”
“새 시즌 퀴즈 온.”
“아, 우정혁 선배님이 하는 거? 3시즌? 그거 결정됐어?”
“응. 정혁 선배님이 시즌3 첫 화 게스트로 나랑 효중이 나올 수 있겠냐고 묻더라.”
“아아.”
이성진은 이젠 완전한 우정혁 라인이었다. 예능 두 개를 같이 하는 정도지만, 예전에 올림픽 이후 문체부 사태 때, 이성진이 더 런닝을 하차하겠다고 하자 직접 강원도까지 찾아와 무려, 일일 MC까지 맡아주셨다.
우정혁의 위치에서 일일 스페셜 MC?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가끔 타 예능에 전화 통화 정도로 출연한 적은 있어도, 단발성 게스트로 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우정혁이기 때문이었다. 종편 예능 두 개, 공중파 예능 하나에, OTT 플랫폼에서 런칭한 예능 4개를 시즌제로 꾸준히 히트시킨 대한민국 최고의 MC이자 개그맨이 우정혁이다.
몸값?
그의 몸값은 웬만한 배우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CF 단가도 거의 탑레벨이고, 예능 출연료 자체가 회당 2천에 가깝다. 그런 그가 하는 예능은 고정 예능이 3개고, 시즌제가 네 개다. 그것만 해도 출연료는 이미 넘사벽이고, 재방 인기도 좋아서 그에 따라 정산받는 금액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그를 일일 게스트로 부르겠다는 마음을 품는 것 자체가, 불경한 거다.
입 밖으로 그 생각을 꺼내는 순간 너 돌았냐? 미쳤어? 등등의 험한 말들이 대번에 날아갈 정도로. 그런 우정혁이 요즘 들어 가장 챙기는 게 바로 이성진이었다. 둘이 같이하지 않는 예능에서 우정혁은 이성진을 이렇게 평가했다.
타고난 방송쟁이.
본능적으로 멘트를 치고 빠질 때를 알고 있고, 배신을 칠 때와 치지 말아야 할 때를 안다고 했다. 예능감 장착은 물론, 말 그대로 센스가 있다는 뜻이다. 우정혁이 혼자 끌어가는 게 살짝 버거워지면, 알아서 흐름을 바꾸거나 같이 힘을 보태 뒤에서 받쳐주는 능력도 탁월하다고.
이 정도면 극찬이었다.
우정혁이 이렇게까지 챙기는 연예인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배신 기린으로 불리는 모델 출신 배우 이정수와 걸그룹 출신이지만, 희극인 회비를 왜 안 내느냐며 방송마다 괴롭힘당하는 이민주 정도가 전부다. 배우 출신 박지수도 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끌어주려던 예능이 박지수가 적응하기도 전에 엎어졌기 때문이었다.
우정혁 사단.
방송가에서 잡기만 하면 일단 반드시 기본은 잡고 간다는 그의 라인에서도 이성진은 이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방송 스승은 누가 뭐래도 우정혁이고, 우정혁의 부탁이니 나가고 싶을 거다. 하지만 그가 말한 퀴즈 온은 토크쇼나 인터뷰라 할 수 있었다. 이건 황금세대가 지금까지 피하고 있던 종류의 예능이어서, 지영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예능은 전부 기피하고 있었다.
장세리 선배에 대한 감사함 때문에 그녀가 활약하는 예능에는 나간 적이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한결아, 넌 어때?”
지영은 그래서 강한결에게 물었다.
지영의 눈치를 본다고는 하지만, 지영이 그래, 앞으로는 나가자. 하는 건 아무래도 별로였다. 암묵적인 인정이 아니라, 그냥 황금세대의 리더는 강한결이다. 겉으로도, 속으로도, 지영을 비롯한 이성진, 임효중, 황석은 전부 강한결을 믿고 의지했다.
그래서 지영은 강한결에게 의견을 구했다.
하지만 실상은 강한결이 결정해주기를 바랐다. 책임을 미룬다? 그런 게 아니었다. 이런 결정은 강한결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였다. 왜? 그가 리더이기 때문이었다.
“지영이 저번에 공항에서 짧게 인터뷰도 하고 그랬잖아. 그걸 생각하면, 음. 이제 슬슬 나가도 되지 않을까? 운동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강한결이 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스타트는 지영이 끊긴 했다. 기자들이라면, 치를 떠는 지영이었다. 하지만 프러포즈 이후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는 그간 배척하고 밀어내기만 하던 것을 아주 조금은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그런 변화.
이 변화를 팬들은 정말 지극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심, 황금세대도 마찬가지였다.
잘나가는 건 맞다.
하지만 잘나가는 만큼, 답답함도 있었다. 인기를 누리고 싶은 게 아니라, 팬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은 전부 있었다. 이 차에 탄 전원이 일 년에 한두 번씩 팬 사인회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소통을 안 하는 건, 자기를 덕질 해주는 팬들을 무시하는 일이었다.
굳이 죄명을 넣어 보자면, 직무유기다.
연예인, 공인으로서의 직무유기.
사실 여태껏 황금세대는 그런 죄를 저지르고 있던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건 사실 황금세대 전체가 마음을 쓰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강한결이나 황석이 틈이 날 때마다 드라마 조연롤로 짧게나마 작품 활동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임효중도 이전 프로젝트 아이돌 멤버와 틈틈이 짧은 공연으로 팬들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기자들도 잠잠하잖아.”
강한결의 말에 지영을 포함한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도 했다. 이제 슬슬 황금세대를 싫어하는, 어떻게든 추락시키고 싶은 ‘일부’ 기자들도 거의 포기했는지,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내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워낙에 말도 안 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보니, 황금세대를 아무리 음해해도 싫어요만 몇만 개씩 쌓이니 이제는 그냥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그냥 조금씩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까고 싶어도, 이제는 깔 게 없으니까 그렇지.”
지영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정답이었다. 일부 언론은 황금세대를 아무리 까고 싶어도, 그럴 재료가 없었다. 이번 선발전에서 한 명이라도 떨어졌다면 그건 매우 훌륭한 까임 재료가 됐을 것이다. 거봐라, 둘 다 하다가 결국 탈 나는 거 아니냐. 하나만 해라, 하나만. 이렇게 분명 까 내렸을 건데, 다들 방송 활동을 하면서도 모두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까고 싶어도, 깔 수 있는 게 없다.
저번 선발전에 카메라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돌아가던 기자 몇 명의 모습을 팬들이 찍어 올리면서, 한차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갑자기 막 활동하진 말고, 천천히 시작하자. 알지? 이번 아시안 게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읏차.”
어이쿠.
앞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는 걸 안전거리를 확실히 확보하고 있어 수월하게 피한 강한결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 아겜에서 성적 제대로 안 나오면, 그 사람들 분명 또 활동 시작한다. 그러니까 최소한으로 활동하는 거로 하자. 아겜 제대로 끝나고 나면, 그때부턴 다들 프리하게 활동하고.”
강한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리더의 결정이다. 당연히 믿고 따를 생각이었다. 쭉쭉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또 며칠 못 보는 아쉬움을 최대한 달랬다. 친구들은 공항까지 같이 들어와 줬다.
그런 황금세대의 주변으로 평복과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조용히 다가왔다. 다들 워낙에 유명해 사람이 몰리면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임은진은 웬만하면 이렇게 경호원을 붙여줬다. 특히 지금은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거라서 경호원이 당연히 있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마스크를 쓰고는 있지만, 그런다고 못 알아볼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와…… 황금세대 아냐?”
“맞네, 가장 왼쪽에 캐리어 든 남자 강지영이네.”
“대박……! 사인! 사인해 달라고 하자!”
우르르!
몰리는 사람들.
그러자 경호원들이 재빨리 움직여 주변을 막았다.
그리고 그런 경호원의 앞으로 마치 유령처럼 슥, 나선 왜소한 체구의 여자.
“자, 자! 저기 한쪽에 줄 서세요! 사인 시간은 30분입니다! 강지영 배우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서 그 정도밖에 시간 안 되니 모두 협조 부탁드릴게요!”
임은진이 나서서 팬들을 유도했고, 30분간의 사인 끝에 지영은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친구들은 지영이 떠나고도, 1시간을 넘게 더 사인해 주고 돌아갔다. 이제는 진짜, 연예인이 다 된 황금세대였다.
그리고 이런 황금세대의 팬 서비스는, 그날 가장 많이 클릭한 기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