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02화
402화. 천상계(17)
저녁 12시.
중간중간 쉬기도 하며 토크를 이어간 지 벌써 4시간이 훌쩍 넘었다. 다시 마지막 점검 뒤, 전 출연진이 모였다.
“마지막 이어 가겠습니다!”
딱!
조연출이 슬레이트를 치고 빠지자, 우정혁도 조금 지친 기색이 보이나 그런 것쯤은 가뿐히 넘어선 모습을 보였다.
“자, 이제 토크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네요. 하하. 그런데 정말 대단들 하네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역시 운동으로 일가를 이루신 분들이라 그런지 체력들이 전부 남다르네요. 여전히 집중을 잃지 않는 모습, 이야, 이런 건 역시 앞으로 토크쇼에 나오시는 분들도 좀 본받아야 해요. 하하.”
우정혁의 뭔가 의미심장한 멘트에 다들 살짝 긴장했다.
본받으라는 말은 표본이 돼라는 말이고, 그건 곧 모범이 돼라, 혹은 되고 있단 말이니 혹독한 운동 세계에서 오랜 시간 있었던 선수들은 그 말을 귀신같이 알아듣고 자세를 바로 하며 마지막 토크에 대비했다.
“자, 이제 그럼 토크의 마지막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해 보겠습니다. 모두 마지막 연료를 태우고 계실 테니까, 힘들더라도 마지막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주기를 부탁하겠습니다. 하하.”
살짝 부담될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아셨죠, 지영 씨?”
그건 지영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였다.
지영은 그 말에 하하, 하고 그냥 웃었다.
“자, 지영 씨. 일주일 후에 또 출국하신다고요?”
출국 얘기가 나왔다.
이건 곧 나의 무사님 얘기를 하겠다는 뜻. 그리고 사실 흐름은 알고 있어서 드라마 얘기 차례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아마 이번 방송이 나온 하루나 이틀 후에는 다시 미국으로 출발할 것 같아요.”
“미국이요?”
“네. 뉴욕에서 바로 앵커리지로 가요.”
“아 앵커리지면, 알래스카죠?”
“네, 맞습니다.”
“이야, 이번 촬영지는 알래스카예요?”
“네.”
사실 이미 보도가 된 내용이다. 중국을 포함해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훗카이도 쪽도 전부 로케이션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러시아는 위험했고, 로케의 나라 중국이나 그나마 가깝고 나름 조건이 맞는 일본 북해도 쪽은 지영이나 황금세대와 너무 사이가 좋지 않아 현지 코디네이터도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제작진도 예상했다.
그래서 미국 측에 협조를 구했고, 알래스카에 로케 장소를 마련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방송에서 얘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기사로 다 나갔으니까, 기사 제목을 자막으로 알아서 내보내 줄 것이다.
“이야, 나의 무사님 스케일이 점점 더 커지는군요? 그런데 알래스카라니, 너무 혹독한 환경이 아닐까요?”
“그렇기는 한데요. 이제 마지막 시즌이니까요.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요.”
“그렇군요. 나의 무사님. 이야, 지영 씨 하면 또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나의 무사님은 20년대 넘어서 한국 드라마 역사를 새로 썼어요. 시청률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치가 나왔어요.”
“하하…….”
“43.5%! 이야, 솔직히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음, 그냥 얼떨떨했어요. 그리고 가능하면 흔들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많이 노력한 것 같아요.”
“정말요?”
“네. 시청률이 잘 나오니까, 다들 마음이 붕 떴거든요. 그건 솔직히 저도 처음엔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시청률이 잘 나올 때쯤엔 후반 액션 신을 찍는 장면이 많았어요. 아, 우정혁 님은 나의 무사님 보셨어요?”
갑자기 치고 들어온 지영의 역질문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저는 주말에 스케줄이 항상 있어 본방 사수는 못했지만, 쉬는 날에 결, 제! 해서 전부 봤습니다. 하하!”
“아…… 보셨군요.”
“어, 왜 아쉬워하시죠?”
“음, 아닙니다. 보셨다니까…… 아.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나의 무사님은 지극히 실전 액션을 추구하고 있었어요. 무쌍 찍는다? 그렇게 주인공이 막 다 베고 넘기는 게 아니라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신을 짰어요. 그래서 위험한 장면이 진짜 많았거든요.”
“아 그건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보는 내내 감탄하면서도 이야, 배우들이 정말 힘들었겠구나. 했거든요.”
우정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자, 다들 응응!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은 나의 무사님 비하인드스토리에 집중도가 확 오른 선배들을 보면서 시간을 끌지 말고 얼른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생각을 정리해 답을 이어갔다.
“진짜 힘들었어요. 저도 운동선수지만, 액션은 또 결이 달라서요. 그래서 조금만 삐끗해도 큰 부상이 올 수 있다는 생각에 얼른 정신 차리고, 합을 맞추는 데 엄청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때가 딱 시청률이 올랐을 땐데, 그래서 잘 몰랐어요.”
“아아, 그러시구나. 그럼 드라마가 끝나고는요? 아니, 아니지. 공식 촬영이 끝나고는요? 그때는 좀 느꼈나요?”
“그것도 잘…… 전 바로 선발전 준비했거든요.”
“아…….”
사실이었다.
한국이 나의 무사님으로 떠들썩할 때, 지영은 친구들과 합류해 선발전 훈련에 열을 올렸다. 체중이야 드라마를 찍으며 맞춰놔서 문제없었지만, 떨어진 감을 되찾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뜨거운 인기를 실감할 겨를이 거의 없었다.
“그럼 인기를 거의 못 느꼈겠네요?”
“아무래도…… 그랬죠. 선발전 끝나고는 또 입촌했거든요. 여기 다들 아시겠지만…… 입촌하면 인기고 뭐고 죽도록 훈련밖에 없어서요.”
“아, 그렇겠구나. 그래서 좀 아쉽고 그러던가요?”
우정혁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훈련이 호락호락하지가 않아요.”
“와…… 그 정도예요?”
우정혁이 그렇게 물으며 게스트를 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 같겠지만, 절대 아니었다. 선수촌 훈련은 진짜,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투기 종목 훈련은 같은 선수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로 하드코어하다.
진짜 인간을 한계까지 쥐어짠다.
특히 그중에서도 체력훈련은 천하의 황금세대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헛구역질로 위액을 토할 정도로 힘들다.
“유도 쟤들 진짜 장난 아니에요, 어휴.”
“맞아요. 가끔 보면 불쌍해질 때도 있어요.”
그나마 거의 비슷하게 입촌하는 배구팀이 유도 종목의 훈련이 어떤지 얘기해 줬다. 극악의 훈련 코스는 일반인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레벨임을 설명하자, 골프팀 포함 제작진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반응에 지영이나 친구들은 그냥 쩝, 하고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본인들 입으로 얘기하면 더 스토리가 있겠지만, 흐름상 얘기하진 않기로 했다.
“그렇게 입촌하고, 크으. 자, 그럼 다시 드라마 얘기로 가볼까요? 이제 대미의 장식을 위한 마지막 시즌이에요. 대본은 다 나온 걸로 아는데, 지영 씨. 당연히 우리 기대해도 되는 거죠?”
우정혁의 질문에 지영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본은 기깔나게 잘 뽑혔다.
정은정은 왜 자신이 천재인지를 ‘글’로 증명했다. 지영은 대본과 같이 온 소설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그걸 축소해 만든 대본도 이미 충분히 숙지했다. 이런 작품은 흔히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지영이 보기에 그런 기색은 거의 없었다.
“절대, 기다려 주신 분들이 실망하는 작품은 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지영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이런 지영의 겸손한 대답에 우정혁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치 시청자로서 너무 기껍다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말보다는 때로는 표정으로 이렇게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꽤 좋은 방법 같았다.
특히 이성진은 그런 우정혁을 하나부터 열까지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 있었다.
이성진의 롤모델.
그는 저런 방송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랜드 슬램 이후의 꿈을 이성진은 그렇게 잡았다. 물론, 유도도 포기하지 않고. 황석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임효중과 이성진은 은퇴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이 얘기는 아직 누구도 모르는 얘기이다.
“그럼, 지영 씨 말 믿고 정말 고대하며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네, 많이 기대해 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스토리를 알려줄 수는 없으니, 이렇게 하는 게 지영이 할 수 있는 홍보의 최선이었다.
“네, 나의 무사님 시즌3! 많이 기대해 주세요! 하하. 자, 그럼 이제 또 다음 얘기로 가볼까요? 이번엔 음, 황금세대 전체에 관한 질문이라 볼 수 있겠네요. 바로, 연희 스포츠 재단 이야기입니다.”
연희 스포츠란 말이 나오자 지영을 포함해 다들 자세를 바로 했다. 중요한 얘기였다. 이 부분은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건방지거나, 대단하다로 나뉠 수 있었다. 그러니 대답은 가능한 신중하게 해야 했다.
“우리 지영 씨나 한결 씨, 효중 씨와 석이 씨, 그리고 우리 성진이까지 포함한 황금세대 아이돌은 직업이 대체 몇 개예요?”
“하하…….”
지영은 그냥 웃었고,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은 운동선수와 배우라는 직업 말고,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바로, 연희 스포츠 재단 이사다.
자금을 대고 창립한 지영과 강한결은 이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직원으로 되어 있었다.
“지영 씨와 한결 씨 프로필을 쳐보면, 이사라는 직함은 보이지 않는데 이건 일부러 뺀 거죠?”
“네, 아무래도요. 나이도 젊은데 이사라고 하면, 시선이 좋을 것 같진 않을 것 같아서 요청해서 뺐습니다.”
“하지만 알 사람들은 다 알죠?”
“그럼요. 홈페이지 가서 조직도 보면 다 나와 있으니까요.”
실제로 그렇다.
연희 스포츠에는 조직도란 게 있는데, 조직도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연희 스포츠 재단의 직원이고, 다른 하나는 연희 스포츠에서 후원하는 선수들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선수들의 사진이 있는데 클릭하면 종목과 경기성적 등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그러니 연희 스포츠 홈피에 가본 사람들을 통해 이미 소문은 날 만큼 났다.
“자금 얘기는 민감한 얘기니 따로 묻지 않겠습니다. 자, 그럼. 이런 훌륭한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지영은 이 질문이 들어오자, 강한결을 바라봤다.
이는 황금세대 아이돌에게 들어온 공식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리더인 강한결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영의 시선을 맞은 강한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곤조곤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은 지영이가 먼저 얘기를 꺼냈어요. 운이 좋아 큰돈을 너무 어린 나이에 벌게 되었고, 이걸 들고 있으면 인생의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지영이는 그런 얘기를 꺼냈어요. 그리고 사실 저도 거기에 동감하고 있었던 상태에 그런 얘기를 들은 거죠.”
“아아, 음. 큰돈이라고 하는 걸 보니까, 대충 금액이 어느 정도일지 감은 잡힙니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 시작한 걸로 아는데,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음, 네. 하하.”
강한결이 쑥스러운 미소로 머리를 긁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조금 다르다. 당시 지영은 여러 가지 고민에 쌓여 있을 때였다. 특히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회귀한 이유에 대해서였다.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영은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 그걸 동기부여로 삼으려고 했었다.
회귀.
‘그건 곧 기회와 같았지.’
지영에게는 그게 맞는 생각이었다. 회귀로 인해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얻었으니까. 그래서 지영은 그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기로 했다. 지영도 아는 굵직한 건 두 개로 지영은 상당한 돈을 벌었다. 자본금 오백이, 수십억이 되었다.
이제는 금액이 늘어나는 속도가 거의 줄었지만, 그래도 지영은 베가 주식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만큼 된다. 게다가 지영이 방송으로도 상당한 금액을 벌고 있었다. 시즌1보다 시즌2 때 계약 조건이 당연히 좋았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와 러닝 개런티, 그리고 이번에 찍을 시즌3까지 생각하면 돈 걱정은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런 돈을 그냥 들고 있을 생각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돈으로 타인에게 기회를 주어 자신에게 동기부여의 ‘기회’를 사기로 했다.
재단은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재수 없지만, 그게 팩트다. 그리고 그래서 이건 이미 친구들과도 조율이 끝났다. 솔직하게 말하긴 하나, 조금은 비트는 거로.
그래서 저렇게 강한결이 대답한 거다.
“멋집니다. 여기, 제작진이 연희 스포츠에서 후원 중인 선수들을 좀 찾아봤는데요. 인원이 상당합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후원하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정말 대단하네요. 그런데 한결 씨, 후원 조건은 어떻게 되나요?”
“조건이요? 음, 난감한 얘기네요. 하지만 어차피 솔직하게 말하기로 각오하고 왔으니 말씀드릴게요. 저희 조건은 간단합니다.”
“어떻게 간단한 거죠?”
“재능과 인성.”
“재능과 인성?”
우정혁의 질문에 강한결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방송 나가면 반드시 욕이 날아올 대답이었다. 하지만 연희 스포츠 후원의 핵심이기에, 강한결은 이를 과감히 오픈했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그래서 지영을 포함한 모두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