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56화
456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21)
“…….”
켄이 떠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후미코는 돌연 빙긋 웃었다.
“이제 애기라고 못 부르겠구나.”
다 컸다.
그 어설펐던 신입이, 뒤치다꺼리에 지쳐서 고민하고, 고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마지막까지 챙겨주지 못해서 마음에 짐이 되어 나올 때 끝끝내 그의 팀원 하나의 부정을 덮어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안타까웠던 마음이 이제는 사라졌다.
애기는 듬직한 형사가 되었다.
자기의 주관이 뚜렷해 앞으로 나아가는데 망설임이 없는, 그런 형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또 안타까웠다. 일본 경찰의 미래가 되어야 할 아이가, 결국엔 현실에 지쳐 마굴을 벗어나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켄은 잘 모른다.
아니, 아마 잘못 알고 있을 것이다.
빗자루에 올라탄 그녀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사실, 그녀는 정관, 재계 있는 집 자식들의 제물이 되는 게 그리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녀는 욕심이 없었다. 좀 더 높이 올라가야겠단 의지도 별로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타고났던 직감으로 빠르게 승진한 것도 사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그녀는 한직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실제로 한직이 있기도 했다. 본래 그녀는 처음부터 본청에서 근무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경찰대를 나왔지만, 성적은 솔직히 좋지 않았다. 그때도 의욕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쿄 외곽의 작은 파출소로 발령받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녀의 전설은 시작됐다. 처음엔 별것 아닌 잡범이었다. 동네 여성의 속옷을 털던 놈인데, 어찌나 변장 솜씨가 능숙한지 신고가 수십 건이 쌓였는데도 잡지 못했다. 그녀가 막 발령받았을 때 이미 그랬던 상태였다. 그걸 그녀는 이틀 만에 잡았다.
잡는 건 그녀에겐 어렵지 않았다.
미치도록 좋았던 직감은 서 앞에 현상범 수배지를 보는 순간 즉시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현상수배지에 있던 놈 중, 중고 거래 사기범이 있었는데, 범인은 그놈이었다. 그리고 그놈은 일본인이 아니었다.
일본에 노동하러 들어온 중국 놈이었다.
그리고 그놈은 마작방에 있었다. 거기서 놈을 잡았고, 제압해 집으로 가자, 수백 장의 속옷이 나왔다. 놈은 그걸 팔고 있었다. 세상에는 상상 이상의 변태가 많아서 여자 속옷에 환장한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놈은 그걸 다크넷에 팔고 있었다.
그게 마녀의 전설 프롤로그였다.
반년 만에 그녀는 그 구역을 정리했다. 미제사건 대부분을 해결했고, 본청으로 픽업됐다. 그리고 거기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때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청장 직속 라인인 신설 특수 1과에 배정되며 곧장 팀장이 되었을 때도 솔직히 좀 얼떨떨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살인범 둘을 잡아 실적이 없어 자기의 팀으로 쫓겨났을 거로 생각했던 이상한 여자가 승진하는 걸 보고,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그 여자가 승진하자, 다른 여자 팀원이 배정됐고, 이번에도 실적은 그 여자 팀원이 독식하며 승진하자 그녀는 경찰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래도 빠르게 승진한 덕분에 나름 고연봉이 되었다.
승진은 못 해도, 그래도 보너스는 넉넉했고, 팀원들과 나누면 사치만 부리지 않으면 사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아이 둘이 있는 가정집도 매우 여유로울 정도였으니, 후미코 본인 혼자는 차다 못해 넘쳤다.
흥미를 잃자 위에서 압박이 시작됐다.
팀을 쪼개서 한직으로 보내겠단 협박이 있었지만, 그녀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두어 번 호출당하고 나서야 사건을 뒤져보고, 그리고 해결했다. 그녀는 이 팀을 이용하기로 했다. 제물 1팀. 대우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의 가치를 보존키로 하면서 아주 훌륭한 월급루팡이 가능했다.
바쁘지 않지만, 같은 호봉과 나이에 비교해 상당히 높은 월급.
이 두 가지는 그녀에게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대충 정리가 끝나며, 그녀는 일 년에 둘 정도, 적당한 건수가 더 생기면 셋까지. 그녀는 그렇게 10년을 넘게 제물이 되었다. 호봉도 오르고, 일도 편안하니 나쁠 게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 그녀는 경찰을 그만뒀다.
애기, 켄은 마녀가 드디어 지치고 지쳐 그만둔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팀이 썩었다. 몸과 마음이 편해지자 헛생각을 하는 놈들이 나왔고, 이놈들은 이곳저곳에서 돈을 받아도 너무 많이 받아먹었다. 당연히 그녀 몰래 했고, 그녀가 알았을 때는 이미 형사라 할 수도 없는 지경에 처해버렸다.
그녀는 그 팀을 손수 지워 버렸다.
대신, 그래도 정이 있어 형사 처벌은 받지 않게끔. 일본 끝과 끝으로 찢어서 발령내는 거로. 모조리 쳐냈다. 대신 책임도 져야 했다. 그녀는 사직서를 올렸다. 그러나 재밌게도, 그녀의 사직서는 반려됐다. 올려야 할 고위층 자녀들은 아직도 넘쳐난다. 계속 새롭게 유입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위는 그녀가 새로 팀을 꾸리길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직서를 던지고, 반년이 넘게 잠수 탔다. 어디서도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오키나와와 위쪽 홋카이도까지 싹 훑었지만,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당연했다. 그녀는 그날 밀항해 옆 나라로 들어가 전에 예전 국제 사건에 엮여 알게 됐던 김가네 흥신소에 몸을 의탁했으니까.
반년이 좀 더 지났을 무렵, 그녀의 폰으로 사표 수리가 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그녀는 그날 정리하고, 일본으로 들어와 탐정사무소를 차렸다. 김가네에서 받은 돈도 있었고, 그간 모은 돈도 있어서 사무소를 열고 놀고먹었다.
그런데 그녀의 사무실에 다시 본청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고객이 그날 정해졌다.
본청에서 난항을 겪는 사건을 받는다. 은밀하게. 대신 돈은 마니, 아주 마니! 받았다. 그렇게 본청의 일을 받기 시작하자 그쪽에서 다시 알음알음 소문이 퍼지며 민간인의 의뢰도 받았다. 그 결과? 몇 년 만에 그녀는 다시 업계 상위 티어가 됐다.
‘뭐, 이런 스토리지.’
그중에서도 애기는 사실 아끼던 후배였다.
2팀이 신설되고, 그쪽으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는 처음으로 위에 항의했을 정도였다. 자신과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한 애기를 보며,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돈 없고 백 없고, 인맥도 없는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무능한 자식새끼들은 지천에 널렸고, 이미 마녀에게 익숙해진 놈들은 사건 해결에 진심이 되지도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던 윤리, 도덕성은 거기서부터 삐걱거렸다.
그런 상태에서 팀원의 배신은, 경찰조직에 대한 분노까지 만들어줬다. 그러나 그녀는 그래도 경찰이었다. 동생의 죽음 때문에 검사에서 경찰로 틀어버린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탐정사무소를 열고 본청의 일을 도운 것이다.
“뭐, 대가야 넘치게 받고 있지만…….”
후후.
그녀는 글러도 한참 글러 버린 이 나라의 조직을 보며, 망조를 느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란, 어떤 확신도 같이.
마녀는 옛날 생각을 접었다.
애기를 보자 떠오른 과거의 망령은 이쯤에서 고이 접어 그녀의 칠흑 같은 마음속 어딘가로 던져 버렸다.
그녀는 차를 출발시켰다. 그녀가 향한 곳은, 고급 오피스텔이었다. 이곳 교토에서 가장 높은 오피스텔. 그곳 앞에 차를 대고, 본 네트에 발을 올리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곳은 쿄타로가 줬던 세 명의 명단 중 한 놈이 사는 집이다.
일단, 브로커의 둘이 연결되어 있던 것이다.
그것도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 후미코는 웃었다. 어설펐다. 브로커를 셋, 넷을 쓰는 건 기본이었다. 브로커 하나만 쓰는 건 아예 미친 짓이다. 만약 하나만 쓴다면, 그놈만 잡으면 고구마 줄기처럼 모조리 뽑혀 나온다.
그래서 빙빙 돌려서 몇 단계를 거친다.
기본적으로 의뢰를 받는 놈이 있고, 선수를 관리하는 브로커가 있고, 이 둘을 연결하는 놈이 따로 있다. 아까 그 마른 멸치는 두 번째였다. 선수를 관리하는 브로커. 그리고 지금 이 오피스텔에 사는 놈은 선수 관리 브로커와 의뢰를 받은 브로커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놈이다.
그놈은 기다리면 나올 것이다.
낮엔 집에 있다가, 밤이 되면 교토에 지가 직접 운영하는 고급 살롱으로 나가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교타로의 정보가 그랬으니, 지금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났다.
해가 슬슬 질 무렵, 고급 세단 한 대가 나왔다.
번호판을 보니, 목표했던 놈의 차였다. 후미코는 그 차를 느긋하게 뒤따라갔다. 교토 시조도리 거리에 고급 건물 아래로 들어가는 차. 후미코는 차에서 내려 근처를 슬쩍 훑었다. 살롱은 꼭대기 층 같았다. 간판조차 없는데, 창문을 통해 은은한 빛이 보이는 걸 보니.
후미코는 주변을 살폈다.
이런 고급 살롱은 절대로 개인이 운영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반드시 조직의 관리가 이어진다. 그러니, 잘못 건드리면 아주 피를 본다. 하지만 그녀는 마녀다.
마녀 후미코.
그녀에게 깨진 작은 중소 구미는 셀 수도 없었다. 실적 챙기기에 가장 좋은 게, 야쿠자 소탕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열 받은 거대 구미의 도전도 있었다.
일본의 낮은 경찰의 세상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밤은? 야쿠자다. 이들은 무법자들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러시아, 필리핀처럼 막 나가진 못한다. 그렇게 막 나갔으면 치안력이 한국과 같이 세계 1, 2위를 다투지도 못했을 것이다. 밤은 분명 그들의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경찰의 권위와 아성에는 도전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저 높은 곳에 사는 양반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장기 말로 사용은 해도, 절대로 경찰을 먼저 건드리진 못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야쿠자가 막 경찰도 습격해 죽이고 그러지만, 진짜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만약 있다면, 그 경찰이 찾은 증거가 경찰 수뇌부를 직격 할 때만 가능하다.
“그땐 오히려 위에서 사주하니까.”
더러운 일이지만, 이건 어느 나라나 같다.
순진한 아해들이야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경찰이 그러겠어요? 이런 생각을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낸다. 그녀는 당연히 그러지 않았다. 왜? 진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교토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다.
이런 도시는 반드시 부가 쌓인다. 그럼 그걸 그냥 둘 야쿠자가 아니다. 이쪽도 진출한 조직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녀는 폰을 꺼내 야쿠자 족보를 꺼냈다. 반년마다 상당한 거금을 들여 본청 정보과를 통해 분기마다 업데이트하는 족보다.
교토에 진출한 조직은 둘이다.
“하나는 야마구치구미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토착 세력. 음, 이놈은 야마구치구였지?”
그녀는 족보를 덮고 연락처를 뒤져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이게 누구야?
40 중후반? 걸걸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그 목소리에 후미코는 슬며시 웃었다.
“살아 있었네?”
-흥! 내 목숨이 얼마나 질긴지는 마녀 후미코가 제일 잘 알지 않나? 하하!
“그럼. 내가 얼마나 노력 많이 했는데, 벌써 갔으면 섭섭하잖니.”
-에이! 그걸 언제까지 우려먹게!
“우려먹다니? 나는 그 건으로 네게 아직 뭔가를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끙, 그건 그렇지. 염병! 그래서 왜? 이번에 하나 쓰게?
“두 개 중 하나만 쓰자.”
-흥! 말해봐!
“교토로 내려온 놈 중에 다케시라고 알아? 브로커에, 여기 시조도리 거리 간판 없는 살롱 관리하는 놈 같은데.”
-다케시? 잠깐 기다려 봐. 야! 인명록 가져와 봐!
몇 분이 지난 뒤.
-있다. 우리 애가 맞네. 3년 전에 스카우트해서 들여온 놈. 근데 이놈, 브로커도 해?
“내가 알기론.”
-호오, 업장 관리하라고 내려보냈더니, 브로커도 한다? 뒷주머니를 찼다는 거네? 흐흐.
“처분은 너한테 맡길게. 근데 그 전에 나랑 면담 좀 해야겠는데?”
-면담? 뭐 마녀 일 관련이겠고, 뭐 알겠다. 그쪽엔 말해두지. 5분 뒤 올라가.
“고마워. 이걸로 하나 차감.”
-거, 고맙네.
뚝.
전화는 끊겼다.
마녀는 씩 웃었다.
방금 통화한 야쿠자 놈은 나름 괜찮은 놈이다. 야쿠자에 괜찮은 새끼가 어딨겠느냐마는, 이놈은 그나마 그중에서도 가장 정상적인 놈이다. 최소한의 도리가 있는 놈. 이런 놈이 그나마 자리를 차고 있어야, 더 악랄한 새끼가 올라오지 못한다. 그런 놈이 관리자가 되면, 진심 그쪽 구역은 개판이 된다. 뼛속까지 빼먹는 악랄함은 기본 탑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최악은 쳐내고 차악으로 관리하는 건, 어느 나라는 조직을 상대하는 기본 원칙이었다.
그래서 후미코는 이놈을 두 번이나 살려줬다.
한 번은 칼에 맞았을 때, 경찰임을 나타내 도와줬고. 한 번은 뒤통수 맞기 직전에 알려서 역으로 털게 해줬다.
그래서 목숨값 두 개를 빚진 것이다.
5분이 지났다.
시간을 확인한 후미코는 차에서 내려, 살롱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