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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75화 (47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75화

475화. 전설로 가는(14)

홍진아 감독의 예상은 정답이었다.

“하…… 하하.”

이연은 대기실로 들어오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같이 들어오던 치프 매니저 정성철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연아, 어. 왜 그렇게 웃냐. 하하. 신 마음에 안 들었어? 재촬영 요청할까?”

“아니, 신은 마음에 들어. 그러지 마. 그리고, 나 좀 혼자 있게 해줄래?”

“어? 그럴래? 하하, 알았다. 그럼 쉬고 있어!”

호다닥!

정성철은 착 가라앉은 이연의 목소리에 얼른 자리를 피해줬다. 그녀의 목소리가 이렇게 가라앉을 때는, 천둥 벼락이 친다는 걸 알아서였다. 이연은 절대 자기의 개인 팀 스태프에게 무례하게 구는 배우가 아니었다. 오히려 절대 그런 말이 안 나오도록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다.

금전적으로는 일단 다른 팀에 비해 최소 월급의 절반은 더 벌었고, 그 외에 자잘한 선물까지 합치면 두 배는 훌쩍 넘어갔다. 그것도 매달 말이다. 이렇게까지 해주는 게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이연은 이미 대배우로 성장했고, 요즘은 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CF모델로 선정되어 한 번 찍을 때마다 돈방석에 앉기 때문에 가능했다. 차를 빼면 욕심이 딱히 없는 배우가 바로, 이연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연도 단점은 있었다.

바로 연기에 집중할 때다. 이땐 신에 집착했다. 절대로 상대 배우보다 내 연기가 부족한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 철저한, 지독한 집념이 지금의 이연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때는 정말 날카로워졌다.

그걸 오랜 기간 함께한 정성철은 잘 알고 있어서, 예전처럼 까불지 않고 얼른 자리를 피해줬다.

정성철이 나가자, 이연은 소파에 앉아서,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하, 진짜…….”

한숨을 내쉬기 무섭게 기가 막힌 웃음이 나왔다. 좀 전의 연기는 만족스러웠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선, 그 이상을 조금은 보여줬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었다. 이 신을 위해 며칠간 거울을 보고 연습을 했고, 이 이상은 힘들단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를 완성했다. 그렇게 자부했고, 자신도 있었다.

그리고 상대보다 분명, 더 나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자신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막상 신이 시작되고 나자 그런 생각은 정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지영과 합을 맞춘 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정은정 작가가 캐릭터 자체를 강지영에 완벽하게 맞췄기 때문에 그의 연기는 어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말하는 발성까지 전부 카피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행동, 버릇. 이런 것도 당연히 전부 카피했음을 그녀는 알았다. 그렇기에 연기 경험이 적은 지영이 배역을 소화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고, 그래도 재능이 있어서 지영은 단순히 강지영이 재를 연기한다. 이 이상을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였었다.

“잘하는 정도……. 어색하지 않은 정도, 그 정도였어. 분명 그 정도였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아까 막사에 앉아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신에서 이연이 느낀 건, 위기감이었다. 연은 마주 보고 선 강지영에게서, 강지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눈앞에 있던 건, 재였다.

그냥 나의 무사님 속의 재가 앉아 있었다.

이연은 액션 사인이 떨어지고 잠시 탐색전을 하듯 눈을 맞추며 침묵할 때, 솔직히 감정이 흔들릴 뻔했다. 지영은 완벽한 무감정을 원하는 정은정 작가의 바람을 따라, 정말 완벽한 무감정을 철갑처럼 두른 재가 되어 있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위기감이 엄습했고, 하마터면 NG를 낼 뻔했다. 그 위기를 넘기고, 이연은 정신을 다듬고, 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강지영은 재였다. 그게 이연이 기가 막힌 이유였다.

“아니, 이전 신에서는 강지영이었잖아…….”

그땐 분명 강지영이었다.

재에 가깝지만, 강지영이 분명 보였다. 그는 모르겠지만, 연기계에 오래 구르다 보면 그 정도 차이는 보이게 마련이었다. 그런 게 하수와 중수, 고수로 올라갈수록 생겨나는 일종의 스킬이었다.

스킬, 안목.

연기 합을 맞춰보다 보면 분명하게 보이는 게 안목이다. 그런 안목이 생기면 강하게 갈 것인지, 오히려 연기력을 죽여서 합을 맞출 것인지를 정할 수 있었다. 그래야 장면이 튀지 않았다. 장면이 튀면 그 신은 사실상 못 쓰는 신이 된다.

그래서 사실 지금까지 이연은 단독신이 아니면, 진짜 최선을 다한 경우는 드물었다. 선고와 대립하는 신도, 심수정의 연기력을 생각해서 어느 정도 본 실력을 낮춰 펼쳤다. 강지영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걸 당연히 얘기한 적도, 티를 낸 적도 없었다.

왜?

자존심에 분명히 타격을 입을 테니까.

남자의 자존심에 굳이 상처를 줘가며 나 연기 잘함! 이렇게 뻐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건 예의도 아니었고, 이연이란 인간 자체가 그렇게 매정하고 못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연기는 그런 ‘배려’가 아예 필요 없었다.

그게 이연이 기가 막힌 이유였다.

고작 한 신이지만, 고작 한 신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분명 첫 신과 좀 전의 신에 강지영은 차이가 났다. 홍진아 감독의 디렉팅을 받고, 잠시 시간을 끌던…….

“뭐야, 설마 그때 그렇게 변했다고……?”

그때 분명 다시 액션 사인이 들어가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긴 했다. 그러나 그게 디렉팅을 받은 결과라 생각했다. 이어지는 신에서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운동뿐만이 아니라 연기까지 천재였던 거니? 넌 참…… 후후.”

이연은 차마 뒷말을 잇지는 못했다.

그건 너무 배 아픈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녀 본인이 철저한 노력파였기에, 천재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간 지영과 친하게 지내 온 것도 그의 천재성이 연기 말고 운동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남보다 편히 성공의 길로 유도하는 것.

그게 천재성이다.

그녀는 걸그룹 활동 당시 그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녀 본인도 춤과 노래에 제법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가요계에 립싱크가 사라지며 춤과 노래에 대한 허들이 높아졌기에 원하는 정도까지 올라가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같은 그룹에 천재가 있었다.

연예계에 환멸을 느껴 7년의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모든 활동을 중지한 친구인데, 그 친구가 천재였다. 그 친구는 정말 천재였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뭐든 잘했다. 심지어 예능감도 있었고, 연기력도 좋아 7년 활동 중에 드라마 주연을 두 번, 조연 한 번, 영화에서 조연을 두 번이나 맡으며 상을 쓸어 담기도 했다.

문제는.

“크게 노력도 안 해놓고…….”

뿌득!

정말 절로 이가 갈렸다.

왜 그렇게 화가 났냐고?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노력을 안 했다. 딱 정해진 시간의 트레이닝만 소화하고, 남은 시간은 편하게 휴식했다. 게임도 하고, 카페에 가서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피곤하면 그냥 자고. 그런데 그렇게 하고도 그 친구는 단 한 번도 트레이너에게 혼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축복받은 유전자를 지녀 동안에다가, 먹어도 살이 찌지도 않았다. 그때 이연은 세상이 정말 너무 불공평하단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천재를 싫어했다.

그 친구는 심성도 좋아서…… 그걸 뻐기지도 않았고, 그 인기와 재능을 거들먹거리며 피해를 준 적도 없어서 증오하진 않았으나, 그래도 싫어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고 하찮아지는 그 감정이 노력의 원천이 되었다.

이 악물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철저하게 캐릭터에 맞췄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두 번에 안 되면 세 번, 그래도 안 되면 삼십 번, 삼백 번도 해냈다. 하루로 안 되면 이틀, 이틀로도 안 되면 일주일, 그 이상도 투자해가며 꼭 필요한 장면엔, 박수가 절로 나오는 연기를 연습해 갔다.

그게 지금의 이연이 있게 된 배경이었다.

그런 만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남들은 시샘만 하고 부럽다고 하지만, 그녀는 백조였다. 우아하게 떠 있기 위해 물 아래 발을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그래서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노력의 화신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 호칭을 이연 본인도 가장 좋아했다.

그런 그녀는 지금까지 정말로 대선배들을 빼면, 연기로 이렇게까지 긴장해본 적이 사실 별로 없었다. 어느 순간 벽을 넘어 경지를 이루면서, 자기만큼 연기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좀 전처럼 긴장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거기에 지난 몇 년간, 지영과 함께한 작품이 전부라 더욱 그랬다.

그래서 오늘의 충격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충격은 혼자 오지 않았다.

짝!

뺨이 얼얼하다 못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게 후려친 이연은 감정을 다듬었다. 경쟁의식은 작품에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부여하지만, 질투와 시샘은 절대로 좋은 효과를 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효과만 꼬리에 불이 난 망아지가 날뛰는 것처럼 뿌려댈 것이다.

“정신 차려, 이연…….”

후우…….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 감정의 폭주를 막은 이연은 폰을 들었다. 단순히 뺨을 때려 정신을 차리는 것만으로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이걸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오빠.”

-응, 연아! 뭐 필요해? 김밥 가져다줄까?

“아니, 오빠. 감독님한테 가서, 나 신 미뤄달라고 좀 해줘.”

-응? 신을?

“응. 오늘 신 내일모레로 밀어줘. 오늘은 아무래도 안 되겠어.”

-어, 음……. 알겠어. 몸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그냥,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래.”

-준비? 아니다, 알았어. 얼른 가서 말해보고 올게.

“응. 부탁할게.”

이연은 통화를 끝내고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마음이 들 거라고 예상하지 못해서, 충격이 더 컸다. 강지영이 재능이 있어도, 자기의 레벨로 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충격은 더 했다.

“천재, 하여간 이 천재란 것들은 정말 정도를 몰라요…….”

하하.

물론 천재로 태어난 게 죄는 아니다. 오히려 축복받은 일이니 축하해 주는 게 맞다. 하지만 이연은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신을 미뤄달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감정이 강지영과의 합에 방해될까 봐. 그게 걱정되어서였다. 나아가 현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도 걱정됐다.

그래서 그녀는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기가 막히게도, 고작…….

“하하…….”

데뷔 4년 차 배우 때문에.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그녀는 그냥, 헛웃음을 터뜨리며 눈을 감았다.

분한 기분.

천재가 주는 폐해가 그녀를 덮치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라 반가우면서도 매우 찝찝한 이 기분.

그녀는 짐을 챙겼다.

홍진아 감독이라면 분명 자기 의견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이연의 이름값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녀라면 자기가 지금 어떤 감정일지 이해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주 엔딩 신을 이미 끝냈으니,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짐을 챙기고 잠시 기다리자 똑똑, 노크 소리가 났다.

“연아, 난데. 들어가도 될까?”

“음? 네, 아! 들어오세요!”

매니저일 줄 알았는데, 홍진아의 목소리가 들려 그녀는 얼른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먼저 열기 전에 열린 문으로 홍진아가 들어왔다.

“감독님이 직접 오셨네요.”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 그리고 지금은 감독 말고, 언니로 왔어.”

“아. 하하. 언니 저 괜찮아요.”

“알아. 연이 너 정말 강한 거. 그래도 얼굴 보고 싶었어.”

홍진아 감독은 다가와서 이연을 살짝 안았다. 이연은 그런 그녀를 마주 안았다. 홍진아 감독과 정은정 작가는 천재에 거부감을 진하게 느끼는 이 나쁜 마음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의 무사님을 시작한 이후로 워낙에 셋이 함께 한 시간이 많았고, 그래서 속마음을 전부 털어놓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말없이 그냥 안아주는 위로가 가능했다.

토닥토닥, 홍진아 감독은 이연을 그렇게 잠시 위로했다.

“이틀 여유 있어. 시간 충분하지?”

“그럼요.”

“후후, 그래. 휴가 잘 다녀와.”

“……미안해요.”

“미안하긴. 이것도 다 작품을 위한 결정이다?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고 다녀와.”

“…….”

이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홍진아 감독은 미련 없이 대기실을 떠났다. 그녀가 떠나고, 잠시 뒤 이연도 짐을 챙겼다. 돌아가는 차 안은 조용했다. 정성철도, 그녀의 스태프들도 전부 기분이 완전히 다운된 이연의 눈치를 살폈다. 정말 몇 번 안 되는 모습에 스태프들이 슬슬 지칠 무렵, 집에 도착했다.

“그, 연아. 모레 시간 맞춰 데리러 올게?”

“응. 가봐, 언니. 너희도 고생했어. 모레 보자?”

네!

이연은 그렇게 인사하고 집으로 곧장 들어가 짐을 대충 챙겼다. 그리곤 곧장 다시 집을 떠났다. 그녀가 향한 곳은 강원도 깊숙한 곳에 있는 오지의 사찰이었다. 질투와 시기. 나쁜 감정에 사로잡혀 자신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을 때 찾는 그녀의 방식이었다.

이틀의 시간.

그녀는 세상과 단절을 택하여, 사기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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