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94화
394화. 천상계(9)
오전 촬영지는 아침을 먹은 가든 사장님의 자택이었다. 근처에 그림 같은 집이 있어서 수소문했더니 가든 사장님이셨고, 아침 예약을 잡으며 부탁했더니 다행히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넓은 마당이 딸린 그림 같은 집을 촬영지로 잡았다. 그런 촬영지엔 출연자들이 아침을 먹는 동안 역시 촬영 준비로 분주했다.
시끌벅적.
아침을 먹고 이쪽으로 출연자들이 이동했을 때는 더욱 북적거렸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이 상황이 촬영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그냥 대놓고 들어와서, 이따위로 말한다?
“누구시냐고 물었는데요.”
그러니 고운 말이 나갈 리가 없었다.
지영의 차갑게 가라앉은 말에, 사내 중 하나가 일순 짜증을 느끼는 것처럼 인상을 찡그렸다가 펴더니,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냥, 잠깐 가면 됩니다. 저쪽으로 가서 잠깐 사람 좀 만나면 됩니다.”
그러면서 지영의 손을 잡는 순간. 탁!
강한결이 개입하며 손을 잡아 뜯어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이건 또 뭐야 하는 표정으로 강한결을 사내들이 쏘아 볼 때, 지영의 옆으로 황석과 임효중, 이성진이 와서 섰다. 그러자 사내들은 오히려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금메달리스트인 걸 모를 리가 없는데 저런 표정을 지었다는 건, 우리쯤은 우습게 제압할 수 있단 뜻이겠지.’
실전 스포츠 중에서 탑3 안에 드는 유도 국대를 무시한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능력을 갖춘 직업군은 몇 개 없다.
군인, 이종격투기, 그리고 경호 쪽이다.
적어도 엘리트 스포츠 중에서도 실전에 강한 유도 금메달리스트를 저렇게 귀찮은 것처럼 여길 만한 실력자들은 그쪽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중에서 군대는 빼야 했다. 그쪽은 애초에 지영과 연결점이 없었다. 그리고 이종격투기도 마찬가지다. 그쪽은 군대보다 더 연결점이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정부처 소속 경호원들.
그쪽은 최소한 경력자를 뽑을 거다. 그러니 특수부대? 이런 곳을 전역한 군인들이 분명 많이 들어가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분명…….
‘문체부.’
이번에 직격탄을 맞아서 언론과 네티즌의 집중포화를 맞는 중인 곳이다. 만나야 할 사람 또한 분명 그쪽 높은 사람일 것이다.
“아, 미치겠네. 그냥 잠깐 시간 좀 내주면 됩니다. 보니까 아직 시간 좀 있는 것 같은데.”
“아니요. 그쪽한테 낼 시간 따위는 없는데요?”
그때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개입한 임은진이 누군가의 경호원들을 막아섰다. 마치 장판파를 막아선 장비처럼 위용 넘치게 막아섰다. 그녀가 앞을 막는 걸 보며 주변을 둘러봤더니, 다들 하던 걸 멈추고 폰으로 이쪽으로 찍고 있었다. 동영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라이브 방송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될 걸 예상 못 했나?
‘상관이 누군지 몰라도 참…….’
속으로 혀를 찼지만 그래도 덕분에 일단 증거는 넘치니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지영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후, 문체부에서 나왔습니다. 1차관님이 저쪽 도로에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서 10분만 시간 좀 내주시죠.”
짜증을 숨기며 사내가 한 말에, 임은진은 역시 고개를 저었다.
“1차관이든, 2차관이든, 장관이든, 약속되지 않은 만남을 이쪽에서 받아들일 이유는 없어요.”
“매니저 되십니까?”
그때 다른 정장 사내가 탄탄한 경호원 앞으로 나오며 개입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앞에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내와는 다른 느낌의 사내였다. 나이는 40대 중후반 정도. 딱 봐도 엘리트 관료의 느낌이 났다.
“네.”
“문체부 기조실 차무형입니다.”
“비즈 엔터 1팀 팀장 임은진이에요.”
“일단, 이 친구들 무례를 사과합니다. ”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그러니 다음에 다시, 제대로 절차를 밟아서 시간을 잡도록 하세요.”
역시 임은진.
문체부 기조실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는 사실 지영도 잘 모른다. 하지만 기조실은 아마 기획조정실? 이런 곳일 거고 보통 그런 곳은 어떤 조직이든 거의 최상위 조직이었다. 그러니 예상하건대, 문체부에서도 방귀깨나 뀌는 조직일 가능성이 컸다.
“음, 그건 곤란합니다.”
차무형의 말에 임은진은 씩 웃었다.
“저희도 곤란해요. 어떻게, 경찰 부를까요?”
“경찰이요? 하하. 그러세요.”
“오호, 경찰로는 안 되나 보네? 음, 그럼…… 이쪽은 어떨까요?”
“……네?”
씩 웃은 임은진은 폰을 꺼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지영은 그걸 보며 어제 이곳으로 임은진과 함께 오며 그녀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지영아, 내일 가드가 많이 붙을 거야.’
‘네? 왜요?’
‘나탈리 씨한테 직접 연락 왔거든. 본사 소속 모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 가드를 보내주겠대.’
‘아 진짜요?’
‘응. 너 포드 VVIP야. 계약 해지 때까지 쭉. 지금도 오죽하면 웬만한 계열사 사장보다 더 너를 생각한다는 얘기가 있어.’
‘하하, 그건 기분 좋네요.’
포드사가 그렇게 신경 쓰는 건, 아직도 지영이 모델로 선 신차의 판매량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라인을 상당히 증설했는데도, 아직도 예약을 못 따라가고 있었다. 심지어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이번 건으로 반응이 오면서, 그쪽에서도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포드에서 지영은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신차의 홍보모델이, 포드의 다른 매출 전체를 합친 것만큼 효과를 내주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지도 모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었다.
이래저래 포드는 진짜 노난 것이다.
그러니 포드는 지영을 미국 대통령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미국 훈장 건도, 포드가 상당히 힘 좀 쓴 거 같아. 미리 준비하고 있긴 했는데, 독일에서 먼저 치고 나가니까 힘써서 심사 과정을 빠르게 앞당긴 거지. 그래도 3순위긴 했지만.’
‘아 어쩐지. 나탈리 씨한테 늦어서 미안하다고 연락이 오긴 했는데, 그게 뭔가 했는데 그런 뜻이었겠네요.’
‘그렇지. 그래서 이번 촬영 때 미 대사관에서 움직일 거야. 본사 가드를 아직 파견 못 해서, 그쪽 도움받기로 했대. 이번 촬영 한정으로. 그리고 독일 대사관도 나온다고 했고.’
‘미 대사관…… 네. 알겠어요. 그런데 독일은 왜요?’
‘자국의 훈장을 받을 사람이야. 지금 그 대사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지영이 너란 거지. 그래서 혹시 원치 않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현장에 사람을 보내주겠대. 사전에 그렇게 연락해서 양해를 구하길래, 그러라고 했어. 대신 멀찍이서 있을 거야. 한국은 안전한 나라잖아? 뭔가 이유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그것까진 모르겠네, 잘. 음, 근데 아마 예상해 보자면, 아마 장관 가족이 너 보러 오는 거일 수도 있어. 알아보니까 독일 장관 딸은 SNS에 네 팬이라고 밝혔더라고.’
‘네, 알겠어요.’
‘그래도 절대 불편하게는 안 하겠다고 했으니까,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네.’
이게 차에서 나눴던 대화다.
적어도 지금 지영은 세 나라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왜? 이 촬영이 끝나면 바로 그 나라에서 문화 체육 계열에선 가장 높은 등급의 훈장을 받기로 되어 있어서였다. 그러니 당연히 관리는 VIP 등급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포드는 지영의 안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서 올림픽 기간에도 따로 급하게 3선 가드를 고용했을 정도였다.
임은진이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일단의 무리가 다시 등장했다. 역시 새까만 정장을 입은 무리였다. 하지만 문체부에서 나온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한국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흑인 한 명, 백인 두 명.
총 셋이 임은진에게 바로 다가왔다.
그중 위압감이 어마어마한 흑인이 임은진의 옆으로 오며 말했다.
“미스 임?”
“네, 제가 전화한 임이에요. 나탈리 포드 씨에게 연락받으셨죠?”
“제 보스는 제임스 대사입니다.”
유창한 한국어.
그리고 유창한 한국어에서 나온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제임스 폭시 주한미국대사가 보스라고 밝힌 사내는 고작 임은진이 전화를 끊고 3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현장으로 왔다. 이는 대기하고 있다가 왔다기보다는 문제가 터지자 즉시 근처로 와 있다가, 연락받자 곧장 나온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서, 상황이 골 때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엄마! 지영이 이상한 일에 휘말렸어요!”
“그래, 로사. 그런 것 같구나.”
“어떻게 해요?”
주한독일대사의 딸 로사의 말에 엄마인 마리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딸 로사가 조르고 졸라서 결국 남편의 힘까지 써서 촬영지를 알아냈다. 명분은 훈장 수여자에 관한 보호였지만, 실제로는 딸 로사가 미스터 강의 팬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팬이냐면, 독일에서 지영이 구했던 사람이 소피가 아닌 자신이었어야 했다며 실의에 빠졌을 정도였다. 소피를 구했던 때부터가 아니라, 딸 로사는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K-POP의 팬이었고, 그러다가 지영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케이스였다.
오늘 촬영 소식을 알게 된 로사가 조르고 졸라서, 결국엔 엄마인 마리사와 함께 여기로 왔다.
딸은 강지영이란 저 청년을 직접 만나는 것도 아닌데, 먼발치에서 가끔 보는 것 정도인데도 너무 좋아했다.
그가 작게 웃을 때면 손뼉을 치며 펄쩍펄쩍 뛰었다.
눈이 초롱초롱하면서, 정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딸이 마냥 귀여우면서도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낯선 곳에 오면서 좀 기운을 잃었던 딸이, 오늘 한국에 온 이후 가장 밝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딸이 다시 침울해졌다.
딱 봐도 선의로 찾은 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내들이 나서면서였다. 웅성거리는 현장 분위기. 다행히 차가 좀 높은 지대에 있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참 잘 보인다는 점이었다. 사내들이 갑자기 지영의 팔을 잡았다가, 그걸 다른 청년이 떼어냈을 때는.
“앗! 지영을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해요!”
로사는 너무 놀라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마리사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로빈.”
“네, 부인.”
“가드가 같이 왔죠?”
“물론입니다. 대사 부인. 뒤에 차에 대기 중입니다. 개입할까요?”
“아니요. 일단 지켜보는 거로 하죠. 대신, 근처에서 대기해 주세요. 그리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이쪽으로 알려주세요. 무슨 문제인지. 아,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럼 움직이겠습니다.”
로빈이라 불린 사내가 내려 잠시 무전에 대고 명령을 내리자, 뒤에 세단에서 네 명의 사내가 내려 곧장 현장으로 움직였다. 독일인이라 티가 나도 너무 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 엄마!”
상황이 더 나쁘게 변했다.
마리사는 더 개입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는 상황을 잠시 지켜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창문을 내리고 로빈을 향해 말했다. 지이잉, 하며 내려가는 창문 소리에 로빈은 곧장 차로 다가왔다.
“로빈. 정말 미안해요. 우리가 만약 개입하면,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기나요?”
“대사 부인. 미스터 강은 십자공로훈장을 받게 됩니다. 독일과 전혀 무관한 이가 아니지요. 억지를 부리면 명예 독일인이라고 해도 됩니다.”
“미안해요, 정말. 문제가 생기면 좀 나서줄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까요?”
“크게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되니, 저 상황만 원만히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대사 부인. 아무래도 이곳을 찾은 대사관은 우리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네?”
“다시 아래를 보시죠.”
로빈의 말에 마리사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현장으로 난입해 강지영의 앞을 막는 게 보였다.
로빈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 그 현장을 주시하다가, 툭 내뱉었다.
“아메리칸 친구들이군요.”
“아, 미국이요?”
“네, 안면이 있는 친구가 있어요. 올해 주한미국대사관으로 적을 옮겼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저기 있군요.”
“아…… 그럼 나서지 않아도 되나요, 이제?”
“아니요. 이제는 오히려 적극 나서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네?”
“저 양키 친구들이 본국의 십자공로훈장을 받은 친구에게 먼저 접근했으니까요.”
“아…….”
이른바, 자존심 문제였다.
소피를 지영이 구한 다음 날, 독일 정부에서는 조용히 훈장의 여건이 되는지를 확인했고, 추진했다. 지영이 이전에 받았던 축구선수만큼 큰 족적을 남기진 않았지만, 그가 보여준 희생정신은 가히 온 세상에 귀감이 되기 충분했기에 훈장 수여 검사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훈장 수여를 결정했으며, 그걸 공식 발표했다.
그다음 프랑스가 레지옹 도뇌르와 미국이 대통령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잇따라 발표했지만 그래도 가장 빨랐던 건 독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 미국 친구들이 가장 먼저 지영의 일에 나서 도움을 주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존심 문제인 것이다. 앞뒤 재지 않고 저렇게 튀어 나가면 언론에 밝혀질 때 무조건 미국이 먼저 언급된다.
그리고 독일은 나서지 않았다.
혹은 현장에 없었다로 처리된다.
이는 반드시 체면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예 없었다면 모를까,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 미국만 꿀을 빨게 할 수는 없었다.
“정중하게. 현장 분위기 해치지 말고. 알아서 물러가도록 만들어. 분명히 말했어. 정중하게,”
그래서 로빈은 무전기를 들고, 개입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