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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95화 (39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95화

395화. 천상계(10)

차무형은 이게 뭔가 싶었다.

“어디서 나왔다고요?”

“미 대사관에서 나왔습니다.”

미 대사관?

아니, 거기서 왜?

이 말이 의심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잠시 들긴 했으나, 차무형은 그러지 못했다.

“미 대사관 소속 빅터와 에론, 라쉬입니다.”

“확실해?”

“……예전에 합동훈련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번 주에 미 대사 주최 행사에서 마주친 적도 있습니다. 흑인이 빅터인데, 그때 그가 중대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쯔.”

그렇다면 확실한 얘기다.

차무형은 갑자기 기분이 확 불쾌해졌다. 이자들이 등장하기 전에도 웬 조그마한 여자가 앞을 막아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지금은 기분이 더 별로였다. 하지만 그걸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미 대사관에서 나왔다.

그렇다는 건 곧, 이들이 나섰다는 것 자체가 미 대사 제임스 폭시의 의견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차무형은 떠오르는 실세였다. 승승장구. 외할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서 40대 중반에 벌써 문체부 실세까지 왔다. 그가 공직계에 발을 들인 게 1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승진 속도였다.

그런데도 슬슬 차관 얘기가 나올 정도로, 차무형의 승진은 가히 눈부셨다.

하지만 그런 차무형도 감히 미 대사관의 행사를 막아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기분이 너무 상했다. 지금 기다리는 사람은 1차관 심일형이다. 심일형 집안 또한 무시하기 힘들고, 현 여당에서도 상당한 발언권을 가진 장관 라인이기에, 그의 심기를 상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걸 생각하더라도 여기 미국 친구들은 확실히 버거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정당한’ 행사를 오히려 이들이 막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구겨지려던 자존심이 다시 펴졌다.

“그래서 미 대사관에서 왜 대한민국 정부 일을 막아서는 겁니까?”

차무형의 말에 씩 웃은 흑인이 대답했다.

“미스터 강은 대통령 자유 훈장 수여 예정자입니다. 그러니 각별하게 신경 쓰라는 대사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칩시다. 그래도 대한민국 땅에서 대한민국 정부 인사의 행보를 막는 거 이거, 외교 문제입니다? 빅터. 그렇게 되어도 괜찮습니까?”

“오우, 노우. 미스터 차. 그렇게 생각한다면 대사관으로 정식 항의를 하세요.”

“……뭐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다만 정말 외교 문제라 번질지는 두고 봐야겠군요. 우리 또한 우리의 정당한 행사를 하는 중이라. 미스터 강은, 우리 미국인에게 아주 특별하거든요. 그러니 우리에겐 ‘의무’가 있습니다.”

그를 지킬.

나직하게 뒤이어 나온 빅터의 말에 차무형은 입을 쩍 벌렸다. 미국인에게 특별하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그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말은, 다르게 들어야 했다. 차무형의 머릿속에 혹시?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그러곤 고개를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돌려 빅터의 옆으로 비죽 나와 상황을 지켜보는 중인 지영을 바라봤다.

“혹시 강지영 씨 당신, 귀화 신청했습니까?”

차무형의 말에 지영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웃음은 너무나 명백한 조소였다.

“웃어?”

딴따라 따위가 감히, 웃어?

차무형의 눈에 불이 확 치솟았다. 다른 건 몰라도 새파랗게 어린놈이 무시하는 게, 인기 좀 얻었다고 감히 정부가 부르는데도 거절하는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하는 저 어린놈이 괘씸했다. 눈에 불이 켜지자, 빅터가 대번에 개입했다.

“미스터 차. 우리 VIP에게 그런 살벌한 눈빛 보내지 말아요. 우리는 VIP를 지키는 가드입니다. 내가 오해하는 일이 없게 해줘요.”

툭툭 터는 솥뚜껑만 한 손바닥을 보니, 절로 분노가 가라앉는 걸 느낀 차무형은 다시 자존심이 팍 상했다. 빠득, 이를 간 차무형은 빅터에게 확인차 물었다.

“……저 친구가 귀국으로 귀화 신청을 했습니까?”

“글쎄요. 그런 일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제임스 대사가 가서 무슨 일이 생기면 지켜주라고 한 미스터 강을, 지킬 뿐입니다. 그뿐입니다.”

“…….”

차무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몸을 돌려 뒤를 막고 있는 또 다른 서양인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당신들은 또 어디서 왔습니까?”

차무형의 짜증스러운 물음에 이번에도 같이 나온 가드가 대답했다.

“독일 대사관에서 온 것 같습니다. 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독일…… 하. 미치겠네. 아니, 저 새끼가 뭐라고 대사관에서 사람을 보내?”

“…….”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오늘 오전 스케줄은 간단했다. 저 어린놈을 데려가 심일형과 만나게 한다. 심일형은 놈에게 훈장을 건네고, 그걸 사진으로 찍는다. 그리고 기사로 내보낸다. 그래서 열 받은 국민을 일단 좀 달랜다. 이게 오늘 오전 스케줄이었다. 그래서 배구협회를 통해 촬영지를 알아냈고. 1차관과 함께 넘어왔다.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문제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 했다.

감히 나라에서 부르는 자리를 거절한 강지영이 괘씸해 훈장을 취소했고, 적어도 현 여당의 정권을 잡은 세상에서는 절대 저 친구가 설치지 못하게 좀 겁 좀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다 깨진 게, 갑자기 갑자기 터진 3국의 훈장 수여 건이었다.

한국에서는 훈장을 취소했는데, 3국에서는 외부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훈장을 수여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문체부 입장에선 아예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았다. 콰과광! 실제로 벼락이 떨어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장관이 1, 2차관을 대차게 깠고, 그 아래로 줄줄이 깨졌다.

그래서 급히 위치를 알아내 강제로라도 훈장을 떠맡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진 찍기, 기사 내기. 그렇게 일단 급한 불이라도 일단 끌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소방 작업이 솔직히 막힐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기가 빼도, 실제로 정부가 개입하면 찍소리도 못 내고 찌그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그게 ‘정부’가 가진 힘이었다.

그런데 난관에 부딪혔다.

등에 업은 정부의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하는데, 어린놈부터 시작해 그 누구도 꿀리는 기색이 없었다. 매니저가 눈을 부라리고 있었고, 그 여자의 주변으로는 미 대사관, 독일 대사관에서 나온 범상치 않은 가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실장님.”

“후우…… 가서 상황 설명하고, 훈장 가져와.”

“네.”

이렇게 된 이상, 억지로라도 쥐여줄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 물러나는 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런 자리로 심일형을 부른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그 인간을 이런 자리에 세우는 건, 그건 그것대로 또 더 말도 안 된다. 그러니 자신이 직접 주고, 근처에 있는 직원이 사진을 찍으면 그걸로 임무는 끝이다. 그렇게라도 상황을 바꿀 생각이었다.

직원이 빠르게 가져온 훈장.

“후우, 강지영 씨. 앞으로 나와요. 나와서 훈장 받아요.”

마음을 다스리며 최대한 차분히 한 말에, 지영은 또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등을 돌렸다.

그런 차무형은 눈만 끔뻑였다.

이게 지금…… 뭐지?

“왜 이 나라는 진짜…… 실망만 주지.”

그리고 그때 들려온 강지영의 목소리. 끝으로 쯔! 하고 혀를 차기까지. 그 뜻을 이해한 차무형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 * *

지영은 이런 마이페이스의 인간을 만나 본 적이 있었다.

가깝게는 신지가 그랬다. 그만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인간. 하지만 신지는 그래도 이 정도로 미치진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이 차무형이란 인간은 진짜, 반쯤 미친 인간 같았다.

특히.

“혹시 강지영 씨 당신, 귀화 신청했습니까?”

이렇게 물어왔을 땐, 이 인간은 답이 안 나오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질문을 한 직후 표정의 변화가 마치 벌레를 보는 것처럼 혐오감이 일순간 확 깃들었던 걸 지영은 놓치지 않았다.

거의 금방 풀리긴 했지만, 지영은 눈치가 비상식적으로 좋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걸 보는 순간, 이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깨달았다.

‘아랫것, 종으로 생각하는 거야. 와…… 아직 이런 사람이 있어?’

이 귀찮은 일.

빨리 끝내고 뜨고 싶단 느낌도 났다. 그러더니 한 직원이 가서 훈장을 가져왔고.

“후우, 강지영 씨. 앞으로 나와요. 나와서 훈장 받아요.”

이딴 명령조 말이 나오는 순간, 지영은 어떻게 할지 결정했다. 이렇게까지 사람을 사람 이하로 취급한 저 인간에겐, 벌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영은 알고 있었다. 이성진이 방송을 틀었다는 것을. 교묘하게 지영의 뒤에서 은근히 카메라를 켜놓았다. 그리고 작게 지영에게 속삭여 이미 알려준 상태였다. 지금 이 상황, 저 인간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이미 라이브로 전부 송출되는 중이었다. 지영은 그걸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젓고는, 대놓고.

“왜 이 나라는 진짜…… 실망만 주지.”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는 발언을 작심하고 흘렸다. 이걸 지켜보고 있는 팬들은 이미 상황을 충분히 파악했을 것이다. 한국 사람은 정말 똑똑하다. 그냥 단서 몇 개만 있으면 금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능력자들이 아주 다수였다.

-뭐야. 뭔 상황인데?

-오늘 지영이 촬영 날 아니었나? 그런데 훈장 받으라고?

-아, 뭐야. 설마 촬영지까지 쫓아가서 훈장 주는 거야?

-주는 게 아니라, 억지로 떠안기는 것 같은데? 지금? 욕 처먹으니까 떠넘기듯이 주고 우린 훈장 줬다. 이지랄하려는 거 아님?

-ㅇㅇ 그거 맞는 듯. 와…… 미친 진짜 ㅋㅋㅋ

-뒤에 저 외국인은 뭐임 근데?

-독일 대사관 가드예요. 저 행사 때문에 몇 번 본적있음요.

-뒷모습만 나오는 흑인은 미국 대사관이고?

-네. 그런 듯.

-골 때리네요 ㅋㅋㅋ 이거 뭔 코미디야? 미국이랑 독일 대사관에서 나온 직원이 오히려 지영이 지켜주고 ㅋㅋㅋ

-왜 거꾸로 흘러가냐…… 어? 미친 진짜 ㅋㅋ

-지영이 마지막 말 들음? 실망만 준데 ㅠㅠ

-맞죠…… 만찬 안 갔다고 훈장 취소까지 당했잖아요 ㅠㅠ

-그러니까, 와 그거 면피하려고 훈장 억지로 안겨주려고 한 거네요?

-나 저사람 암. 차무형임. 문체부 기조실장.

-유명한 사람임?

-외가 쪽이 유명한 여당 인사임.

-헐 진짜임?

-ㅇㅇ 여당에서 키우는 인재임

-미친 ㅅㅂ……

-와 강지영 인생 진짜 드라마틱하다…… ㄷㄷ;

-근데 훈장 받으면 원래 저렇게 가드가 와서 지켜줌?

-설마요 ㅋㅋ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거임 분명 ㅋ

-근데 성진이 이거 라이브 켠 거 문제 안 될까요?

-문제 될지도요. 그런데 상대가 공직자고 워낙에 미친 짓거리를 하는 중이라, 비난은 그래도 피할 듯요

-법적인 문제는 질 수도 있는데…… 뭐 벌금형으로 끝나겠죠;

-와, 성진이도 센스 굿이네 진짜ㅋㅋ

-이제 어떡하냐 저 인간? 내가 보기엔 이걸로 공직이든, 정치적으로든 이미 끝장났을 것 같은데 ㅋㅋ

-하필이면 건드려도 강지영을…… ㄷㄷ

-솔직히 이번에 만찬 불참으로 지영이 훈장 취소했을 때, 주류언론도 지영이 거의 안 건드렸음.

-와 근데, 진짜 천상계의 위엄이 저런 거구나 싶네요 ㄷㄷ

-말로만 듣던 천룡인 보는 듯…… ㅎㄷㄷ

채팅창이 미친 듯이 폭발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없는 게 아니었다. 특히 1, 2교시가 빈 대학생들이 아주 많이 들어와 있었다. 순식간에 10만이 넘게 봤다. 그리고 반드시 이 영상을 실시간으로 녹화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영상은 이제 오늘 내로 커뮤니티를 포함해 이곳저곳 퍼질 것이고, 사태는 들불처럼 번져 나갈 것이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이성진이 순간적으로 켠 라이브는, 그 정도의 파급을 만들어낼 것이다.

지영은 그대로 차로 향했다. 그런 지영을 호위하듯이 독일의 가드가 따라붙었다. 물론 임은진이 고용한 가드가 1차로 지영을 감쌌다.

그렇게 현장을 벗어난 지영은, 일단 차로 향했다.

차에 오르자 긴장감이 좀 풀렸다. 그러나 그만큼 짜증, 분노도 올라왔다. 훈장 그거, 그냥 받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럴 수 있다. 최소한 정상적인 방식으로 주려고 했다면 말이다. 그럼 지영도 받기 싫어도 그냥 받았을 것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회사로 택배로 보내든가…….”

그게 더 기분이 나았을 것이다. 직접 대면하는 것도 아니니 거절하지도 못하는 거고, 그래도 훈장이니 최소한 버리지도 못했을 거다. 그런데 저들은 ‘사진’이 필요했다.

지영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사진이.

그래야 여론을 잠재울 수 있으니까.

지영은 그런 식으로 이용당하는 게 정말 끔찍하게 싫었다. 게다가 강압적인 언사와 상대를 무시하는 말투, 눈빛을 보는 순간 오만 정이 그 순간 싹 떨어져 버렸다.

가뜩이나 자신을 싫어하는 부류들이 있는데, 이렇게 건수를 만들어준 것 같아 기분이 별로였다. 하지만 지영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여기서 흔들리면, 오늘 촬영은 진짜 개판이 된다. 그러니 마인드 컨트롤로 지금 이 기분을 얼른 날려버리고, 다시 정상 컨디션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차무형은 이를 갈며 돌아갔고, 장내는 그가 떠남과 다시 수습됐다. 장내가 수습됐으니 촬영도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촬영이 재개될 때쯤에는.

미 대사관과 독일 대사관 직원의 비호를 받는 지영에게, 누군가가 천상계 너머 은하계로 가는 게 아니냐는 말을 했고, 그 단어는 하나의 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천상계를 넘어선.

은하계 종족.

강지영.

헛웃음이 나오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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