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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505화 (50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05화

505화. 왕의 귀환(14)

점심시간도 없이, 오후 네 시.

예선전과 패자전도 함께 진행되었고, 패자 결승, 승자 준결승과 결승만을 남겨뒀다. 이로써 첫날 일정의 70%가 끝났다. 하지만 남은 30%가 진짜였다. 시합장은 고요해졌다. 경기 진행석에서 선수의 집중을 위해 과한 응원은 자제해달라는 방송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방송으로 팬들은 열정적인 응원을 멈췄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자기들이야,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를 응원한다고 하는 거지만, 그게 다른 선수들이 절치부심해 준비한 대회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사실, 그래서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어느 종목이나 일방적인 응원은 존재한다. 그게 스포츠다. 실력에 따라, 외모에 따라, 연고지에 따라, 응원은 당연히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야구나 축구, 농구의 원정경기를 보며 이런 부분이 굉장히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런 일방적인 응원 또한 스포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과도한 응원은 자제를 부탁했다.

이는, 역시 강지영 때문이었다.

강지영이 등장할 때마다 울리는 함성과 환호, 응원이 너무 컸다. 그래서 지영의 상대 선수가 너무 심하게 위축되어 버렸다. 3회전이 그랬다. 와아! 하는 소리에 움찔한 선수는 아무것도 못 해보고 결국 반칙패를 받았다.

이게 공정한가?

공정한 거다. 말했듯이, 이런 열렬한 응원 또한 스포츠의 일부니까. 하지만 준결승전이다. 이 대회를 위해 수십 리터의 땀을 흘리며 준비한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이 아무것도 못 해보고, 일방적으로 경기가 끝나는 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그것 또한 이겨내야 하는 게 맞지만, 경험 자체가 없으면 이겨내는 건 힘들다.

이런 일방적인 응원은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도 쉽게 이겨내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러니 아예 경험이 없는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게 불만인 사람도 있었지만,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후자가 더 많았다. 강지영의 팬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응원이 경기장을 울리다 못해 흔들 정도라는 것은 이미 깨달았으니까. 유도 선수는 순간 집중력이 가장 강한 종목이다. 순간의, 찰나의 집중을 놓치는 경우가 승패를 가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걸 위해, 관중은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의견을 서로 나누지도 않고.

그런데 이런 합의는 경기장에 오히려 지독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고요한 경기장. 열기로 가득 찼기 때문에,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 상태에서 시작된 준결승. 떨어지면 패자 결승 직행이지만, 당연히 패자 결승과 그냥 결승전은 차이 자체가 달랐다. 패자 결승은 지면 공동 5위고 결승전은 져도 2위, 은메달이다.

그러니 결승도 결승이지만, 준결승은 정말 필사의 각오로 나오는 선수가 많았다.

남자 60과 여자 63 준결승이 시작됐다.

남자 60은 여전히 일본이 강세였다. 그리고 여자 63도 마찬가지로, 일본이 강했다. 두 게임 다 일본 선수가 등장했는데, 둘 선수는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굳히기로 한판을 따냈다. 한 체급의 준결승이 끝나는 데 걸린 시간은 20분 남짓이었다. 선수 등장과 매트 관리, 그쳐로 주어진 시간까지 총 합쳐서 20분이다. 이 정도면 일찍 끝난 건 아니었다. 실제 경기만 10분 이상 하는 게임도 있는데, 이번 준결승은 생각보다 확실히 빨리 끝났다.

그리고 66과 70체급 준결승이 시작됐다.

이번엔 반대로 대한민국의 이성진과 강유진이 나란히 입장했다. 지영은 두 선수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 게임은 둘 다 만만치 않았다.

이성진은 아베 히후미 이후로 새롭게 떠오른 일본의 신성을 상대하고, 강유진은 여자 유도의 전통 강국인 프랑스 선수와 붙는다. 둘 다 절대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특히 일본은 한국과 붙으면 진짜 이를 악물고 덤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강지영에게 당한 게 있기 때문에, 한국이라면 이를 가는 거다.

그래서 어떤 반칙이 나올지 모른다.

코뼈가 주저앉는 반칙까지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세계 선수권은 제대로 망한 대회가 됐지만, 그런 일이 또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메!

심판 둘이 동시에 하지메 사인을 외쳤다.

악! 기합과 함께 자세를 바짝 낮추고 격돌을 준비하는 두 선수. 지영은 눈알을 굴리며 둘의 시합을 바라봤다.

지영은 둘 다 결승에 올라가길 바랐다.

당연했다.

지영은 팀을 응원했다. 한때 여자팀과는 소원해진 적이 있지만, 그걸 가지고 언제까지 꽁해 있을 성격 자체가 아니었다. 그래서 같은 동료의 건승을 기원했다. 아쉽게도 강유진과 이성진을 제외하고 1, 2, 3회전에서 나란히들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둘 중에서 그래도 이성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라이벌이 될 뻔했던 아베 히후미는 그날 사건 이후 강제로 은퇴 당했고, 에비누마 마사시 또한 피지컬이 떨어지며 이성진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세대교체가 시작된 일본의 66은, 약하면서도 강했다. 이유는 경험이 부족한 선수였다는 점이고, 강한 이유는 그래도 일본의 국가대표란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확실히, 이성진이 위다.

스아악-!

마치 면도날처럼, 공간을 갈라버리는 것처럼 걸리면 지영이라도 여지없이 날아가는 면도날 업어치기가 작렬했다.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쿵!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이성진은 그대로 일어났다. 그리곤 마치 볼 것도 없다는 것처럼 띠를 풀며 자기 자리로 향했다. 강력한 쇼맨십이다. 지금 자기 업어치기는, 그 날카로운 메치기는 무조건 한판이라고. 그걸 소리 없이 포효하고 있었다.

그리고 심판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잇폰!

강렬한 한판 콜.

우와!

꺄아아!

이성진의 퍼포먼스에 환호가 울려 퍼졌다.

“칙쇼! 으아아!”

이성진의 업어치기에 날아간 일본의 후쿠다 마시로가 서글픈 분노를 매트를 두들기며 토해내지만, 승패가 변할 일은 없었다. 승자 선언 뒤에 이성진이 경기장을 나왔을 때 이미 지영의 시선은 격전을 치르는 강유진에게 가 있었다.

백중세.

과연……. 프랑스 여자 유도는 강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과 백중세를 이루는 나라가 프랑스였고, 그 나라 유수의 선수들을 모두 제압하고 새롭게 국가대표가 된 소울라 플로린은 강력한 피지컬로 강유진을 압박하고 있었다.

힘은 소울라 플로린이 위였다.

하지만 기술과 센스, 체력은 강유진이 위였다. 강유진은 수술 이후 시작한 재활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게 바로 근력과 체력이었다. 한 체급을 올릴 수밖에 없었기에, 그 체급에 맞춰 근력을 올렸고, 적응할 때까지 체력에 문제가 없게 하려고 이 두 가지를 지독하게 끌어 올렸다.

그 결과 강유진의 기본 체력은 동 체급에서도 거의 최강이었다.

여자 70이면 헤비급에 가까웠다. 마이너스 78 플러스 78에 비교하면 피지컬이 상당히 차이 나나, 그래도 헤비급에 가까웠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체력전이 정말 많이 나왔다. 기술의 날카로움보단, 말아서 둔중하게 감아 던지는 기술도 많이 나왔고.

강유진의 기술은 상당한 편이다. 특히 허리기술이 강점이다. 하지만 피지컬에서 70 선수들은 힘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갓 올라온 강유진은 이걸 해결하기 위해 웨이트와 머신, 트랙을 정말 죽도록 달렸다.

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확실히 천재성이 있는 강유진인데도 프랑스의 신예와는 백중세였다.

머리가 절반은 컸다. 흑인이 아닌 데도 피지컬이 진짜 어마어마했다. 인종에서 나오는 피지컬 차이를 극복하는 건, 아무래도 힘들어 보였다.

그렇기에 강유진이 택한 전략은, 체력전이었다.

강유진은 시합에 오기 전 지영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오빠 스타일, 이번에 한번 해보려고요.’

그리고 지금 강유진은 그 말을 실천하고 있었다. 철저한 운영전. 쉴새 없이 움직이며 발기술, 깃을 잡고 털어 상대의 혼을 빼주고, 다시 발기술. 잡기 모션에 발기술. 상대가 모션만 취하는 것에 익숙해졌을 땐, 진짜 발기술.

그렇게 경기를 운영으로 풀어갔다. 소울라 플로린의 피지컬이 너무 좋고, 카운터도 잘 치는 걸 이미 알고 있는지 무리한 기술은 절대 걸지 않았다. 그렇게 4분 경기가 끝났다. 상황은 플로린이 지도 두 개, 강유진이 하나였다.

시합 내용은 반칙 개수에서 알 수 있듯이 확실히 강유진이 좋았다. 일단 가슴의 기복으로 보아 체력적으로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반대로 플로린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정갈하고 그러모아 묶었던 머리는 빠져나와 산발이 됐고, 가슴의 기복이 컸다. 그건 그만큼 잡기와 발기술에서 털렸다는 뜻이었다.

남자도 90이나 마백쯤 되면 체력이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여자도 마찬가지다. 연장전, 골든 스코어로 넘어가면 여기서부터 체력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게 거의 절반은 된다. 한계에 도달하면 선수는 정말 경기를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프로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고작 몇 분이지만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 상대와 부딪치다 한계에 도달하면, 정말 모든 걸 놓고 싶어진다. 이때의 탈력감은 정말 어마어마해서, 삶의 경계에 있어도 그런 생각을 한다.

거짓말이 아니다.

정신력과는 다르게, 체력이 그렇다. 몸이 터질 것 같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고, 눈앞이 막 흐릿해지면서, 여기가 어딘가. 나는 또 누군가 싶고. 체력이 바닥나면 그렇게 된다. 그 모든 걸 겪게 되는 거다.

전기정 감독이, 띠를 천천히 고쳐 매는 강유진에게 크게 소리쳤다.

“지금처럼 해! 무리하게 들어가지 말고! 잡고! 털고! 발기술 걸고! 다시 반복해! 사이드로 움직이고! 방심하지 말고!”

역시 전기정 감독이다.

지금 당장 뭘 해야 할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미 강유진의 전략은 먹혔다. 지영처럼 운영으로 소울라 플로린을, 속된 말로 반쯤 조져놨다. 이미 성공한 전략을 이제 와 바꿀 필요는 없었다.

‘괜히 여기서 전략을 바꿔 마지막 결정타를 넣다가 카운터 맞는 것보다야, 백 배 낫지.’

하지메!

연장전, 골든 스코어가 시작됐다.

아악!

악에 가깝게 기합을 넣은 강유진이 다시금 플로린을 압박해 들어갔다. 차분하게, 다만, 그러면서도 확실한 파이팅 의지가 보이게끔 움직였다. 플로린은 전체적으로 잡기가 약했다. 피지컬은 좋지만, 상대적으로 속도와 반사신경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평체가 겨우 71인 강유진보다 모든 면에서…… 느렸다.

승패는 여기서 갈리고 있었다.

강유진의 움직임은 한결같았다.

전기정 감독의 코칭에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말 딱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잡고, 털고, 안뒤축. 피지컬 좋은 플로린이 버텨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이런 상대일수록 하체 공략엔 약하다.

무차별 단체전을 보다 보면, 헤비급과 경량급의 경기에서 헤비급이 지는 상황의 거의 반 이상이 하체 공략에 무너진다. 특히 뒤쪽 공략에 정말 취약하다. 중심이 높고, 크고 거대하다 보니 한 번 밸런스가 무너지면 그걸 다시 고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넘어가면, 마치 고목나무가 넘어지는 것처럼 빳빳하게 쓰러진다.

강유진의 이번 준결승이 그랬다.

연이은 하체 공략에 다급해진 플로린이 뒤로 정신없이 물러나는 그 순간을, 강유진은 놓치지 않았다.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건 기술은 어깨로 메치기였다. 그것도 양 소매만 살짝 잡고, 발을 플로린의 뒤꿈치에 툭 대는, 아주 심플한 기술이었다. 되치기를 생각해 깊게 파고들지도 않은 기술이었는데, 플로린은 거기에 걸려 그대로 무너졌다. 엉덩방아를 툭 찍는 순간, 강유진은 몸을 비틀어 돌렸다.

그 결과, 데굴! 플로린의 몸이 빙글 돌았다.

와자아-리!

심판이 손을 가로로 쭉 펼치며 선언한 외침에, 강유진은 아자! 하고 일어나 도복을 고쳤다. 짝짝짝! 상당한 경기 운영을 보여준 강유진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그녀의 경기가 그렇게 끝나고, 다시 경기가 이어졌다. 66과 70의 두 번째 준결승이 끝나고, 지영의 차례가 왔다.

선수 호명.

입장.

상대와 마주 보고 선 지영.

하지메!

지영의 준결승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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