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37화
437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2)
12월.
첫째 주.
기다리고 기다리던 12월이 오면서, 인터넷은 다시금 화르르 불타기 시작했다. 12월의 첫째 주 금, 토요일에 나의 무사님 시즌3가 방영을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일주일 전에 풀린 캐릭터 예고편과 공식 예고편 세 편이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 놓은 상태였다.
-트레일러 봄?
-봄 ㅠㅠ 재 분위기 어쩔 ㅠㅠ
-진짜 영상미는 개쩔던데 ㅋㅋ 역시 홍진아 감독이란 생각밖에 안듬 ㅋㅋ 이번에는 지영이가 홍진아 감독 덕 좀 보는듯
-홍 감독님이 사극 영상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죠 ㅎㅎ
-근데 단순히 아름답게만 포장한 것도 아니던데요? 잿빛 세계에서의 재를 진짜 제대로 표현한 것 같아요. 뭐랄까…… 삭막하다? ㅇㅇ 좀 삭막함 ㅠㅠ
-그게 재 캐릭터의 본질이니까요 ㅎㅎ
-그리고 이연도. 이연이 진짜 연기 하나는 확실히 물오른듯요
-연이가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 떼려고 얼마나 이 악물고 연습하는데요 ㅎㅎ
-연이가? 이연 앎? 뭔 알지도 못하면서 친구처럼 부름 ㅋㅋ
-저 연이 동기인데요?
-엥?
-안녕하세요 ^^ 화연입니당!
-헐, 동기가 아니라 같은 멤버잖아요 ㅋㅋ
-ㅎㅎ
첫 번째는,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홍진아 감독은 사전 인터뷰에서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캐릭터를 보다 강렬하게 정립하는데 꽤 중점을 뒀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감독인 그의 의지와 정은정 작가의 의견이 일치한 것이라고도 했다.
목적이 확실한 캐릭터.
행동거지에 모호한 부분은 제거하고, 보다 알기 쉽게, 확실히 직관적으로 보이도록 신경 썼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감독의 인터뷰는 예고편이 나옴과 동시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잿빛 눈보라 속을 걸어가는 무사의 뒷모습. 이는 필시 재일 거라 모두가 생각했다. 거칠게 펄럭이는 머리카락과 허리춤에 찬 칼은 재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았다. 그래서 앞모습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모두가 저 캐릭터는 재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팬들은 열광했다.
고작 30초다.
눈보라를 뚫고, 휘이잉! 고오오! 바람 소리를 배경 삼아 저벅저벅 걷는 재의 모습이 전부다. 마지막에 멈춰 서서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봤다가, 다시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암전되며 나의 무사님. Coming soon. 이런 자막이 뜨면서 예고편은 끝난다.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고, 정말 특별한 것이라고는 개뿔도 없었는데도 팬들은 영상미와 분위기에 압도되어 기대감이 한껏 올랐다.
그런 재에 이어, 구중궁궐에서 서늘한 눈빛으로 지도를 보며 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수를 놓는 후의 모습과 그런 후와 교차해 비슷하게 지도를 앞에 두고 골몰히 생각에 잠긴 연의 예고편이 차례대로 나오면서 어떤 느낌으로 이야기가 흘러갈지 제각각 감을 잡아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응? 선고는?
-ㅇㅇ 심수정 예고편은 어디 감?
-까먹었나?
-어떤 등신이 까먹을 게 없어서 그걸 까먹어?
-그럼 의도적으로 안 올린 거?
-그렇지! 그럼, 뭐가 있다는 건데? 파격 변신 뭐 이런 건가?
-그런듯요! 확실히 선고 캐릭터가 뭔가 변신하기 딱 좋지 않아요? 연인인 재가 죽은 줄 알 테니까!
-ㅇㅇ 맞음. 우리야 어차피 재가 살아 있을 거 빤히 알지만, 극 중 선고는 모르죠. 그리고 선고 캐릭터면 분명 복수를 위해 움직일 거임.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팬들도 당연히 나타났다.
선고만 의도적으로 예고편이 올라오지 않은 걸 통해, 진실에 거의 도달한 것이다. 근데 사실 얄팍한 수였다. 선고의 변신은 그냥 풀어놓기 쉽지 않았다. 강렬한 모습은 당연히 숨기고 싶은 게 연출자의 마음이고, 그 마음에 따라 선고는 극이 시작되기 전까진 모든 예고편에서 빼 버렸다. 하지만 단련된 팬들은 그 이유를 금방 캐치했다.
당연히 이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다 못해 넘치기 시작할 무렵.
-엥? 일본에서 지영이 기사 떴는데?
-일본 애들이 왜? 또 무신 척위준 때문에 지랄하는 거임? ㅋㅋ
-아니, 그거 아닌 것 같은데? 이거 기사가…… 어, 음…….
-왜 그러세요? 뭐 심각한 기사예요?
-그게 좀…… 그럴 것 같은데?
-아 뭔데! 속 시원하게 그냥 말해보라고!
-왜 예전에 올림픽 때 일본 기자 하나가 지영이한테 개소리한 거 기억남?
-무슨 개소리요?
-아 혹시 소피 왜 구했냐는?
-ㅇㅇ 그거……. 그거 기사 내용인데, 그때 그 질문 했던 기자 딸이 따돌림당하다가 학교 3층에서 뛰어내려 지금 중태라는 내용임.
-엥? 그거 때문에 뭔 따돌림?
-일본이잖아요. 강유진 선수 사건 생각하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
-아……. 그때 지영이가 그 기자 딸은 구하지 않겠다고 한 거, 그거?
-네. 그래서 기자 조리돌림 겁나 당하다가 이혼당했고, 딸 양육권은 엄마가 가져갔는데, 애 신상 까발려져서 지금까지 따돌림 당했나봐요.
-헐…….
결국 기사가 나왔다.
12월 3일, 수요일에.
나의 무사님 방영이 딱 이틀 남은 시점이었다.
불은 빠르게 붙었고, 화르륵! 살벌한 기세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거, 강지영이 원인 제공한 거라고 일본 기자들이 겁나 까고 있음…….
-헐! 그게 왜 지영이 잘못인데요? 그런 미친 질문을 한 기자 잘못이지!
-ㄴㄴ 지영이 발언이 꽤 세긴 했어요……. 대놓고 그 기자 자식은 구하지 않겠다고 한 거니까. 죄가 있니 없니도 그랬고. 지영이가 대놓고 기자 저격한 발언임. 그리고 그 정도 발언이면 불똥이 애한테 튀고도 남을 거고. 게다가 일본임. 미친 새끼들 천지임, 거긴 진짜.
-헐……ㅠㅠ
-그래서 그쪽 여론은 어떤데요?
-개판임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지영이가 그렇게 말한 건 좀 섣부른 것 같다고 하고…….
-지영이가 그렇게 말한 건 솔직히 충분히 이해할만함. 근데 너무 세긴…… 셌음 ㅠㅠ
-ㅇㅇ…… 나도 문제될 것 같긴 했음…….
-헐…… ㅠㅠ 그래서 지영이가 잘못한 거예요?
누구의 잘못인가.
기자의 잘못인가.
지영의 잘못인가.
누군가의 질문에 나온 답은 당연히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왜? 아무리 지영을 사랑하는 그의 팬들도. 당시 영상을 다시 돌려보면 지영의 말에 얼마만큼의 적의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지영이 아니었다.
시합 전에 한껏 예민해져 있기도 했고, 그전에 정말 무서운 일을 겪기도 했고, 그런 상황에 들어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에 지영은 결국 반응했다. 이건 대놓고 기자 너, 뒤져라! 하고 까버리기 위해 날린 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영의 그 발언 이후, 기자는 여론의 뭇매 정도를 넘어선 폭격을 얻어맞았다.
지영이 떠민 대로, 벌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벌은 그에게서 끝나지 않았다.
아무런 죄도 없던 한 소녀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아이고, 심지어 그 기자 딸이 중2……. 감수성 엄청 예민할 때인데 하;;
-그래도 그게 지영이 잘못은 아니잖아요 ㅠㅠ
-지영이 말이 기폭제가 된 건 사실입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린 지영이를 위해서라도 그런 잘못을 인정해야 해요 ㅠㅠ
-아 ㅠㅠ
-그리고 그게, 여기 룰이에요.
그의 팬덤은 다른 연예인의 팬들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의 공식 팬카페에 가입한 팬들은 하나의 룰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그건 바로 지영의 행동에 옳고 그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다른 이들보다 더욱 스타를 내밀히 들여다보니까, 어떻게 강지영이란 스타가 만들어졌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강지영이란 스타의 탄생에 작품만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작품의 비중은 적었다.
예인으로 살어리랏다. 주조연으로 출연한 그 작품에서 지영은 분명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줬다. 배역이 가진 느낌을 제대로 소화도 했다. 외모야 뭐 말할 것도 없고, 분명 배우로서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줬다. 그렇다면 그다음 작품인 나의 무사님은?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팬들은 정은정 작가가 세계를 창조할 때, 그 세상의 주민 중 하나인 ‘재’를 빚을 때 아예 강지영을 염두에 뒀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분명 지영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강지영과 아주 흡사한 캐릭터였기에, 아예 자신과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됐기에 지영은 빠르게 캐릭터에 몰입했다.
그런 몰입감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캐릭터와 물아일체는 아니었고, 다른 연기파 배우들처럼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찰떡이란 단어는 충분히 써도 될만했다. 하지만 그 정도였지, 작품 자체로 지금의 지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를 둘러싼 사건 사고.
그리고 그 사건 사고에서 강지영이 보여준 대처. 이 부분이었다. 지영은 많은 일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지영은 가장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그 결과 강지영이란 한 연예인의 이름이 급등 정도를 넘어 폭등했다.
연예인으로서의 주가가 그냥, 수직 상승 하다못해 천장을 뚫고 나가버린 것이다.
라피앙 파벨로 사건을 시작으로 연인 양유진과의 스캔들, 세계 선수권에서 있었던 말도 안 되는 판정에 따른 선택, 포드와 계약을 맺으며 그가 결정한 후원, 이번 올림픽에서 그가 소피를 구한 인류애 넘치는 행동 등등, 이런 굵직한 사건 사고가 그를 지금의 위치로 올렸다. 나의 무사님은 솔직히 그런 사건 사고의 반사이익을 받아 대히트를 쳤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이런 지영을 지키려면?
편을 드는 거야 당연하지만. 잘잘못을 가릴 줄 아는 냉정한 눈빛이 있어야 했다.
팬덤이 나서서 잘못도 잘한 거라고 커버치기 시작하면, 그건 오히려 나의 스타를 죽이는 일이 되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영은 최선의 선택을 언제나, 언제나 내려야 한다.
이런 사건 사고는 그의 연예인 활동 내내 따라다닐 것이고, 그럴 때마다 당연히 최선의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지영도 결국 저러네. 하며 실망하는 이들이 나올 것이고, 그건 곧 팬심의 이반이다.
팬심의 이반은 팬의 이탈로 이어지고, 그건 곧 별의 몰락을 뜻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더라도, 지영을 사랑하면 오히려 혹독한 눈으로 사건을 살피자는 게, 그의 공식 카페의 유일한 룰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 문제도, 가능하면 냉정하게 보려고 했다. 그 스타에 그 팬이다. 지금까진 그런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스타가, 지영의 잘못이 보인다는 점은, 당연히…… 유쾌할 수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요? ㅠㅠ
-지영이가 어떻게 할지, 지켜봐야죠 ㅠㅠ
-근데 좀 마음 놔도 될 듯?
-어? 왜요?
-우리가 아는 지영이라면, 이걸 그냥 넘어갈 리가 없자늠?
-아…….
-분명 이번에도 최고의 선택을 보여줄 거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할 거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맞아요! 우리 지영이는 분명 그럴 듯!
-ㅇㅇ 믿고 좀 기다려보면 될 듯!
-헐 대박…….
-네? 왜요?
-지영이 일본에 뜸.
-……네?
-아는 지인이 사진 보여줬는데, 지영이 지금 일본;; LA에서 같은 비행기 타고 왔다고 함;;
-헐 진짜요?
-ㅇㅇ 수속 밟는 거 인증샷. 사인도 받았다 함. 사진도 찍고.
-대박…….
-아니 첫 번째 기사 오늘 난 거 아님? 몇 시간 안 지났는데?
그래, 몇 시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영은 지금.
-맞네, 지영이…….
-대박; 그럼 사전에 알고 바로 출발했다는 거?
-ㅇㅇ 그런 듯…….
-진짜 대처 하나는 미친 듯;;
-사진 한 장 더.
-어, 신지네?
-맞는 듯. 미야모토 신지;; 옆에 기럭지 쩌는 여자는 안자이 히카리고.
-둘이 친하다고 한듯요; 유도하는 친구한테 들었는데, 예전에 고등학생 때 미야기 고등학교 우석으로 전지훈련와서 친해졌다고 들은 것 같아요.
-확실하네. 강지영 와 진짜 ㅋㅋ 이러니 같은 남자인데도 진짜 인정하고 반할 수밖에 없지;;
-진짜 성격 하나는 확실한 듯;;
-ㅎㅎ 그게 지영이 장점이잖아요!
-ㅎㅎ 이번에도 잘 해결될듯요!
-근데 이거 잘 해결되면, 오히려 일본 애들이 지영이 도와주는 거 아님?
-왜요?
-생각해봐요. 이제 이틀 후에 나의 무사님 방영 시작하는데, 알아서 마케팅해주는 거잖아요? 물론 잘 풀려야 하겠지만. 잘만 풀리면 알아서 마케팅 다 해주는 거 아니에요? 그것도 전 세계에다가? ㅋㅋ
-아…… 그러네요 ㅎㅎ
-ㅋㅋ 사실은 같은 편?
-개X끼들이지만, 지영이가 이렇게 크는 데 일본놈들 공도 적지 않음요 애초에 ㅋㅋ
팬들이 그렇게 걱정을 내려놓고 안도한 뒤, 오히려 희희낙락하기 시작한 순간, 지영은 일본에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