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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79화 (47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79화

479화. 전설로 가는(18)

그리고 그렇게 기울어지게 된 이유에는.

딸랑.

“어후, 늦었지?”

“아니요. 시간 아직 넉넉해요. 어서 오세요. 대표님.”

저 사람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장세리는 코트에 내려앉은 눈을 쳐내며 임은진의 옆에 앉았다. 그러곤 바로 테이블 위에 있던 계약서를 훑어봤다. 거기에는 계약금이 명시되어 있어서.

“오, 오천만 불? 잠깐, 이게 그럼 얼마야……. 허, 허허. 육백억 가까이 되는 거네?”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며 놀랐고, 표정도 그와 비슷하게 변했다. 그러곤 임은진과 지영을 잠시 보더니,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이거 정말. 이건 정말 놀랍다……. 기사로 많이 떠드는 걸 보긴 했는데, 진짜 육백억이라니…….”

“아마 레인 스튜디오에서 쓴 맥시멈일 거예요. 여기서 계약금 협상은 더는 없어도 된다고 보시면 돼요.”

“이 정도나 질렀는데 협상하자는 건, 그건 하기 싫다는 거지. 그래서 지영이 네 마음은?”

장세리의 질문에 지영은 이번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려고요. 저도 은혜 좀 갚고 싶기도 하고.”

“응? 무슨 은혜?”

“소속사에 대한 은혜요. 포드 계약은 전부 기부해 버려서 회사에 도움이 안 됐잖아요. 그러니 이번에는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아, 물론 그런 마음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 작품은 해보고 싶어요.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거든요.”

“아, 처음에 한 말 때문에 나 또 화날 뻔했네. 일단 작품을 해보고 싶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앞에 한 말은 내가 변명 좀 하자면, 지영이 너, 너 하나로 우리 회사 주가는 물론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

“음, 자세히는요?”

“나의 무사님 시즌 1, 2. 그리고 지금 3랑 예인으로 네 몫으로 들어오는 수익이 분기마다 직원들 전부 보너스 잔치를 하고도 남을 정도야. 시즌1이야 계약 자체가 단발성 계약금으로 받았지만, 시즌2는 러닝 개런티로 가자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 그 수익은 지금도 들어와. 게다가 재방, 삼방 출연료는 물론 웹플릭스 수익도 너에게 엄청나게 들어오고. 지영이 너 지금 부자잖아?”

부자잖아? 하고 묻는 말에 아닌데요. 할 수 없었다.

통장 자체는 어머니가 관리하고 있고, 지영은 정말 부족하지 않게 용돈을 받아 쓰는 입장이다. 그리고 계좌에 들어가서 얼마가 들어갔는지, 그것도 확인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산서는 받아본다. 그래서 대충 얼마가 들어왔는지는 알고 있었다. 작년, 재작년, 지영은 확실히 많이 벌었다. 억 소리 이상으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영에게 배당될 돈은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아니, 그냥 쌓이고 있었다. 남극에 쌓인 눈처럼.

“그중 3할이 우리 회사로 들어와. 너랑 우리 회사 계약이 칠 대 삼이니까. 그럼 그게 적을 것 같니?”

“음…… 그래도요. 포드 건만 해도 제 독단이었잖아요. 그 돈이면 회사를 더 키울 수도 있었을 거고요.”

“어이구, 그거 아니어도 충분해. 애초에 애들 지원하려고 만든 회사지. 키우려고 만든 회사도 아니야. 나 하나, 혹은 내 도움이 필요한 애들 지원하려고 만든 회사고.”

장세리는 이런 점이 좋다.

이 사람은 물욕이 없었다. 승부욕은 끝장나는 편인데, 그 승부욕이 오히려 물욕을 완전히 삭제한 거로 보였다. 게다가 장세리 본인이 리치 누나, 혹은 리치 언니로 불릴 정도로 부자다. 그녀가 하는 방송 활동? 사실상 취미에 가까웠다. 그래서 욕심이 적고, 그런 모습에 오히려 팬이 달라붙는 거다.

게다가 종목도 한몫했다.

한국은 골프가 굉장히 중요한 사교 스포츠였다. 오죽하면 골프장에서 계약이 성사되는 경우가 다반사라 할 정도로, 사업에는 골프가 정말 중요했다. 괜히 드라마를 보면 좀 있는 캐릭터가 사무실에서 골프를 치고 그러는 게 아니었다. 그건 설정이라기보단, 현실 고증에 가깝단 소리다.

그런 종목에서 유일하게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사람이 장세리였다.

그래서 그녀는 취미에 가깝게 방송 활동을 하는데도, 시청률이 몰렸다. 물론 그렇다고 책임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철저한 개인 종목을 한 덕분에 책임을 지는 법은 이미 저절로 탑재되어 있었다.

“그러니 회사 걱정은 말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지영이 네가 중요하지. 하기 싫은 거 핑계나 변명대면서 하는 건 내가 반대야.”

“…….”

와아…….

지영은 그냥 감동한 반면, 임은진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며 탄성을 흘렸다. 그만큼 장세리의 말은 대단했다. 그래서 지영은 웃었다.

“할게요, 이 작품. 대표님이, 아니, 선배님이 그렇게 말하니까 더 하고 싶어졌어요.”

“뭐니, 그 청개구리 심보는?”

“이렇게라도 갚고 싶은 거죠. 대신 제대로 할게요.”

“그래라, 그럼. 후후. 근데 너 시합은? 스케줄 꼬이는 거 아니니? 너 그랜드 슬램 목표라 세계 선수권이랑 아시안 게임은 뛰어야 하잖아. 이번 작품 끝나면 바로 세계 선수권 준비 들어갈 거고. 괜찮겠니?”

“그만큼 더 노력해야죠.”

“아니, 스케줄이 너무 빡빡할 텐데? 너 그러다 번 아웃 온다?”

장세리의 걱정스러운 표정에도 지영은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세계 선수권이 열리는 날은 매해 다르다. 이번 세계 선수권은 좀 늦게 열리는 거로 알고 있었다. 거기에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나의 무사님은 지금도 강행군이었다. 연초에 열리는 2차 선발전과 4월이나 5월쯤에 열리는 최종선발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지영이야 점수가 제법 되어서, 이 두 선발전만 제대로 해내면 세계 선수권 출전은 문제가 없었다. 거기에 지영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도복을 못 입은 지 제법 됐고 폼도 좀 떨어진 느낌이지만, 아직 잊지는 않았다.

유도.

참으로 애증의 스포츠다.

하지만 그런데도 지영은 목표한 바를 이룰 때까지 유도를 놓을 생각이 없었다.

“괜찮습니다. 아직, 건강해요.”

“다들 원래 그렇게 얘기해. 에휴. 일단 스케줄은 최대한 조정해 보자. 무신 하고 싶은 마음이 큰 거 같으니 세계 선수권을 아시안 게임이랑 같이 끝내는 것도 생각해 보자고.”

“네.”

아직 방법은 많았다.

장세리는 지영이 얌전하게 대답하자 계약서를 꼼꼼히 살폈다.

“아하. 시즌3까지는 반드시 계약해야 한다는 조항이 붙어 있네?”

“몇백억을 베팅하는데, 단발성으로 끝내는 건 곤란하지 않겠어요? 적어도 포드처럼 3년은 계약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렇겠지. 그때마다 협상은…… 가능한데. 이땐 당연히 시즌1 성적을 보고 정하겠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지영이라면, 단순 티켓 판매도 손익분기점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그래?”

“네. 지금 지영이는…… 정말 최고거든요. 거기에 다니엘 화이트 감독의 능력도 상당하니 좋은 시너지가 날 거고요. 문제는 무신이란 작품이 가진 잔인성인데, 이게 문제예요. 지금 나의 무사님 캐릭터보다 더 딥한 캐릭터가 될 건데, 그건 지영이 이미지와도 맞지 않은 것 같아서요.”

“음…….”

임은진의 고민을 지영은 사실 해본 적이 없었다. 캐릭터. 배우의 이미지. 이건 매니저가 반드시 관리해야 하는 축에 속했다. 배우도 자기의 이미지를 확실히 챙겨야 했다. 이미지라는 것은 얼굴 그 자체와 같았다. 배우의 이름과 같기도 했다. 한 번 굳어지면, 그걸 깨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너무 강렬한 캐릭터로 이미지가 고정되어 그걸 깨는데 고생한 배우가 한둘이 아니었고, 그걸 깨지 못해 그대로 잊힌 배우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이미지는 반드시 관리해야 했다. 지영이라고 이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영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지영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을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괜찮아요. 어차피 저는 맡을 수 있는 배역이 한정되어 있잖아요? 그럼 차라리 잘하는 것만 하고 싶어요. 강서훈 선배님처럼요.”

“아…….”

“그런 의미로 저는 악역도 괜찮아요. 무신 척위준 같은 캐릭터도 괜찮고요.”

“하지만…… 음, 일단 알겠어.”

임은진은 더 이상 지영을 설득하지 않았다. 아니, 설득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아는 강지영은 한 번 정하면, 진짜 큰일이 터지지 않는 이상 그 길로 직진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말이다.

그걸 아니 일단 이건 보류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다니엘 화이트의 연출 기법을 보면, 잔인성에는 재능이 없었다. 그는 잔인한 장면도 오히려 미화한다. 아마 일본제국의 악행은 적나라하게 가도, 척위준의 전투 연출은 그 정반대로 갈 거로 예상됐다. 그러니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조율하며 맞춰봐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은진 씨는 아직도 고민이 많나 보네?”

장세리의 말에 임은진은 숨도 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대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영이한테 부하가 많이 걸릴까 봐 그래요. 지영이는 안 그래도 몇 년째 강행군을 해왔잖아요. 유도는 지영에게 본업과도 같지만, 반대로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아주 좋은 공간이에요. 저는 아직 한 번도 지영이가 도복 입었을 때보다 더 즐거워할 때를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유도를 1년 가까이 못 하게 되면, 제 생각엔 지영이 멘탈에 분명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

“음. 일리가 있네. 내가 봐도 그래.”

두 사람의 대화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증의 대상인 게 유도인 건 맞지만, 그곳이 해방구인 것도 맞았다. 살아 있음을 가장 진하게 느끼는 곳이 매트 위라는 건, 정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걸 오랫동안 봐온 임은진은 매트 위에서 가장 환히 웃는 게 강지영이란 배우임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지영이의 스케줄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축구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고, 반년 이상을 시즌에 투자하지만, 그 시즌이 끝나면 새 시즌이 시작할 때까지 철저하게 정비할 시간을 주잖아요. 그런데 지영이는 그런 게 없었어요. 작품이 끝나면 거의 곧바로 시합 준비에 들어갔어요. 그것만 해도 정신적, 육체적 조화가 깨질만한 일인데 그래도 버틴 건 그곳이 지영이의 스트레스 해방구라서 그랬어요. 그런데 1년간 그 해방구의 방문이 금지된다? 그럼 분명 문제가 생길걸요?”

“…….”

그녀의 말을 장세리는 허투루 듣지 않았다.

임은진은 배우 케어에 있어서는 베테랑이다. 웬만한 전문가보다도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주먹구구식 케어가 유행할 때도 그녀는 병원을 포함한 전문가와의 연계로 배우의 정신을 맑게 지켜왔다.

“그럼 은진 씨가 보기에 지영이는 지금 어때 보이는데? 지금도 문제 있어 보여?”

힐끔.

장세리의 질문에 임은진이 지영을 바라봤다. 솔직하게 얘기해도 되냐는 시선이다. 그래서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이번에도 고민 없이 곧장 말문을 열었다.

“문제는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철저하게 숨겨요. 절대로 그 문제가 티가 나지 않게요. 레미의 일로 지영이가 받은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어요. 그런데 처음에 소식 접할 때부터, 한결이가 해결했을 때까지 그 처음을 빼고는 철저하게 숨기더라고요. 모르는 사람들이 봤으면 아마 지영이가 단순히 레미의 일로 화가 많이 났구나. 정도로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아니에요. 지영이 조금만 더 나갔으면 예전에 라피앙 씨 때처럼 쓰러지고도 남았어요.”

“…….”

한계 이상의 스트레스로 인한, 블랙 아웃.

당시 지영은 처음으로 까무러친다는 게 뭔지를 경험했다. 회귀 전, 이성진의 사고 소식에 멘탈이 완전히 터졌을 때도 지영은 블랙 아웃을 경험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땐, 아예 터지다 못해 의식까지 끊겼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요. 저는 솔직히 힘들어도 세계 선수권은 뛰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지영이가 버틸 수 있어요.”

“음, 여기 보면 내년 하반기에 개봉 예정인데. 그럼 이 스케줄에 못 맞출 것 같은데?”

“그걸 해결하는 게, 제 몫이죠. 나의 무사님이 끝나면 지영이는 세계 선수권에 올인하고, 선수권이 끝나면 그때 다시 척위준을 준비하는 스케줄을 마련해 볼게요. 이걸 해결 못 하면, 전 지영이 이번 계약 반대예요.”

임은진의 말에 장세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전권을 위임합니다. 임은진 팀장님. 지금처럼 지영이, 잘 부탁해요.”

“후후, 믿고 맡겨주세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지영도 웃었다. 기껍고, 좋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회귀가 정말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 황금세대뿐만이 아니라, 연인과 동생, 이연, 임은진, 장세리, 요즘 조금 연락을 못 한 이선영과 같은 지인까지.

이건 축복이었다.

지영은 새삼 이 축복을 깨닫고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 고마운 마음을 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감사합니다.’

가끔. 정말 가끔, 꿈에 나와 대견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가시는 그분에게.

그날 저녁. 이선영 발 속보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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