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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19화 (41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19화

419화. 마지막, 재(10)

정신을 차린 재는 일주일 뒤부터 다시 몸을 쓰기 위한 재활에 들어갔다. 몇 달이 넘게 쓰지 않았던 몸에다가, 그전에 아예 크게 부상까지 입었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겨우 움직이기 시작한 몸은 아예 비명을 질렀다.

삐걱, 삐거덕거리는 몸은 마치 녹이 잔뜩 슨 쇠 같았다.

관절부터 시작해 어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도 얼추 짐작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은 좀 더 심각했다. 첫날에는 아예 제대로 몸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걷는 것조차 힘이 든 상황.

뼈 말고도, 근육도 몇 달간 쓰이지 않아 힘을 잃어 몇 보 걸은 정도로 후들거렸다. 이건 상태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재는 하루 대부분을 재활에 썼다. 그 모든 과정을 학미가 도왔는데, 학미는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아주 호랑이 같았다.

재가 무리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고, 체력을 남기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육체에 무리가 가지 않는 아슬아슬한 선까지 재를 몰아붙였다. 그걸 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참 귀신 같았다.

“조금 더요! 움직일 수 있는 거 알거든요?”

“…….”

재가 힘들어서 조금 쉬려고 하면 저리 말하며 조였고.

“그만! 아까 마지막이라고 했잖아요!”

“…….”

재가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려고 하면 저리 말하며 강제로 잡았다. 그렇게 하루에 몇 시진씩이나 재활에 매진하기를 한 달. 그래도 다행히 그렇게 열심히 재활하고 나자, 걷는 건 그래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등은 불편했다.

근육이 쪼개지고, 깨졌다. 의술에 일가견이 있는 학소양이 제대로 접골을 해놨기에 구부정하게 굽지 않았지, 그게 아니었으면 살았어도 몸을 제대로 쓸 수 없는 몸이 됐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걷는 재활이 끝나자, 이제 육체를 재구성해야 하는 시기가 왔고, 이때부터 재활은 학소양이 담당하기로 했는지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재활훈련장에 나타난 그는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백적 단주.”

“네, 선배님.”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묻겠네만, 자네는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려는가?”

“…….”

학소양의 질문에 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전장으로 다시 돌아갈 거냐고?’

그 지긋지긋한, 피비린내 나는 곳으로 다시?

재는 전장이란 곳을 떠올려봤다.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갈리는 곳. 두 개의 집단이, 혹은 서로 적인 둘이 서로 맞붙으면? 구 할의 확률로 한쪽은 죽는다. 가끔 전체가 죽기도 하며, 포로로 잡혀도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런 곳을 재는 어느 순간부터 지긋지긋하게 전장을 떠돌았다.

양부는 제국 황제의 스승이었고, 그런 양부를 위해 제국을 위해 헌신했다. 자신이 제국에 헌신하면 할수록, 양부에게 도움이 되니 재는 기꺼이 전장을 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양부는 역적 후의 손에 이미 명을 달리했다.

그런 양부의 유언은 제국의 마지막 핏줄을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는 연을 위해 헌신했다.

재에게, 연은 곧 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양부의 유지를 받들어 재는 다시 이족과 합심해 미친 듯이 전장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제국제일검과 붙었고, 결국 가슴에 검상을 입고 전장에서 이탈했다. 아니, 이탈 당했다. 재는 솔직히 절벽에서 떨어질 때 드디어 족쇄가 벗겨지며 안식을 얻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양부의 유지를 끝까지 받들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안식, 휴식.

전장에 있을 때의 자신이 절대로 생각할 수 없던 것들.

그랬는데, 이 한 달간 얻은 이 안식과 휴식이 너무나 달콤했다. 재활? 몸은 힘들어도 심적으로 너무나 안정되었던 한 달은, 재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풀어버렸다. 제국제일검과의 일전으로 족쇄가 풀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말랑하고, 달콤한 하루하루를 뒤로하고 다시 전장으로?

“하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재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혼란한 얼굴이구나.”

“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철이 들 무렵 전에 검을 들었고, 철이 들었을 때부터 전장을 지겹게 돌았다. 정말로 지겹도록.

“그럼, 길게 고민할 것 없네.”

“네?”

학소양의 말에 재는 고개를 들며 반문했다.

그러자 그는 곰방대를 입에서 떼며 끌끌 웃었다.

“고민해 봐야 답이 안 나오는 문제를, 억지로 고민하는 건 참으로 미련한 짓이라네.”

“아…….”

“그리고 때론 시간이 답이 될 때도 있지. 그러니 기다려 보게. 시간을 보내며 숙고해 보시게. 언젠가는 자네의 마음에 시간이 답을 줄 때가 올 테니.”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게 맞는 것 같았다.

고민은 무언가 심적 갈등이 생겼을 때 일어난다. 그런데 짧은 시간으로 그 심적 갈등의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매우 허다하다. 그러니 그럴 때는 괜히 억지로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었다.

-고민해 보아라. 정말 그렇게 사는 게 좋은지.

양부가 했던 말이다.

전장을 전전하며 피비린내 나는 삶을 살기 시작했을 때, 어느 날 자신을 불러다 앉혀놓고 그런 말을 했다. 재는 당시 그 질문에 관한 답을 바로 얻지 못했다. 그리고 몇 날 며칠을 넘어, 몇 주야가 지나 답을 겨우 얻었다.

보은.

당시 재가 얻은 답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학소양의 질문에 관한 답도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끌끌, 그럼 시작하세나. 전장은 전장이고, 자네 몸은 자네 몸이니. 어서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네, 선배님.”

끌끌.

그렇게 시작된 2차 재활. 재는 학미의 호랑이 기질이 어디서 왔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 * *

후우.

컷 사인에 재는, 아니, 지영은 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몰입에서 깨어났다. 짝짝짝. 정신을 차렸을 때, 몰입에서 깬 지영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왜 그런가 해서 봤더니 스태프들은 물론 배우들이 전부 기가 막히거나 경탄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아…….”

꾸벅, 꾸벅.

이번 신은 어렵긴 했다.

재활을 시작하는 재. 고난도 동작과 훈련이 포함되는데 이 모든 걸 지영은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 외줄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물론, 피아노 줄 와이어가 달린 조끼를 안에 차긴 했지만, 직접 암벽도 등반했다.

강에서 물을 떠서,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옮기는 그런 신까지 직접 전부 소화했다.

현대의 훈련?

그런 건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대신 올드하다 못해 90년대 홍콩 무협에서나 볼 법한 훈련들로 채웠다. 지랄 맞게 극악한, 무식한 훈련들 말이다. 지영은 그 모든 것을 직접 했다. 운동신경이 좋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그래서 대역을 써도 쉽게 소화하기 힘든 레벨의 훈련을 직접 해냈다. 이번에 찍은 신은 암벽 등정 신이었다.

10m는 되는 암벽을 지영은 피아노 줄이 연결된 조끼를 천 옷 안에 입고 직접 올랐다. 전문가가 먼저 타보고, 코스를 알려주긴 했다. 그러나 아무리 운동선수라고 해도 암벽 등정은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지영은 2번 떨어지고, 3번째는 등정에 성공했다.

경험이 없는 이가 고작 3번 만에 10M 암벽 등정은 솔직히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게 가능한 건, 지영의 아귀힘이었다.

지영의 아귀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도복을 한 번 잡으면 놓치지 않으려고 아귀힘을 상당히 키웠고,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되며 지영의 전신을 지탱하며 위로 올라가는 기반이 되어줬다.

와우, 브라보!

현지에서 섭외한 암벽등반가가 지영의 등반을 보더니 브라보, 하면서 박수를 쳤다. 그렇게 신을 마무리한 지영은 꾸벅, 인사를 하고는 조끼를 벗고 임은진이 가져다준 옷을 챙겨 입었다.

“손가락 안 아파? 괜찮아?”

“네, 괜찮아요.”

실제로도 손가락 관절에 크게 부담이 가진 않았다. 솔직히 도복 잡기 싸움할 때가 관절에 더 부담이 가는 것 같았다. 도복을 잡은 상태에서 상대가 세게 뿌리치면, 그걸 놓치지 않게 손가락 전체에 힘을 꽉 줘서 막는다. 그럼 상대가 뿌리치는 힘과 맞물리며 관절에 부하가 어마어마하게 간다.

유도선수의 손가락 관절이 둥그렇게 퉁퉁 부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그렇게 자극을 받아 안에서 염증이 나고, 낫고를 반복하며 생기는 거였다. 이성진이 올림픽 결승전을 끝내고 수술을 받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당기는 힘과 뿌리치는 힘이 상충하며 손가락 힘줄이 끊어져 버리는 바람에 말이다.

어쨌든, 지영은 정말 괜찮았다.

지영은 신을 확인했다.

나쁘지 않았다.

기를 쓰고 등반하려는 모습이 아주 잘 담겨 있었다. 부족한 부분은 어차피 이전에 떨어진 신 2개를 합쳐서 편집할 테니, 이번 신은 이걸로 오케이였다.

“고생했어요. 지영 씨. 다들 고생했어요! 오늘은 여기서 끝! 모두 회식장에서 봐요!”

우와!

회식이다.

보통 회사원들은 회식을 싫어한다. 하지만 여긴 좀 달랐다.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다가, 오늘은 오전에 몇 신, 오후에 지영의 등정 신을 포함해 3신만 찍고 촬영 끝이다. 즉, 3시가 되기도 전에 끝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회식이면, 또 달릴 사람들은 달릴 테니 내일은 전체 휴식이다.

반차에 하루 휴식.

이러면 회사원들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뭐, 회식 없이 다음 날 유급 휴가를 주는 게 더 좋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감지덕지했다. 스태프들은 밝은 낯으로 분주하게 움직여 촬영장을 정리했다.

착착, 정리를 끝내고 착착, 오와 열을 맞춰 철수했다. 지영도 그걸 도와 같이 짐을 창고에 넣었다. 그리고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회식장으로 이동했다. 이미 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도착해 벌써 판을 벌이고 있었다.

“여어! 야! 지영아! 여기다! 여기!”

들어선 지영을 본 선동일의 외침에 지영은 조용히 구석에 있으려던 계획이 시작부터 펑! 터졌다. 그렇다고 저 말을 무시하자니, 오늘은 선동일과 예정이 예정되었던 신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근 이주간, 지영은 선동일 예정과 찍을 신을 몰아서 전부 찍었다. 재활을 거치는 신 중 가장 고난도였던 암벽 등정 신이 마지막이었는데, 그 신도 오늘 끝냈다. 나중에 필요한 신이 있으면 한국에서 세트장을 만들어 찍을 예정이니, 둘의 공식 촬영은 오늘로 끝냈다.

회식이면서, 두 사람을 위한 송별회기도 했다.

선동일의 옆자리엔 예정이 앉아 있었고, 앞엔 이연이 앉아 있었다. 심수정은 미약한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 가 있었고, 강서훈도 앉아 있었다. 지영이 앞에 앉자, 선동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술병을 들었다.

지영은 거절하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배척해 봐야 트라우마만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아서, 지영은 적당한 자리에서 적당히 마시는 것은 개의치 않았다. 잔을 받자 선동일이 고생했다. 하면서 곧장 자신의 잔을 들어 올렸다.

“고생했어야.”

“아닙니다. 선배님. 선배님이 고생하셨죠.”

“후후, 나야 받은 만큼 잠깐 와서 일한 거고. 책임자인 너랑은 다르지. 연이나 서훈이도 그렇고. 어깨가 무겁지?”

선동일의 말에 지영은 물론 이연과 강서훈은 고개를 바로 끄덕였다. 책임감은 중압감이었다. 아무리 괜찮고 싶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지영은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 중의 중심이었다.

이런 위치에서 받는 책임감은 역시 컸다.

지영이 그렇게 정신을 차리려고 각별하게 노력했다. 지영이 촬영 스타트 전에 이틀의 시간을 더 달라고 한 것도, 그런 책임감에서 발로했다. 잘되는 작품에 출연? 그거야 당연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역사에 쓰일 대작에 캐스팅되는 건, 그만한 압박도 같이 받는 법이었다.

특히 나의 무사님 같은 경우에는 시즌제고, 시즌3는 대미의 장식을 맡았으니, 그 자체로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중압감, 부담감이 더 컸다.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와 전체를 책임지는 연출, 그 모든 판을 짠 작가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압박 속에서 촬영해야 했다.

“이겨내야지. 어쩌겄어? 너희들이 작품을 그리 잘 만들어놨는데. 감당혀. 감당해서, 역사에 제대로 이름 한번 새겨봐. 알았지들?”

“네, 선배님.”

“네.”

“에고, 넵, 선배님.”

지영, 강서훈, 이연 순으로 그렇게 대답하곤 잔을 부딪쳤다.

쓰다.

쓰디쓴 소주.

지영은 불현듯 부디 작품은 이렇게 쓰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으로 몇 잔을 연거푸 마셨을 때, 홍진아 감독과 정은정 작가가 회식장에 들어섰고, 두 사람의 공동 건배사를 시작으로 회식이 막을 올렸다. 5시부터 시작된 회식은 길게, 아주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회식이 끝난 다음 날, 지영은 정말 오랜만에 숙취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그건 비단 지영 혼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스태프 절반 이상이 숙취에 시달렸다.

그래서 본래 하루였던 휴가가 이틀로 연장됐고, 선동일과 예정, 몇몇 배우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자 다시금 촬영이 시작됐다.

이제 중반.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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