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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09화 (40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09화

409화. 짧은 휴가(6)

[속보-강지영 비밀리에 출국?]

[속보-강지영 출국! 드디어 드라마 들어가나?]

[속보-강지영! 이젠 유도선수가 아니라 배우다!]

슥슥슥!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강지영이 운동선수가 아닌 배우로 신분을 전환했을 땐, 그 공식 스케줄이 대부분 소속사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진다. 이번 스케줄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이 출국 절차를 밟기 무섭게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드디어! 드디……어!

-기다렸다고!

-나의 무사님 마지막 시즌 가즈아!

-와 사진 봄? 방송 때랑 완전히 다름 ㄷㄷ

-그동안 감량 엄청 했나 본데?

-며칠 되지도 않는데? 일주일 조금 넘었을걸? 노는 언니들 촬영? 근데 그때랑 지금이랑 이렇게 다르다고? ㄷㄷ

-일주일 조금 넘게 또 살 뺀 거죠. 와…… 진짜 대단하네요

-아무리 유도선수라서 감량 이골이 났다지만, 저건 놀랍네요 ㄷㄷ

-턱선 차이가 어마어마함…….

-진짜 엄청 노력하는구나……. 하긴 저렇게 독하게 관리하니까 세계 최고의 자리로 가는 거지…….

-단순히 운이 좋다기에는, 지영이 노력이 너무 대단함, 진짜. 솔직히 배우랑 운동선수랑 저렇게 겸업으로 저렇게 잘하기 쉽지 않은 건데.

-그건 다 아는 거고. 예전에는 솔직히 운 좋은 놈이라면서 시샘도 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이 정말 안 들음.

-후원재단 이사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세계 최고의 셀럽임.

-할리우드에서 강지영 몸값 측정한 거 보심? 리얼 장난 아님 진짜.

-얼만데요?

-몇백억 수준이었던 거 같은데, 요즘 더 오른듯요. 거진 800억 육박할걸요.

-헐…… 영화 한 편에?

-ㅇㅇ 아직 로다주처럼 커리어가 없어서 그 정도지, 만약 거기서 작품 하나만 터뜨리면 몸값 따블로 뜰걸요? 솔직히 헐리웃에도 지금 지영이처럼 핫한 배우는 없음.

-아마 시나리오 엄청 가는 거로 아는데, 당분간 나의 무사님에 집중한다고 전부 뒤로 미뤄놨다고 소속사 오피셜 뜬 적도 있음.

실제로 사실이었다.

지영에게 몰리는 시나리오는 상상을 초월했다. 예전이었다면 성의를 생각해 전부 확인했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나의 무사님 대미의 장식을 위해 머릿속에 다른 이야기로 채워지지 않게, 지영은 그 어떤 시나리오도 읽지 않았다. 워낙에 보내는 사람이 많으니 그거라도 말리기 위해 일단 소속사는 공식성명을 낼 수밖에 없었다.

-강지영 배우는 나의 무사님 집중을 위해 시나리오를 확인하지 못하는 중입니다. 이 점, 양해해 주세요.

이렇게, 공식 SNS를 통해 올라간 소식이었다.

-헐, 그럼 지영 오빠 나의 무사님 끝나면 헐리우드 진출해요?

-그건 모르는 거임. 지영이가 마음에 드는 작품 있으면 갈 거고, 없으면 안 갈 듯.

-ㅇㅇ 강지영이면 아무 작품이나 안 들어가지. 자기 취향에 안 맞으면 거들떠도 안 볼걸?

-근데 가도 망 아님? 솔직히 거기서 몇몇 배우 빼면 살아남은 아시안계 배우도 없지 않음?

-그렇긴 한데, 강지영은 조금 다름. 청룽부터 레인에 이병원까지 전부 도전의 의미로 그 문을 두들겼다면, 지금은 거기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어떻게든 지영이 섭외하려고 난리임. 차이가 어마어마하지 않음?

-ㅇㅇ 들어보니 그건 또 그렇긴 하네요ㅋ

-솔직히 아시안 계 배우가 살아남기 힘든 곳임. 그래서 전 강지영이 한 작품만 하더라도 할리우드에서 대박 한 번 터뜨려 줬으면 좋겠음ㅋㅋ

-동감임 ㅋㅋ 임윤옥 선생님이 아카데미 조연상 딴 것도 대단하고, 페러사이트 열풍도 대단하지만 우리 배우가 주연상에, 흥행도 대박 한 번 내는 거 보고 싶긴 함 ㅋㅋ

-지영이라면 가능할 듯?

-솔직히 미국 강지영하면 껌뻑 죽잖아? 이번에 훈장 주고도 너무 늦게 줘서 미안하다고 오히려 사과했는데 ㅋㅋ 대사도 늦게 줬다고 욕 겁나 먹었고 ㅋㅋ

-아 그거? ㅋㅋㅋ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긴 있었다.

지영은 훈장을 한날에 전부 받았다. 그런데 이게 당연히 문제가 된다.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거다. 순서에는. 그 예민한 문제를 지영은 간단하게 풀었다. 먼저 주겠다고 한 곳부터 받겠다, 해서 독일 프랑스 미국 순으로 받았다.

아침은 독일 대사관에서, 점심은 프랑스 대사관에서, 저녁은 미국 대사관에서 먹으며 훈장을 받았고, 그 모습이 기사로 나갔다.

미 대사는 공식성명으로 세 번째로 주게 된 점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인터뷰를 했고, 이는 당연히 화제가 됐다.

일개 선수가, 일개 배우가, 일개 독지가가 가지기엔 정말 어마어마한 파워였다. 그리고 그런 파워에 미국민들은 열광했다. 지영이 보여준 헌신, 인류애와 자유로운 마인드는 미국이 정서에서 무조건 먹히는 조건이기 때문이었다. 그 예로, 지영의 나의 무사님 시즌 1, 2와 예인의 경우 미국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다.

이러한 시류를 미국 헐리웃 관계자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영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이다. 일부 레이시즘 주의자들이나 그런 대세의 흐름을 반대하고 있고, 나머지는 전부 지영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상황이었다.

그런 지영이 미국으로 떴다는 기사가 났다.

당연히 이 기사는 관계자들에게 전달되었고, 스크립트를 챙긴 캐스팅 디렉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영을 둔, 전쟁이 시작됐다.

* * *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지영은 알래스카 앵커리지 국제공항 절차를 밟기 전에 잠시 대기해야 했다. 갑자기 미국에 몰아친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에휴.”

임은진은 혀를 차며 제작진에게 연락을 돌렸고, 지영은 공항 로비에서 대기하며 배우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연락을 돌리고 얼마 뒤, 이연에게 전화가 왔다.

“네, 누나.”

-태풍 와서 발 묶였어?

“네, 공항인데 지금 장난 아닌데요?”

-그래?

“네, 한국에서 겪던 태풍은 애교예요. 진짜 미국 스케일. 난리도 아니에요.”

콰르릉…….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풍, 폭우다. 미국 스케일답게 진짜 장난이 아니었는데 공항 로비 밖은 뭔 종말을 앞둔 것처럼 살벌했다.

-아이고, 그럼 합류 늦겠네?

“네, 은진 누나가 지금 감독님한테 연락 중이에요. 죄송해요.”

-죄송은 네가 늦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알았어. 태풍 멎으면 비행기 잘 타고 와!

“넵.”

솔직히 조금 미안하긴 했다.

먼저 가서 고생 중인 배우들이다. 촬영 A팀과 B팀이 전부 넘어와서 신을 쳐내는 중인데, 가장 중요한 자신이 없으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크게 안 날 수밖에 없었다. 심수정이나 이연은 심심하면 언제 오냐고 난리였고, 조용한 강서훈마저 지영이 없으니 분위기가 다운된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주인공이 빠져 있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얼른 합류해서 회포를 풀고, 촬영을 시작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시작부터 발이 묶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렇다고 저 태풍에 비행기를 띄운다? 자살이 고프면 수면제를 추천하는 게 나았다.

로비에서 그렇게 대기 중이었는데, 누군가가 지영을 알아봤다.

어, 미스터 지영?

미스터 강도 아니고, 지영이란다. 확실하게 알아본 게 분명했다. 마스크를 쓴 금발의 여인인데, 눈 밑에 주름이 살짝 보이는 게 나이가 조금 있어 보였다.

거침없이 내미는 손을 지영도 어차피 알아봤으니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맞잡았다.

“반가워요. 마가렛 요한슨이에요.”

어……?

어? 어어?

우와 대박!

마스크를 벗으며 먼저 인사를 했는데, 주변에서 곧장 반응이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영도 솔직히 얼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성진은 애니나 영화를 좋아했다. 특히 히어로 무비를 좋아했는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영화는 당연히 마블 시리즈였다.

그리고 그 마블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인 캐릭터가 있었으니, 바로 블랙 위도우였다.

그 블랙 위도우를 맡았던 여배우가 바로 눈앞에 마가렛 요한슨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지금도 가장 몸값이 높은 여배우. 로맨스와 코미디, 정극, 스릴러에 첩보 액션까지 모든 장르를 소화하는 배우였다.

그런 여배우가 지영을 알아보고 갑자기 먼저 인사를 청한 거다.

“어…… 강지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지영이 얼떨떨해하며 인사를 하자, 마가렛은 씩 웃었다.

“스케줄을 박살 낸 태풍이 너무 미웠는데, 이렇게 되면 태풍에게 고마워해야겠는데요? 이렇게 지영을 만나게 해줬으니까요.”

“하하, 그런가요? 저도 그럼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네요.”

대단한 배우와의 만남이다.

솔직히 지영이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배우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맞다. 하지만 지영은 이곳에서 커리어가 없었다. 아니, 배우 커리어 자체가 적었다. 속된 말로 그냥 애송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눈앞의 이 배우는 달랐다. 수많은 작품을 주연으로, 또는 조연으로 흥행시켰다. 그리고 재작년엔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까지 결국 거머쥐었다. 배우로서는 압도적으로 마가렛이 위였다.

그래서 솔직히 좀 얼떨떨했다.

반가우면서도,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 상태기도 했다.

“작품 찍으러 알래스카로 간다는 기사는 봤어요. 그게 맞나요?”

“네. 맞아요.”

“멀리까지 오네요? 보통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 쪽에서 로케이션하지 않나요?”

마가렛의 물음에 요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본래라면 그렇다.

‘나만 없었다면 말이지.’

그런데 하필이면 지영이 있다.

고집도 고집이고, 지영은 아시아 쪽 국가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일본과는 최악이었다. 중국과도 직접적인 마찰은 없지만, 시샘 때문에 그 어느 곳도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 했는데 그게 미국이었다. 이런 문제를 얘기하는 건 조금 그러니 적당히 답하기로 했다.

“좀 문제가 있어서요.”

“이런, 지구 반대편까지 작품을 찍으러 다녀야 하고, 힘들겠어요.”

“그렇긴 한데,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마가렛도 예전에 한국까지 와서 작품 찍지 않았어요?”

“찍었죠, 서울에서. 후후, 좋은 경험이었어요.”

어벤져스란 작품에서 한국까지 와 촬영했던 적이 있었다. 지영이 완전 꼬꼬마 시절에 말이다.

“팬들도 친절했고, 좋은 기억이 가득하네요. 후후.”

“성숙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긴 하죠.”

팬덤 문화가 가장 극성인 곳을 뽑으라면 세 손가락에 드는 게 한국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탈이 많이 났었다. 그런 사건 사고를 겪으며 팬덤 문화는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해갔고, 지금은 제법 성숙한 문화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글쎄……. 립서비스일 수도 있으니, 지영은 그냥 맞장구를 쳐줬다.

“아, 맞다. 저 나의 무사님도 전부 봤어요. 후후. 재밌던데요?”

“아, 감사합니다.”

“액션은 전부 대역 없이 소화하는 거죠?”

“네, 제가 해요.”

“……정말 힘들었을 텐데, 괜찮아요?”

역시, 하드코어 액션의 끝인 마블 시리즈를 오래 했던 사람답게, 액션의 하드코어함을 아주 잘 알았다. 솔직히 지영은 배우판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액션은 애초에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이 액션이 얼마나 힘든 건지 몰랐다. 하지만 참고하려고 본 다른 작품들 덕분에 알게 됐다.

재의 무술은, 액션 중에서도 진짜 가장 고난도 축에 속했다.

“네, 다행히 몸 쓰는 쪽엔 재능이 좀 있어서요.”

“아하? 그렇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죠? 제가 배우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배우의 관점에서만 보고 있었네요. 후후, 미안해요. 세계에서 제일 유도를 잘하는 사람인데, 지영은.”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이쪽으론 언제 올 건가요?”

“네?”

“헐리웃이요. 이쪽에서 지영에게 스크립트를 정말 많이 보낸 거로 아는데. 아직 생각이 없는 거예요?”

반짝이는 눈빛을 보니 자신이 한 질문 중 이게 가장 궁금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눈빛에 지영은 솔직히 답해주기로 했다.

“일단은 나의 무사님에 집중하기로 해서요. 아직 보내온 걸 거의 못 봤어요.”

“하나에만 집중하는 편이에요?”

“운동도 있으니, 아무래도 여유를 두기가 힘들어서요.”

“하긴, 그렇겠네요. 그래도 생각은 있는 거죠?”

“그럼요.”

슬슬 마이너스를 찍기 시작한 연희 스포츠의 자금을 채워 넣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영이 돈을 버는 거다. 지영의 몸값을 생각하면 여기서 작품 하나만 제대로 찍어도, 연희 스포츠 자금을 아주 충만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지영은 배우로서의 욕심도 있긴 했다.

유도야 그랜드 슬램이 목표고, 그걸 이루면 지영은 미련 없이 떠날 것이다. 그럼 떠나서는? 평생 놀고먹을 돈이 있다고 해도,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게다가 지영은 불편했던 몸 때문에 하고 싶던 걸 못 했던 과거가 있었다.

그러니 이번 생엔 하고 싶은 일을 잔뜩 해보고 싶었다.

해보지 못했던 일도 잔뜩 해보고 싶기도 했다. 배우는 지영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었다.

‘변호사도, 검사도, 평범한 회사원도 할 수 있는.’

정말 유일한 직업이었다.

그런 일을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도전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할리우드? 이곳에서도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영이 아직 이쪽과 미팅조차 잡지 않는 이유는 나의 무사님 마지막 시즌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음, 그럼 이것 좀 볼래요?”

“네? 이게 뭐…… 아. 시나리오?”

“이쪽은 스크립트라고 불러요.”

“아아, 네.”

“제가 고민 중인 작품인데, 혹시 생각이 있나 해서요.”

마가렛이 건네주는 스크립트를 반사적으로 받아본 지영은 일단 제목부터 확인했다.

“그 여자의 레이시즘?”

레이시즘이면, 인종차별?

주제가 강렬했다.

“제목부터 확 강렬하죠?”

“그러네요. 인종차별이 주제니.”

“그래서 고민 중이에요. 욕먹을 캐릭터라.”

“그런데 이 작품에 제가 할 만한 게 있나요?”

“읽어보면 알걸요?”

“아아, 제가 동양인이니, 기본적인 조건이 그냥 성립되겠네요.”

“후후, 그렇죠. 일단 봐보기라도 하세요. 작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감독도 내정되어 있어서, 제법 기대가 되는 작품이에요.”

“…….”

지영은 마가렛의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상을 탔다고, 다음 작품도 잘될 거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 실력은 있으니 잘될 확률은 당연히 다른 작품보단 좋을 거다.

“지영은 이 얘기와 이미 제법 잘 어울리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 작품을 해보는 건 나쁘진 않을 거예요.”

캐릭터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지영은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보기라도 해보는 거예요. 알았죠?”

“네, 그럴게요.”

우연찮게 만난 마가렛 요한슨이 직접 추천한 시나리오, 아니, 스크립트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어차피 폭풍이겠다, 지영은 스크립트를 살펴보기로 했다.

제목에서 벌써 내용이 절반 정도 나온 것 같지만 혹시 또 다른 반전이 있을 수도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하다고 하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던 게, 정확히 30분 뒤부터 폭풍이 점차 멎기 시작하더니 1시간 뒤엔 날이 확 개었다. 하루는 꼼짝없이 잡혀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마가렛은 뉴욕으로, 지영은 알래스카로 향하는 게이트로 이동하면서 헤어졌다.

국지성 태풍이 떠나고 1시간 뒤 지영은 비행기에 올랐고, 좌석에 앉아 스크립트를 펼쳤다.

빤한 얘기였다.

인종차별주의자인 40대 부인이 아들딸과 어울리는 동양계 청년을 통해 레이시즘을 치료받는 이야기.

상처 주고, 또 상처 주다가, 중반 반전 이후로는 점차 동양계 청년의 편을 드는 이야기.

흔한 감성.

흔한 반전.

그래서 흔한 이야기.

흔하지만 조금은 듣고 싶은 이야기.

지영은 스크립트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정은정의 시나리오처럼, 마음은 확 동하지 않았다. 그런 지영을 태우고 비행기는 혹한의 대지를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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