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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12화 (41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12화

412화. 마지막, 재(3)

신은 계속 이어졌다.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표적에 살을 명중시킨 사격 뒤, 여러 신이 순차적으로 이어졌다. 그중 지영이 놀란 건 근접 전투 신이었다.

꽈직!

액션 배우가 내려진 모조 칼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심수정이 벌떡 일어나 도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벌어진 건 육탄전이었다.

“으아! 으아아!”

악을 쓰며 액션 배우의 몸에 주먹을 꽂아 넣는 심수정. 보통 저렇게 주먹질을 할 때 소리를 지르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면 숨이 빠져나가면서 힘도 같이 빠져나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힘을 줄 때는 오히려 숨을 멈추고 힘을 주어야 근육이 폭발력을 얻는다.

유도 한정으로만 봐도 넘기고 나서 기합을 지르든가 한다.

그런데 지금 심수정. 아니, 선고는 악을 쓰며 난타전을 벌이고 있었다. 실전 액션을 표방하는 나의 무사님이기에 이 신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심수정의 액션에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메가폰을 쥔 홍진아 감독과 무술 감독인 김진우, 그리고 이 장면 자체가 가장 선명하게 머릿속에 있을 정은정 작가 또한 반짝이는 눈빛으로 심수정을 볼 뿐, 액션에 터치하지 않았다. 지영은 그래서 심수정의 액션이 이쪽으로 선회됐음을 알았다.

암살자, 사냥꾼 스타일은 사라지고, 처절한 육박전까지 펼친다. 게다가 이미 숨이 끊어진 상황이 연출됐는데도, 선고는 칼을 몸에 쑤셔 박는 걸 멈추지 않았다.

독기, 분노, 복수심에 불타 이성을 잃은 모습을 표현하는 장면.

이전의 선고와는 매우 다른 모습인데, 지영은 이미 소설과 대본을 숙지한 상황이라 저 장면 자체가 이해가 갔다. 컷 사인이 났다. 사인이 나자 바닥에 엎어져 있던 액션 배우들이 부스스 일어났다. 하지만 멍하니 서 있던 심수정은 감정이 조절이 안 되는지 격한 숨을 몰아쉬며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매니저가 얼른 방한복과 수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들고 달려가 고생한 배우를 챙겼다.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지 액션 배우의 안위를 물어보는 그녀. 그녀의 행동에 액션 배우는 괜찮다고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배역에 아주 깊이 몰입한 모습.

“대단하네요…….”

지영의 감탄에 주변에 있던 배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대단했다. 할 말은 그게 끝이었다. 그 이상의 수식어를 만들기 힘들어서였다. 그런데 신이 이어질수록 대단하단 말도 부족할 지경이 됐다.

인사도 못 했는데 다시 쉬러 간 심수정만 그런 게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열의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건 신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더욱 적나라하게 지영에게 다가왔다.

지영은 촬영을 멀찌감치서 지켜봤다.

그런데도 배우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촬영에 임하는지가 확실히 보였다.

“종장이라서 그런가, 열기가 대단하네…….”

이는 안목이 높은 임은진의 눈에도 당연히 캐치됐다. 지영이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하자 그런 그를 힐끔 본 임은진이 툭 던지듯이 말했다.

“지영아, 너 긴장해야겠다.”

“……그러게요.”

연기는 보통 합이다.

각자 가진 예술과 기술의 합.

적어도 지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합이 그렇게 잘 맞는 편은 아니었다. 각자의 각오가 너무나 남다르다 보니 지영이 보기엔 합이 튀는 상황이었다. 그건 곧 불협화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불협화음 속에 질서가 있었다.

자신을 내보이지만, 상대의 예술과 기술을 헤치지 않는 선이었다. 각자 본능적으로 조절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시즌2 때의 모습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모습이라서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영은 곧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즌3. 이제 종장이라서 차기작을 생각하는 걸까요?”

그러나 확실한 건 아니니 임은진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쪽 사정이야 임은진이 훨씬 더 잘 안다. 그런 그녀가 생각하는 이유도 지영과 비슷했다.

“몸값을 높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잖아. 그리고 여기서 눈도장을 찍어야 불러주는 곳 자체가 많아지니까, 다들 필사적인 거지.”

“…….”

“반대로 생각하면 여기서 제대로 눈도장을 못 찍으면, 기회 자체가 많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뜻이야. 알지? 나의 무사님 조연분들은 원래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하셨던 분들이야. 선동일 배우님과는 다른 케이스지. 그래서 그래.”

“음…….”

지영도 들었던 얘기였다.

주연과 조연 몇을 빼면 확실히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이 많았다. 조연의 70% 이상이 연극 쪽에서 섭외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기존 TV에서 활동하던 배우들 말고. 물론 연극을 비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금전적인 부분만 따져도, 연극보단 TV 쪽이 훨씬 더 나았다. 그걸 아는 데도 연극계에 있는 건? 기회를 받지 못했거나 기회를 살리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다.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거나.

연극은 배고프다.

이런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나의 무사님으로 그런 배우들의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완벽하게 트인 건 아니었다. 기회를 잡아 다른 작품에도 출연하긴 하지만, 아직 안정적이진 않단 소리다. 그런 상황에 기회 자체를 부여해 준 나의 무사님의 마지막 시즌이 왔다.

그러니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심수정과 이연, 강서훈은 당연히 입장이 다르다. 이 배우들은 모두 자리를 잡은 배우들. 그러니 그저 작품에 대한 열의로 뜨겁게 타오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이 현장 분위기를 매우 뜨겁게 덥혀 놨다.

잠시 뒤, 이연의 차례가 왔다.

평소 극 중 연이 회의를 주관하던 막사를 그대로 복사해와 설치한 세트장에서, 항상 입던 의상을 입은 채 신을 준비하는 이연. 지영은 그런 이연을 가만히 바라봤다. 역시 이연의 느낌도 변했다.

아까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채 반겨주던 여자는 어디 사라지고,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냉담한 표정으로 감정을 잡고 있었다.

이번 신은 확인해 보니 독백 신이었다.

혼자, 늦은 시간에 전장의 보고를 받고는 사색에 빠지는 장면이다.

시즌3의 연은, 절대로 좋게 봐줄 수 없었다.

이미 시즌2에서도 연은 후반부로 갈수록 악역이 되어갔다.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품을 허락한 재를, 그런 재를 저도 모르게 자꾸 위험한 지역으로 보내는 연은 점점 선에서 악으로 성향이 변해갔다. 그리고 그럴수록 게시판엔 욕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고집, 아집, 질투.

내 것을 빼앗기기 싫은 이기적인 독점욕은 청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이해가 갔다. 본래 남자든 여자든, 성별과 나이와 관계없이 내 것을 빼앗기면 화가 나게 마련이다.

이연은 그런 변화를 서서히 보여줬다.

대한민국 드라마에는 아주 유명한 명대사가 많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자주 쓰이는 대사 중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

극 중 연은 이 대사를 아주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실천했다. 그러니 팬에게는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재는 마지막에 결국 절벽에서 떨어진다. 가슴은 깊은 검상을 입은 채로. 그 모든 것은 연 때문이었다.

이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연은, 더 이상 선역이 아니었다.

지금 지영의 눈에 보이는 이연은, 정말 악역이 된 이연이었다.

“이제 깊이가 정말 남다르네.”

“네?”

감정을 잡는 이연을 보며 임은진이 한 말에 지영은 반사적으로 반문했다.

“이연 씨 말이야. 이제는 정말 깊어. 아직 대사는 못 들어봤지만, 저 눈빛 봐. 독해졌잖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도 남을 정도로.”

“음…… 그건 그러네요.”

확실히 이연은 그랬다.

지영이 보고 이질적이라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얼마나 많은 연구, 연습을 통해 저 모습이 만들어졌을까? 그러고 보니 올 5월인가 그쯤에 그녀는 자신이 연습하는 장면을 찍어 올린 적이 있었다.

팬이자 연기자를 꿈꾸는 한 아이가 배우는 어떤 연습을 해요? 라는 질문에 직접 찍어서 보여준 것이다.

그녀가 올린 연습은 평범함과는 당연히 거리가 있었다.

그녀가 올린 것은 표정 연습이다. 화사한 미소에서 아주 천천히, 위화감 없이 사이코패스 같은 표정으로 다운되는 모습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급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진짜 천천히. 아주 자연스럽게. 심지어 그녀는 각도만 살짝 틀어가면서 얼굴에 음영까지 스스로 만들어냈다. 조작이 아니라 정말 각도의 차이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물론 그 자체로도 계산된 거긴 하지만, 그 모습에서 팬들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단순히 아이돌 출신 배우가 아니라, 그녀가 얼마나 진심으로 배우에 임하는지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연기력 논란? 남자랑 스캔들이 나면 났지, 연기력 논란은 절대 안 된다는 게 이연이었다.

재능도 출중하고, 노력까지 게을리하지 않는 배우.

그게 이연이었다.

액션!

사인이 떨어졌다.

죽간을 주르륵 펼쳐 전방에서 올라온 보고를 무감정한 시선으로 슥 훑어보는 그녀. 그 보고는 솔직히 좋은 보고는 아니었다. 초소 넷이 터졌고, 병사 열둘이 도륙됐다는 보고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처음엔 병사의 죽음에 입술을 질끈 깨물며 죄책감에 몸부림쳤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정말 담담함, 그 자체였다. 아니, 느낌이 좀 달랐다. 감각이 예리한 지영은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냈다.

‘무감각해진 거야.’

서른이나 죽었어?

그런데 뭐.

전장에서 죽음은 당연한 거지.

정도였다.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그저 덤덤히 받아들이는 모습 자체가 괴리다. 1부와 다르고, 2부에서 다르고, 3부에서는 또 다르다.

괴물이 되어가는 중인 거다.

아니, 이미 괴물이 되었다. 재의 사망 소식을 받은 순간부터. 연은 통곡하지도, 오열하지도 않았다. 2부엔 안 나오지만 3부 소설 속에 분명 그런 내용이 있었다.

[재가 죽음으로서, 연은 괴물이 됐다.

그녀는 울지도 않았다. 슬퍼했으나, 슬퍼한 만큼 감정의 마모 속도가 빨라졌다. 겨울이 오고, 봄이 왔을 때쯤 그녀는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군사로서, 왕으로서. 하지만 바탕은 괴물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 소설 속 내용과 지금 눈앞의 이연은?

완전히 같았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지영은 슬쩍 손등을 봤다.

오도도 돋은 소름이 백열등에 선명하게 보였다. 심수정의 변신도 충격적이었지만, 지영은 이연의 저 모습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지영은.

‘잘못하면 진짜 먹히겠다.’

임은진이 한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연의 변신은 어마어마했다. 아니, 변신이 아니라 캐릭터와 동기화가 거의 99%를 넘어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런 이연과 합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눈빛에서 잡아먹힐 거야.’

이연과 강지영이 마주하는 게 아니다.

카메라 앞이고, 홍진아 감독의 액션 사인이 떨어지면 이연과 강지영이 아니라 연과 재가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서로 품은 감정이 명확히 달라서, 정확히 서로 대칭을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안 돼. 내가 너무 풀렸어…….’

올림픽 이후 긴장이 풀렸다.

치료 중이라서 조급했던 적이 있었고, 그런 조급함이 결국 회복을 더디게 할 거라는 전문의의 말에 지영은 의도적으로 정신을 느슨하게 풀었다. 거기에 예능 출연, 휴가 등등을 겪으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많은 피로를 털어냈다.

그런데 이연은 정반대였다.

지영이 의도적으로 정신을 풀었을 때, 이연은 반대로 정신을 조여갔다. 이연이 아니라 연이 되어간 것이다. 아까 만났을 때 반가움 정도를 표현할 여유 정도만 두고, 그녀는 연이 된 것이다.

그 차이다.

이 차이는 너무나 극명해서 지금 당장 이연과 마주 보고 연기를 한다면 백이면 백 지영은 그녀의 연기에 먹힐 거라 생각했다.

‘이대론 안 돼.’

먹힌다고?

그게 정해진 결과라고?

그렇다면…… 거부해야지.

“누나, 돌아가죠.”

“……훗, 그래.”

지영은 그녀의 연기를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돌아선 지영의 눈빛은 확실히 변해 있었다. 연기자이자 셀럽, 운동선수였던 강지영이 잠들고, 무복을 입고 칼을 찬 무사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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