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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78화 (47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78화

478화. 전설로 가는(17)

다니엘 화이트는 앞에 앉은 지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 청년은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정말 신기했다. 이 바닥, 헐리우드에서도 날고 기는 수많은 신예는 물론 인지도가 상당한 배우들도 자기 앞에 서면 긴장하게 마련이다.

이유는 하나.

영화는 감독의 영향이 절대적이라, 어떻게든 잘 보여 캐스팅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다니엘 화이트처럼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그러쥐는 감독은 그 세계의 왕 중 하나였다. 그래서 정말 웬만한 대배우가 아니면 자기 앞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근래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무신 척위준을 찍기로 했다는 것이 결정 나자, 정말 엄청나게 많은 연락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꽤 대단한 배우들도 있었다.

그들은 안부를 물으며 한번 보자고 했고, 직접 만난 이들도 있었다. 이 바닥에서 계약만 되면 적어도 수백억은 받는 배우가 그중에 둘이나 있었다. 그런 배우들도 자기 앞에서는 좀 긴장한 기색이 보였다. 그런데 지영은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냥 한없이 차분하기만 했다. 그게 그는 정말 신기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이 배우가 그간 보여준 행동은 결단코 일반적이지 않았다. 특히 독일에서 보여준 그 희생정신과 얼마 전에 일본에서 보여준 그 책임감은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줬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강렬한 떨림. 그냥 이 사람이다란 느낌이 절로 날 정도로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해줬다. 특히 이번 일본 사태를 보며, 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영화 준비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이번 무신 척위준 같은 경우도 한두 달 준비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대규모 엑스트라의 준비, 세트장 준비, 로케이션까지, 거기에 배우 섭외 등등으로 넘어가면 반년도 부족하다. 가장 골치 아픈 투자야 레인 스튜디오 작품이니 넘어가도, 그 외에 준비할 것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그는 공언한 것처럼 강지영이 아니면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을 생각이 없었다.

혹시 몰라서 한국어와 영어를 잘하는 모든 배우를 검토해 봤지만, 역시 강지영만큼 영혼을 울리는 배우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오늘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단 모든 것을 오픈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마음먹음으로써, 2라운드의 공이 울렸다.

“지영, 일단 계약금부터 얘기하겠습니다. 레인 스튜디오는 지영에게 오천만 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얘기하며, 그는 지영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봤다. 한두 푼이 아니라 무려, 오천만 불이다. 한화로 따져도 육백억 이상이다. 현재 헐리우드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로버트의 금액을 뛰어넘은 액수다. 무려 육백억에 육박하는 거액. 그럼 그런 금액을 들은 강지영의 표정은 어떨까?

‘이거 참…… 하하.’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마치 금전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액수였다. 솔직히 헐리우드에서 아무런 커리어도 없는 이 동양인 청년에게 오천만 불을 베팅한 레인의 수장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그를 섭외하기 힘들 거라고 말한 자신조차도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진짜 그 정도가 아니면 이 청년을 섭외하는 건 힘들 거란 예감이 들었다.

전무후무한 액수.

실패하면 진짜 쫄딱 망하겠지만…… 다니엘은 자신 있었다. 이 청년만 섭외하면 그깟 출연료 따위, 몇 배로 수익을 나게 해줄. 이미 머릿속엔 지금 이 순간에도 눈앞의 청년을 보며 떠오르는 연출법 때문에 혼란스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게다가 가장 믿는 동료인 제시도 전에 없이 의욕이 불타는 중이었다.

이렇게 둘이 의욕이 넘쳐서 실패한 경험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의욕이 나지 않는 작품도 결국엔 흥행 성공시킨 전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이 미친 금액이, 절대 아깝지 않게 할 자신이 있다고. 그러니 그 정도 베팅하라고. 자기를 믿고. 레인 수장과의 최종 미팅에서 그렇게 선전포고를 날렸고, 결국 오천만 불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들고 왔다.

그런데 저 청년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매니저 미스 임은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강지영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느낌이다. 금전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할 때쯤.

강지영의 입이 열렸다.

“너무 많은 액수네요. 음, 부담스러운데요?”

“부담이요? 하하, 아닙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지금 강지영. 당신의 인지도라면 충분히 이 정도는 받을 만해요.”

다니엘 화이트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 친구가 인지도를 올린 방식은 정말 단 하나도 일반적인 게 없었다. 연예인은 일단 이름이 많이 거론되어야 했다. 기다리는 직업이기에, 이름이 많이 거론되어 인지도가 올라가야 그를 염두에 두고 작가나 감독이 시나리오를 짜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수작을 부려 자기 인지도를 올리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걸리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단발성으로 끝날 가능성도 높았다. 올라가는 인지도에 펌프질은 가능해도, 인지도를 헛수작으로 올리는 건 쉽지 않은 게 이 바닥이었다. 그럼 강지영의 사건은? 그가 원해서 일어난 일은 하나도 없었다.

뜬금없이 예술가가 자기 목을 걸든가.

갑작스러운 사고에 저도 모르게 반응한다든가.

그가 한 말을 시발점으로 갑자기 저 멀리서 사고가 터진다든가. 보통 전부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일이 터지고 나면 가장 중요한 게, 수습이다. 이 수습을 강지영은 정말 잘했다. 간단히 말해, 세계에 어떤 울림을 줄 정도로.

그래서 그는 이 돈이 과하면서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도 그는 매우 뜨거운 감자였다.

헐리우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매일 기사를 생산해내는 사람이었다. 일본 일은 조금은 잠잠해지던 그의 인지도 불꽃에 기름을 끼얹은 것과 같았다. 즉, 그가 보기엔 일본은 강지영을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오히려 도움을 준 꼴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이해할게요. 하지만 다니엘. 제가 왜 가부의 결정을 아직 안 내렸는지는 잘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지금 작품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죠.”

“그 말 그대로예요. 이제 두 달 정도 남았는데, 마지막 시즌인 만큼 후회 없이 촬영에 임하고 싶어요. 하지만 제 그런 마음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아야.”

“음, 그렇습니다. 레인 스튜디오는 항상 일 년에 세 작품씩 내놓았습니다. 지영이 만약 거절하면 무신은 빼고, 다른 작품을 진행해야 합니다. 내년 하반기 마지막에 개봉하는 작품이 되겠네요. 그걸 결정해야 팀을 꾸리고, 준비를 시작하죠. 저도 그중 하나입니다. 저는 말했듯이 지영이 거절할 시에 레인과 이별합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을 준비하겠지요.”

싱긋 웃으며 한 말에 지영은 그냥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참고로 만약 지영이 계약서에 사인하게 된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추적자들에 합류해야 합니다.”

“추적자들이요?”

“네. 지금 막바지 촬영이 한창입니다. 거기 마지막 후반부와 쿠키 영상에 무신 척위준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3일에서 5일 정도 시간을 빼주어야 합니다. 길면 일주일 정도 될 거고요.”

“아…….”

“물론 그 부분은 조율 가능합니다. 하지만 크랭크업 전에는 합류해야 할 테니, 적어도 한 달 안에는 움직여야 할 겁니다. 제가 이르게 온 이유에는 그 부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오늘 안에는 결정을. 아니,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아니요. 전혀요. 괜찮습니다.”

싱긋 웃는 지영.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지는 미소에 다니엘도 빙긋 웃었다.

“그럼, 제가 회의할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음, 한두 시간은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럼요. 그래야죠. 음, 우리는 저 산에 좀 갔다가 오겠습니다. 하하. 참 이거, 간단하게 축소해 온 계약서입니다. 그리고 이건 시나리오입니다. 일단 읽어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도움이 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다니엘 화이트는 아내인 제시와 함께 일어나 자리를 비켜줬다. 밖으로 나와 떨어지기 시작하는 눈을 맞으며, 아내에게 물었다.

“어때? 직접 대화해 보니까?”

“독특해. 신비하고. 오천만 불이란 거액 앞에서 눈동자 한 번 흔들리지 않는 저 단단한 마인드도 너무 좋고. 하아, 거절하진 않겠지? 먼발치에서 보는 것과 가까이 앞에서 앉아 보는 건 또 느낌이 다르네. 달라도 너무 달라.”

“하하, 당신도 푹 빠졌네?”

“그럴 만한 배우잖아? 당신도 그래서 반했으면서?”

“그건 맞아. 자, 이제 공은 던졌으니 기다려 보자고. 자기, 저 산에 가볼 거지? 저기가 첫 무신의 기지에 어울릴 것 같은데.”

“당연하지. 가봐야지.”

펄럭.

거리가 제법 되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커다란 장우산을 펼친 둘은 찰싹 붙어 저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창 너머로 잠시 보던 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하게 나오네요?”

“그리고 과격하게 나오고. 오천만 불. 와. 지영아. 난 이런 거 처음 들어봐.”

후, 하아. 후, 하아…….

자리를 옮겨 앞으로 온 임은진은 두 사람이 좀 멀어지자,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을 부여잡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가 이 정도로 놀랄 만큼, 그가 제시한 금액은 어마어마했다. 내려놓은 계약서를 보니 단발성은 아니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최소 시즌3까지는 의무계약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시 협상에 들어갈 순 있지만, 시즌2, 3까지 계약은 무조건 해야 하는 강제성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건 흥행 성적에 따라 시즌2 계약금은 올라갈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단 뜻이기도 했다.

“후우…….”

“이제 좀 진정이 되셨어요?”

“아니, 아직. 너무 놀라서 아직이야. 좀만 더…….”

“하하……. 누나도 놀라고 그러네요?”

“그럼? 나도 사람인데. 솔직히 레인 스튜디오에서 널 탐낼 만한 이유는 나도 충분히 댈 수 있어. 하지만 그래도 이런 미친 금액으로 널 캐스팅하려고 할 줄은 예상 못 했어. 헐리우드 통계나 이쪽 업계 얘기에 막 몇백억 어쩌고 했지만, 그건 솔직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진짜 육백억을 넘게 베팅하네……. 이게 무슨 기업 간의 계약도 아닌데. 하하. 너무 놀라서 말도 잘 안 나온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누난 계약했으면 좋겠어요?”

지영이 묻자, 놀란 표정을 빠르게 수습한 임은진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금방 다시 깼다.

“이건 우리끼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내가 아무리 전권을 위임받았어도…… 대표님 의견도 들어야 해. 지영아, 잠깐만?”

“네.”

임은진은 곧장 장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저예요. 미팅은 아직 안 끝났고요. 잠깐 시간 얻었어요. 대표님 지금 어디세요? 아, 거기. 네, 알아요. 여기서 얼마 안 걸리네요? 저희가 갈까요? 아, 넘어오신다고요? 네, 대표님 의견이 꼭 필요해요. 얼른 오세요.”

전화를 끝낸 임은진이 20분이면 장세리가 도착한다는 말을 전해줬다.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화장실에 갔다가 와서 다니엘이 놓고 간 계약서와 시나리오를 읽어봤다.

역시, 재밌었다.

캐릭터가 가진 적당한 갈등, 그리고 확고한 신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역시 대립하는 적이다. 미블은 세계관의 주적 중 하나로 히드라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단체는 누가 보더라도 나치를 연상케 했다.

그렇기에 공감을 많이 샀다.

나치는 이 세상에 없었어야 하는 집단이니까. 그 악행은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렇기에 그 악행을 기억하기에 빠르게 감정이입이 가능해 작품의 재미가 급속도로 올라갔다. 더불어 그쪽으로는 어떤 서사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캐릭터의 과거는 보여주지만, 절대로 히드라가 정당한 단체라는 서사는 부여해주지 않았다. 레인의 무신 척위준에도 그런 적이 등장한다. 잔악하고, 교활하고, 끝없이 악랄한, 그런 적이.

지영은 예전에도 일본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토 레미의 일로 일본이 완전히 싫어졌다.

명백하게 싫은.

절대 엮이고 싶지 않은.

이렇게 규정해 버렸다.

그래서 무신 척위준에 딱 봐도 2차 대전 당시 일본제국을 떠올리는 적이 등장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내색은 안 했지만 아까 제시 화이트가 일본제국의 만행을 알리는데 20분의 시간을 더 쓰겠다는 말이 매우 기꺼웠고, 구미가 당겼다.

‘제대로 엿 먹여줄 수 있으니까.’

반성은커녕 역사 왜곡까지 하는 그들에게.

민낯을 전 세계에 공개해 버리는.

그런 기회다.

제시 화이트가 그들의 제대로 다루겠다고 말했을 때, 사실, 그때 마음은 이미 기울고 있던 지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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