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97화
397화. 천상계(12)
우정혁의 등장.
우느님의 등장은 진짜, 대단했다.
“와…….”
지영은 장세리와 나란히 서서 걸어오는 우정혁을 보며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지영은 우정혁을 처음 본 게 아니다. 하지만 밖에서, 카메라가 쫓아다니는 우정혁은 그냥 사석에서 봤을 때와는 그냥 정말 달랐다.
복장은 평범한 캐주얼이었다.
스키니한 청바지에 후드, 노란색 후드 티, 그리고 검은색 모자. 거리로 나가면 무수히 많이 볼 수 있는 평범한 패션이었다. 거기에 나이키 운동화. 정말 특별할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지영은 우정혁의 뒤로 후광이 비취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지영만 그런 게 아닌지, 평소 이런 쪽으로는 담담한 강한결도 이야…… 하고 나직이 감탄을 흘렸다.
그만큼 사석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 선 우정혁은 역시 질적으로 달랐다. 가까이 온 우정혁은 모자를 벗고 주변에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우정혁입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중하나, 비굴하지는 않은.
부드럽게 각도가 잡힌 인사였다. 먼저 촬영팀에게 인사를 하고, 그리고 MC와 게스트들에게도 인사를 하러 다가왔다.
“어, 효선이. 축하해요, 정말! 하하!”
수많은 프로에서 게스트를 만나왔던 만큼 아는 사람도 많아서 편하게 인사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는 또 정중하게 인사를 나눴다. 그러다 가장 안쪽에 있던 지영의 앞까지 온 우정혁. 사석에서 보긴 했지만, 대화를 그렇게 많이 나눈 적은 없어서 사실 친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사이였다.
어느 정도냐면.
‘서로 연락처도 없는 사이지.’
딱 그 정도의 사이였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어색한 건 아니라서.
“아 지영 씨. 하하, 반가워요. 반가워.”
“안녕하세요.”
웃으며 인사를 나눌 정도는 됐다.
지영과도 인사한 우정혁이 한 걸음 물러나더니 나란히 선 황금세대를.
“크… 이 그림을 더 런닝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아숩다. 참 아수워. 하하.”
우정혁의 구수한 너스레에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는 그냥 웃었다. 그러자 우정혁도 그냥 웃었다. 그런데 좀 미안한 웃음이었다.
“미안해요, 미안해. 여러분에겐 꼭 내가 이렇게 사과하고 싶었어요.”
우정혁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모자를 벗고는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사과까지 했다. 그러자 놀란 건 황금세대였다. 일이 틀어진 거야 어차피 전부 아는 얘기다. 그래서 더 런닝도 캐스팅 불발 때문에 욕을 꽤 먹었다.
그리고 그런 더 런닝의 수장은, 사실상 우정혁이었다.
더 런닝의 메인 PD도 사실 우정혁에 비하면 영향력이 클 수는 없었다. 스타 PD들의 선봉장들이 아니라면, 그 어떤 PD도 우정혁의 위명을 넘어서긴 힘들었다. 그런 우정혁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공개적인 사과다.
놀라움을 넘어, 이건 솔직히 좀 무서웠다.
‘와…….’
사람이, 이럴 수가 있구나.
사과에, 진심이 저렇게 듬뿍 담길 수도 있구나.
그런데도 비굴하지 않고, 우정혁이니까,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구나.
이런 생각이 연이어 들었다.
‘차무형 같은 인간이 있는가 하면, 우정혁 같은 사람도 있구나.’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이 사람에서 피어나는 아우라가 왜 존재하는지, 왜 이 사람을 신과 동급인 우느님이라 하는지도 너무 절실히 이해됐다.
그냥, 어떤 힘의 작용해 스타가 된 자신과는 다르게, 이 사람은 그냥 스타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풀렸다.
“그렇게 미안함도 있는데 저기 장미 PD가 하루 MC 섭외를 부탁해서, 내가 흔쾌히 한다고 했어요. 괜찮죠?”
네!
그럼 괜찮고말고.
우정혁은 웃으며 다시 모자를 벗고는 고개를 숙이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다. 인사가 습관이 된 사람이었다. 정중해서, 반사적으로 자신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도 방송 준비 좀 하겠습니다. 하하. 다행히 다들 복장 보니까 옷이 필요할 것 같진 않네요. 그럼,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우정혁은 한쪽으로 물러나 의자에 앉아 제작팀 소속 메이크업 담당에게 가벼운 메이크업을 받았고, 그러면서 큐 시트와 대본집을 확인했다. 그땐 또 느낌이 달랐다. 살짝 매섭단 느낌이 나는 눈빛으로 대본을 훑는 그에게서는 당연히 프로의 느낌이 났다.
“됐다. 이제 한시름 놓겠어.”
“언니, 맞아요. 안 그래도 좀 벅찼는데, 어후. 이래서 떼로 나오면 힘들 다니까? 피구 대회 시즌만 오면 정말 걱정부터 앞서고.”
장세리의 말을 한유진이 받았다.
고정으로 활동하는 선배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투정을 부렸다. MC는 누구 한 명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일단 MC는 공평하게 게스트를 챙긴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놓은 결과물을 연출이 편집으로 하나의 최종본을 만들어낸다.
서로 역할이 다르다는 뜻이다.
우정혁은 MC로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유명하건 안 유명하건, 일단 자신이 게스트로 만났으면 한명 한명 최선을 다해 대우해 준다. 그래서 연예인들에게도 그렇게 인기가 많은 게, 우정혁이었다.
“게임은 많이 뺐네요? 아니, 아예 없네? 이렇게 인원이 많은데 게임 그림이 없는 건 이유가 있어요?”
우정혁의 물음에 메인 작가가 얼른 대답했다.
“배구팀 같은 경우는 귀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요. 올림픽에서 힘겹게 경쟁하다 왔으니, 여기서도 또 경쟁을 시키는 건 그림이 좀 그래서 뺐습니다.”
지영이 알기로는 노는 언니들의 메인 작가의 짬도 이 바닥 20년 차라고 들었다. 그런데 그녀도 우정혁에게는 깍듯했다.
“그러네요. 어후, 신경 잘 썼네. 맞아요. 머리를 쓰는 게임이건, 육체를 쓰는 게임이건 게임은 경쟁이고, 경쟁은 결국 피곤해지지. 잘 선택했네.”
우정혁의 칭찬에 메인 작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의 칭찬 하나에 저 대찬 메인 작가가, 저리 좋아하다니. 대단한 우정혁이 새삼 더 대단해 보였다.
“역시 우느님이네. 애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 정신을 못 차려.”
작가나 연출에겐 가히 신적인 존재.
“지영아. 이제 왜 모든 PD와 작가가 메인으로 우정혁을 두고 기획을 한 번씩은 해봤다는 게 이해가 가지?”
“……응. 확 이해 간다.”
예전에 했었던 얘기다.
우정혁을 잡기 위해 기획을 안 내본 PD가 없다는 말에 지영이 설마, 하며 반박 아닌 반박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오히려 부족해 보였다. 우정혁 정도면 삼고초려를 밥 먹듯이 받아봤을 것 같았다.
“참, 더 런닝. 어떻게 하기로 했어?”
임효중의 질문에 이성진이 작게 소곤거렸다.
“계속하기로. 사실 선배님도 나 설득하려고 잠깐 들른 거래.”
“아 진짜?”
“응. 여기서 안 만났어도 서울 가서 연락했을 거라고 하더라. 우정혁 선배님이 같이 가자. 끝날 때까지. 이러는데 거절 못 하겠더라고. 다른 프로그램 하나 같이 들어가는 것도 선배님이 끌어준 거기도 하고.”
“아 하긴. 그래, 잘됐다. 너 솔직히 아쉬워했잖아. 더 런닝 하차.”
“응…… 조금? 헤헤.”
헤헤, 바보처럼 웃는 이성진을 보며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은 다 같이 그냥 피식 웃었다. 잘 됐다. 지영도 내심 이성진이 더 런닝을 더해주길 바랐다. 더 런닝은 현존하는 대한민국 예능 중 2박 3일과 함께 가장 장수한 프로그램이었다. 무모한 도전과 같은 시기에 태동한 2박 3일보다는 몇 년 늦어도, 그래도 충분히 오래된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존속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니 함께 하는 것에도 당연히 의미가 있었다.
지영은 이성진이 더 런닝을 끝까지 해줬으면 했다. 그가 좋아하니까.
‘너는 누릴 자격이 충분해.’
아픈 손가락을 뽑으라면 단연 이성진이기에, 지영은 이성진이 언제나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그런 애틋한 지영의 눈빛을 어쩌다 본 이성진은,
“뭐지. 이 느끼한 눈빛은?”
“그냥, 우리 성진이 저 대단한 분에게 인정받는 게 대단해서?”
“……왜 그래. 나 뭐 잘못했는데, 또.”
응?
지영의 말에 오히려 이성진은 기가 질렸다. 그러면서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강한결이나 임효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이런…… 어이가 없었지만, 지영은 예전에도 자신이 장난치면 친구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걸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야, 난 이런 얘기도 하면 안 되냐?”
“어, 넌 안 돼. 제발 지영아. 넌 언제나 진지해 주라. 응? 안 그러면 심장에 너무 나쁘단 말이야.”
“……석아. 너마저 그러면 나 진짜 섭섭한데.”
심지어 이 말은 황석이 했다.
지영은 그냥 포기했다.
“음, 지영아. 너는 지금처럼이 좋아. 변하지 말자. 알았지?”
강한결의 그 말은 결정타였다.
그 말을 듣고 난 지영은 그냥 입을 닫았다. 더 말해봐야 놀림만 받을 게 빤해서였다. 잠시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정혁도 준비를 끝냈다. 방송 메이크업을 받은 그는 캐주얼한 복장인데도, 벌써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와 대박, 우정혁 콜라보라니…….”
“장미 PD 대단하네. 대체 뭐로 설득했지?”
“장세리 대표가 한 게 아니라?”
“누가 됐든 간에 알아서 했겠지.”
“대박이긴 대박이다. 결혼식 사회는 봐도, 이런 데 타 프로 게스트로 나가는 모습은 못 봤는데.”
저 정도 거물이니 당연했다.
흔히 S급이라 분류되는 다른 MC들은 간간이 타 프로에 얼굴을 비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우정혁과 강호석이 두 MC만큼은 타 프로 게스트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스태프들도 이 신기한 그림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준비를 끝낸 우정혁이 자연스럽게 카메라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게 신호였다. 주변에서 쉬면서 상태를 점검한 게스트와 노는 언니들의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우정혁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우정혁의 옆에는 장세리가. 장세리의 옆으로 골프팀과 다른 멤버들이 섰다.
우정혁의 반대쪽으로는 이성진이 섰고, 자연스럽게 황금세대와 배구팀이 섰다. 그러자 얼추 중심이 맞았다.
눈치껏,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열을 맞췄다.
“이거 참, 이런 적이 저도 처음이라서 좀 당황스럽네요. 흐흐.”
“어, 진짜요?”
“그럼요. 저도 항상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최선을 다하는 걸 좋아해서요. 라디오는 가끔 나갔는데, 이렇게 게스트로 나와 중간에 선 적은…… 처음이죠. 후후.”
“어머나, 우정혁 씨 처음이면, 우리 엄청난 영광 아닌가?”
장세리의 너스레에 우정혁은 씩 웃었다.
“네, 영광으로 생각하십시오. 자, 일단 제가 하겠다고는 했으니까 하는데…… 보니까 이게요. 솔직히 뭐가 없어요. 오늘 콘셉트 자체가 힐링입니다. 힐링. 그래서 솔직히 제가 없어도 되는 그림이에요. 밤 전까지는.”
우정혁의 말에 다들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힘들게 경쟁하고 또 경쟁한 선수들에게 예능에 나와서까지 또 경쟁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이건 잘 생각했어요. 아주 칭찬해요, 노는 언니들 작가님들. 하하.”
우정혁의 말에 작가들이 스케치북을 들고 자축의 의미로 흔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그냥 산만 돌 수는 또 없는 노릇 아니에요. 계곡도 있고, 바다도 있고. 그러니 저녁 전까지는 그냥 흩어지죠. 다 흩어져서 가고 싶은 데로 가세요. 삼삼오오, 남녀 구분 없이 그냥 막 헤쳐 모여! 그런 다음 가서 놀고, 점심도 알아서 해결하고! 그리고 저녁에 돌아와요.”
어?
사전에 상의가 된 건가?
살짝 대본상 흐름과 달랐다.
“그런데 스태프들도 힘들잖아요? 여러분 따라다니라면? 핸디캠 있는 거 다 나눠줄 테니까 그거 챙겨서 찍어올 수 있을 만큼 시장이든 사람이든, 강이든 산이든 들이든 바다든 다 찍어와요. 여러분들은 자유롭게 노니까 좋고, 스태프들도 쉬니까 좋고. 서로 좋잖아?”
우정혁의 말에 장미 PD가 고개를 음음, 하며 끄덕였다.
“저녁에 모여서 여러분들이 오늘 보고 즐겼던 걸 주제로 토크를 나눌 겁니다. 아, 물론 올림픽 얘기도 할 거고. 후후. 그건 빠지면 안 되는 거니까.”
“질문 있습니다!”
“네, 말하세요.”
“우정혁 님은 여기 남아요?”
“아뇨? 저도 여기저기 돌아다닐 겁니다. 하하!”
“아 진짜요?”
“그럼요. 여기서 재미없는 제작진이랑 남아 뭐해요? 흐흐, 시장도 좀 돌고 그래야죠.”
“아하, 그럼 저도 따라갈래요!”
저도! 저도!
우느님과 같이 가겠다는 인원이 늘어났다. 지영은 우정혁이 말은 그렇게 해도 정말 스태프들이 쉴 수 있는 설계를 짜준 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게스트가 편하게 돌아다니라고 배려 차원에서 해준 선의의 거짓말에 가까웠다.‘
몇 개의 팀으로 흩어져서 움직이면, VJ들은 일단 기본으로 전부 따라붙을 거고, 다른 작가들도 따라붙을 거다. 그러니 말은 그렇게 해도, 결코 스태프는 쉴 수 없었다.
“자! 그럼 해산! 저녁 6시에 여기서 모이는 걸로 하고! 자자! 해산! 얼른 해산!”
훠이훠이!
손을 저어 가라는 시늉을 하자 게스트들이 눈치를 보다가 가고 싶은 곳이 같은 사람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영도 그걸 보며 어디로 갈까 고민하려 했지만.
덥석.
“가자!”
한유진에게 손목을 잡혀서 질질 끌려갔다.
음, 본격적인 촬영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