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48화
448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13)
레미의 울음이 그치고, 분위기는 어색하고 무거워질 줄 알았다. 레미도 울음을 진정시키고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는 다 큰 숙녀라 생각할 테니, 오늘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터뜨린 게 아마 어지간히 부끄러울 것이다. 울어서가 아니라, 부끄러움에 다시 볼이 빨개지기 시작할 무렵, 다행히도 대한민국 최고의 MC가 아끼는 이성진이 나섰다.
이성진은 몇 년이나 더 런닝을 뛰며, 분위기를 타는 법을 아주 제대로 알고 있었다. 아쉽게도 일본어가 약했지만, 그의 말을 통역해 줄 친구가 둘이나 있었다. 임효중의 도움을 받아 이성진은 능숙하게 분위기를 풀었다.
요즘 아이들의 화제, 한국의 화제,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라고 해도, 아직도 한류는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류는 더욱 기세등등하게 일본을 휩쓸고 있었다. 그러니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한류를 모른다는 건, 그냥 이지메의 조건이 된다. 이는 한국도 비슷하다. 유행하는 드라마, 영화, 노래, 아이돌 등등, 이에 대해 뭘 좀 알고 있어야 대화에 껴주기 때문이었다. 사회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이라, 좋아하지 않아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한류였다.
그리고 이성진은 그런 한류의 중심에 있는 친구였다. 더 런닝은 아직도 동남아, 중국과 일본에서 인기가 상당한 프로그램이고, 이성진은 그 더 런닝의 고정 멤버였다. 그러니 그 얘기를 토대로 이성진은 소녀의 관심을 훔치고, 나아가 이치카 씨와 남자인 사토 신지로의 흥미까지 당기는 데 성공했다.
“정말요?”
“그렇다니까? 정혁이 형이 진짜 얼마나 장난기가 심한데! 진짜 신기한 게 그 형은 반백 살도 넘었거든? 그런데 어떻게 된 게, 더 심해져. 방송에서 그 형이 나 놀리는 건 진짜 반의반도 안 나온 거라니까? 너무 심해서 PD님이 다 적당히 자르는 거야. 그런데도 그 정도. 진짜 대단하지?”
“와아……. 웃겨요.”
안 웃긴 거 같은데?
그러나 레미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눈치가 다들 비상해서 그게 이성진의 호들갑을 받아주는 거라는 걸 알았지만, 누구도 그걸 지적하진 않았다. 애초에 그 반응이 레미가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는 뜻이니 굳이 건드릴 필요가 전혀 없기도 했다. 덕분에 무거웠던 분위기는 어느 정도가 아니라,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부드러운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30분 정도 지나 장세리 대표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강한결은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니시노 하루히랑 계약 끝났어. 지금 그쪽 팀이 교토로 출발했고, 네가 보내준 주소도 전달했으니까 늦어도 두 시간 안엔 갈 거야.
“2시간이요? 빠르네요?”
-거기는 시급을 요하는 국내 일은 전용기 쓴다더라. 지금 바로 출발한다니까, 얼마 안 걸릴걸?
“음, 덩치가 크긴 한가 보네요?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감사하다는 말은 그만! 레미? 그 아이는 어때?
“성진이가 분위기 풀어놔서 괜찮아졌어요.”
-그래? 걔도 마음이 제법 단단한가 보네?
“어떤 의미로는요.”
확실히 저 나이 때의 아이가 가지기는 힘든 단단한 정신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완벽하게 여물지 않았고, 그게 이제는 종종 눈에 보일 정도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난 이제 이쪽 언론 대응할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네, 대표님. 감사…… 연락드릴게요.”
-하하, 그래.
전화를 끊은 강한결은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어서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일본어로.
“니시노 하루히와 계약 끝났고, 지금 그쪽 팀 출발했다고 합니다.”
“아…….”
이치카 씨가 탄성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악명 높은 니시노 하루히의 수임료를 알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리 걱정할 게 아니었다. 비즈 엔터는 돈이 많다. 사장인 리치 언니 장세리도 장세리지만, 황금세대 아이돌의 연예계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의 무사님의 개런티로 정말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이런 수임료는 그 값에 비하면,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그걸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 좋은 분위기는 깨야 했다.
“로펌 변호사들이 올 테니까 준비해야 할 게 좀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잠시 쉬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강한결의 말에 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좀 피곤했는지, 좀 쉬고 싶은 느낌이었다. 레미가 수락하자 당연히 자리는 금방 끝이 났다. 세 사람이 안방으로 들어가자, 강한결은 탁자를 두고 빙 둘러앉아 본론을 꺼냈다.
“로펌은 계약됐으니까, 이제 우리도 움직이자.”
“그 사설탐정?”
“응. 그래서 말인데, 이제 우리도 각자 재산 좀 오픈해야 할 것 같아. 그래야 어느 정도를 기준으로 쓸지 정하지.”
“응? 재산은 왜?”
이성진의 말에 강한결은 세 친구를 돌아본 뒤 말했다.
“너넨 내가 이거 나 혼자 돈 낸다고 하면 뭐라고 할 거 아냐. 지영이가 낸다고 해도 난리 칠 거고.”
“당연하지!”
“그러니까 까자고. 그래야 얼마씩 모을 수 있는지 정하지.”
“그래? 그래, 그럼.”
강한결은 만약 자신이 혼자 일을 처리하면 이 친구들의 서운함이 하늘 끝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지영의 일을 돕는 데 도움 기회 자체를 빼앗았다며 어쩌면,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주먹을 날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같이 하는 게 나았다.
사설탐정을 고용하는 비용이 당연히 적을 리가 없었고, 그리고 한 업체만 고용할 생각도 없었다.
빠르게 결과를 뽑아내려면. 경쟁이 최고다.
“나는 이 정도.”
강한결은 그런 마음에 먼저 자기의 재산을 오픈했다. 몇 년 전 지영 덕분에 번 돈은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늘었다.
“워…… 많이도 벌었다?”
“엄마 덕분이지 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계속 굴리고 계셨거든.”
“하긴, 어머님 능력이면……. 난 이 정도.”
임효중은 폰으로 자신의 계좌를 보여줬다. 차례대로 황석도, 이성진도 자신이 얼마쯤 있는지 순순히 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픈한 재산을 보니, 다들 부자였다. 뭐 재벌처럼 많은 건 아니었다.
쭉쭉 자기의 재산을 까는 친구들.
다들 꽤 많이 모았다. 베가에 박혀 있는 주식을 빼고도 현금을 참 많이 모았다. 이게 전부 지영이 준 기회와,
“다 지영이랑 너네 어머님 덕분이지 뭐.”
“맞아. 우리가 주식이나 코인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없고.”
강한결의 어머니인 김지영 여사 덕분이었다.
완벽한 정보와 아주 유능한 투자 전문가의 결합은 몇백만 원에 공을 두 개나 더 붙여 버렸다. 뭐 진짜 부자들에 비해서는 푼돈이겠지만, 순수하게 자기의 돈으로 이 정도를 일군 건 역시나 대단했다. 그것도 고작 몇 년 사이에.
그렇게 네 사람의 돈을 전부 모아보니, 합쳐서 초기 몇천만 원이 몇십억이 되었다. 물론 앞자리 수가 2를 넘어가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사설탐정을 고용하기 충분한 돈이었다. 강한결은 그중 절반을 쓸 각오였다.
“이거 반씩은 쓴다? 이번 일 돈 많이 들어갈 거야.”
“응. 알았어. 맘대로 해.”
이성진은 쿨하게 그러라고 했다. 이어서 임효중과 황석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도 아까워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의리, 신뢰, 믿음. 황금세대를 단단히 결속하고 있는 감정은 친구를 위해 억을 써도 아깝지 않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
강한결은 이어서 플랜을 설명했다.
“니시노 하루히가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대형 로펌이지만, 범인 찾기는 또 다른 영역이야. 그리고 니시노 하루히가 제대로 움직일지도 의문이고. 그래서 우리는 보험을 드는 거야. 사설탐정으로. 하지만 탐정 업체 하나에만 의뢰를 넣지 않을 거야. 은진 누나한테 탐정 업체 연락처 받았거든? 꽤 많아. 돈이면 뭐든지 하는, 실력과 악명이 자자한 업체야. 이들은 돈만 주면 반드시 성과를 낼 게 분명해.”
“응응, 그래서?”
“전부 똑같은 조건으로 고용할 거지만, 대신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액수는 달라질 거야. 결정적인 증거를 찾은 업체와 그러지 못한 업체가 같은 돈을 받을 수는 없잖아? 그러니 경쟁이지. 아주 맛있는 먹이. 즉, 돈을 판돈으로 베팅해서 가장 먼저 찾는 업체가 과실을 혼자 딸 수 있게. 그럼 눈에 불을 켜고 찾을걸?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서. 결과에 따라 배판이 되는 건데. 그건 탐나잖아?”
“음…….”
강한결의 말에 친구들은 전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 나라 사설탐정 업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돈만 주면 아마 눈에 불을 켜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이 사건의 진범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금액을 과실에 묶어둘 것이고.
이긴 쪽만 사다리를 받아 나무를 올라 그 과실을 따게 하는.
그걸 위해 경쟁을 붙여 속도까지 붙일 생각이었다. 늦장 부리면 과실은 따지 못할 테니까. 꼬리에 불이 붙은 망아지처럼 날뛸 것이다.
그럼 효과는 확실할까?
강한결은 그렇다, 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이건 내 생각인데, 범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어? 그래?”
“응. 잘 생각해 봐. 범인을 바꿔치기했어. 이 범인 바꿔치기 때문에 최소한 억 이상은 들었겠지. 아마 두당 억이 들었을 수도 있고. 자, 그럼 범행을 저지른 놈들은 돈이 많겠지?”
“…….”
다들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몇 가지 추론이 나와. 첫 번째. 애초에 현장으로 나온 경호원도 아니라는 거지. 현장 경호원이 몇억씩 쓰기는 그렇잖아? 자기의 인생 커리어와 직장까지 걸어서. 즉, 현장 요원과 바꾼 거야. 지영이가 보내준 초반 영상 봤지? 이놈들 몸이 경호원 몸이야? 아니지?”
“음, 그랬지.”
호리호리하다.
마른 멸치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란 뜻이다. 운동의 흔적? 그런 건 찾아볼 수도 없었다. 강한결도 그렇고, 이성진도 그렇고, 임효중이나 황석도 그렇고. 전부 운동은 질리게 했던 사람들이다. 운동한 사람의 몸이 아닌지, 맞는지쯤은 옷을 입고 있어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고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뭐 운동을 했을 수도 있겠지. 그런 날렵한 몸을 유지하려면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정도. 골프나. 이런. 그런데 경호원이 보통 그런 종목에 종사했던 이들이 들어가냐? 아니지. 최소한 우리처럼 투기 종목을 거친 이들이 들어가지.”
경호다.
누군가를 지키는.
배드민턴 선수가 태권도 고수일 수는 있다. 아주, 아주아주 희박할 확률로. 그러나 당연히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운동의 흔적이 없어. 그럼 경호원이 아니라는 건데. 왜 거기에 있었을까?”
“그것도 자리 바꾼 거네?”
“그렇지. 그럼 적어도 현장에 관여할 수 있는 놈이겠지? 그럼 뭐가 남을까?”
“어…… 그 경호업체의 높으신 분? 아, 적어도 사장 아들이겠구나? 아니면 전무나 상무? 그런 사람 아들. 아니면 그 자체던가.”
“그렇지.”
강한결은 씩 웃었다.
최초엔 적어도 현장 경호원을 빼돌릴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이 작동했었다. 그럼 그 권력을 누가 작동시켰을까? 답은 빤했다.
경호업체의 높으신 분들. 혹은 높으신 분들의 자제.
“최소한 현장에 인력 배치하는 담당자는 개입한 거야.”
그가 주범이든, 아니면 윗선의 개입을 받았든. 이는 무조건이다.
“그럼 일단 꼬리는 잡은 거지. 거기부터 파보면 장담하는데, 뭐든 나올걸?”
“음, 그렇겠네.”
“여기서부터는 이제 탐정들 능력에 달린 거지. 그런데 이 정도도 겨우 못 찾진 않을 거야. 내가 제시할 돈이, 아주 먹음직할 테니까.”
나라를 판 비난?
탐정은 당연히 그걸 알 거고, 반드시 익명성을 유지할 것이다. 어떤 개새끼가 나라의 비밀을 캤어! 라고 전 국민이 욕을 하면 뒤에서 잰데요? 라고 손가락질당하지 않게끔 아주 철저하게 자신을 숨길 것이다. 그렇게 숨기면 된다. 하는 생각이 있을 테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아내겠구나. 음, 으음.”
황석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강한결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어차피 우린 시간이 별로 없어. 스케줄 미뤄놓은 것도 있고. 당장 다음 주에는 성진이 너 촬영 있잖아. 석이 너도 리딩 있고. 나도 리딩 있어. 일주일 안에 끝내야 돼. 물론 안 될 수도 있어. 하지만, 난 될 거라고 봐. 적어도 최소한, 이 나라가 장난질을 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밝힐 수 있으니까. 그럼 레미의 마음도 많이 풀릴 거고.”
“…….”
“…….”
“…….”
강한결의 나직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것도 니시노 하루히가 어떻게 나올지를 봐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니시노 하루히.
일본 최대의 로펌.
이들이 그래도 제 나라 일이라고 일을 엿같이 처리하면, 말짱 꽝이다. 강한결이 발표하는 것과 니시노 하루히가 수임을 받아 발표하는 것은 천지 차이가 있다. 니시노 하루히는 악명이 높다.
하지만 증거 조작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위명 또한 높다고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합법과 탈법의 사이에서 움직였다는 뜻이니까. 그 과정에서 위법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개새끼지만 능력 있는 개X끼로 포장된 것이다.
그런 니시노 하루히 로펌의 에이스 팀은 딱, 두 시간 만에 사토 레미의 집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