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36화
436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1)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누구나 계획을 짤 땐 완벽하게 짜려고 노력한다. 그게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는 똑같았다. 계획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진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거고, 이 계획을 통해 시간과 예산을 단축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완벽에 가까운 계획이 있어야 혹시 일어날 문제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획이라는 것은 당연히 인간이 짜는 거고, 완벽할 수 없었다.
거기에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도, 계획은 아주 작은 변수에 의해 무너지기도 했다. 지금이 그랬다.
해외 로케이션.
드라마나 영화를 찍을 때 필수는 아니어도 아주 높은 확률로 진행되는 이 일정은, 나의 무사님 같은 경우 아주 장기간 이어지고 있었다.
이 일정 때문에 제작진은 몇 달에 걸쳐 계획을 짰다. 필요한 신, 필요한 세트장, 필요한 예산, 필요한 시간. 거기에 의식주까지.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산했다. 물론 혹시 모를 변수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도 철저하게 했다.
최악의 경우에서도 촬영은 이어지도록. 그렇게 설계했다.
그래서 초반부터 지금까지.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지금까지 일어난 문제에 나름 잘 대응하여 큰 문제 없이 촬영을 이어왔다.
필요한 신을 모두 확보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2주 정도.
늦게 합류한 주연 배우 강지영을 중심으로 촬영을 이어가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촬영팀이 아닌, 지영 개인에게.
“그래서? 그 아이는?”
-다행히 화단에 심은 나무에 걸려서 최악의 경우는 면했어. 부상도 크지 않고. 근데 아이 상태가 매우 안 좋아.
“…….”
하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걸려온 전화.
지영은 예상치 못한 얘기에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전화의 주인공은 신지였다. 미야모토 신지. 지영의 라이벌이며, 친구인 미야모토 신지의 전화였다. 신지가 전화를 한 이유는 매우 간단하며, 복잡했다.
사건의 발단은 올림픽으로 올라가야 했다.
지영은 시합 날, 자신을 위해 깔아놓은 믹스트존을 지나다가, 한 일본 기자에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았다.
질문의 내용인즉슨, 왜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소피를 구했냐는 질문이었다. 개소리였다. 철저한 개소리였다. 시합 전 지영의 멘탈을 흔들기 위한 수작이 분명했고, 지영은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눈치채기까지 했다.
하지만 대응은 정반대로 나갔다.
지영은 속된 말로, 그들의 언어로 야마가 돌았다. 순간적으로 뚜껑이 펑! 하고 열려버려서 지영은 그 기자의 말에 폭언으로 맞섰다. 그 당시 지영이 한 폭언은 일단 결혼했냐고 묻는 거였고, 그다음이 애는 있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있다는 말에, 같은 상황에 당신 자식이 위험에 처하면 그 아이는 구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당신 같은 부모를 둔 게 죄라면서.
폭언을 때려버렸다.
기자의 황망했던 표정과 지영의 날 선 말, 분노가 가득한 얼굴은 아주 당연하게도 즉시 기사화됐다. 물론 지영이 한 일이 있어서 지영을 나쁘게 담은 기사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오히려 무례하고, 또 무례한 질문을 한 일본 기자들 비난하는 기사였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이 기사는 당연히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화제가 됐는데…….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안 좋아. 그 기자와 아이 엄마는 당연히 그 기사가 나간 직후 비난에 직면하자 이혼을 했어. 이것만 해도 애한테는 충격일 건데, 문제는…… 이쪽 문화가 더럽다는 것에 있지.
“…….”
이쪽 문화?
신지가 한 말이니 아마 일본 문화를 말하는 것일 거다. 지영은 잠시 생각 끝에 그 문화가 뭔지 깨달았다.
“혹시, 이지메?”
-맞아. 이 나라에는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새끼들이 태산이고, 그놈들은 곧 재미난 놀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거지. 기자 이름도 얼굴도 있겠다, 아이의 신상이 밝혀지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어.
“미친…….”
지영이 일본이란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이지메 문화.
흔히 따돌림이라 불리는 문화.
세계에서 이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을 따지라면, 단연 일본이다.
집요하고, 잔악한 따돌림.
때에 따라서는 선을 넘어도 아득히 넘어서는 따돌림.
지영은 이시카와 사오리, 이제는 강유진으로 개명한 사오리가 처했던 문제를 떠올렸다. 지영의 팬이라는 이유로 그 아이는 어마어마한 악의에 직면해 있었다. 지영이 구하지 않았으면 그 아이는 아주 높은 확률로 정말 더러운 일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영이 나서서 사오리와 사오리 가족 전체를 귀화시켰다.
그러지 않았으면, 미친 인간들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귀화를 권했고, 다행히 그 제안에 응해 사오리와 가족, 동생은 한국인이 되며 그 마수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지금 그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그땐 지영이 직접적으로 잘못한 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사오리가 자기의 팬이라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였다.
정말 딱 그 정도.
그러나 이번 일은 아니었다.
이번 일은 올림픽 경기 당일 그의 멘탈을 흔들기 위해 수작을 건 기자에게, 지영이 넘어가면서 생긴 일이었다.
사실 그 문제가 터지고 나서 지영은 잊었다.
정말 깨끗하게 잊었다.
신지가 전화를 하기 전까지는 아예 그 일을 떠올리지도 않았다. 왜? 설마 이런 문제가 터질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기자의 딸은 반 학우의 따돌림, SNS 테러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그 일이 있고 몇 달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 건물 3층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정말 천만다행으로 신지의 말처럼 나무에 걸려 낙하 속도가 죽었고, 정말 운이 좋게 머리가 아니라 다리부터 떨어지며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
하지만.
“그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없지.”
-……동감이야.
아이는 살았다.
다행히도.
그러나 불행히도 아이는 세상과의 단절을 택했다. 신지에게 듣기로 아이는 이제 한국 나이로 중학교 2학년이었다.
중학교 2학년생이고, 여학생이다.
이 나이대의 아이는 정말 아예 다른 종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예민해진다. 한국에서는 이 시기를 아예 중2병이라 부르기도 했다. 감수성이 예민해지다 못해, 폭발하는 시기다. 더욱이 일본이란 나라는 사회관계에 지독히도 신경을 쓴다.
한국도 딱히 다르지 않지만, 일본은 그 정도가 심했다.
그런 시기에 따돌림을 당하면…… 죽고 싶단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신지.”
-응. 아, 딱히 너에게 어떤 부탁을 하기 위해서 연락한 게 아니야.
“그럼?”
-도와달라고 하기엔, 염치가 없지. 다만 이 일이 곧 또 기사로 나갈 것 같아. 좀 알아봤는데, 이미 기자들이 냄새를 맡았더라고. 아마 헤드라인은, 강지영. 결국 기자의 아이를 죽이다. 이 정도겠지.
“…….”
-미안해, 지영.
“후우…….”
신지의 말대로다.
일본은 어떻게든 지영을 깎아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미 지영에게 행한 공작만 봐도, 이번 일이 알려지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유도란 종목의 종주국답게, 일유협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고 언론 자체를 움직일 힘은 차다 못해 넘쳤다.
신지는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신지.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그리고 고마워. 미리 이렇게 알려줘서. 그런데 신지. 너는 어떻게 금방 알았어? 아직 기사도 나지 않은 일을.”
-그 아이 친척 오빠가 유도 선수거든. 나름 좀 하는. 그 친구한테 들었어.
“…….”
-그래도 그 친구는 너 원망 안 하더라. 그건 걱정하지 말고.
“하아…….”
지영은 연신 나가는 한숨을 참기가 힘들었다.
이번 일은 자신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때의 일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막 나간 폭언이었다.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그 기자를 절벽 끝으로 밀 작정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지영은 알고 있었다.
소피를 구하면서 자신이 갖춘 위상을.
그래서 그렇게 해도 될 거라는 계산이 순간적으로 섰다. 그래서 너무나 쓰레기 같은 질문을 한 기자를 절벽 끝으로 밀어, 알아서 떨어져 버리란 생각까지 했던 게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이유가 없었다면, 굳이 당신의 아이는 같은 상황에선 구하지 않을 것이란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책이었다.
그런 말을 했을 때, 그 아이가 일본이란 나라의 더러운 문화에 어떻게 시달릴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영은 그 말을 했고, 잊고 있었다.
그리고 지영이 잊은 그 순간부터 아이는 시달리기 시작했다.
더러운 따돌림에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자신의 책임이 상당한 정도를 넘어서, 그냥 자기 책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좀 하고 다시 연락할게.”
-……미안하다, 다시 한번.
“괜찮아. 이번엔 내 책임이라고 통감하고 있으니까.”
-그래.
뚝.
전화를 끊은 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를 얼추 들은 임은진은 벌써 태블릿을 펼쳐 일본 쪽 기사를 훑어보고 있었다.
“누나, 저 사고 친 것 같아요.”
“……누구도 그걸 네 책임이라고 안 해.”
“아니요. 이번엔 제 책임이 맞아요.”
적어도, 아이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지영은 건드렸다. 그것도 너무 대놓고. 소피를 왜 구했냐는 막말에, 막말로 맞선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이거다.
“지영아. 이건 그들이 문제인 거야. 유진이 때처럼, 그들이 잘못한 거라고.”
“알아요. 하지만 그 미친놈들에게 타깃을 만들어준 건 저예요. 표적지를 그려서, 건네줬어요.”
“하아.”
임은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영을 설득하기 쉽지 않겠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하지만 그녀도 마음 한구석엔, 지영의 책임이 없다고 인정하긴 쉽지 않다는 마음이 확실히 있었다. 그날 지영의 대처는 사실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시합 전의 예민함.
예민함에 더한 부상.
이런 것들이 지영을 평소 이상으로 예민하게 했고, 누가 봐도 의도가 훤히 보였던 악의에 그만 그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 당시 임은진은 즉시 깨달았다. 문제가 될 발언이라고. 솔직히 듣는 순간 알긴 알았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았다. 시합 직전의 선수에게, 날이 바짝 선 지영에게 그 발언은 좀 아니었다며 주의를 주는 건 매니저 자격도 없는 짓이었다.
사실은, 알면서도 그냥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넘어간 게 역시나 그냥 묻히지 않고 사고로 진화했다. 그녀는 이 일이 문제가 되면 지영이 자책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녀는 지영을 달랬다. 사실을 적시하는 것도 좋지만, 그녀는 그 기자의 딸보다 지영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래서 지영의 멘탈을 달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이제 며칠 안 남았다.
며칠 남지 않은 일정 ‘간, 배우가 신에 집중하게 해주는 게 그녀의 임무였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사실 알고 있었다.
“누나.”
“응?”
“감독님이랑 작가님 좀 뵙고 싶어요.”
“……그래.”
지영이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녀가 지금까지 본 지영은 그런 인간이었다. 결코 문제를 뒤로 밀지 않고, 매우 능동적으로 처리하는 인간. 의도했건 안 했건, 행동 자체가 매우 이타적인 인간. 그래서 행동의 결과가 항상 그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행동이 결국 지금의 지영이를 만든 거지.’
임은진은 그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지영의 부탁대로 홍진아 감독과 정은정 작가에게 연락했고, 자리를 마련했다. 지영은 두 사람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음, 그 발언은 저도 봤어요. 그리고 문제가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휴…… 결국 문제가 생겼네요.”
“그래서 지영 씨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홍진아 감독의 말에 이은 정은정 작가의 질문에, 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생각했던 바를 얘기했다.
“3일, 제게 3일만 시간을 주세요.”
“그 아이, 만나보려고요?”
“네.”
조금의 고민도 없이 나온 지영의 대답에 홍진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정은정 작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임은진은? 계산기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니저.
이런 지영의 선택을, 과하지 않은 선에서 이용하는 것도 그녀의 ‘업무’ 중 하나였다.
다음 날, 지영은 LA로 이동해 태평양을 건넜다.
때는, 나의 무사님 방영을 며칠 남겨두지 않았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