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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74화 (474/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74화

474화. 전설로 가는(13)

컷!

홍진아 감독의 사인이 들렸다. 메가폰을 쥔 채 다가온 홍진아 감독은 곧장 다가왔다.

“감정을 좀 더 다운시켜 줄 수 있을까요?”

“여기서 더요?”

“네. 적의가 확 피어날 정도까진 말고, 은은한, 아주 서서히 일어나는 분노. 딱 이 정도로.”

“네.”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지 못했다.

이 신은 9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거기에 엔딩 신이기도 했다. 재와 연의 표정을 차례대로 클로즈업한 뒤, 두 사람의 얼굴을 풀샷부터 시작해 타이트하게 조인 뒤, 클로즈업으로 교차시켜 보여주면서 OST가 나가고, 그대로 엔딩이다.

즉, 표정에서 감정이 아주 풍부하게 보여줘야 한단 뜻이었다.

그런데 저런 요구가 나온 건, 연기가 부족했다는 뜻이었다.

홍진아 감독은 아무리 지영이라고 해도, 연기에 관해서는 절대로 봐주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지영도 그걸 바라서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감정을 잡았다.

“두 사람 풀샷부터 클로즈업까지만 다시 갈게요!”

홍진아 감독의 지시를 조연출이 힘차게 외쳤고, 다시 신 준비가 시작됐다. 하지만 곧장 액션 사인을 외치진 않았다. 아직 지영의 신호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그걸 알면서도, 준비됐다는 신호를 보이지 않았다.

‘부족했던 것.’

홍진아 감독의 디렉팅은 믿을만하다. 아니, 홍진아 감독보다 현재 대본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나의 무사님의 세계를 창조한 정은정 작가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 사람의 디렉팅을 믿지 못한다는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기의 연기는 부족했다. 분명 충분히 준비했다고 했는데도.

‘그런데도 부족했다는 거지.’

역시 쉽지 않다, 연기는…….

자만한 적 없고, 상황이 허락하는 선에서 분명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에도, 역시 연기 밥만 먹고 살아온 사람들과 비교하면 아직은 부족한 거였다.

재능.

노력.

이 두 가지만큼 예체능 계열에서 잔인하게 도드라지는 곳도 없었다. 유도계에서는 비록 자기가 최고의 자리를 아직은 차지하고 있으나, 역시 연기는 아니었다. 같은 체급도 아니기에 모두가 비교 대상이었다.

‘재밌네…….’

그래서 재밌었다.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 보니 여기는 상대가 정말 넘쳐났다. 승부에 목매는 미친놈은 아니지만, 지영은 언제나 승부를 바라왔다. 이 역시 트라우마의 한 조각이다. 홍진아의 디렉팅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지영은 개의치 않았다.

이는, 일종의 승부욕이다.

사토 레미의 일을 마무리 짓고, 현장으로 복귀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그의 승부욕이, 지금은 제대로 불이 붙었다. 지영은 이런 현재 자신의 감정이 문제가 될 것 없다고 판단했다.

선수에게 승부욕은 필수다.

유도판에 있을 때도 지영은 선수고, 연기판에 있을 때도 지영은 자기가 선수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 지영은 달라졌다.

정말 달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선수일 때의 자신은 져선 안 된다. 승부욕도 승부욕이지만, 지영은 본래도 패배를 용납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철저하다 못해 혹독하게 굴었다. 그리고 이는 황금세대 전체의 정신이었다.

‘합을 맞추는 한 신, 한 신을 승부라 생각하자.’

연기는 합이다.

그러나 중반부는 말했듯이 대립이다. 대립은 서로 마주 보는 게 아니라, 서로 노려보는 것에 가깝다. 연기 자체로 맞부딪치는 것. 선고와 함께할 때는 합을 맞추지만, 연과 함께할 때는 노려봐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래도 적당히라는 게 필요하겠지만, 지영은 그 정도는 스스로 컨트롤할 자신이 있었다.

“후우…….”

생각의 정리를 끝낸 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들어 홍진아 감독을 바라봤다.

“…….”

“…….”

고요한 촬영장의 한복판에서 마주친 시선. 지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신호를 대신했다.

* * *

그래서…….

“재, 그대는 내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가, 눈빛을 차갑게 굳히며 물었다. 건너편엔 생환한 재가 앉아 있었다. 재는 독대를 요청했기에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연은 재를 정말로 마음 편하게, 온갖 감정을 담아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런 연의 표정을 받는 재는 담담했다.

“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잘했다 볼 수 없다라.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했나요?”

너무나 무덤덤하게 나온 말에, 연은 울컥하는 감정을 찾으며 겨우 다시 물었다. 재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한다. 반가웠는데, 정말 반가웠는데. 그는 왜 무의미한 피를 흘리냐며 연을 나무랐다. 인사조차 하기도 전에, 다녀왔습니다, 같은 말을 하기도 전에. 나온 것이 저 질책이다. 이게 연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찔렀다.

“적어도 초소전 같은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제가 없었던 근 이년의 시간 동안, 몇 명이나 죽었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전장을 축소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제가 해야 했나요? 재, 그대에겐 방법이 있나요? 내겐 그게 최선이었는데?”

“그 최선의 방법이, 그저 잠시 숨돌리기 위한 땅따먹기에 병력을 갈아 넣는 겁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제국군이 몰려왔을 거예요! 그럼 전력이 부족한 우리는 이 모든 곳을 내주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대지로 밀려났을 거고요!”

악에 받친 연의 외침에 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숨도 쉬지 않았고, 실망도, 칭찬도 아닌, 정말로 무감정한 눈빛으로 연의 말을 받았다.

“그걸 잘못했다고 하는 겁니다.”

“어디가요!”

“공주마마는 후에게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아직도 후를 모릅니다.”

“뭐라……고요?”

심지어 재는 역린을 거침없이 건드렸다. 아니, 건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뽑았다가 더 깊이 쑤셔 박아버렸다. 머리와 가슴에 지대한 충격을 받은 연은 이를 악물었다. 두 눈에서 푸르른 귀화가 살벌하게 터져 나왔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후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이어진 확인 사살에 연은 순간 올라온 분노에 미약한 현기증을 느껴 저도 모르게 휘청거렸다. 뿌드득! 절로 이가 갈렸다. 여태껏 자기를 도와준. 아니, 도와준 정도가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나 다름이 없는 연은 이가 부러지도록 악물었다.

“내, 내가…… 뭐를 모르는데요……. 뭐를!”

“후는 전선에 있지 않았습니다. 모습을 드러내 나를 유인했고, 나를 절벽에서 떨어뜨린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선고에게 듣기로 이후 제국군의 즉각적인 도강은 없었습니다.”

“그게 뭐요!”

“후도 정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본인의 황권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그리고 재가 없는 연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어차피 시간을 줄 생각이었단 말입니다. 잠시 숨 고르기 뒤에. 그러나 공주마마도 알듯이 전쟁의 숨 고르기는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습니다. 철저한 후의 성격상, 만반의 준비를 하겠지요. 그게 몇 달 만에 끝날 것 같습니까?”

“그건…….”

“덩치가 큽니다. 거기에 병참, 훈련까지 생각하면 못해도 일 년은 넘게 걸립니다.”

“…….”

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알기로도 그게 맞고, 실제로 그 문제는 이족에게도 있었다. 전쟁은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이 들어간다. 수백도 아니고, 최소 일만이 넘는 규모끼리 붙으면 전쟁은 그 자체로 돈 잡아먹는 귀신이 된다.

그렇기에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차례 대대적인 병력을 이끌고 전쟁을 수행했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가만히 내버려 뒀어도, 후는 돌아갔을 거다. 군도 최소한만 남겨 샨 강에 배치했을 거고. 그런데 거기에 굳이…….

“어, 어차피…… 숨 고르기에 들어갈 거란 뜻인가요? 그것도 길게?”

“예. 그런데 공주마마는 굳이 거기에 아군의 피해를 유발할 국지전을 건 겁니다. 생 병력을 갈아 넣으면서.”

“아…….”

그제야 자기가 후를 이해 못 했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후는, 그런 인간이었다. 어설프게 일을 꾸미는 경우가 없었다. 그래서 전쟁을 꾸릴 때도 그는 철저하게 준비하는 편이었다. 그 예외적으로 벌어졌던 경우가 재가 참전했던 전쟁이었다. 그때는 후도 급했다.

선황의 유일한 핏줄인 연을 죽여야, 반란의 불씨를 완벽하게 끌 수 있기에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하고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재를 절벽에서 떨어뜨리고, 후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군을 물렸다. 어설프게 이족의 땅으로 들어가지 않은 건, 그 지역 자체가 이족의 앞마당이라 준비도 없이 들어갔다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후에겐 어차피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강력한 황권을 구축했다.

피의 숙청을 벌여서 말이다.

그걸 조금만 알았으면,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절대 초소전 같은 국지선은 걸어선 안 됐다.

“후는 아마, 얼씨구나 했을 겁니다. 어차피 인원이 부족한 이족이 알아서 국지전으로 나와 죽어주겠다는데, 그보다 좋은 경우도 없었을 겁니다.”

“아…… 아아…….”

“그래서 국지전선을 제가 직접 무너뜨렸습니다. 그래야 제국군도 병력 투입에 주춤하게 될 테니. 아마 저란 흉수를 유추하기 전까진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

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재는 그런 연을 가만히 바라봤다.

“…….”

“…….”

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재가 나올 줄 몰랐던 것도 있지만…….

“공주마마.”

“…….”

“그런데 이런 의심이 드는군요.”

“무슨…… 의심이요?”

“정말 몰랐습니까?”

“…….”

그 말에 연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런 연의 눈빛을 보며, 재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안타까움에, 일그러지는 쪽으로.

* * *

컷!

홍진아 감독의 사인이 경쾌했다. 고개를 든 그녀의 표정엔 확실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뒤 다가온 두 배우와 신을 확인했다. 사실 안 봐도 이미 원하는 느낌 이상으로 뽑혔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흔들렸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느낌이 제대로 살았다.

“이야 이거 고민인걸요? 아까 만나는 신을 엔딩 신으로 쓸지, 이걸 엔딩 신으로 쓸지.”

정말 기분 좋은 고민에 저도 모르게 두 사람에게 방긋 웃으며 이런 말까지 하고 말았다. 지영은 담담하게 받았고, 이연도 크게 우쭐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참 어지간하단 생각을 한 홍진아는 다음 신 준비까지 시간이 있다는 말로, 내쫓았다.

이런 연기 뒤엔 당연히 휴식이 뒤따라야 했다.

감정을 격렬하게 쏟아내는 신은 아니지만, 호흡을 맞추는 동안 감정이 끊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끊어지지 않은 채로, 공수처럼 훅훅 날아다니는 감정. 그렇게 하고 나면, 정신적으로 지치는 건 당연했다.

두 배우가 떠나자 홍진아는 다시 신을 확인했다.

“역시, 대단하다니까…….”

이연에 대한 칭찬이었다.

이연은 아주 순간순간 대화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 연기를 선보였다. 억지로 끌어올리는 괴로운 감정이 사이에, 본래의 감정이 불쑥 드러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그걸 표정에 담았다. 아주 확실하게. 절대로 실수가 아니란 거다. 그리고 그 표정 연기는 마지막 신, 지영의 대사에서 폭발하듯이 터졌다. 홍진아는 이런 이연의 연기를 보며 왜 그녀가 정은정 작가의 피앙세가 됐는지를 정말 절실히 깨달았다. 이연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진짜 물이 오를 만큼 올라서 감독과 작가가 원하는 연기를 아주 조금의 부족함도 없이, 끝내주게 보여줬다.

“원래 실력도 이렇게 좋은데 요즘은 독까지 올랐지…….”

이연은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까지 자처하는 배우였다. 여기저기 쏘다니며 힘든 스태프를 챙기고, 가끔 만담이나 개그도 선보이며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풀어주기도 하는 게, 이연이었다. 그 혹독한 앵커리지에서도 그 역할을 도맡아서 했는데, 오늘은 아예 그런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에 오늘 도착했을 땐, 독이 바짝 오른 느낌을 선사했다.

왜?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 그녀가 뭐하러?

홍진아 감독은 저 멀리서 감정을 정리 중인 다른 배우를 바라봤다.

강지영.

한 번의 지적으로, 사람이 바뀐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

천재.

진정한 의미의.

이유는 그였다.

천재가 자기의 뒤를 바짝 쫓아온 것에 대한, 경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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