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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49화 (44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49화

449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14)

눈빛, 표정, 말투만 봐도 이 사람이 진심인지 알 수 있다. 시큰둥하다. 흥미롭다. 이런 단어들이 대게 그 사람의 심정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단어이자, 지표였다. 이런 걸 알려면 일단 감각이 예민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당연히 이런 감정을 숨기려고 한다. 하지만 단어 선택과 행동거지 등을 자세히 보면 어떤지 대강은 알 수 있다. 강한결을 포함한 황금세대, 그리고 일련의 사고로 지독히 예민해져 있는 레미 가족 또한 그 범주에 들어갔다.

이들은 진심인가.

진심이 아닌가.

이치카 씨가 문을 살짝 열어주자 안으로 들어온 니시노 하루히의 에이스 팀 다섯.

남자 둘과 여자 셋으로 이루어진 팀. 나 법조인이오, 하고 잔뜩 힘을 준 복장 뒤로 이들의 외모를 봐야 했다.

선이 굉장히 굵직한 40대의 사내.

이 사람이 팀장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30대 중반의 여성.

단정한 단발에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담한 인상이 인상적인 여성.

이 사람이 부팀장이다.

거기에 삼십 대 초반의 흐릿한 인상의 사내, 팀원일 거고.

딱 봐도 신입으로 보이는 둘.

잡일 담당일 거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이 의뢰를 어떤 자세로 받아들일 것인가. 거만하게 굴 것인가. 그 반대로 나올 것인가. 이쪽의 의뢰 내용을 밝히기 전에, 이들의 자세부터 보는 게 먼저란 판단을 내린 건 당연히 강한결이었다.

그래서 대화의 주도권을 이치카 씨와 레미에게 부탁해 받아냈다. 말이 주도권이지, 의뢰 자체를 전권을 이임 받아 휘두를 대변인이다.

하지만 자리에는 전원 참석했다.

작은 거실에,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남북 전쟁도 아닌데 남과 북으로 나눠 앉아 있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니시노 하루히 특별 1팀장 하토리 준입니다.”

“부팀장 니시무라 레이코입니다.”

그 뒤로 줄줄이 자기를 소개하는 니시노 하루히 팀. 다시 한번 가벼운 통성명. 일의 시작을 알리자는 뜻이다.

“강한결입니다. 레미 양의 대변인으로 생각해도 됩니다.”

“대변인이군요.”

부팀장 레이코가 대변인이란 단어를 곱씹었다. 그 의미는 명백했다. 보통 대리인, 대변인은 당연히 법률 대리인을 뜻했다. 그러니 저 자리는 보통 변호사의 차지다.

“지금 이 자리 한정이라 생각해주시죠. 의뢰가 성사되면, 당연히 제 자리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강한결은 성사되면, 여러분의 몫이라는 단어를 좀 더 강직하게 발언했다. 특별히 강조했다는 뜻이다. 뜻은 명백했다. 아직 내가 대리인이라는 뜻은, 내가 너희를 고용할지 말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런 강한결의 말에 반응은 역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신입 둘에게서는 불쾌한 기운이 잠시 피었다가 사라졌다. 팀의 중간을 맡는 사람도 딱 한 번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팀장이나 부팀장의 표정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그냥 아 그렇습니까? 하는 표정이고, 그런데 뭐. 하는 표정이었다. 강한결은 속으로 적어도 두 사람만큼은 감정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 것에 합격점을 줬다. 하토리 준은 강직한 선과는 대비되는 서글서글한 미소로 강한결의 말을 받았다.

“이거 잘해야겠군요. 대변인이 되기 위해서는요. 하하.”

자신감과 자존감을 동시에 챙기는 말.

그러면서도 언어 선택이 어렵지 않았다. 한국인인 강한결이 일본어를 수준급으로 하긴 하지만, 그래도 배려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말도 빠르지 않았다. 단어를 또박또박 알려줬다. 강한결의 뒤에서 임효중이 친구들에게 통역하는 걸 봤기 때문에 나온 행동일 것이다.

배려.

이런 배려를 베풀 줄 아는 정도면, 반 이상은 이미 사실상 합격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작은 센스로 이들을 믿고 맡길 수는 없었다. 실력도 봐야 한다.

‘감각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더해 진심까지.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세 사람을 영상에서 캡처한 사진을 내밀었다.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까? 맥을 짚지 못하면? 센스고 나발이고 탈락이다. 노트북으로 보여준 캡처 사진으로 니시노 하루히의 특별팀 멤버들의 시선이 보였다.

딱 봐도 신입으로 보이는 둘은 이게 뭔가 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경험이 좀 되는 세 사람은 아니었다.

잠시 뒤.

“레이코. 자료 좀 꺼내봐.”

“네.”

동료에게 말할 때도 또박또박, 알아듣기 좋게 말한다. 배려를 신경 쓸 여유가 있다는 뜻. 하지만 중요한 건 당연히 그게 아니다. 또 하나 독특한 건, 흔히 ‘시다’라 불리는 신입에게 시키는 게 아니라 무려 부팀장인 레이코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레이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태블릿을 꺼내 자료를 열었다.

슥, 슥.

터치 몇 번으로 팀장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레이코.

‘그렇지.’

그 사진은 자수한 범인의 사진이었다. 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정면 샷. 몸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진이다. 저걸 펼쳤다는 건 하토리 준과 니시무라 레이코가 생각한 게 똑같았다는 뜻이었다.

“흠. 사진은 이거 하납니까?”

“한 장 더 있습니다. 후방에서 찍은.”

“아, 그렇군요. 어디.”

딸깍.

노트북 버튼을 눌러 다음 사진을 펼친 하토리 준은 자수한 범인 셋과 강한결이 보여준 사진을 번갈아 돌아봤다. 그리고 갑자기 일어나더니 거실에서 나가 현관을 돌아봤다. 금방 탐색을 끝내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는 하토리 준.

“보여주신 사진은 이 집에 들어온 범인의 사진이군요. 음, 예컨대. 진범의 사진.”

“…….”

강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더 해보라는 신호를 눈빛으로 가만히 보냈다. 그에 신입 둘은 또 꿈틀했다. 거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만,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했다. 감각이 없진 않지만, 업계 1위 신입치고는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일은 저들이 하는 건 아닐 테니까.

갭을 재차 확인한 하토리 준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자수한 범인들. 사진만 봐도 결정적인 차이가 보이는군요.”

“…….”

“몸집입니다. 체격이라고도 하지요. 이건 대충 봐도 너무 달라요. 진범이 사전에 계획을 세웠다는 뜻인데,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게 참 이상하군요.”

하토리 준의 말에 강한결도 동의했다.

이상했다.

어째서 이렇게 갭이 클까? 강한결은 그 이유를 ‘시간’이라 생각했다. 즉, 범인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꾸준히 자신과 맞는 ‘더미’를 찾았다면 이런 차이가 났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놈들은 참지 못했다.

더러운 성욕을 풀고 싶기도 했지만, 아마도 강지영에 대한 분노로 빨리 ‘사냥’하고 싶은 욕구가 결국 신중함을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나름 자신이 있었겠지.’

걸리면 뭐?

나 아닌데? 하고 넘어갈 힘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그럼 하나의 증거가 더 생긴다.

‘확실한 권력이 있고, 그리고 세상을 물렁물렁하게 보는 어린놈들이지.’

여기까지도 파악했지만, 강한결은 당연히 말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계속해 보라는 신호를 보낼 뿐이다. 그 신호를 읽은 하토리 준은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음, 시간이 없었군요. 마음이 조급했어. 그러니 제대로 된 허수아비를 구하지 못해 이렇게 차이가 나는 놈들을 대신 세운 거겠군요.”

“…….”

“그리고 이게 가능하려면, 힘이 있어야겠군요. 권력과 금력. 적어도 금력은 확실히 있어야 합니다. 저 허수아비들이 대신 형을 치를 시간을 돈으로 줘야 할 테니까.”

맞다.

하지만 이 정도도 유추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진범을 찾는 게 우리 일입니까?”

하토리 준은 거기서 직구를 날렸다.

강한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레미 양이 원하는 것은 저 가짜들 대신에, 진범이 벌을 받는 겁니다. 그게 이번 의뢰입니다.”

“쉽지 않겠군요. 이 사진. 음, 영상이 있겠지요. 하지만 이 정도로 진범을 찾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요? 글쎄요…….”

강한결의 대답을 들은 하토리 준은 피식 웃었다. 완연히 감정이 드러나는 미소였다. 여기까지 했는데 더 해야 하나? 하는 느낌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강한결은 최소한 자기가 추론한 것 정도는 전부 이미 파악했기를 바랐다. 이 일은 속도전이다. 여론전이 될 거고. 그렇기에 시간을 끌면 레미에게도 안 좋고, 강지영에게도 좋지 않았다.

그러니 발 빠르게 움직여 빠바박! 박살 내기를 바랐다.

하루 이틀 안에 해결될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일본에 있는 동안 저 가짜 새끼들은 죄가 없음으로 풀려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범의 턱밑까지 이들의 예리한 시선이 파고 들어가기를 바랐다.

그런 능력을 보여주려면, 적어도 오늘 하루 만에 자기가 파악한 만큼은 빠르게 치고 와줘야 했다. 이런 쪽에 별로 관심도 없던 자기와 친구들이 이 정도까지 추론했는데, 전문가들이 이 정도도 못 해주면 맡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하토리 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디 끝까지 가보자는 듯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허수아비를 구했을 정도면 돈이 많아야 합니다. 그럼 기존에 경호원은 아니라는 소리겠고, 경호원의 배치를 바뀌었을 테니 가드탑의 관리자가 관여했겠군요. 그러나 가드탑의 자식들일 가능성은 적어요. 너무 쉽게 의심받을 테니까. 적어도 가드탑 임원이나 임원 자식들과 아는 사이일 테고.”

“…….”

그렇지.

그 정도는 보여줘야지.

그 정도는 기본으로 파악해 줘야지.

강한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 정도로 각도를 좁히면 찾아볼 여지가 제법 많아지는군요. 자, 이제 마음에 드십니까?”

하토리 준의 말에 강한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이거야.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군요.”

“네?”

“안자이 히카리가 제 처조카입니다.”

“아. 그렇군요.”

“하하, 이 얘긴 넘어가고. 계약 전에 대화를 마무리 지어봅시다. 아시겠지만, 이 정도로는 그래도 범인을 특정하기 힘듭니다. 그, 음. 좀 민감한 얘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하토리 준의 시선이 레미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레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아랫입술을 깨무는 걸 보면 편치 않은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얘기였다.

“경찰에 찾아가기 전에 병원에 들러 검사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검사 결과쯤은 충분히 뒤집을 수 있을 겁니다. 그걸로 아니라고 하면 끝이지요. 저희가 미리 관여해, 우리와 연결된 업체에 검사를 받았으면 모를까 일단 병원에서 나오는 결과로는 범행을 부정할 겁니다.”

“증거, 있어요.”

“네?”

“……오빠, 내 방에서 세 번째 서랍 열어서, 가장 아래쪽 노트 가져다줘요.”

레미의 부탁에 어? 어어. 하고 사토 신지로가 일어나 레미의 방에 가 금방 그녀가 말했던 노트를 가지고 나왔다. 그녀는 그 노트를 펼치더니 비닐 팩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 비닐팩엔……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다.

하토리 준의 눈빛이 대번에 번쩍였다.

대화에 일정 끼고 있지 않던 니시무라 레이코 부팀장의 눈빛도 반짝, 예리하게 빛났다. 이게 뭔지 모르면, 변호사 따위 때려치우는 게 좋았다.

“……반항하면서 복면 속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어요. 두 사람 거…….”

“이거, 이거……. 음. 이러면 또 얘기가 달라지는군요. 특정만 하면, 잡을 수 있습니다. 무조건.”

“바로, 바로 줄 수는 없어요. 찾아주세요. 그럼 줄게요.”

“하하, 하하하.”

하토리 준의 입매가 시원하게 찢어지며 웃음이 터지는 순간, 강한결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 아이, 생각 이상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이런 정보를 얘기하지 않고 자기에게도 숨겼다. 그렇다고 바로 주지도 않겠단다. 철두철미까지는 아니어도 충분히 고민하고, 스텝을 밟아가고 있었다. 자기가 받은 고통을 돌려주기 위해, 적어도 진범이 죗값을 치르기를 바라면서 인내하고 있었다.

대단했다.

심지어 존경까지 피어났다.

뭐랄까. 이건 마치…….

“와, 여자 강지영 보는 것 같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황석. 거기에 답이 있었다. 아, 그래. 인내하면서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갔던 친구를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떠 먹여주는데, 못 받아먹으면 빠가겠지요. 후후. 레미 짱.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그 새끼들 잡아다가 철창 안에 처박아줄게요.”

가만히 있던 부팀장 레이코의 갑작스러운 말에, 레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갑던 그녀의 눈빛은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차갑다. 감정을 인내했다가, 다리에 화살 한 발 때려 넣고 목줄을 채워 사냥을 끝낼 때 터뜨릴 줄 아는 사람 같았다.

“팀장님?”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건네주며 레이코가 팀장을 부르자 하토리 준은 씩 웃었다.

“자, 이제 계약서 쓸까요?”

“그러죠.”

계약서는 단숨에 작성됐다.

장세리 대표가 제시한 수임료를 서로 확인한 뒤에 공란에 넣고, 이어진 설명에 따라 공란이 빠르게 채워졌다. 계약 종료는, 진범이 잡히는 순간이다. 계약이 끝나는 순간, 하토리 준이 말했다.

“자, 그럼 바로 일을 시작해야겠군요. 영상까지는 필요 없고, 이 사진 두 장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바로 터뜨릴 생각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사실 이미 가드탑 조사는 착수했습니다. 거기 자제와 어울리던 친구들 정보는 이미 다 있기도 하지요. 남은 건 역추적뿐입니다.”

오…….

역시 업계 탑이라 이건가?

‘아니, 애초에 웬만한 권력가의 정보쯤은 전부 가지고 있겠지.’

일단 수집한다.

수집한 다음, 묵힌다.

그러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꺼내 쓴다.

돈이 많은 집단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런 수집은 정계, 재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고객임과 동시에 언젠가는 목을 쳐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상류의 방식만을 고집하진 않았다.

계약서와 사진을 챙겨 밖으로 나간 하토리 준이 사토 가의 집 앞에 모여 있던 기자들에게 폭탄을 떨구는 동안, 강한결은 일어가 되는 임효중과 함께 탐정 업체 다섯 업체에 정식 의뢰를 넣었다. 그리고 계약서가 작성되고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여론이 뒤집혔다.

와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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