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81화
481화. 전설로 가는(20)
계약금, 오천만 불.
기사가 나간 당일의 환율로, 한화 630억대.
지영의 계약 소식이 알려졌다.
자정이 조금 되기 전에 미국과 한국에 동시에.
난리가 났다.
잠들려고 준비하던 모든 이들이 지인에 지인의 연락을 받고 폰을 들어 인터넷에 접속해 기사를 클릭했고, 저마다의 감상평을 남기기 시작했다. 무난한 밤이, 뜨거운 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쳤다……. 육백억. 와.
-저번에 누가 그랬더라? 거품 X나 껴서 백억은커녕 십억도 받기 힘들 거라고?
-그거 지영이 오랜 안티 기자들 ㅋㅋㅋ
-근데 진심 미치긴 미친 듯……
-포드 계약은 그냥 껌값이네 ㅋㅋㅋ
-지영이 이번에도 저 돈 다 기부할까?
-이번엔 안 할 듯 ㅋㅋㅋ 육백억을 뭔 수로 기부함? ㅋㅋ
-그건 인터뷰 영상에 나옴. 이번엔 비즈 엔터랑 연희 스포츠 재단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음. 아마 그쪽으로 다 들어갈 듯.
-비즈 엔터가 먹는 거야 당연한 거고. 연희 스포츠? 거기에 기부?
-ㅇㅇ 그렇게 못 박았음. 자긴 지금 출연 중인 작품에서 얻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리고 기부는 아님. 지영이 거기 이사임.
-하긴…… 나의 무사님이 어지간히 잘 팔리나요? 일 년 내내 재방에 삼방에 사방도 할 건데 돌아가면서.
-지영이는 시즌2부터 심지어 러닝 개런티임. 아마 떨어지는 거 장난 아닐거임 ㅋㅋ
-지금도 몇십억은 충분히 벌었을거임. 앞으로도 그 정도는 넘게 벌 거고. 그리고 이번 계약 내용 자세히 보면, 시즌3까지 계약했음. 이때 2랑 3은 따로 계약임. 시즌1 성적 보고 계약금에 차이가 나겠지만, 그래도 아마 100억대 이상으로 계약할걸요?
-진심 미쳤네…….
-이 정도면 유도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음? 차라리 배우로만 활동하는 게 훨씬 더 국위 선양하기 쉬울 듯…….
-노노. 이성진이 방송 나와서 그랬는데, 황금세대 전체가 목표한 바가 있어서 유도는 절대 그만두지 않을 거라 그랬음.
-목표가 뭔데요?
-모름ㅋㅋㅋ 거기까진 말 안 했음. 근데 뭔지는 알 것 같음.
-뭔데요?
-솔직히 운동에서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요. 유도가 축구나 야구처럼 세계적인 리그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결국 남은 건 몇 개 없음. 그중 하나가 올림픽인데, 이미 올림픽에서 전원 금메달을 땄음. 그럼? 딱 두 개임.
-그랜드슬램이랑 명예의 전당?
-ㅇㅇ 그거밖에 없음.
-인정. 그거네 ㅋㅋㅋ
-그럼 그거 이루면요?
누군가의 질문에 다들 잠시 침묵하다가, 답을 내놨다.
-아마, 은퇴 아닐까요?
-ㅇㅇ 그럴 듯…….
-헉…… 왜요?
-목표를 이뤘으니까요. 지금 애들 보면 운동에 굳이 미련이 생길 정도도 아니잖아요. 솔직히 지금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무패 행진 중인데.
-그리고…… 솔직히 업계에선 그 목표 이루면 은퇴해 주기를 바라는 중임. 애들이 너무 생태계 교란종이라, 다른 선수한테 기회가 없잖아요. 거기에 나이가 무려 이제 스물둘임. 작정하면 올림픽 최소 두 번은 나갈 수 있는 나이임. 무리하면 세 번도 가능하고. 그럼 그 체급 선수들은 전부 손가락만 빨아야 함. 아니, 그만두는 게 나을 수도 있음. 선수로 이룰 수 있는 꿈도 희망도 없으니까.
-그 정도면 생태계 교란종이 아니라, 파괴종이죠…….
-ㅇㅇ 그러네……. 생태계 파괴종. 시발 ㅋㅋㅋㅋ
-현역이신 듯?
-넵. 73임. 선발전 예선전에서 지영이한테 세 번 깨짐.
-…….
-…….
-다음에는 이길 거임. 이런 다짐이 안 생김.
-힘내세요…….
-파, 파이팅…….
-아니, 댓글인데 꼭 그렇게 말 떠는 것처럼 써야 하나?
-파, 파이팅!
-염병…….
자정이 넘어서도 화르르 불타올랐다. 오죽하면 공중파 방송에서도 그 시간에 뉴스 속보! 타이틀을 걸어 정규방송 아래 자막으로 내보냈을 정도였다. 내용인즉슨, 이랬다.
[속보! 배우 강지영 레인 스튜디오와 600억 계약!]
MBS에서 먼저 자막 속보를 내보내자, 10분 정도 흘러, 거의 모든 방송에서 똑같이 자막을 내보냈다. 보통 이런 건 자막으로 나올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정말 요즘 대기권마저 돌파했다고 말할 정도로 인지도를 올리는 중인 강지영이라는 점, 출연료가 무려 600억이 넘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보통 저 정도 금액은 기업 간에 계약일 때나 나오는 금액이다. 아니면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의 이적료든가. 하지만 이적료도 결국엔 구단과 구단의 거래다. 선수와 에이전트가 10% 정도 먹긴 하지만, 결국 그 거대한 금액을 선수가 다 가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배우의 출연료는 달랐다.
계약하는 순간 세금을 제하고 오직 소속사와 배우의 몫으로 남는다. 소속사가 스포츠로 따지면 에이전시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이 정한 세금을 떼도 수백억이다. 절대로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런 거대한 계약금으로 인해, 정말,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출연료 계약이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정도를 넘어선, 그야말로 미친 출연료 계약이었다.
그에 들뜨기 시작했다. 아시아 배우는 물론, 헐리우드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금액이었다. 007로 유명한 배우가 1100억이 넘는 계약이 있었지만, 그 아래로는 쭉쭉 떨어진다. 순위로 따지면 2위에서 3위 정도다.
그런 초대박 계약을 한 배우가, 한국 배우다.
국뽕이 어마어마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국뽕이 가장 철철 넘쳐 흐르는 곳은 당연히, 현장이었다.
* * *
축하가 끊이지 않았다. 현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모든 스태프가 지영의 계약에 환히 웃으며 축하를 건네왔다. 지영은 그걸 귀찮아하지 않고 일일이 똑같이 감사하단 말로 받으며 대기실로 들어왔다.
“이야! 강 배우! 계약 축하해!”
“아 지영아! 축하해, 진짜!”
평소 조용조용한 강서훈마저 지영이 대기실로 들어오기 무섭게 찾아왔다. 심수정도 같이 와서 지영의 앞에 앉으며 만면에 웃음을 띄워놓고 지영의 계약을 축하해 줬다. 두 사람의 얼굴엔 정말 사심이 없었다. 그게 지영은 정말 신기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촬영은 언제부터야?”
강서훈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 일정은 안 정해졌어요. 제 운동 스케줄도 있어서, 그건 조율이 좀 걸릴 것 같던데요?”
“그래? 바로 들어가는 건 아니겠네, 그럼?”
“네, 추후 발표 있겠지만, 한 해 나오는 레인 스튜디오 시리즈 세 번째가 될 것 같아요. 아니면 내년 초나.”
“그래도 내년엔 들어가겠네, 그럼.”
“네. 세계 선수권이랑 무신이랑 하나는 할 것 같아요.”
“이야. 와. 설렌다. 지영이 네가 헐리우드 메인 주인공이라니. 진짜, 진짜…… 설레. 하하.”
강서훈의 말에 지영은 웃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신기했다. 강서훈은 인상이 되게 싸늘하다. 이 사람의 무표정은 차갑게 식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늘했다. 그런 사람이 축하하고, 지영이 주인공이 된 게 같은 배우로서, 한국인으로서 설렌다는 말을 하니까, 그게 참 적응이 되지 않았다. 지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심수정이 또 말문을 열었다.
“다른 주연은? 여자 주연은 정해졌어? 소월영 박사 역은 누가 맡아?”
소월영.
무신 척위준의 연인이며, 조력자다.
극 중 설정으로는 8살인가 많은 연상이며, 이미 추적자들에 베일에 싸인 천재 과학자란 설정으로 몇 차례 등장한 적이 있었다. 기계로 만든 목소리로만. 그런 소월영 역은, 공식 발표가 나간 직후 대한민국 여배우들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이제는 세계 3대 히어로 시리즈 스튜디오에 속한 레인의 여주인공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직 결정 안 됐어요. 후보도 아직 안 나왔을걸요?”
“어? 왜?”
“음…….”
그걸 설명하려면, 자기 입으로 다니엘 감독이 제가 아니면 이 작품 안 찍겠답니다. 이 말을 해야 한다. 그게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라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행히 심수정 옆에는 아주 눈치가 빠른 강서훈이 있었다.
“다니엘 감독이 지영이랑 계약 안 되면 아예 안 찍는다고 못 박았잖아. 후보 뽑아놓으면 뭐해. 지영이가 안 하면 다 필요 없는 건데. 아마 조연들 리스트도 안 뽑았을걸?”
“아하? 그럼 이번에도 이연 언니가 할까요?”
“이미지 달라서 안 될걸?”
“이미지요? 뭔 이…… 아.”
도리도리.
“응, 몸…… 아니지. 라인 차이가 크지. 다니엘 감독이 캐릭터도 원작 고증을 철저히 따지겠다고 했잖아. 그러니 아마 연이는 힘들 거야.”
“그렇긴…… 근데 지영이 표정이 왜 그럴까?”
도리도리도리.
심수정의 질문에 지영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이들은 실수했다. 문을 제대로 안 닫은 실수를……. 그 열린 문틈 사이로, 눈을 게슴츠레 뜬 이연의 머리통이 빼꼼 들어온 건…… 꽤 됐다. 고로, 대화는 다 들었다.
“히약!”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심수정이 화들짝 놀라며 자지러졌고, 강서훈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대신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며 얼굴에 억지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지? 아닐 거야. 아니라고 해줘라, 지영아. 응?”
“맞아요. 맞을걸요. 맞다고 밖에 대답 못 해요. 미안해요…….”
“…….”
끼이익.
문이 조금 더 열렸고, 머리통만 좀 더 들어왔다.
“미안하네요.”
“으, 응?”
강서훈인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어색하게 대답하자.
“깡마른 수수깡에.”
“아니, 난 그런 말 안…….”
“앞과 뒤가 같은 절벽 평면TV라.”
쿵!
“했는데…….”
심수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강서훈은 뜻밖에도 곧장 폰을 꺼내더니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연이가 타이어 갈고 싶다고 했어. 보자…….”
“……역시, 형은 어른이네요.”
“그럼. 이런 건 선물만 한 게 없지. 차라면 끔뻑 죽으니까…….”
“좀 깨기도 하고요.”
“하하, 뭔 난 냉혈한인 줄 알았어?”
“적어도 이런 캐릭터는 아닌 줄 알았죠.”
“네가 지금 내 입장 되어볼래? 이렇게 되나 안 되나?”
“……아니요. 저라면 바로 무릎 꿇었을 겁니다.”
“현명하네.”
“형도요.”
강서훈은 곧장 타이어를 검색했지만, 심수정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대선배고, 이연의 인기에 비교하면 심수정은…… 달과 반딧불, 아니, 달과 모닥불 정도 차이가 있다. 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파급력이 강한 여배우 랭킹 1위가 아직도 이연이다. 근 1년간, 이 랭킹은 변동이 없었다. 반대로 심수정은 시즌3에서 미친 결단과 연기력을 보여주며 주가가 팍 솟구쳤지만, 그래도 10위에서 15위 언저리였다. 하지만 그런 인기의 급보다, 그냥 자기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 때문에 얼어붙은 심수정이었다.
“저, 저 어떡해요? 선배님! 저 살려주세요! 지영아, 언니 뭐 좋아해? 나도 선물 살까? 아, 아아!”
“각자도생.”
강서훈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떴다.
지영도 강서훈의 행동에 힌트를 얻어.
“결자해지.”
“…….”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새하얗게 재가 남을 때까지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심수정을 두고 지영은 밖으로 나왔다.
“연이 건수 제대로 잡았네. 수정이는 당분간 괴롭겠다.”
강서훈의 말에 지영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친하게 지내 지영은 이연의 장난기가 얼마나 심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대인배적인 성품도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좀 전의 이연은 조금 뾰로통해지긴 했어도 진짜 삐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이연이 아니었다. 그러니 심수정은 당분간 꽤 괴로운 나날이 될 게 분명했다. 그렇게 현장으로 걸어가는 중에 갑자기 강서훈이 폰을 내밀었다.
“지영아, 이거 봐. 한세영 소월영 배역 도전한단다.”
“아, 한세영 선배님.”
“알지?”
“그럼요.”
나이 30대 여배우 중에서 대표적으로 라인이 좋은 배우님이다. 대배우 김해수의 계보를 잇는, 연기력과 라인이 좋은 몇 안 되는 배우이기도 했다.
“장서정도 올렸네. 이야, 몸매 좋은 배우들은 다들 출사표 던지는구나.”
“음…….”
“대한민국에 몸매 좋은 배우는 아마 다 출사표 던질 것 같은데?”
“하하…….”
지영은 그냥 웃고 말았다. 민망하기도 했다. 무신 척위준 만화를 보면 나오는 소월영 캐릭터는 정말 육감적이란 말이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정말 피지컬 좋은 헐리우드 배우들이 떠오르는 캐릭터다 보니, 아담하거나 호리호리한 배우들은 강제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배우들이 농도 진한 스킨십을 과감하게 보이는 척위준의 파트너 배역을 탐낸다는 말을 농담처럼 건넨 거니,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강서훈의 말은 사실이 되어 있었다. 지영이 신 하나를 끝내고 나왔을 때 벌써 20명의 배우가 출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거기엔 이연도 있었다.
[벌크업 선생님 구함.]
이연이 SNS에 남긴 짧고 강한 출사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