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67화
467화. 전설로 가는(6)
점심은 맛있었다.
정말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맛있었다. 분명히 일식 베이스인데, 간 자체가 한국에서 즐겨 먹는 음식의 간과 똑같아서 지영은 정말 맛있게 먹었다. 특히 갓 튀긴 돈가츠는 팔아도 될 정도로 맛있었다.
하지만 이런 맛보다 더 와 닿는 게 있었으니 바로, 정성이었다.
이치카 씨가 어떤 마음으로 이 음식을 준비했는지, 그게 정말 절절히 와 닿았다.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은 사실 맛이 없어도 사람을 감동시킨다. 이 음식이 그랬다. 지영은 정말 음식의 맛과 정성에 듬뿍 취했다.
그렇게 점심이 끝나고, 떠날 시간이 됐다.
이미 짐은 다 챙겨 뒀기에, 설거지와 문제가 될 것들은 정리, 폐기했다. 철저하게 단속한 뒤에 집을 나섰다. 미리 연락받고 나온 니시노 하루히의 가드가 기자들의 접근을 막았고, 역시 준비했던 차량에 올라 곧장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까지는 가는 길. 차안은 조용했다. 점심을 먹은 뒤의 식곤증 때문이 아니라, 그냥 생각할 게 다들 많은 것 같았다.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은 이렇게 가는 길이, 솔직히 말해 달갑지는 않았다. 이 방법이 최선임을 잘 알지만, 그래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들지 않는 거였다. 고개를 숙인 레미와 이치카 씨가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좋은 생각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쫓겨나는 건 아니야. 아니긴 한데…….’
버림받은 기분은 들 것이다.
도망치는 것도 아니다. 왜? 스스로 선택했으니까. 정확히는 먼저 이 나라가 모녀를 버렸다. 그래서 모녀는 살길을 찾아 스스로 이 땅을 벗어나는 중이다. 하지만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라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그때 내뱉은 말이, 부메랑이 되어 레미와 이치카의 등에 박혔다. 자기 때문에 결국에는 나라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니 지영은 조금도 좋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이미 레미와 이치카 씨는, 이 나라에서 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만약 이치카 씨가 남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그건 정말 딸을 죽이는 행동이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미친 나라는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제2의 사고는 아예 피해자가 입을 열 기회조차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떠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다만 그 필수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은 거고. 각자의 생각을 담은 차량은 달리고 달려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다들 여권 주고, 이치카 상과 레미 상은 저랑 같이 가요.”
출국 절차를 밟고, 미리 예매해 놨던 김포공항행 티켓까지 발급받았다. 안으로 이동하는 동안 주변에 있던 이들이 황금세대를 알아봤는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중 젊은이들은 다가와서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영은 물론 친구들도 그걸 거절하지 않았다. 지영을 비롯해 일행 전체를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건 대부분이 어른들이다. 적어도 나이 40대 이상들. 그들은 확실한 적의를 품은 채 지영을 노려봤다.
일본을 뒤흔든 일단의 사건 자체는 확실히 강한결 때문이었다.
정말…… X신같이 변할 사건을 뒤집어서, 죄를 만천하에 밝혀버렸다. 그 결과 일본인들은 스스로 죄를 저지른 꼴이 됐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니시노 하루히가 일본 국민성에 관해 아주 강도 높은 비난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절대다수가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소수가 결국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건 맞았다. 그건 변명의 여지 자체가 없었다. 니시노 하루히는 언론도 매도했다. 언론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으니 국민이 흔들리는 거라며, 제발 자성했으면 좋겠다는 발표를 냈다.
이런 행동에 당연히 치를 떠는 일본인들이 많았다.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그 부끄러움을 황금세대를 향한 적의로 변환시킨 이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지금 공항 전체에서 쏟아지는 시선은, 그런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영은 물론 황금세대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이들에게 저런 적의 어린 시선은 솔직히 매우 익숙했기 때문이다.
“시합장보단 낫네.”
“거긴 뭐, 친구 몇 명, 중립 조금을 빼면 아예 적이니까.”
보통 상대 선수를 ‘적’이라고 규정하지는 않는다. 적은 단어가 너무 세서, 서로 죽여야 끝나는 전쟁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쓰지 않는다. 보통은 상대라고 칭한다. 나랑 붙을 상대 선수. 그 정도로 규정하는데…… 이성진의 말을 받은 임효중은 명확히 적이라고 말했다. 왜? 상대 선수를 보며 전의를 다지는 정도가 아니라, 적의를 날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이는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에서 올라온 감정이었다.
시기와 질투는 대단히 무서운 감정이다. 그래서 그 감정에 쌓이면, 타인을 보는 시선에 아주 적나라하게 담긴다. 행동, 표정, 눈빛. 그걸 보면 이 사람이 나에게 호승심을 느끼고 있구나, 아니면 나를 매우 싫어하는 구나를 알 수 있다.
황금세대는 그걸 아주 오래 겪었다.
왜?
지나친. 아니, 압도적인 천재성 때문이었다. 시합에 일단 출전하는 순간, 사실상 1등은 결정된 상황이 펼쳐진다. 오죽하면 1위는 바라지도 않고, 2, 3등 싸움이라고 할까. 그걸 중, 고등학교를 넘어 이제는 일반부에서도 겪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저런 시선들은 그냥 익숙해졌다.
하지만 레미와 이치카 씨는 아니라서, 움츠러들고 말았다.
지영은 그런 모녀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레미 앞에 섰다.
“무섭니?”
“……네? 아, 네…….”
레미가 아무리 단단한 아이라고 해도, 그래도 아직은 애다. 이 또한 이겨내겠지만, 이겨내는 것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밖으로 나와 이런 시선을 경험하는 게 사실은 처음이라서, 적응할 시간은 당연히 있어야 했다.
“괜찮아. 이제 예전과는 다르거든. 아무도 너를 어쩌지 못해. 그러니 안심하고 어깨 펴. 너 죄지어서 이 나라 떠나는 것도 아니잖아. 네가 그렇게 어깨를 움츠리면, 저들이 바라는 대로 되는 거야.”
“아…….”
지영의 말을 들은 레미는 반사적으로 움츠렸던 어깨를 폈다. 이치카 씨도 폈고. 지영은 두 사람을 향해 잔잔히 웃어줬다.
그런 지영에게 일단의 무리가 달려왔다.
카메라를 든 사람도 있는 걸 보니, 딱 봐도 기자들이다. 지영은 주변을 둘러봤다. 따로 폐쇄된 공간이 있다면 두 모녀를 그곳으로 보내고 싶은데, 주변에 그런 곳이 보이지 않았다.
“후우, 후우.”
그들이 앞에 서서 숨을 고르는 동안, 지영과 친구들은 모녀를 완벽히 감쌌다. 동시에 가드 둘이 지영의 옆으로 와서 섰고, 임은진은 폰으로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강지영 상. 인터뷰 좀 합시다!”
가장 먼저 호흡을 정리한 한 기자의 말에 지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뷰? 해준다. 해주는데…….
“좋아요. 그런데 기자님은 가족 있으세요?”
“네?”
“아니, 걱정돼서요. 기자님이 질문 잘못하면, 이 나라 국민은 또 기자님과 기자님 가족에게 테러를 가할 건데. 그러면 곤란하잖아요?”
지영의 조용한 말에 기자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반론을 입에 담지도 못했다. 그런 주장을 펼치기엔, 이미 일련의 사태가 벌어져 일본의 국민성이 어떤지 너무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태인데 다시 지영에게 아주 곤란한 질문을 한다?
혹은.
그때 그 기자처럼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한다? 거기에 그 질문을 받은 지영이 또 매우 날 선 대답을 한다면? 그럼 이번 사태가 재발할 수도 있었다. 지영은 그걸 찍어서, 가족이 있냐고 물은 것이다. 그걸 눈치챘으니,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고.
지영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건드리기 시작했다.
겁먹은 레미와 이치카 씨의 얼굴이 떠오르자, 순간적으로 치고 올라온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가족이 없는 기자분은 없나요? 그런 기자나 제대로 하고 싶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없나 보네요? 아쉽네.”
“……그건 매우 모욕적인 말입니다!”
“어, 기자님. 인터뷰할 건가요?”
“그, 그건…….”
지영의 빈정거리는 말에, 이번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지영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정말 많다. 이 나라 언론도 강지영을 이제는 좋아하지 않아서, 가능하면 어떻게든 곤란한 질문만으로 저 싱그러운 조소를 짓뭉개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만, 그러기엔 가족이 걸렸다.
골때리는 게, 레미를 이지메한 인간들과 그걸 조장하듯이 인간들은 레미의 친부가 한 질문이 어리석어서, 그 가족에게 화풀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단순히 ‘표적’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레미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즉, 심심풀이 대상이었던 것과 같았다. 그런 미친 인간들이 과연 이번 일로 자성할까? 깊게 반성하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할까?
절대…….
이 나라 언론을 조형해온 기자들이 그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익명성에 기대에, 표적이 나타나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그로 인한 문제는 단순히 학교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회에 퍼져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이상한 질문을 하고, 지영이 또 날 선 반응을 보이면 이번엔 가족이 그 표적이 된다. 그걸 깨달았으니 지영의 저 말에 하자고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음, 기자님은 가족이 있나 보네요. 인터뷰하자고 못 하는 걸 보니. 그리고 절대 정상적인 질문을 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고요.”
“큭…….”
정상적인 질문을 할 생각이었다면,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아주 정상적인 질문이라면, 지영에게 그 질문을 하지 못할 리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니까, 그 질문을 했다가 내 가족이 표적이 될까 봐 몸을 사리는 것이다.
진짜……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기자가 한 10명은 되는 것 같은데, 섣불리 나서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열 중 열이, 지영을 물어뜯을 생각을 하고 있었단 뜻이었다.
“정말 궁금한데, 정상적인 질문을 할 생각은 아예 들지 않는 건가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더니, 한 기자가 칙쇼…… 하고 잇새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강한결이 앞으로 나섰다.
“오늘 너무 나가는데?”
옆에 서며 강한결이 한 말에 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흥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특히 레미와 이치카 씨가 기가 죽은 모습을 봤을 때는 정말 화가 났다. 기자들이 몰려들어 위축되는 모습을 봤을 때도.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무시하는데, 저도 모르게 날 선 말들이 또 날아갔다.
이 말들은 또 기사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좋은 방향은 아닐 것이고.
그걸 염려한 강한결이 나서며 저런 툭 던지는 말로 주의를 준 것이다.
“죄송하지만 탑승 시간이 다 되어 더 이상의 대화는 어렵겠습니다.”
꾸벅.
장신의 강한결의 말은 지영과는 다르게 거절하기 힘든 위엄이 있었다. 아니, 이 경우는 위압이었다. 강한결의 눈초리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허허 웃는 강한결이 아니었다. 편안한 미소는 어느새 위압적인 미소로 변해 있었고, 이제 스물 갓 넘은 청년의 미소에 기자들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들에게, 마치 선고하듯이 말을 이어가는 강한결.
“여러분들이 어떤 기사를 내든, 그건 자유입니다. 하지만 알아두세요. 오늘 이 일은 우리 측에서도 이미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관계를 따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따져서 여러분이 작성한 기사와 진실이 매우 다를 시, 여러분에겐 니시노 하루히를 통해 고소장이 날아갈 겁니다.”
“흡…….”
아직은 어색해서 똑딱이는 어조였으나, 알아듣기에 조금도 무리가 없는 일본어에 기자 하나가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니시노 하루히. 악명의 대명사. 돈에 미친 지성체. 이번 사토 레미 사건으로 한동안 조용했었던 니시노 하루히의 악명이 다시금 날뛰기 시작했다. 정보에 민감한 기자들은 니시노 하루히가 이번 사건의 진범 셋을 어떻게 조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니시노 하루히와 강한결은 계약을 맺었다.
강한결은 애초에 이렇게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쪽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의적인 언론엔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그 영역은 황금세대와 사토 레미, 이치카 씨, 그리고 강유진까지 전부 포함된다.
이제 만약 악의적인 소설에 가까운 기사가 터지면, 사실관계를 철저히 따진 니시노 하루히의 고소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를 공지한다는 것은 의도가 명백했다.
이제,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다. 그러니 우리를 공격할 거면, 너도 망가질 각오를 해라. 이런 뜻이었다.
돈 귀신 로펌의 악명을 생각하면, 이제 이 나라 기자들은 황금세대에 관한 기사를 쓸 때, 매우 고민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소설을 써서 올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기자들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미 강한결이 한 말 때문에 섣부르게 나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순간부터, 이미 게임은 끝난 거였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됐다. 지영은 역시 강한결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는 천부적인 능력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슬슬 갈까?”
그리고 아예 종료를 선언하는 임은진의 말에 다들 일어나 짐을 챙겼다. 이어 레미와 이치카 씨를 ‘호위’하듯이 섰고, 걸음을 뗐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찍은 기사가 10분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 그런데 누군가가 거기에 한 네티즌이 ‘부럽다’란 댓글을 달았고, 그 댓글로, 다음 타깃이 결정되었다.
자성과 회생이 불가능한 이 행태를, 세계는 일본의 미래를 보았다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