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80화
480화. 전설로 가는(19)
회사로 돌아와, 레인 스튜디오에서 따로 나온 대표와 함께 진지하게 계약서를 검토한 뒤 정식 계약서에 사인하자, 다니엘 화이트와 제시 화이트는 정말 환히 웃으며 최종 시나리오와 대본은 나의 무사님 촬영이 끝나기 전에 보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어 다음 미팅 일정과 공식 발표 일정을 정한 두 사람이 떠났다. 두 사람은 이제 일주일간 한국에 체류할 예정이고, 그의 팀까지 한국으로 불러 이미 로케이션 후보지로 정해뒀던 곳을 돌아볼 예정이라고 했다.
화이트 부부가 떠나자, 지영은 정말 오랜만에 이선영에게 연락했다. 이선영은 신호가 세 번을 넘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어…….”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이선영의 목소리다.
그런데 전화 잘못 걸었다고 저러는 건, 100% 삐진 거다.
‘하긴, 요즘 정신없긴 했지…….’
제대로 연락한 지 너무 오래되긴 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아주 짧게 연락했던 걸 빼면, 거의 안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삐졌다. 그래도 강원도에서 레미를 소개할 때 부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 이선영은 아주 멀리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아마 기억도 안 할 것이다. 이 사람도 참…… 마이페이스니까.
“강지영의 공식 인터뷰 찬스가 필요 없다면, 전화 잘못건 게 맞네요.”
-너 이 씨…… 치사하게!
“그래서, 필요 없어요?”
-없겠냐!
버럭!
저렇게 화를 내지만 이미 칼자루는 도로 이쪽으로 넘어왔다. 지영은 손아귀에 단단히 쥔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공식 인터뷰고, 오늘 계약서에 사인한 내용이 레인 측에서도 기사를 낼 건데, 그 시간은 이미 확정됐어요. 즉, 시간 얼마 없다는 소…….”
-어딘데!
“회사요.”
-기다려……. 딱 기다려! 1시간이면 간다!
“천천히 오세요. 안전 운전해서.”
-뿌득…… 느는…… 그스브즈…….
뿌득! 까드득!
이를 가는 섬뜩하게 넘어왔지만, 지영은 여유만만이었다. 애초에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뭐, 싸움은 아니지만.”
지잉.
메시지가 와서 보니.
-방송 장비 챙겨가도 되지?
지영은 그 내용에 넵, 하고 짧게 답을 보냈다. 어차피 오늘 공식 기사가 난다. 미국에서도 어차피 날 기사라면, 한국에서도 나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그 부분도 조율했고, 단독을 터뜨릴 사람은 당연히 이선영이 됐다.
지인 챙기기?
그런 말이 나오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지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게 뭐 어때서? 아는 사람이, 아니, 아주 친한 누나가 기자다. 그것도 능력 있는 기자. 진짜 저널리즘을 장착한 이 나라에 몇 안 되는 참 기자가 이선영이다. 그리고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가 이쪽 방송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것도 이선영이었다. 지금의 강지영을 설명할 때, 이선영은 절대 빠질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니 챙기는 거다.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고.
“지영아. 메이크업하자. 아무리 그래도 민낯으로 인터뷰하는 건 아니니까.”
“네.”
통화하는 걸 들은 임은진의 말에 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메이크업을 받으러 이동했다. 회사에는 전담팀이 있어서, 30분에 걸쳐 말끔하게 변했다. 머리도 오래간만에 손질해서, 연예인 태가 났다.
“음, 역시. 현대의 마술 메이크업…….”
풉!
지영이 거울을 보며 중얼거린 말에 메이크업 팀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확실히 좀 낯설었다. 근래 메이크업을 받긴 했다. 하지만 정말, 풀메와 비교하면 10% 수준이다. 특수분장은 100%로 받아도, 화면에 화사하게 나오는 메이크업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지영이야 외모에 그렇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고, 여주인공인 이연도 메이크업을 최소한으로 받거나 아예 안 받는 판이라 세게 메이크업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거의 풀메에 가까웠다. 얼굴에 조금 보이던 잡티를 완벽하게 가렸고, 인터뷰할 미팅룸 조명에 철저하게 맞췄다. 그러다 보니 이런 모습이 역시 낯설다. 하지만 그래도 금방 적응했다.
이선영은 1시간 하고 20분 만에 도착했다.
“야! 너 이…… 대표님 안녕하세요.”
“호호, 어서 와요. 이 기자님.”
들어선 이선영은 지영에게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내려다가, 옆에 같이 앉아 있는 장세리를 보곤 자연스럽게 손을 내려 배꼽 인사를 했다. 이선영이 아무리 막 나가도, 장세리에게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찌릿.
치사하게 장세리와 같이 있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지영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형, 오랜만이에요.”
“어, 어어. 지영아. 하하, 오랜만이다. 그치?”
“네. 진짜 오랜만에 보네요.”
임은진은 카메라맨을 대동하고 왔는데, 그는 당연히 김선욱이었다. 김선욱은 이선영의 영혼의 파트너로, 둘은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한때 사선을 넘었다. 대기업 하나를 날리는 취재를 하던 당시에 둘은 정말 목숨을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이선영과 김선욱의 승리였다. 진짜 절대 부정하지 못할 증거를 용케 찾았고, 그룹의 회장을 감옥에 처박았다. 물론 회장이 들어갈 정도니 그룹의 중요 인사들도 줄줄이 소시지처럼 엮여 들어갔다. 사실상 그룹의 수뇌부 전체를 쳐냈던 거다. 수뇌부가 날아간 기업의 운명은? 뭐, 빤했다.
이는 기자 세계의 전설이었다.
도시 전설이 아니라, 진짜 전설.
물론, 너무 위험해서 이제는 누구도 따라 하지 않는. 아니, 못 하는 전설이기도 했다. 그런 일을 이선영과 함께한 게, 바로 김선욱이다. 몸이 호리호리해서 잘 몰랐는데, 실제로는 특수부대 출신이란 얘기를 예전에 이선영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줬다고…….’
신기했다.
그 정도면 정이 들 법도 한데.
그런데 둘은 철저하게 친한 파트너 관계다. 겉으로 티가 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속내는 당연히 숨겼다. 절대 이선영에게는 말하지 않을 예정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모르는 이선영이 카메라를 세팅하는 김선욱을 힐끔 본 뒤, 말문을 열었다.
“그, 호호. 대표님. 오늘 인터뷰는 어느 선까지 가능한가요?”
“그건 임은진 팀장이 말해줄 거예요. 저는 단지 오랜만에 이 기자 얼굴 보려고 잠깐 들어온 거라.”
“아하. 음, 쉽지 않겠군요. 그럼 이거…….”
이선영은 가방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질문 리스트였다.
보통 인터뷰는 이렇게 사전에 질문을 검열한다. 신인이나 인지도가 없으면 닥치고 하는 질문에 답해야 하지만,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는 연예인은 소속사 차원에서 질문도 검열한다. 곤란한 질문은 처음부터 전부 쳐내고 시작한다는 뜻이다.
지영은 장세리, 임은진과 함께 질문 리스트를 확인했다.
그러곤 그냥 다시 노트를 이선영에게 내밀었다.
“오늘 지영이 인터뷰는 편하실 대로 질문하면 돼요.”
임은진의 말에 이선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정말 그래도 괜찮아요?”
“네. 제가 아닌 지영이 의지입니다.”
“오…….”
반짝.
세상엔 지영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하지만 지영은 노출을 꺼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차단한 채 살았다. 이선영도 그걸 알아서 지영에게 한 번도 인터뷰 좀 하자는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가끔 얘기가 풀리는 건 거의 99% 지영의 소속사인 비즈 엔터에서 공식 오피셜을 SNS를 통해 발표하면, 그걸 토대로 기자들이 재생산한 기사였다.
물론, 이선영은 그렇게 쓴 기사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직접 취재한 기사가 아니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다. 지영과 통화 후 허락을 받고 기사로 낸 적은 있다. 그건 자신이 취재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럼 자리 비켜줄게요.”
“이 기자. 끝나고 우리 저녁 먹어요. 가지 말고. 알았지?”
임은진과 장세리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피해줬고, 그 사이 카메라 세팅이 끝났다. 세팅을 끝낸 김선욱도 밖으로 나갔다.
“이야, 강지영 인터뷰라……. 오랜만인데?”
“그러게요. 몇 년 만인지 기억도 안 나네요.”
“그러니까. 어휴, 기레기들. 그것들만 아니었으면 내가 강지영 전담 인터뷰어로 진짜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한탄하는 이선영을 보며 정말 사람은 참 쉽게 안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참 편하다. 나이 차이가 띠동갑 이상이 나는데도, 그냥 편하다. 지영에게는 없는 누나 같았다. 그럼 임은진은?
‘은진 누나는 착하면서도 엄한 선생님 느낌이지.’
둘은 그렇게 느낌이 달랐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강지영 씨?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시작부터 직구다.
기자는 연쇄살인마에게도 마이크를 들이밀며 왜 죽였습니까! 몇 명이나 죽였습니까! 를 외쳐야 하는 사람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깜빡이도 없이 들어온 질문에 지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답했다.
“이번에 레인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게 되었고, 그 사실을 제가 직접 말하고 싶어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어…… 레인 스튜디오면, 무신 척위준을 말하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이야…… 드디어! 큼! 비즈 엔터의 공식 SNS 계정엔 분명 나의 무사님에 집중하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던 거로 기억합니다. 마음이 변한 이유가 있을까요?”
“네. 일단 레인 스튜디오의 내년 작품 스케줄 때문에, 이번의 만남이 거의 마지막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할지, 말지를 정해줘야 했는데 여러 가지 제안과 배려를 듣고, 출연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제안과 배려라. 그게 어떤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담담한 이선영의 질문에, 지영도 담담한 표정과 어조로 답했다.
“제 스케줄에 최대한 맞춰주겠다는 배려, 제게 있었던 일에 힘을 실어주는 제안. 그 두 가지였습니다.”
“스케줄은 이해가 갑니다만, 있었던 일이라 함은……?”
“최근에 제게 있었던 일이요.”
담담한 대답이지만, 이선영은 여기서 눈을 빛냈다.
지영에게 최근 있었던 일이라 함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사토 레미.
일본 소녀의 문제다.
지영이 이민까지 추진했고, 지금은 충주에 있는 거로 알고 있었다. 그것도 지영의 본가 바로 옆 동에 살고 있었다. 그 집을 얻은 것은 당연히 지영이었다. 아파트 하나를 사는 것 정도야 별로 무리도 아니다.
그런 레미의 일에 도움을 준다? 이선영은 그게 뭔지 대충 느낌이 왔다.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러곤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많습니다. 레인 스튜디오에서 사상 최대의 금액을 베팅할 거라는, 그런 소문 말이에요.”
“음, 계약금 말하는 거죠? 많이 부담스러운 금액이긴 했어요.”
“혹시 그것도 오픈 가능합니까?”
“어차피 레인에서 공식성명 발표하면 알게 되실 얘기니까.”
지영은 메모지 하나에 금액을 적어 건넸다.
그리고 그걸 받아본 이선영은 순간…… 버퍼링에 걸렸다.
“어, 어어…… 이, 이 금액이 진짜 맞나요?”
“네. 오늘 사인했으니까요.”
“아…… 이, 이건 정말 너무 역대급인데요? 한국 배우에게 정말 레인에서 이 정도로 베팅했어요?”
“네, 감사하게도요.”
“이야…….”
이선영은 정말 놀랐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사실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는 지영이 적어서 보여준 액수보다 더 컸다. 하지만 그녀가 따로 알아본 결과 지영이 그 정도 금액을 받을 가능성은 없었다. 일단, 커리어가 부족했다.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이 헐리우드나 그래미에 도전하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성과는 미미했다.
간혹, 초대박이 터진 경우도 있지만, 그 외에는 열에 아홉 정도는 실패하고 돌아온다. 그럼 거기서 돈을 벌 수 있긴 할까?
‘설마…….’
강남 스타일처럼 뜨는 경우가 아니라면, 세계를 호령한 아이돌처럼 활동한 게 아니라면, 패러사이트처럼 시상식을 진짜 씹어 먹은 게 아니라면, 쓰고만 온다. 유명한 아이돌도 야심 차게 미국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인지도야 올렸을지 몰라도, 결국엔 실패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결과 한국에서의 인기는 다른 걸그룹에 거의 대부분 뺏겨버린 상태였고, 결국 천천히 잊히는 그룹이 됐다.
그렇듯, 미국 진출은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그 이유야 수도 없이 많지만, 결국은 문화 차이였다. 이선영은 그걸 색깔 차이라고 불렀고.
그런데 그 차이를 극복하고, 아직 거기서는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데……. 그래서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진짜 수백억을 받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생각이 틀렸다.
“오천만 불이라……. 어마어마하네.”
상상도 안 되는 액수다.
그 돈이면, 한국에서 진짜 규모가 큰 상업 영화를 몇 편이나 찍을 돈이었다. 그런데 그걸 작품 하나 캐스팅을 위해 태웠다. 연예계 전문 기자는 아니지만, 그녀는 그래도 이게 정말 말도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정말 역대급 계약이네요?”
“감사하게도요.”
“후후, 자랑스럽네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강지영이란 한 인간의 아는 지인으로서.”
“감사합니다.”
“작품 내용에 관한 건 아직 엠바고가 걸려 있을 거고, 그래도 혹시 말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이선영의 말에 지영은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딱 한 마디로 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역사를 배우게 될 겁니다.”
“네?”
“…….”
이선영의 반문에 지영은 그냥 웃음으로 답했다.
있다, 그런 게.
옆 나라 사람들이 보면, 입에 거품을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