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12화
512화. 전설로 남을(1)
나온다!
촤라라라락!
게이트에서 훤칠한 청년이 나오기 무섭게 터진 외침에 로비 전체가 순간적으로 환히 물들었다. 수십 명의 기자가 지영이 한국에서 출국한 것을 알고는 행선지를 추적했고, 그가 LA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여전히 그는 뜨거웠다.
할리우드에서는 아무런 성적도 없지만,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미국의 영화판을 달구고 있었다.
강지영이 레인 스튜디오와 총 세 작품을 계약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이 먹음직스러운 연예인을 그냥 두는 건 그들에겐 직무 유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기자들 말고, 업계 관계자들이 공항을 찾았다. 특히 유수의 캐스팅 디렉터들은 대부분 공항을 찾아왔다. 엉덩이 무거운 그들은 강지영이 동양의 작은 나라의 연예인이라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미국은 그런 나라였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돈이 되면 지옥에 떨어진 사형수라도 데리고 온다.
그게 미국이다.
이런 말은 미국 문화 곳곳에 있다. 미국의 최대 스포츠 중 하나인 메이저리그에서도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끌고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건 곧, 그들에겐 돈이 될 ‘실력’이 충분하면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었다.
인종, 종교, 사상, 그 무엇도 말이다.
그런데 지영은 그 셋 중에 문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방탄’으로 이미 아시안이 익숙한 미국이고, 지영은 종교적인 발언은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사상은? 건강하다. 너무 건강해서 오히려 할리우드와 맞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기부만 봐도, 그의 심성은 이미 돋보였다.
그러니 지영이 아시아인이라는 것은 그들에겐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이렇게 전무후무한 인기를 얻은 연예인은 정말 손에 꼽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계약서에 사인을. 아니, 적어도 미팅 자리는 만들어 보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레인 스튜디오와 3작품 계약이 있지만, 어차피 그 작품을 3년 연속 다이렉트로 찍을 일은 없다. 레인엔 많은 히어로 시리즈가 있고, 모든 작품이 코믹스의 시간선을 타고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올해 무신을 찍으면, 내년엔 없다. 아, 아시안 게임? 거기 출전한다고 하니까 9월까진 움직이지 못해도, 그 이후엔 충분히 작품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미팅, 적어도 미팅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게이트를 나선 강지영이 기자들이 몰린 앞으로 다가왔다.
“어? 어어?”
“뭐지? 보통 인사만 하고 가던데?”
“혹시?”
꾸벅.
기자들이 의외의 행동에 놀라는 동안, 지영은 기자들 앞에 도착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한국식 인사다. 이런 인사는 기자들도 익숙했다. 지영의 인터뷰나 기자회견을 보면서 그 행동이 존중, 혹은 감사의 의미로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미스터 강?”
누군가 용기를 내 마이크를 내밀며 지영을 불렀다. 그런데 지영은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반짝! 반짝반짝! 기자들의 눈이 대번에 반짝였다. 한 번도 없었다. 강지영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이후, 커다란 사건 사고가 아니면 절대로 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자발적으로 와서 섰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네, 안녕하세요. 강지영입니다. 다들 저 찍으러 나오셨어요?”
지영의 말에 이건…… 대박이다! 하는 심정이 됐다. 마구 손을 들려다가, 그들은 강지영의 성향을 또 깨달았다. 이 젊은 친구는 지극히 조심히 다뤄야 했다. 부드러운 미소지만, 저 내면엔 매끈하게 얼린 빙판보다도 예민하다. 그걸 모르고 이곳에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서로 눈치를 보다가, 가장 경험이 많은 한 기자에게 시선이 몰렸다. 이제 50대. 현역에서 슬슬 물러날 때도 됐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가십을 취재하는 마이클이 대표로 나섰다.
“그, 일단 미스터 강. 세계 선수권 우승을 정말 축하합니다.”
의례적인 인터뷰의 스타트 멘트.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인사를 받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많은 팬이 그날 경기장에 와 응원해 줘서, 정말 많은 힘이 됐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게요. 고마워요. 응원해 줘서.”
“이, 이야. 하하. 그렇군요. 저도 그날 경기를 중계로 봤습니다. 팬의 성원이 엄청나더군요. 그게 미스터 강의 경기에 도움이 됐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
“하하. 미스터는 빼도 됩니다.”
“오, 그럼 강? 쥐영? 강. 강이 좋겠군요.”
그 강도, 강이 아니라 캉에 가까웠지만, 지영은 개의치 않았다. 지영도 영어는 이 나라 사람들처럼 능숙하진 않았으니까.
“하하, 그럼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강. 미국엔 무신을 찍으러 왔습니까?”
이미 지영의 스케줄 표는 전부 공개되어 있다. 출국하는 장면은 이미 한국에서도 기사가 많이 나갔고. 그러니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본인의 입에서 확정적인 답을 듣고 싶은 거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니,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이번 주에는 대부분 미팅인데, 다음 주부턴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할 것 같아요.”
“오오! 드디어 무신이! 좋습니다. 그럼 강. 부담은 안 됩니까?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강은 여기서 성적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관계자가 부정적인 생각이거든요. 실제로 흥행에 실패할 거라는 예상이 50%가 넘기도 합니다.”
이 말도 그렇게 기분 나쁘진 않았다. 실제로 있는 일이고, 지영도 들어봤다.
“부담은 돼요. 그런데, 모든 작품이 성공을 보장하고 시작하진 않잖아요. 강철 사나이도 그랬고요. 쥬라기 시리즈도 그랬고요. 작품에 임하는 모든 배우, 스태프, 제작자는 확신을 가지고 촬영에 임하지만, 그 결과가 꼭 좋지만은 않다는 건 저도 당연히 알아요. 하지만 그런 불확실성 때문에 벌써 겁을 먹을 필요는 없겠죠?”
“하하, 그렇긴 합니다. 그럼 자신 있다는 얘기인 거죠?”
“네. 저도 잘 될 거라는 확신은 가지고 촬영에 임할 겁니다. 감독님의 디렉팅에 성실히 따를 것이고, 익숙하지 않은 현장이지만, 그래도 빠르게 적응해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노력할 겁니다.”
지영의 대답에 기자들은 빙긋 웃었다.
이런 모습이다.
무조건 내 작품이 최고다. 이건 무조건 성공한다. 잘 만들었으니까, 보면 안다! 같은 허세는 없다. 그는 실패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걸 두려워하진 않는다. 따라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최선을 다한다.
겸손하지만, 자신감도 있다.
차분한 표정에서 나오는 그 기백은 기자들에게도 충분히 전달됐다. 할리우드 스타들 특유의 느낌은 분명히 없는데, 그냥 지켜보고 있으면 어떤 신비한 느낌이 든다. 겸손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스스로의 위치를 명확히 알고 있기에, 그는 그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이게 좋다. 독특함, 신선함. 아시안이라고 평가절하할 수 없는, 저 느낌이 좋다.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니 확실히 세계 최고의 선수가 가지는 여유도 느껴졌다.
이어서 몇 명의 기자들 질문을 받아주고, 지영은 공항을 떠났다. 나가면서 팬들이 몰려 있어 금방 나갈 수 없었지만, 지영은 거기서도 성실했다. 늦은 밤이라서 팬이 얼마 없었기에 망정이지, 이른 시간이거나 오후였으면 사인을 해줄 엄두도 못 냈을 거다. 그렇게 사인을 다 해주고, 지영은 곧장 숙소로 이동했다.
물론 관계자들과의 미팅도 받아들이고 나서 움직였다.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 준 사람들인데, 얘기도 들어주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말 그대로 미팅이다. 미팅한다고, 계약서에 사인하는 건 아니니까.
늦은 시간이라 짐도 못 풀고, 그냥 각자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서 잤다.
이른 새벽.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지영은 일찍 잠에서 깼다. 잔 시간은 고작 3시간 남짓. 커튼도 안 치고 잤는데,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었다. 지영은 캐리어에서 운동복을 꺼냈다. 이른 아침의 러닝? 미국에선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겠지만 여긴 매우 고급 주택 단지였다. LA에서도 가장 비싼 동네라 치안은 확실했다. 애초에 이 주택촌 사이드로 높은 담장이 쳐져 있고, 감시카메라가 빈틈없이 돌아간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경호 회사 직원들이 항상 상주한다. 특수전 경력이 있는 직원이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말이다.
이 말은 곧, 괜히 담 잘못 넘었다가 까닥 잘못하면 총 맞는다는 뜻이다.
테이저건 이런 거 말고, 실탄으로다가. 그러니 어지간히 미치지 않은 이상 이 주택촌으로 허가받지 않은 이들이 들어서는 건 불가능했다.
레인 스튜디오 직원에게 그런 설명을 충분히 들었기에, 지영은 망설임 없이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갔다. 그러자 거실 한쪽에 있던 경호원 둘이 일어나 다가왔다. 둘은 지영의 옷차림을 보더니 바로 물었다.
“뛰시게요?”
“네. 어, 혹시 같이 뛰어야 하나요?”
“물론입니다. 지영 씨의 이번 스케줄 내내 저희는 지척에 있을 겁니다.”
“아, 음.”
이전의 지영이 아니다.
예전에는 조용히 뛰고 왔지만, 지금은 그랬다간 경호원이 잘릴 수도 있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함께 가야 하는 상황인 거다.
그래서 조금 난감해하는데. 팀장이라고 소개받은 경호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우리가 받는 월급엔 지영의 러닝메이트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아 진짜요?”
“그럼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러닝 준비를 하고 나오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정장은 좀 불편해서.”
“네, 고마워요.”
월급에 포함됐다니까, 지영은 미안하지만, 부담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만, 지영은 작품을 위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일주일의 휴가와 오랜 비행으로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다. 이걸 돌리는 건 역시 땀을 흘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고.
10분 뒤, 경호원 셋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몸을 푸는 중에 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이렇게 말했다.
“지영 씨. 죄송하지만 러닝 코스는 저희가 짜도 되겠습니까? 선행할 친구가 먼저 움직여야 하거든요.”
“그럼요. 저는 뒤따라서 갈게요. 적당히 속도만 조절해 주세요.”
“네, 지영 씨가 페이스를 올리면 제가 알아서 조절하겠습니다. 아, 페이스는 걱정하지 마세요. 지영 씨만큼이나 질리도록 뛴 친구들입니다. 40킬로 군장을 메고 천리 행군도 수없이 치렀고요. 적어도 지영 씨보다 먼저 지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건가 보다.
칠공칠? 특전사? 뭐 그런 거. 준비운동을 끝내고, 해도 뜨지 않은 길을 따라 시작된 러닝. 확실히 이들은 잘 뛰었다. 선행 페이스메이커가 출발하고, 그 등을 바라보며 지영은 러닝을 시작했다.
팀장이 바로 지영의 옆에 붙어서 뛰었고, 한 사람은 후방을 맡아 뛰었다. 새벽 공기는 언제나 상쾌하다. 러닝은 거의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 거의 모든 기초 체력이, 이 러닝에서 결정된다. 지영이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도 러닝 머신을 그렇게 달리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달리는 것만큼 컨디션을 올리고, 몸속의 노폐물을 빠르게 뽑아내는 것도 없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건 러닝만큼 부상 위험이 적은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줄넘기도 무릎에 무리가 가지만, 러닝은 주법만 자기의 몸에 맞춰 제대로 익히면 부상 위험성이 극히 적은 운동이었다.
고급 주택가답게, 조금 뛰자 러닝 코스도 따로 있었다. 적당한 업힐과 다운힐. 하체에 긴장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히 좋은 코스가 몇 가지 단계로 나뉘어 있었고, 지영은 첫날이라 가장 노멀한 코스로 달렸다. 그렇게 쭈욱 달리고 왔더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해는 이미 떴다.
찬란하게.
눈 부신 햇살을 이미 지상으로 내리쏘며, 다 타 죽어라! 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따가운 햇살이었다.
그 해를 햇빛을 피하며 마무리 스트레칭.
씻고 나온 지영은 함께 온 영양사가 챙겨준 식단을 먹으며 이제 시작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오전. 미팅.
오후. 미팅.
야간. 미팅.
미팅은 주 내내 이어졌고, 그다음 주에도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그다음 주, 크랭크인. 무신 촬영이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