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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96화 (396/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96화

396화. 천상계(11)

한 번 다운된 분위기는 오전 촬영 내내 올라오지 않았다.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MC를 볼 기존 멤버와 게스트가 제대로 집중을 못 하자 결국 장미 PD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오전은 여기까지 하고, 쉬고 갈게요!”

네!

장미 PD의 선언에 억지로 텐션을 올리던 MC들이 한숨을 내쉬며 다들 자리에 근처 편한 곳에 앉았다.

“에구, 에구에구. 죽겠다, 죽겠어!”

한유진이 가장 먼저 할머니 같은 투정을 부리며 바닥에 철퍽 주저앉았다. 오전은 사실 따로 대본이 없었다. 아침을 먹고, 바로 게임이나 이런 걸 하기에는 선수들이 피곤할 것 같아서 가능하면 편한 분위기에서 이 넓은 공터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방송을 그냥 날리는 건 아쉬우니, MC들이 따로 분위기를 이끌어 이것저것 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방향성은 잡아줬다.

하지만 차무형의 등장과 퇴장으로 분위기가 참 껄끄러워졌다.

차무형은 무려, 문체부에서 나온 공무원이었다. 문체부는 운동선수들과 직접 맞닿아 있는 조직이었다. 물론 이거로 선수들이 받을 불이익이야 없겠지만, 껄끄러운 건 역시 어쩔 수 없었다. 특히 협회 쪽으로 뭔가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이런 사소한 걱정이, 상황을 참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영의 마음도 참 불편해졌다.

“누나, 죄송해요.”

“야, 죄송은 무슨. 이게 네 잘못이야? 그 미친 양반 잘못이지? 됐어. 너 아무 잘못 없어.”

한유진은 그 사과에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지영의 편을 들어줬다. 그리고 한유진의 말을 들은 주변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은 당연히 같은 선수인 지영을 두둔했다. 지영은 정말 잘못한 게 없었다.

주변에 있었기에 문체부 소속 가드들이 지영을 어떻게 대했고, 뒤이어 온 차무형이 지영을 어떻게 대했는지 전부 봤었기 때문이었다. 운동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협회와는 친할 수가 없었다. 특히 몇몇 종목은 협회라면 오히려 치를 떨었다.

그중 대표적인 종목이 몇 개 있는데, 바로 배구와 수영, 빙상 등이었다. 물론 유도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지영의 편이 많았다.

위로를 받으면서도 지영은 참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지영은 자신이 그냥 조용히 훈장을 받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그냥 조용히 따라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그럼 적어도 지금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겠지.’

대신, 지영의 컨디션만 나빠지고 말았을 거다. 대신 기분 또한 별로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영이 그대로 따라갔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해 굴복하는 것과 같았다. 지금까지 지영이 취해온 모든 행보를 부정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걸 생각해서 안 간 게 아니었다.

지영이 가지 않은 건, 너무 예의가 없어서였다. 솔직히 와서 정중하게 시간을 내달라고 했으면, 가서 만났을 것이다. 제대로 된 행동이었다면, 지영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렇게 날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너무 예의가 없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특히 차무형 그 인간은 지영을 확실히 아랫것으로 봤었다. 그게 지영을 너무 자극했다. 최소한 예의를 갖춰서, 아니, 갖추는 척이라도 했으면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줬을 것이다.

그런데 관료주의, 엘리트 의식이 가득 찬 차무형의 행동에 지영은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그래서 솔직히 후폭풍은 생각하지도 않고 거절했다. 지금은 솔직히 말해 조금 후회 중이지만, 지영은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자신은 똑같은 선택을 내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왜, 아까 그런 거 후회돼?”

“어, 음…….”

그런 지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어느새 다가온 장세리의 말에, 지영은 바로 아니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솔직함에 장세리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다독였다.

“괜찮아. 잘했어. 너는 그렇게 꺾이지 않는 게 맞아. 이후 문제는 나 같은 어른이 해결하는 거고.”

“……죄송합니다.”

“죄송은. 소속 연예인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매니지먼트야. 이후 문제는 우리한테 맡겨. 걱정하지 말고.”

“네.”

그래도 장세리가 이렇게 얘기해주니 고맙고, 힘도 났다.

지영의 표정이 좀 풀리자 장세리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지영이 네가 웃으니 분위기가 확 사네. 대신 이제 표정 굳히지 말고. 촬영에 집중하자. 게스트로 나왔으니까, 그래도 본분은 다해야겠지?”

“하하, 네. 그럴게요.”

그래, 장세리 말이 맞았다.

연예인의 활동을 보조하기 위해 있는 게 소속사, 매니지먼트다. 오늘 같은 문제를 외면하는 소속사라면, 함께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소속사의 영리적 이윤을 위해 움직이는 게 연예인이고. 서로 공생하는 관계다.

그래서 지영은 지금 자신이 할 일은 확실히 깨달았다.

“좋아. 눈빛 살아났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감사하기는. 선배로서 당연한 거지, 이것도. 그리고 나도 기분 좋아. 언제나 너무 어른 같던 지영이 너의 이런 면모를 다 보고, 그리고 또 도움이 됐으니. 후후.”

“하하, 제가 너무 애늙은이 같긴 하죠?”

“알긴 아는구나? 어휴, 너랑 한결이는 심하지.”

장세리의 말에 가만히 있던 강한결이 저요? 하고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지영은 그런 강한결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슬그머니 돌아가고 있는 카메라를 발견했다.

‘아 역시…….’

쉴 때도, 카메라는 돈다.

장세리와 지영의 대화가 시작되자, 아니, 한유진이 지영의 옆에 앉는 순간부터 이미 카메라가 슬그머니 따라와 붙어 있던 상태였다. 이런 대화 하나도 편집만 잘하면 써먹을 수 있는 게 예능이라는 걸 지영은 간과했다.

‘역시 시청률에 영혼을 판 인간들…….’

피식.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실소가 나왔지만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방송은 원래 이런 것이라는 것도 이성진에게 들었던 기억도 났다.

그때였다.

“어, 우정혁 선배님이시다.”

쉬는 시간이라 폰을 만지던 이성진의 목소리에 시선이 주르륵 돌아갔다. 파바박! 그리고 그 소리에 작가들과 회의 중이던 장미 PD가 이성진의 앞으로 순식간에 달려왔다. 손으로 얼른 받으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순간 VJ가 카메라를 잽싸게 가져다 댔다.

아주 자연스럽게 주변의 음이 소거됐다. 마치 한마음 한뜻으로, 우느님의 목소리를 영접하겠다는 의지가 공간에 충만하게 퍼졌다.

‘스피커폰, 스피커폰.’

장미 PD의 말에 이성진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곤, 전화를 받았다.

“네, 선배님. 이성진입니다. 네, 강원도예요. 지금 휴식 중이고요. 네, 아, 선배님 그런데 목소리 좀 나오셔도 돼요? 스피커 폰으로 해달라는 분들이 많아서. 헤헤. 아, 감사합니다.”

이성진이 스피커 폰으로 돌리자 음향 담당이 바짝 다가왔다.

-돌렸어?

“네, 선배님. 돌렸어요.”

-아이고, 하하, 반가워요. 우정혁입니다.

우정혁의 맑은 인사.

지영은 신기했다. 우정혁의 목소리를 듣는 게 처음은 아니다. 예전에 친구들과 밥 먹고 있는데 근처에 있다가 오셔서 밥을 사주고 했던 적도 있었다. 우느님. 정말 자기관리의 끝판왕인 우정혁은 일정 부분은 지영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담배도 태우고, 술도 마시고 그랬지만 방송을 오래 하고 싶어서, 문제없이 하고 싶어서 모든 것을 끊고 그걸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는 것도 그렇고.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다짐 자체가 그대로 성격이 된 것도 그렇고. 본받을 점이 정말 많은 연예계 선배였다. 가는 길이 달라 접점은 거의 없지만, 그런 우정혁이 성진이가 방송 촬영 중인 걸 알면서도 이렇게 전화를 주고, 흔쾌히 스피커 폰으로 인사까지 해주는 건 지영으로서도 충분히 신기했다.

-오늘 많은 분이 촬영한다고 하시던데,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원도의 맑은 정기 받으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요.

“어, 선배님. 저희 강원도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어? 나도 이쪽에 일이 있어서 왔는데 촬영팀이 보이더라고. 그래서 잠깐 서서 물어봤더니 노는 언니들 촬영팀이라네? 그래서 너 오늘 여기 있는 거 알아서 전화한 거지.

“어? 그럼 근처에 계세요?”

-허허, 그래. 가든 거기 있지? 거기서 점심 먹으려고 잠깐 섰어.

“아…….”

반짝.

반짝반짝!

장미 PD의 눈빛이 미친 듯이 빛나기 시작했다. 진짜 부담스러울 정도로, 저러다가 눈이 부셔서 실명하는 사람이 나오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짜 초롱초롱 빛났다.

그리고 지영은 이해했다.

강지영과 황금세대도 대박이긴 대박인 게스트지만, 우정혁은 초대형 대박이다. 그는 메인 MC다. 모든 프로그램에서 메인을 맡기에 게스트는 나가지 않는다. 잠깐 짧게, 찬조 출연이나 지금처럼 전화로 나가긴 해도 게스트로 나간 적은 없었다.

그의 위치가, 게스트라는 건 솔직히 말도 안 되게 만들었다.

그런 우정혁을, 그런 우느님을 잠시나마 담을 수 있다면?

반짝, 그저 스쳐가다 우연히 마주친 게 아니라 정식 게스트로 짧게나마 모실 수 있다면? 이건 이것대로 대박이다.

이성진은 눈치가 빠른 만큼, 장미 PD의 눈빛이 왜 빛나는지 알아차렸다.

“저, 선배님. 제가 지금 찾아뵈어도 될까요?”

-허허, PD님이랑 같이 올 거지?

그리고 역시 우정혁도 눈치가 귀신이었다.

“하하, 넵.”

-그래, 와라. 형도 너한테 할 얘기 있다. 허허, 장미 PD님. 듣고 있죠?

우정혁의 말에 장미 PD가 빛살처럼 고개를 내밀며 대답했다.

“네! 듣고 있습니다!”

-지금 음식 나왔으니까, 30분쯤 걸릴 것 같아요. 급하게 오지 말고 천천히 와요.

“넵! 선생님! 지금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하하. 그럼 기다릴게요. 성진아. 이따가 보자.

“네. 선배님.”

전화가 끊기자, 장미 PD는 주먹을 마구 하늘로 찔러댔다. 우정혁을 연출하는 것은, 모든 예능 PD의 꿈이었다. 게스트로 모시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되니, 그쪽으로는 한국 내에선 강지영이란 카드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메인 MC로 뽑고 싶은 건, 모든 PD의 0순위가 바로 우정혁이었다.

하지만 장미 PD는 포기했다.

노는 언니들의 채널은 종편 중에서도 메이저는 아니었다. 그래서 솔직히 우정혁과의 합작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한시적으로나마 우정혁을 보게 된다? 혹시 모를 기회를 얻을 찬스가 왔다?

찬스가 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장미 PD는 날아갈 것 같았다.

“장미 PD? 진정하고, 가서 가능하면 모셔와. 모셔와서, 오늘 MC 좀 부탁해 봐.”

“네?”

장미 PD의 반문에 장세리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오늘 선수도 많은 데다가, 분위기도 좀 안 좋았잖아. 내가 전문 MC도 아니고 해서, 이걸 수습하기도 솔직히 벅차. 그런 차에 이런 기회가 온 거잖아? 그러니 가능한 딜 해 봐야지. 가능하면 성진이 더 런닝 건으로 협상해도 좋고.”

더 런닝 협상.

‘와, 그건 생각도 못 했는데.’

더 런닝이란 말이 나오자 지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잘하면 가능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성진이 생각은 어때. 아, 이번 한정인데 그거랑 더 런닝이랑 딜하는 건 좀 조건이 안 맞나?”

장세리의 말에 이성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성진은 더 런닝 하차 논의 중이었다. 아직 언론에 나간 건 아니지만, 하차 시기를 조율 중인 건 맞았다. 예능 배우의 하차도, 상황을 잘 봐야 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 만약 하차하겠다는 기사가 나가면, 가뜩이나 화난 네티즌은 더 런닝에도 가차 없이 폭격을 가할 것이다. 그래서 이성진의 하차 결정은 더 런닝에서도 제작진 수뇌부와 황금세대, 장세리, 임은진과 왕 실장님 정도만 알고 있었다.

‘여기서 더 런닝 건으로 협상이라고 해도 설마 그게 하차로 예상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오히려 엎어졌던 더 런닝 출연 건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고.’

그러니 더 런닝을 언급한 것도 크게 문제는 아니었다.

“아니다. 나도 같이 가자. 가서, 대어를 낚아보자!”

“넵! 가요!”

장미 PD와 장세리가 보무도 당당하게 가든으로 다시 향했고, 이성진이 갔다 올게 하면서 손을 흔들며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휴식 시간이 덕분에 좀 더 길어졌다.

그렇게 세 사람이 떠나고 40분 뒤, 캐주얼 차림에 모자를 쓴 우정혁이 세 사람과 함께 돌아왔다.

노는 언니들에 우느님이, 강림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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