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01화
401화. 천상계(16)
다들 고대하고, 또 고대하던 순간이다.
강지영이란 인간은 아직도 세계적으로 뜨거운 감자였다. 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도 하고, 조금 가라앉아 가던 분위기에 3국의 훈장 수훈 결정이 불씨에 장작을 마구잡이로 집어던진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강지영이란 이름을 검색하면 뜨는 연희 스포츠와 비즈 엔터테인먼트에 출연 섭외 메일이 빗발쳤다.
잠시 훈장 취소 건으로 주춤하긴 했지만, 그 건은 3국의 수여 건으로 몇 배로 되살아났다. 오죽했으면 동물농장 같은 프로에서도 출연 제안서가 날아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뜨거운 강지영이 결정한 유일한 프로그램이 바로 노는 언니들이었다.
그래서 이 보도가 나갔을 때쯤엔, 화제성이 어마어마하게 모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나와서 병풍처럼 서 있었어도 대단했을 텐데, 이렇게 토크쇼 형태로 직접 이야기를 한다는 건, 제작진 전체가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게스트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시선이 모였다.
“어, 음. 일단 지영 씨에게 질문을 하기 전에 제작진이 준비했다는 영상을 한번 보기로 해요. 좀 아찔하니까 어린이나 노약자는 조심하시고요.”
우정혁의 사인에 장미 PD 옆에 있던 대형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나오는 건 소피를 구했던 영상이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기자가 중계 차량 위에서 찍은 영상이었는데, 그날 사고 영상 중 가장 잘 나온 영상이었다.
지영도 본 적이 없는 영상이라서, 괜히 긴장됐다.
신호등에 불이 켜지고, 선수단이 건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작은 꼬마 소피도 같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러다 인형을 떨어뜨리고, 아이는 반사적으로 엄마의 손을 놓고 인형을 주우러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그 순간…… 지영은 이미 고개를 돌려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부아앙-! 거대한 경적에 소피가 인형을 들어 올리다 말고 굳었을 때, 지영은 들고 있던 가방을 놓으며 몸을 날렸다.
“아…….”
누군가가 탄식이 들렸다. 지영이 뛰기 시작한 순간부터 따로 편집했는지 영상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느려진 영상에서 지영은 아이를 낚아채 몸을 돌리며 부웅 띄웠다. 그러곤 급제동 프로그램이 작동해 소피가 있던 곳을 아슬아슬 지나치며 멈춰 선 트럭의 옆을 발로 박차며, 그 옆으로 오던 봉고차를 피하는 장면까지 천천히 흘러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발목이 치이며 몸이 빙글빙글 돌면서 소피를 꼭 끌어안고 떨어지는 장면까지.
마치 영화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이야…….”
“와…….”
“저게 어떻게 되는 거지?”
“미쳤다, 진짜…….”
스태프들도 웅성웅성.
영상을 본 이들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등,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놀란 것엔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지영의 친구들은 그러지 못했다.
“아 씨…….”
“저 때, 후우…….”
다들 표정을 한껏 굳히고 오히려 괴롭고 힘든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지영은 그런 친구들에게 순간 미안해졌다. 저 사고 이후로 친구들은 정말 힘들어했다. 큰 사고가 났다면? 친구들은 자신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수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비슷하지.’
지금도 저렇게 도로를 건널 때면 지영을 거의 호위하듯이 막고 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대형을 짜서 지영을 보호했다. 지영은 그게 고맙고도, 미안했다. 그래서 솔직히 저 영상은 친구들에겐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정혁은 그걸 캐치했는지, 영상을 꺼달라고 신호했다.
“역시, 사고 영상을 보니까 우리 황금세대 아이돌은 표정이 매우 좋지 않네요. 친구로서 정말 힘들었을 텐데, 제가 부주의했네요.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그냥 잠깐 저 때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 얘기는 그냥 넘어가는 게 좋겠어요.”
아…….
탄식이 나왔다.
작가들과 연출에서 나온 탄식이었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탄식하고, 얼른 입을 가렸다. 그러나 그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이들에게는, 지영의 입에서 최대한 많은 얘기가 나오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지영은 그걸 잘 알기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음, 저 상황이 저나 제 친구들에게 안 좋은 기억인 건 맞는데, 그렇다고 그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진 않아요.”
“아…… 그래요?”
지영의 말에 우정혁이 미안한 얼굴로 대답하자,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 아이돌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저 기억을 부정하면, 제가 소피를 구한 것을 후회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후회하지 않거든요. 소피가 병실에 찾아와서 제게 보여준 미소를 보면서 저는 그때 결정을 정말 잘해도 백번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이야…….”
우정혁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작은 박수였다.
지영은 조금 겸연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좋아요. 그럼. 오늘 내가 지영 씨 아주, 탈탈 털어줄게요. 각오해요?”
“하하, 네. 각오하고 임하겠습니다.”
어차피 다 털기로 했다.
방송에 나오면 아마 지영에게 궁금한 질문 전부가 날아들 것이고, 지영은 사전에 인터뷰도 악의적인 게 아니라면 무한으로 받겠다고 이미 대답했다. 물론 악의적인 질문도 장세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불가능할 거고, 그래도 추리고 추려서 가지고 올 게 분명했다. 지영은 대충 그 질문이 어떤 걸지, 예상도 하고 있었다.
“저 때, 소피 그 아이를 구하려고 몸을 움직이기 전에, 어떤 생각을 했어요?”
우정혁의 질문에 지영은 생각을 잠시 정리한 뒤에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어떤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반사적이었던 것 같아요. 어, 구해야지! 가 아니라 그냥 정신 차렸을 땐 소피를 낚아채고 있었거든요.”
“아, 그래요?”
“네, 그리고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부아앙! 경적이 한 번 더 울렸을 때 아, 내가 미쳤구나. 나 진짜 정신 나갔구나. 그런 생각을 그때 하긴 했어요.”
“오, 이건 인간적인 대답이네요. 그럼 그 뒤로는요?”
“그 뒤로는 필사적이었어요. 정말 운이 좋게 제가 공간인지? 그런 게 좀 좋거든요. 그래서 처음 끼익! 소리를 들었을 때와 소피를 안았을 때, 그리고 그 옆으로 다른 경트럭이 오는 것까지 봤을 때, 그때 잘하면 피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거 아시죠? 외국인데 하굣길에 애가 뒤에 차 못 보고 건너다가 커다란 트럭이 달려오다가 멈춰 서는 거. 그런 급정지 프로그램이 삼각별이 떡하니 박힌 트럭이라면 당연히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 그거 압니다. 천운도 천운이지만 인간의 과학이 한 아이를 살렸던 영상 아닙니까.”
우정혁이 안다고 하며 받아주자, 지영은 맞아요,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거기에 희망을 걸었어요. 멈춰주기만 하면, 어떻게든 내가 살 수 있겠다. 이렇게요.”
“그럼 몸을 접어서 발로 차는 것까지 전부 생각한 건가요?”
우정혁의 질문에 지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와아…… 하고 감탄성이 장내를 휘감았다. 지영은 그 반응에 조금 쑥스럽게 웃었다.
우정혁은 지금까지의 진행과는 다르게 호들갑을 떨면서 펄쩍펄쩍 뛰었다. 분위기에 따라서 자신을 익살스럽게 꾸미는 것 같았다.
“진짜요? 아니, 진짜? 그게 돼? 그 짧은 순간에 그걸 계산했다고? 지영 씨 인간 아니죠? 어디 봐요. 몸 안에 이거 붉은 피 대신 검은 피가 줄줄 흐르는 거 아냐?”
그 호들갑을 지영은 그냥 웃음으로 받았다.
“와, 대단하네요. 아니, 운동선수들은 그런 게 되나요? 세리 씨. 그게 돼요?”
“될 리가 있겠어요? 다 지영이니까 된 거지.”
“그렇죠? 그게 다 되는 거 아니죠?”
“그럼요. 어쩌다 보게 됐는데, 해외에서 지영이 그 장면을 아예 연구한 사례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확률이 극악이라고 나왔어요.”
“그렇죠. 그게 쉽게 되는 게 아니죠. 솔직히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장면이거든요.”
“맞아요. 맞는데, 후우. 어휴.”
“하하, 세리 씨도 그거 보고 힘들었나 보네요?”
“그럼요! 내가 정말! 쟤 때문에! 아휴!”
장세리가 가슴을 치며 답답함을 표출했다.
사실 장세리에겐 진짜 크게 혼났다. 장세리는 진짜 눈을 부릅뜨고 와서는 정신이 있는 거냐며 호통을 쳤다. 그 모습에 찔끔한 지영은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납작 엎드렸다. 자신이 미친 짓을 했다는 자각은 있었기에, 처음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던 지영이었다.
그건 솔직히, 욕을 백번 먹어도 될 만한 일이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하기엔 말에 어폐가 좀 크게 있습니다만, 당장은 이말밖에 안 떠오르네요. 하하. 그래도 지영 씨가 구한 소피 양의 스토리도 스토리고, 정말 큰일 하셨습니다. 덕분에 곤란한 일도 많이 해결되신 것 같고요.”
씩 웃으며 우정혁이 한 말에 지영은 그도 오늘 있었던 일을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이성진이 대놓고 방송을 태워 버려 오늘 인터넷은 문체부와 차무형으로 화르르 불타는 중이었다. 그렇게 불을 질러놓고 태평하게 황금세대는 여기서 촬영 중이었고.
소피를 구한 건으로 독일에서 훈장도 주고, 그 덕분에 미묘하게 별로가 되려던 상황이 역전됐다.
‘생각이 있으면 이제 안 건드리겠지.’
지영은 불구덩이다.
건드리려면, 자신도 그 불구덩이에 몸을 날려야 함을 아마 이번 일로 아주 ‘많은’ 이들이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소피를 구한 행동에 보답받은 기분이었다.
“그럼 이제, 다음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자, 소피 양을 구한 것도 구한 거지만, 역시 포드 전속 모델 건을 얘기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모델료 전부를 기부한 것도! 이야, 솔직히 전 이것도 정말 놀랐거든요?”
“아 맞아. 와, 나 진짜…… 깜짝 놀랐잖아. 얼마였지?”
1년 750만 달러요!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 와아……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무려, 1년 750만 달러다.
총 3년 계약이니까, 무려 2,250만 달러다.
“한화로 하면 지금, 얼마에요? 아? 허! 290억. 어후. 엄청나네요. 모델료도 모델료인데, 지영 씨가 이걸 전부 기부하겠다고 한 게 정말, 저는 너무 놀랐어요. 아니, 욕심이 안 났어요?”
“음, 우정혁 님도 기부 많이 하시잖아요.”
“아니, 그래도 이건 다르죠. 저와는 체급이. 하하.”
말은 그렇게 하며 손사래를 치지만 우정혁도 만만치 않게 많은 돈을 기부한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최고가 된 이유 중의 하나가 그의 선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걸 일절 티를 내지 않았다. 지금도 겸손하게,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지영을 치켜세웠다.
“그럼 들어볼게요. 어떤 마음이었어요?”
“그때 저희 좀 힘들었던 사건이 있던 건 아시죠?”
“네. 우리 성진이……가 큰 사고를 당한 일이 있었죠.”
사실 우정혁도 다 알고 있다.
제작진도, 그리고 게스트들도 다 아는 얘기였다. 워낙에 유명했던 사건이니까 아마 두메산골에 사시는 분이 아니라면. 아니, 거기 사는 분들도 아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아는 얘기라고 중간을 잘라 버리면 대화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그러니 이런 얘기는 처음부터 딱딱 짚어주며 갈 필요가 있었다.
“네, 그때 성진이 코 나가고 나서 수술할 때는 진짜 막막했어요. 화는 진짜 미친 듯이 솟아나는데, 이걸 풀 방법이 없었거든요. 뭘 해도 우리가 불리한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그러던 차에 나탈리 포드 씨가 저희를 찾아주셨어요. 상황을 반전시킬 기막힌 선물을 들고요.”
“아아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그 선물을 보니까, 이건 보답을 안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비록 당시 저희가 정한 신념이 꺾이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걸 받아먹고 입 닦는 건 더 말도 안 되는 짓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때도 말했듯이 우리가 세운 신념이 그런 더럽고 추악한 협잡에 쓰러지는 건 용납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기부.”
지영이 말을 살짝 끌어주자, 눈치가 귀신인 우정혁이 딱 끊어 임팩트를 주며 기부라는 단어를 뱉어줬다.
“네, 기부. 신념은 비록 스러졌지만, 호락호락하게 절대 당하지 않겠다. 하는 의도가 다분한 기부였어요. 사실은. 순수한 마음은 아니었던 기부라서, 솔직히 좀 부끄럽기도 해요.”
“아니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지영의 말에 우정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기부라는 건 반드시 순수한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건 아니에요. 한순간의 기분 내기라고 해도, 어려운 누군가는 반드시 도움을 받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지영 씨의 그 순수하지 않은 기부로 미국의 어려운 어린아이들이 수없이 지원받았을 겁니다. 그러니 자랑스러워하세요. 저는 지영 씨가 대한민국 국민인 게 너무 좋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엔 두유 노 강지영? 이라며 무거웠던 분위기를 순간적으로 훅 풀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바로 풀어졌던 분위기를 다시 능숙하게 잡아채 끌고 토크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물론, 이 정도 토크로 지영을 놔줄 방송국 놈들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