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40화
440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5)
지영은 사토 레미를 만난 뒤, 곧장 병원을 빠져나왔다. 기자들이 이곳저곳 진을 치고 있었지만 지영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드들이 뚫어준 길을 통해 차에 올라 병원을 떠났다.
그리고 곧장 공항으로 이동해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LA로 이동했다. 이런 지영의 행보는 같이 비행기를 탄 사람들을 통해 빠르게 SNS로 퍼졌다. 그리고 그 소식을 통해 빠르게 기사화됐다.
사람들은 지영이 레미와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그걸 정말 궁금해했다.
하지만 레미는 면회 사절이고, 지영은 입을 다물었으니 아무도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없었다. 다만, 위로하러 갔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영이 LA로 향하고 있을 무렵, 사토 레미의 SNS에 의미심장한 글이 올라왔다.
[감사합니다. 걱정해 주어서. 열심히 살게요. 멋진 여자가 될게요. 딴마음 먹지 않고.]
이런 글이 올라오면서 사람들은 대번에 지영이 자살을 결심했던 소녀를 위로하고, 마음을 바꿔먹게 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글 자체의 분위기가 그랬다. 그러면서 급격히, 지영 찬양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역시, 강지영……. ㄷㄷ 자살하려던 소녀의 마음을 한 번 만나서 바꿔놓음 ㄷㄷ
-진짜 대단한 거 같아요;; 사진 봤어요? 지영이 나올 때 당당하게 기자들 밀어내면서 나오는 거?
-가드가 밀었음.
-아니, 그래도요, 그 많은 기자를 앞에 두고 진짜 당당하게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잖아요? 카메라 막 터트리는데도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포스 진짜 ㅎㄷㄷ
-그것도 그거지만, 책임 느끼자마자 촬영도 내팽개치고 저렇게 일본까지 한달음에 날아가는 행동력이 난 더 대단함;; 보통 저럴 수 있나? 와, 진짜.
-보통은 힘들죸ㅋㅋ 지영이니까 되는거지;;
-애가 진짜 책임감이 남다름. 솔직히 예전에 스캔들 났을 때, 나는 그냥 인정한다는 기사 정도 낼 줄 알았음. 근데 여자친구 있는 곳으로 직접 가서 구해 나오는 거 보고; 아; 얘는 진짜 달라도 뭐가 다르긴 하구나라고 느꼈음.
-맞아요. 그게 베스트였죠;; 지영이 임팩트 있는 사건 많은데, 지금 여자 팬들 절반쯤은 아마 그때 유입됐을걸요?
-ㅎㅎ 맞아요. 완전 백마탄 왕자님;; ㅎㅎ
-하지만 내 주변엔 그런 왕자님이 없지…… -ㅅ-;
-환상에서 깨어나세요. 여러분……. 지영이는 진짜 드라마나 영화에 존재할 법한 애예요 ㅋㅋ
-요즘 트랜드 보면 저렇게 짜면 현실성 없다고 욕먹음 ㅋㅋ
지영의 이번 행동은 역시나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사가 나기도 전에 이 같은 사실을 안 지영은, 촬영도 뒤로 미루고 즉시 일본으로 날아갔다. 타이밍이 진짜 절묘했던 게, 지영의 팬들조차 이번 일에 지영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영이 제발 잘 대처하기를 바라던 순간에, 지영은 이미 일본에 도착했다.
그 기사가 나자마자 팬들은 전부 안도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즉시 든 것이다. 지영의 대처는 언제나 빨랐다. 어떻게 하지? 보통 연예인들이 사고가 터지면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는데, 이건 당연히 시간이 걸렸다. 사실관계 확인 여부도 있지만, 가장 피해가 적은 쪽으로 ‘물타기’를 해야 하기에 입장 발표 자체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보통 이때, 별의별 기사가 다 올라오고. 또한 각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사건이 퍼지면서 연예인의 이미지는 열에 아홉 정도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스캔들은 그나마 양호한 사건이지만, 갑질을 포함해 음주운전, 도박, 마약 등등의 이슈는 볼 것도 없었다.
그냥 나락 행이다.
가족이 사고를 쳐도, 욕은 전부 연예인이 먹는 세상이다. 공인이기에 이는 당연하게 굳어져 버렸다. 대중의 사랑으로 먹고사는 만큼, 질리도록 엄격한 잣대가 요구된다. 한국은 특히 그게 심한 편에 속했다.
이번 지영의 사건도 그랬다.
만약 사토 레미가 잘못됐으면? 지영도 심각한 비난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운이 따라 소녀는 살았고, 그 소식을 접한 지영은 기사가 뜨기도 전에 책임을 느껴 일본으로 향했다.
딱 이거.
이거 하나만으로도 지영은 대중을 안심시켰다.
누구보다 빠르게, 책임을 지는 모습.
이것 하나만으로도 지영의 이름값은 다시금 치솟기 시작했다.
그래서 팬들은 크게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사토 레미가 SNS에 그런 글까지 쓰자, 이제는 오히려 지영을 격하게 칭찬했다.
자기가 사랑하는 별이, 아주 맑고 밝은 별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그런 중에.
-아, 2시간 남았다…….
-오늘이죠?
-ㅇㅇ 오늘…… 아, 미치겠네요. 나 미국대장이랑 아연맨도 이 정도로 기대 안 했는데 흐흐. 이건 진짜 얼른 보고 싶어 미치겠어요 ㅋㅋ
-다들 그럴걸요? ㅎㅎ
SNS에 글이 올라오고 그에 관해 다들 감탄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 점점 나의 무사님 방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와, 지영아 올림픽에서 다쳤을 때까지만 해도 나의 무사님은 끝났구나 했는데 ㅠㅠ
-왜 그런 얘기를 해염! 또 우울해지게!
-우울한 얘기는 아니죠 ㅎ 지영이가 얼마나 대단한 애인지 알게 된 계기였잖아요 ㅎㅎ
-그래도요! 전 싫어요! 흐잉! 지영이 잘못될까 봐 그날 얼마나 울었는데요!
-인정; 나도 눈시울이 찔끔했음.
-붉어졌다고 하지 않나. 보통?
-……넘어가요, 좀.
-ㅎㅎ ㅈㅅ
-아 두 시간! 언제 기다려 ㅠㅠ
-운동 한 번 하고 오세요 ㅎㅎ
-헬스장임;;
-아.
드디어, 드디어 오늘.
국내에서 제작된 드라마 중, 가장 거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드라마가 베일을 벗는 시간이었다. 그 어느 드라마보다 대대적인 홍보는, 없었지만. 그냥 다른 드라마 정도의 홍보가 전부였지만. 나의 무사님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마케팅이 잘 됐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잠시간 잠잠하던 강지영의 이름과 나의 무사님이 검색어 상단을 차지하고 며칠이나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 자체가 드라마에 대한 홍보로 이어졌다. 예고편 전체의 조회수가 폭등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뭐만 하면 화제가 되는 지영이라 세계 전체에서도 화제가 됐다.
2시간은 이윽고, 1시간이 되었다.
1시간은 다시, 어느새 제로가 되었다.
지루하다 못해 복장이 터지는 광고가 지나고, 나의 무사님 인트로가 시작됐다.
* * *
잿빛이다.
흑백이 아니라.
떨어지고 있었다.
재가.
위에서 떨어지는 재를 따라갔고, 떨어지는 재의 시선에서 하늘을 찍었다. 청명할 법한 하늘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퍼억-
그런 재는 결국 절벽 아래 강으로 떨어졌다.
물보라가 튀며, 잿빛 세상에 색이 돌기 시작했다. 회색빛 물결이 시퍼런 색을 되찾았다. 깊이 빠져 들어간 재가 물속 깊이 박혀 있던 바위틈에 끼어 있든 뭔가를 건드렸고, 그 충격에 바위에 끼어 있던 뭔가가 툭 빠져서 부상했다. 그리고 부상하며, 재를 턱 받쳐 올렸다.
깊이 가라앉았던 재는, 다시 뭔가와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화면이 암전됐다.
컬러는 사라지고 다시 잿빛이 됐다.
“안 돼…….”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선고였다. 그녀는 연인의 추락에 순간적으로 넋이 나갔다. 하지만 입술은 움직여 현재의 감정을 솔직하게 뱉어냈다.
“안 돼……. 재, 가지 마…….”
“선고! 빠져야 해!”
“재……. 나는 재와 함…….”
크르륵.
이족의 전사 하나가 다가와 선고를 뒤에서 잡아 목을 졸랐다. 경동맥이 막힌 선고는 순간적으로 호흡이 막혀 버둥대다가, 그대로 기절했다. 정말 촌각이다. 호흡 여섯 번? 일곱 번? 그 정도 셀 순간 만에 선고는 축 늘어졌고, 그녀를 졸라 기절시킨 이족의 전사는 무너지는 선고를 받쳐 그대로 어깨에 걸쳐 맸다.
그건 하나의 신호였다.
재가 떨어지며, 전의를 잃은 이족이다.
이족의 전사 중에서도 근접전에서 재를 당할 이는 없었다. 사냥이 아닌 전투는, 재가 최고였다.
그런 재조차 당해내지 못한, 제국제일검.
그도 분명 재에게 부상을 입었다. 재의 검이 분명 그를 베었다. 하지만 깊지 않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제국제일검의 시선이 이족을 훑는 순간, 생존을 관장하는 본능이 맹렬하게 경고성을 발하기 시작했다.
도망가라. 도망가!
그 본능을 이족은 즉시 따랐다, 그래서 넋이 나간 선고를 기절시킨 뒤 곧장 퇴각을 시작했다. 당연히 추적은 있었다. 하지만 숲에서 이족을 따를 이들은 없었다. 울퉁불퉁한 숲길을 평지보다도 빠르게 달려 내빼는 이족을 추적하기란 결국 요원했고, 추적은 얼마 안 가 멈췄다.
전투는 그렇게 끝났다.
제국의 반역자이자, 제국의 주인인 후를 앞에 두고 결국 패퇴했다.
선고는 숲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금방 정신을 차렸다.
“놔, 강걸, 놔!”
“훅, 후욱, 후욱…….”
“놔! 재에게 가야 해!”
“정신 차려, 선고! 재, 재는…… 후욱!”
“죽지 않았어! 재는 죽지 않았다고! 내, 내가 가야 해! 내가 구해야 한다고!”
몸을 버둥대며 발작하는 선고였지만, 이족의 전사는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그녀의 발버둥을 견뎌내며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숲을 벗어났다. 숲을 벗어나자 황량한 이족의 평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명을 품지 못하는 기이한 검은 땅.
발이 푹푹 빠지기도 하는, 그런 평야를 건너고 나서야 도망치던 이족들은 천천히 멈춰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쯤에 도착했을 때, 선고도 발작을 멈췄다.
대신 넋이 나가 있었다.
“잠시, 쉬다 간다. 도더. 후방 좀 맡아줘.”
“그러지.”
도더라 불린 이족이 후방으로 다시 몸을 뺐다. 눈이 가장 좋고, 감도 제일 좋다. 추적이 붙었으면 금방 눈치챌 것이다. 도더를 보낸 강걸이 선고를 바라봤다.
“정신 차려, 선고. 현실을 직시해.”
“…….”
“선고.”
“…….”
“선고!”
짧게 소리쳤는데도 선고의 눈에는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짜악-!
강걸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후려치고 나서야,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선고는 정신을 차렸다.
“선고. 재는 죽었어.”
“……아니야.”
“가슴에 그런 검상을 입었고, 그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어. 심지어 아래는 강이고! 암초가 한가득이야!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어!”
“아니야!”
“정신 차려!”
강걸의 외침에 선고는 순간 움찔, 몸을 떨었다.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그녀의 이성이 찬성하며 나온 반응이었다.
그 절벽의 높이?
본인이 가장 잘 알았다. 직접 살펴보았다. 높이를 가늠하기도 힘들다. 떨어지면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거? 그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제국제일검에게 가슴에 큰 검상도 입었다.
분명 그의 검에 길게 앞섶이 갈라지며 피가 튀던 걸 그녀도 봤다.
그 뒤에, 떨어졌다.
그 정도 상처.
그 정도 높이.
재가 살아남을 가능성?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성은 재가 죽었다, 고했다.
하지만 가슴은 아니었다.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강하게 요동치는 심장은, 재는 죽지 않았을 거란 희망을 심어주고 있었다.
그녀는 그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그건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희망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하면서도 괴로운 것인지. 그리고 괴로울 것인지. 자신은 이 희망 때문에 말라 죽어가겠구나. 그걸 깨달아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놓을 수 없었다.
‘아…….’
가슴이 욱신거렸다.
가빴던 호흡 탓인지, 의식이 멍해졌다. 눈앞이 흐려졌다. 그게 눈물 때문인지, 아니면 슬픔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분간하지 않았다.
아니, 분간하지 못했다.
뿌옇던 세상이, 새까맣게 변했기에.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진지에 돌아와 있었다. 자신의 막사에서 눈을 뜬 그녀를 향해 처음 손을 내민 존재는, 분노였다.
스르릉.
작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자신의 검을 뽑은 그녀는 그대로 한 여인의 막사로 향했다. 텅 비어 있는 막사. 그녀는 곧장 몸을 돌려 지휘부의 막사를 찾았다. 휘장을 거치고 들어가는 순간,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연.
나의 연인을 쏘아 떨어뜨린 화살.
선고는 비죽 웃었다.
“선고, 너.”
“…….”
선고는 재에게 배운 대로 칼을 역수로 쥐고, 몸을 날렸다.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