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84화
484화. 전설로 가는(23)
별이 번쩍! 하고 눈앞에서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그 사이로 툭툭 떨어지는 붉은 방울이 몇 개. 지영은 인상을 쓰면서 뒤로 물러났다.
“아…….”
복면을 쓰고 검을 휘두른 액션 배우가 탄식을 흘리면서 그 자리서 바짝 얼어붙어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눈 위에서부터 익숙한 통증이 깨어났다. 이미 예전에 겪어 봤던 고통이다. 눈썹 부위를 커팅당하면 생기는 고통. 지영은 거울을 보지도 않았지만, 살이 쩍 벌어졌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짝 얼어붙은 액션 배우를 보면서 지영이 검을 내리자, 훈련을 지켜보던 임은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지영아, 아. 아아. 괜찮니? 응?”
“네, 누나. 괜찮아요.”
임은진의 옆으로 불쑥 들어오는 검은 그림자. 김진우였다. 액션 스쿨의 관장 김진우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다가와 지영의 상처를 살폈다.
“아…… 벌어졌네.”
화끈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이미 지영은 예상한 바였다. 예전에 신지와 할 때였나, 그때도 이렇게 이마에 커팅이 나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후우, 지영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연습 중이었다. 그러니 여유 있게 검을 휘둘러도 됐을 텐데, 반 걸음 나와 그어야 할 검을 한 걸음을 넘게 보폭을 잡아 나오며 휘둘러 버렸다. 그게 고개를 빼며 지영이 피한 간격을 전부 좁혀 버렸다. 그리고 지영도 좀 전에 전혀 예상할 수 없어서, 피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 하는 순간 이미 검이 눈두덩이를 쳐버렸다.
급히 댄 손수건이 피로 물들었다.
“일단 병원 가야겠는데? 후우.”
김진우가 이를 깨물며 한 말에 지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가 상당히 흐르고 있고, 벌어졌으면 가서 꿰매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다른 액션 배우가 급히 가져온 수건을 받아 이마에 댄 지영은 완전히 얼어붙어 있는 액션 배우에게 다가갔다.
지영이 다가오자 복면 안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왜소한 체구, 신장은 160 내외, 새까만 야행복? 그런 걸 입고 있는데 라인을 보니 여성 같았다.
“저, 괜찮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 그, 그게…….”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거고, 저도 좀 긴장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책임도 있고.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연습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고 그런 거죠.”
이대로 두면, 욕이란 욕은 있는 대로 다 퍼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 액션 배우가 실수한 건 맞는데, 그 실수 하나로 사람이 매장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왜? 이 연습 장면은 현재 SNS로 생방송 중이었다. 나의 무사님의 인기가 워낙에 대단해서 방송사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현장 촬영 요청이 쇄도했다. 그리고 이걸 계속 막기도 뭐해서, 오늘 하루 짧게 방송 현장에 SNS로 생방송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기자들도 기사를 쓰면 되는 거고. 진짜 신은 당연히 촬영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좀 전의 연습 장면이었다. 그런데 명절 간 몸이 굳은 건지, 아니면 경험이 없어서 몸이 굳은 건지, 그도 아니면 생방송 중이란 사실에 너무 긴장한 건지, 액션 배우가 실수를 해버렸다.
딱 한보다.
거리로 따지면 50㎝ 정도다.
이 간격을 잡지 못해 이 사달이 났다. 이미 SNS로 지영의 이마에서 피가 튀는 게 적나라하게 나갔을 테니, 잘못하면 저 배우는 진짜 매장당할 수도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서 지영은 배우를 위로했다. 안 그러면 진짜 뭔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였다. 화? 맞는 순간 올라온 통증에 이를 악물긴 했다.
하지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다.
이마에 번쩍! 하는 통증이 느껴지면서 반사적으로 바라본 액션 배우의 눈빛엔 숨길 수 없는 당황이 있었다. 고의적, 의도적, 이런 느낌은 정말 조금도 없었다. 지금도 정신을 못 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굳이 나서서 위로를 해줬다.
“지영아, 병원부터, 병원부터 빨리. 응?”
“네.”
임은진은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그녀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담당 배우가 다쳤다는 사실 자체가, 임은진은 관리 소홀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일단 상황은 현장에서 알아서 해줄 테니 지영은 얼른 근처의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20분 거리에 작은 병원이 하나 있었다. 거기서 사진을 찍고, 상처를 치료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렇게 치료받고 나왔을 땐, 이미 인터넷이 난리였다.
하필이면 생방송 중에 지영이 다치는 장면이 그대로 나가버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리고 역시나 지영의 이마를 때린 배우는 욕이란 욕을 모조리 퍼먹고 있었다.
“누나, 이거 어쩌죠?”
“끙, 인터뷰라도 해야 하는데, 당장은 그게 먹힐까 싶어. 그리고 지영이 넌 인터뷰도 안 하는 편이잖아.”
“그래서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어? 하려고?”
“해야죠. 실수 한 번에 사람이 매장당하게 생겼는데.”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이런 건 정말 문제라 생각하는 지영이었다. 지영은 고의와 실수를 구분할 수 있었다. 좀 전에 그 배우의 행동은 분명 실수였다. 긴장이든, 아니면 몸이 굳어서 그렇든, 그건 분명 실수였다.
물론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않은 건 분명 잘못이다.
이건 지영도 실드를 쳐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실수 한 번으로 한 사람의 직업이 완전히 아작나는 상황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필이면 한국은 이런 쪽으로는 가히 탑레벨이라고 봐도 좋았다. 뭐 하나 잡히면, 아주 죽을 때까지 물어뜯는, 그런 습성 말이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장담하는데 절대 자정작용이 일어나 진정되진 않을 것이다. 그건 100%…… 장담할 수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스태프의 연락을 받은 홍진아 감독이 날듯이 뛰어왔다. 대기실을 문을 부술 것처럼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게, 아무래도 어지간히 놀란 것 같았다.
“지영 씨! 괜찮아요?”
“문 부서져요. 감독님.”
“그건 물어내면 돼요. 그래서 눈은? 크게 다쳤어요?”
“아니요. 그냥 몇 바늘 꿰맸어요. 그거 빼면 괜찮아요.”
“진짜요? 아니, 아니지. 그거 꿰맨 것만 해도 큰일이잖아요. 아 정말 내가 이래서 현장 생방송 같은 거 하기 싫었는데!”
버럭 화를 내는 홍진아는 이어서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이번 일은 그녀도 정말 하기 싫었던 일이다. 기자들이 우르르 상주하고, 촬영 준비나 연습 중인 배우들을 찍는 건 솔직히 인기작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사실 나의 무사님은 그런 특권은 필요 없었다. 아니, 거절할 자격이 충분했다. 그러나 그런데도 받아들인 건, tvN의 드라마 국장까지 와서 부탁했고, 그 위에 라인까지 사정사정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짧게 1시간 정도만 보여주면 된다고.
그래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짧은 1시간 만에 결국 이 사달이 났다.
“후우, 후우……. 지영 씨. 오늘은 일단 신 미뤄줄게요. 가서 편하게 쉬세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더 촬…… 아. 안 되겠구나.”
지영은 괜찮다고 하려다가, 말을 바꿨다.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말하다 말고 느껴진 통증. 그리고 눈이 좀 뻑뻑했다. 이건 찢어진 부위가 붓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이미 한창 부은 상태였다. 이런 상태로 촬영은 무리였다. 왜냐하면, 갑자기 눈을 다쳤으니 장면 연결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화면상 멀쩡했던 배우가 다음 장면에 눈이 부어서 나온다? 그럼 당연히 장면이 튄다. 즉, 지금 찍어봐야 어차피 쓸 수도 없단 뜻이다. 그래서 지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기 빠지면 다시 나오겠습니다.”
“후우…… 정말 미안해요. 제가, 아주 제가 그냥…….”
뿌득! 빠드득!
이를 가는 홍진아 감독의 표정이 너무나 심상치가 않아서 지영은 조용히 짐을 챙겼다. 하지만 지영은 곧장 차로 향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어머, 벌써 부은 것 봐! 하는 걱정들을 일일이 받아주며 액션 스쿨 대기실로 향했다.
지영이 오는 걸 본 배우 한 명이 곧장 김진우에게 연락했고, 김진우는 여성 액션 팀 대기실에서 나왔다.
“병원 갔다 왔어?”
“네. 뼈는 이상 없고, 몇 바늘 꿰맸어요. 그거 빼면 괜찮아요. 아, 부은 것도 좀 있고.”
“후우…… 미안하다.”
“아니요. 미안은요.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저도 실수 제법 하잖아요. 그 배우님은 어때요?”
지영의 질문에 김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멘탈 터졌지, 뭐.”
“인터넷 봤나 보네요?”
“봤지. 다행히 얼굴은 안 나왔는데. 요즘 시대에 복면 쓴다고 못 알아내겠냐?”
“음…… 그러네요.”
“일단 홈페이지에 관원 명단에서 빼서 얼굴 가렸는데, 아마 먼저 본 사람도 있을 거야. 그리고 알아내는 데 얼마 걸리지도 않겠지.”
“…….”
이런 일이 생기면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든 정체를 밝혀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결국은 알아낸다. 빠르면 몇 시간 만에 알아내고, 길어봐야 며칠이다. 진짜 길게 잡아도 일주일이다. 그 안에 반드시 그 배우의 신상은 까발려질 것이다. 그러니 일주일 안에 해결을…….
아.
“저, 진우 형. 우리 연습하는 거, 카메라로 담아 놓은 거 있어요?”
“그거? 다 있지. 우리도 복습하면서 수정할 때 참고해야 하니까 웬만한 건 다 가지고 있어.”
“오. 잘됐다. 형.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는데, 제가 기간 추려줄 테니까 그때쯤에 제가 실수한 장면 좀 찾아주세요?”
“그거? 그건 왜…… 아. 음.”
김진우는 지영이 한 말을 금방 이해했다.
실수?
그건 누구나 하는 거다. 지영이라고 설마 실수가 없었을까. 지영도 실수한다.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 건,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점과 그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주연 배우인 지영이라는 점이었다. 액션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 작품인데, 설마 지영이 모든 연습과 장면에서 완벽했을 거라 생각하면 그건 진짜 오산이다.
지영도 연습을 포함해 실제로 신 촬영 중에도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래서 NG를 낸 적도 있었고, 배우가 지영의 실수에 검을 제대로 맞고도 참고 버텨서 끝내고 고개를 몇 번이나 숙여 사과한 적도 있었다.
지영은 그걸 찾아서 올릴 생각이었다.
이번엔 직접 올릴 예정이었다.
“고맙다…….”
“고맙긴요. 당연히 해야죠. 저는 이런 거, 정말 싫어해요.”
지영의 말에 김진우는 푸근하게 웃었다. 그에 지영도 비슷하게 웃어주고는, 꾸벅 인사 후 자리를 떴다. 아직 터진 멘탈이 회복 전일 테니 위로하는 건 나중에 하기로 했다. 차가 출발하자 지영은 생각을 더듬어 자기가 실수했을 시기를 대충 추려서 김진우에게 보냈고, 그다음 SNS를 확인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괜찮냐는 질문이 정말 많았다.
지영은 괜찮다는 글을 올릴까 하다가, 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숙소에 도착해 찢어진 부위에 물이 닿지 않게 조심히 씻고 나온 지영은 어머니에게 온 부재중 전화를 보곤 바로 콜백했다. 어머니는 거의 바로 전화를 받으셨다.
-어, 엄마야! 머리 괜찮니?
“네, 그냥 조금 찢어졌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래? 후우, 엄마가 깜짝 놀라서……. 진짜 괜찮은 거 맞지?
“그렇다니까요? 며칠 지나면 싹 나을 거래요.”
-후우…… 다행이다. 조심히 좀 하지!
“하하, 죄송해요.”
이번 일만큼은 자기가 잘못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다친 건 다친 거고,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 이건 얼른 잘못했다고 게 비는 게 맞았다. 몇 번이나 이어서 안심시켜 드리고 전화를 끊은 지영은 이번엔 끊자마자 다시 걸려온 양유진에게도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친구들에게도 괜찮다는 톡을 보낸 뒤, 지영은 잠시 쉬기로 했다.
이 시간이면 한창 신 준비 중인데, 이렇게 숙소로 와서 쉬고 있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그래도 눈을 감으니까 잠이 솔솔 왔다. 그렇게 한참 자다가, 지영은 격렬하게 울리는 진동에 깼다. 폰을 들어 액정을 보니 김진우였다.
“네, 강지영입니다…….”
잠이 깨지 않아 잔뜩 잠긴 목소리.
-어, 미안. 자고 있었어?
“네, 잠깐 잠들었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무슨 일은. 영상 찾아서 은진 씨한테 다 보냈다.
“아…… 감사합니다. 오늘 안에 정리해서 올릴게요.”
-그래, 고맙다. 진짜, 진짜로 고맙다.
“고맙긴요.”
부드럽게 웃으며 그 인사를 넘긴 지영은 전화를 끊고 일어나 역시 버릇처럼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몸을 풀어준 지영은 거울 앞에 섰다. 자고 일어났더니 확실히 아까보다 더 부어 있었다. 마치 시합이 끝난 복싱선수처럼 눈두덩이에 퉁퉁 부어서, 한쪽 눈 시야가 거의 막혔다.
“하, 하하.”
그 꼴이 웃겨서 그냥 헛웃음이 났다.
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지영은 옷을 차려입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괜찮냐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리고 지영이 괜찮다고 하자, 썰물처럼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에 또 헛웃음을 지은 지영은 임은진과 함께 영상을 확인했다.
빡!
-어! 괜찮으세요?
-어으, 괜찮아요, 괜찮아. 하하!
영상은 총 여섯 개였는데, 연습하다 지영이 간격을 잘못 잡아서 옆구리나 어깨를 제대로 때린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이거 올리는 거, 욕하고 싶으면 나도 욕해라. 그런 뜻이지?”
“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참…… 참 너답다. 진짜.”
“사람 변하면 죽는 거랬어요. 이거 영상 올려주세요. 코멘트는 따로 없어도 돼요.”
“그래, 알았어.”
임은진이 한숨과 함께 영상을 빠르게 업로드했다.
오랜만에 강지영의 공식 SNS에 올라간 여섯 개의 영상. 당연히 영상의 조회 수는 빠르게 올라갔고, 그걸 본 팬들은 아무런 코멘트도 없었지만, 지영이 이 영상을 올린 이유를 대번에 짐작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던 마녀사냥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