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87화
487화. 전설로 가는(26)
나의 무사님이 드디어 최종장에 들어섰다. 마지막 2화를 남겨두고 모든 편이 방영되었을 때, 네티즌들은 여러 가지 의미로 놀랐다. 그리고 그 놀람은 시청률로 반영됐다. 52.5%. 50과 49나 48 사이에서 놀던 시청률이 드디어 51%를 넘어 52%까지 올라간 것이다. 진정한 의미로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수치는 정말 어마어마한 거였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로 예상했던 것.
그게 바로 시청률 50%였다.
이 수치는 대한민국에 날고 기는 작가가 정말 합심해서 대본을 만들고, 드라마를 찍지 않는 대배우들을 섭외해도 힘들다고 보는, 그런 수치였다. 이런 수치는 그냥은 역시 나오기 힘들었다. 한 배우가 견인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의 무사님이란 작품 자체의 힘이란 점은 무시할 수 없었다.
특히 마지막 대 반전은, 넋을 빼놓았다.
-대박…….
-화계를 예상하고, 그에 맞춰 도강해 제도까지 직진로로 달린다? 이게 가능한가?
-불가능하지. 근데 가능하게 판을 만들었잖아. 제학 선생은 당대의 석학이잖아. 후에는 부족할지 몰라도, 충분히 판세를 읽으며 도움을 준비할 수 있거든. 그런 사람이니까, 제도 쪽으로 일직선으로 달려올 수 있는 경로의 성주나 요새 사령관을 미리 정리하거나 할 수도 있겠지.
-맞음. 사실 이런 움직임은 보여주긴 했음. 중반부를 보면, 연이 누가 보낸 건지 모르는 서신을 받을 때가 있음.
-어? 그래요?
-ㅇㅇ 정은정 작가는 연이 서신을 받을 때마다 어디서 올라온 서신인지 정확히 밝혔어요. 전장에서 올라온 전서입니다. 혹은 초소에서 올라 온 전서입니다. 이런 식으로 서신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미리 밝히잖아요. 그런데 중반부에 내 기억으론 여섯 번인가? 일곱 번인가? 그 과정이 없는 서신을 읽는 경우가 있어요. 그게 아마 제학 선생이 몰래 보낸 전서인 것 같아요. 이렇게 하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이쪽 방향으로 올라와라. 이런 식으로 제학 선생이 방향을 정해주는 거죠. 제학 선생은 당대의 석학이니, 연도 의심은 하되, 결국 믿을 수 있고.
-이야, 그러네. 그럴 수도 있겠네.
-제학 선생은 애초에 제국에 반기를 들만 한 인물임. 그의 스승이 재의 양부이고, 재의 양부를 진심으로 따른 사람임. 그런 스승이 후의 손에 죽었고. 현재의 제국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 거기에 후가 자기를 죽이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반항이라도 한 번 하는 게 낫다 생각했을 거임. 거기에 재의 도움도 있었고.
-맞네. 와…….
-가끔 막 이상한 병사들이랑, 야밤에 서신? 그런 것만 담벼락 위로 휙휙 던져지는 신이 나와서 그게 뭔가 했는데, 제학 선생이 나서서 도움을 요청한 거로 보면, 이게 말이 딱 맞아 떨어짐.
-거기에 백미는 백적파임.
-다 죽었을 거로 예상했는데, 후반부 마지막 판에 그걸 이용해 먹을 줄은 진짜 예상도 못했다ㅋㅋㅋㅋ
-그러니까요 ㅎㅎ
-거기에 속도감이…… 와, 난 뭔 카 체이스 보는 줄;;
-이제 어떻게 될까요? 후가 진짜 제대로 한 방 제대로 먹었는데, 이대로 재가 전투를 끝내는 거로 끝날까요?
-그건 지켜봐야 알듯요. 후가 한 방 먹긴 했어도, 희대의 군략가임. 제갈량은 아니어도 사마의급은 되는 놈이라, 쉽게 당하지는 않을 듯요.
-그걸 이제 어떻게 마무리하는지가 중요해짐. 핵, 어마어마하게, 장난 아니게……. 미친 듯이?
-제발, 제발 해피 엔딩 주세요ㅠㅠ
-이 정도면 배드에서 멱살 잡아 건져 올리긴 했으니 기대해봐도 될듯요?
-ㅇㅇ 기대해봐도 될 듯…….
-근데 진짜 그 급박한 장면 속에서도 진짜 순간적으로 넣는 재와 선고의 러브신을 보면, 두 사람 진짜 응원하고 싶어짐 ㅋㅋㅋ
-헐, 현실에서요?
-ㄴㄴ 극중에서! 둘이 극의 끝에서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음 ㅠㅠ
-ㅎㅎ 저도 그래요!
-얼른 후 모가지 따고 이젠 행복 하자 ㅠㅠ
모든 커뮤니티가 나의 무사님에 잠식당했다.
기사란은 나의 무사님 타이틀이 붙은 것밖에 없을 정도로 보였다. 연예계란 전체를 아예 모조리 잠식해버렸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화력을 보였다.
[너의 무사님 제작진! 화계 신 위해 모형 나무 천 개나 태워!]
[지역 소방본부 지원을 받아 완성된 명품 신!]
[제작진 측, 감사 인사로 경기 소방재난본부에 5억 기부!]
[마지막 2화! 정은정 작가는 재를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작가의 손에 달린, 금년도 최고의 캐릭터 재! 네티즌은 제발 살려달라고 비는 중!]
별의별 기사가 다 있었다.
스토리, 차기작 등등에 관한 얘기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스캔들 기사도 있었다. 핑크빛 기류를 선보인 재와 선고의 현실 사랑이 의심된다는, 지극히 말도 안 되는 기사였다. 물론 그 기사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직도 지영에게 ‘반항’하는 일부 언론이 있음을 네티즌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기사는 조금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금요일. 마지막 대전이 시작됐다.
* * *
제도 탈환.
재는 웃었다.
기가 막혀서.
“이게, 되네?”
“그러게. 제도 탈환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제도의 웅장하고 드높은 성벽에 서서, 이제 막 파종을 시작한 드넓은 논을 보며 재가 중얼거린 말을, 관영이 받았다. 그리고 그 말을 다시.
“우리도 이렇게 쉬울 줄은 몰랐다. 대체 어디까지 썩은 건지, 우리가 문 여는데도 이것들은 경계병 빼고 전부 자고 있더라. 쯔쯔.”
살아남은 백적파의 단원, 산조영이 받았다. 산조영은 창의 명수였다. 양쪽 눈을 가로지르는 검상이 인상적인 외모 때문에 까먹고 싶어도 까먹을 수가 없는 친구였다. 그리고 그 옆엔 쪼그리고 앉아 연초를 태우고 있는, 역시나 익숙한 친구가 보였다.
송헌.
제도를 탈출한 뒤 바짝 뒤로 쫓아 온 제국의 추적대를 유인하기 위해 가장 먼저 몸을 돌려 적을 향해 달려갔던 친구가 바로 이 친구, 송헌이었다. 솔직히 재는 송헌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송헌은 결국은 살아남았다.
물론 쉽게 살아남진 못했다.
크게 부상 당했는지, 송헌은 거의 주기적으로 입에 연초를 물었다. 그 연초의 냄새가 학소양이 태우던 것과 다른 것도 다른 거지만, 재도 익숙하게 접했던 냄새였다.
환영초.
강력한 진통 효과를 선사하는 대신, 불쑥 환각을 던지고, 나아가 내부 장기를 천천히 망가트리는 독초이자 약초다. 송헌이 이걸 모를 리가 없는데도 태운다는 건, 애초에 저 환영초의 도움이 없이는 힘들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곳에 있다.
가장 앞장서…… 성문을 열었다.
그런 송헌이 재의 시선을 받고 고개를 돌리며 말문을 열었다.
“뭐 그런 눈으로 보나, 대장?”
“그냥, 고마워서.”
“흐흐, 고맙기는. 내 옆구리에 길게 창을 박아 넣은 개X끼들한테, 복수하기 위해서 나선 거야. 그러니까 고맙다는 말은 받고 싶진 않아. 이건, 내 복수거든.”
“……그러냐, 알았다.”
“그래서 대장, 다음 작전은? 수성전인가?”
“…….”
송헌의 질문에 재는 고개를 저었다.
수성전?
제도가 이렇게 넓지만, 결국엔 한계가 있었다.
‘놈은 절대로 공성을 서두르지 않을 거야.’
재가 아는 후라면, 포위망만 만들어 놓고 아마 제도 안의 물자가 마를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뒤에서는 온갖 전략무기를 만들고, 심지어 농사까지 해가며 자원을 조달할 것이다. 공성이라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반드시, 그리고 빠르게 넘어서야 하는 상황이라면 공성전은 제법 할 만하다. 성이 넘어가더라도 적에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적이 달려들 때의 얘기다.
만약 달려들지 않으면?
안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게 불가능한 제도는 일 년을 버티기 힘들다. 그렇다고 문을 열고 나가 전면전을 벌인다? 그건 후가 양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연이 미치지 않은 이상,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터였다.
한다고 하면, 재가 목을 쳐서라도…… 막을 거고.
그런 상황이니 이대로 공성전으로 끌고 가는 건,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
“선제공격할 생각인가?”
산조영의 질문에 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의 제국군은 삼 주는 되어야 이곳으로 온다. 척후에 따르면, 제도가 넘어간 뒤로 진격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쉴 거 쉬면서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급할 게 없다는 뜻인 거다. 어차피 제도를 버리고 어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관영 지도 좀 가져와 봐.”
“여기.”
품에서 꺼낸 지도를 펼치는 관영.
백적파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재는 그걸 단도로 나무 판에 박아 고정했다. 그러곤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 천양 호수를 지나 천양 협곡으로 들어설 때를 노린다.”
“천양 협곡? 거기가 좋긴 하지. 근데 걔들이 병신도 아니고 설마 협곡 위에 조사 안 할까?”
“하겠지. 그런데 해도 뭐, 크게 문제는 없어.”
“왜?”
“이게 뭔지 알아?”
재는 품에서 가죽 주머니를 하나 꺼내, 그 안에서 새까만 가루를 보여주며 씩 웃었다.
“뭐냐, 그게? 물에 타 먹는 거냐?”
“화약이란 놈이다.”
“엉? 그게 뭔데?”
“이족 땅 너머 신비한 동방의 나라에서 만들어진 건데, 이게 생각보다 재밌더라고.”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되는데?”
“말로는 설명이 힘드니까, 직접 봐라. 이게 완성품인데, 자. 거기, 불 좀 줘봐.”
재는 가죽 주머니를 내려놓고, 손바닥에 가득 차는 쇠 구슬 하나를 들더니 수비병이 가져온 횃불을 구슬 위에 길쭉하게 나온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러곤 있는 힘껏, 성 밖으로 던졌다.
“모두 고개 숙여!”
그러곤 크게 외치며 몸을 숙였다. 그러자 재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성벽에 있던 병사들과 백적파가 급히 따라서 숙였다. 그렇게 몸을 숙이고 잠시 뒤, 콰앙-! 천지가 개벽하는 굉음이 울렸다.
“우악! 뭐시여!”
“염병! 뭐야! 적이냐!”
“전군 전투 준비!”
깜짝 놀란 백적파의 외침에 병사들이 움찔하며 무기를 강하게 쥐었다. 하지만 폭음에 놀랐는지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래서 재는 먼저 일어났다. 재가 일어나자 같이 고개를 든 백적파의 단원들은 모두 놀란 얼굴이 됐다.
“저기 저거 파편, 바위 아니냐? 거대한 바위 하나 있었는데?”
“그랬지. 근데 왜 저렇게 산산조각이 난겨? 허! 대장! 뭔데 그게?”
“저 커다란 구덩이는 뭐고 대체!”
재는 웃었다.
재는 어제 야밤에 제학 선생이 불러 그의 처소로 향했고, 그와 함께 제도를 나서서 조용한 곳으로 가 저 폭탄이란 것의 위력을 몸소 경험했다. 천지개벽의 굉음은 둘째 치고, 폭발력이 어마어마했다.
재는 어젯밤, 그 폭발을 보고 난 뒤 제학 선생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걸 구하느라, 대학자들 가문 몇 개의 기둥이 휘청거렸지. 끌끌.’
‘……이거, 쓸 데가 많겠습니다.’
‘내가 보아도 그렇다. 재. 나는 네가 이것으로 이 전쟁을 끝낼 방법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 폭탄? 이게 몇 개나 있습니까?’
‘한 궤짝이 있지. 보니까 안에 쉰 개나 들어있더구나.’
‘…….’
폭탄이라 불린 기물이, 쉰 개.
재의 머리는 밤사이 팽팽 돌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협곡이다. 단단한 바위에 이 폭탄을 박아 넣고.
“우리는 천양 호수 뒤쪽에 철저하게 숨는다. 그리고 선고와 송헌이 불화살로 절벽에 박아 넣은 폭탄에 불을 붙여 협곡을 무너트려 제국의 선발대를 잘라버리고, 우리는 후방으로 짓이겨 들어간다. 그리고 후의 본대를 앞에 두고, 천양 호수를 뒤에 둔 채…… 끝장을 본다.”
“…….”
“…….”
재의 말에 백적파의 얼굴에 스산한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백적파는 전원 살아남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살아남은 인원은 일 할이 채 되지 않았다.
관영, 송헌, 산조영을 포함해 고작 열이 전부였다.
살을 부대끼며 함께 생활했고, 작전에선 서로 등을 맡겼었던 동료가, 친구가, 전우가 그날 모두 전사했다. 그 원한은 뼈에 사무치다 못해, 심장과 뇌에 각인되어 버렸다. 그걸, 잊으라고? 그럴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들은 기다렸다.
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제국을 강타했을 때도,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칼을 벼렸고, 일신의 무력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떨쳐 일어나, 제도를 탈환하는 기적을 선보였다. 그러나 철천지원수인 후는 여전히 건재한 채로, 무려 이십만의 정병을 이끌고 제도로 오는 중이었다.
지루한 공성전이 될까 염려할 수밖에 없었는데.
재는. 백적파의 단주는 선제 타격을 결정했다. 생전 처음 보는 기물과 함께.
그렇게 피어난 스산한 살기.
그 살기를 정면으로 받으며, 재의 얼굴에도 이제껏 보여준 적이 없는 진득한 살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자, 이제…… 역적을 처단할 시간이다.”
솨아아…….
그 진득한 살기가 하늘은 부담스러웠는지, 먹구름과 함께 장대비를 내리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