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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93화 (393/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93화

393화. 천상계(8)

개막식 바로 다음 날, 유도 경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총 8일간 열린다. 개인전 7체급, 그리고 혼성 단체전까지 해서 총 8일이다. 이 8일간은 가히 유도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도로 전 국민이 올림픽 전반기를 보냈다면, 중반기는 골프였다.

골프는 한국에서 인기가 매우 많은 종목이었다.

비즈니스 스포츠라고도 불리는 골프는 전 세계가 코로나로 몸살을 앓았을 때도 열기가 식지 않은 스포츠였다. 그런 골프는 유도의 열기가 식지 않았을 때,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열기를 머금었다. 그런 열기의 중심엔 19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가 LPGA를 2회나 우승한 천재 골퍼 박세인이 있었다.

그 재능을 알아보고 장세리 대표가 지원을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KLPGA를 접수하고, 빠르게 미국으로 넘어가 19살에 1번, 20살에 또 1회를 우승한 천재였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 금메달까지.

그쪽 업계에서는 당연히 강지영보다도 훨씬 더 유명한 선수가 박세인이었다. 그런 박세인이 앞에서 임효중과 얘기를 나누면서 걷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묘했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할 때, 특히 남녀가 대화할 때는 서로 표정만 봐도 어떤 생각인지, 어떤 마음인지 금방 티가 난다.

박세인은 즐거운 얼굴이었다.

가식이 하나도 없이, 임효중과 같이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았다. 심지어 카메라가 붙었는데도 조금도 그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대화도 들렸다.

“저 저, 프로젝트 팬클럽도 들었었어요.”

“아 진짜요?”

“네, 계속 활동해 주기 바랐는데, 해체해서 너무 아쉬워요. 히잉…….”

“하하, 미안해요. 이름 그대로 진짜 프로젝트 성 그룹이어서…….”

프로젝트 팬클럽.

프로젝트 아이돌의 팬클럽의 이름이었다. 아이돌 팀명에 프로젝트가 들어가다 보니, 팬클럽도 앞에 프로젝트를 붙였다. 이, 아이돌 그룹은 상당히 성공했다. 길지 않은 활동이었지만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체에 확실한 족적을 남기고 해체했다.

당시 팬클럽의 수만 20만에 가까웠고, 그중 절반이 해외 팬이었다.

그런데 거기 가입했다는 건, 아무래도 애초에 처음부터 그때부터 성진이 팬이었었던 것 같았다.

“오오, 성덕이신가 보다.”

“그러게. 이성진 봐. 눈치 하나는 기가 막혀. 성혜 선배님이랑 얘기하다가 효중이 보고는 슬쩍 거리 잡아주는 거. 와, 진짜 쟤는 저런 눈치 하나는 타고났어.”

“하하, 쟤가 방송은 우리보다 잘할걸?”

지영의 말에 친구들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는 몰라도, 방송은 황금세대 중에선 이성진이 최고다. 다년간 다져진 예능 경험 때문에 눈치와 돌아가는 판을 읽는 건 지영도 솔직히 따라갈 수 없었다. 대화를 엿듣고 싶었다. 임효중에게 봄이 오나? 싶어서.

하지만 그래도 예의를 지켜주기 위해 좀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가장 뒤에서 느긋하게 이동해 가든에 도착해 들어갔다. 일렬로 죽 늘어진 테이블. 인원이 너무 많아 서로 마주 보고 앉을 수 없으니 전부 일렬로 늘어뜨려 놨다. 그리고 같이 창가를 등지고 전부 같이 앉는 구조였다. MC들이 먼저 자리 잡고, 선수들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황금세대 중심엔 김성혜와 김지인이 자리 잡았다.

클라이밍 여제, 김지인.

출산 후 다시 복귀해 다시금 세계에서 명성을 날리는 대단한 선수였다, 처음엔 부산스러웠다. 워낙에 대인원이다 보니 작게 얘기해도 웅웅 거리고 울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부산스럽던 어느 순간.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탁!

연출팀 스태프가 들어와 슬레이트를 치고 나갔다. 이제 녹화 들어간다는 사인이었다. 그 정도는 전부 알아서, 다들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지금 식사 준비 중이신데, 워낙에 인원이 많으시잖아요? 한쪽은 나가고, 한쪽은 좀 기다리고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전부 준비해서 한 번에 내달라고 했거든요? 그게 한 30분쯤 걸린대요. 그때까지 토크를 이어가면 되겠습니다!”

장미 PD의 말에 장세리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스타트는 골프였다.

대화를 자연스럽게 골프 얘기 쪽으로 끌고 간 장세리는 이번 대회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입에서 나오게 했다.

“3위 경쟁이 진짜 치열했어요. 1위, 2위는 세인이랑 넬리 코다가 너무 치고 나가서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3위에는 거의 여섯 명이 몰렸어요.”

확실히 그랬다.

박세인과 2연패를 노리는 넬리 코다는 이미 한참 앞서갔다. 그리고 3위 자리를 노리고 굉장히 치열했다. 그 여섯 중 둘이 한국 선수였고, 고주현 선수가 결국 3위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금과 동을 따면서 골프 강국의 자존심을 제대로 치켜세웠다. 도쿄의 노메달 수모를 완벽히 날려버렸다.

골프는 액션이 크지 않은 종목이라서 기상에 관한 에피소드가 좀 더 나왔다. 다음은 배구였다. 배구는 진짜…… 에피소드가 미치도록 쌓여 있는 종목이었다. 소감을 묻자, 양효선이 대표로 대답했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나오는 말은 당연히 겸손했다.

“솔직히, 이번엔 대진 운이 많이 따라줬어요. 저희가 터키를 8강에서 잡았을 때, 일본이 브라질을 잡아주기를 기도했는데, 정말 그렇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맞다. 일본이 브라질을 잡았지?”

장세리의 물음에 양효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브라질이 제대로 된 전력이 아니긴 했어요. 도핑 때문에 주전 공격수 둘이 올림픽 전에 출전 정지됐고, 주전 세터도 대회 중에 부상을 입는 바람에, 일본이 해볼 만해진 거죠.”

확실히 그랬다.

여자 배구는 확실히 운이 따라줬다.

대진 운도 대진 운인데, 브라질 주포 둘이 올림픽 전에 세계 대회에서 도핑에 걸려 6개월 출장 정지를 당했고, 모든 공격을 조율한다는 세터가 하필이면 8강 1세트에서 부상을 당해 아웃 당했다. 그러면서 전력이 확 떨어졌고, 그 찬스를 일본은 놓치지 않았다.

전력이 꺾인 브라질은 1세트는 따냈지만, 2, 3, 4세트를 내리 내줬다.

그렇게 일본이 4강에 올라왔고, 다시금 숙명의 한일전이 완성됐다.

“진짜……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손발이 막 저려요.”

“맞아요. 아…….”

“솔직히 이겨서 망정이지, 졌으면…… 아휴.”

여자 배구팀은 다들 그때를 회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일전. 그것도 메달이 걸린 아주 중요한 길목에서 한일전이 완성됐다. 이때 나라 분위기는 진짜 미쳤었다. 새벽까지 다들 잠도 안 자고, 경기를 기다렸다.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준결승이 중요한 이유는 많지만, 가장 강력한 이유는 역시 메달이 걸려서다. 지면 3, 4위전으로 떨어진다. 동메달이냐 4위냐를 두고 싸우게 되는 거다. 유도처럼 동메달이 두 개도 아니고, 그냥 준결승에서 진 팀끼리 나란히 붙는다.

이기면 동메달.

지면 노메달이다.

그런데 이기면?

그럼 무조건 은메달은 확보다. 이게 포인트다. 져도 은메달. 지면 노메달일 수도 있는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심지어 한일전이다.

“와…… 생각도 하기 싫으네.”

지영은 잠시 그런 상황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장세리가 웃으며 지영에게 물었다.

“지영이 너도 그랬어?”

“어, 저요? 저는…… 아시잖아요. 하하. 저 한일전 어떻게 경기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숨이 막혔다.

“아아, 그랬지. 그 얘긴 이따가 듣자. 지영이 네 얘긴 오늘 메인디시야.”

“앗, 그런가요?”

“응. 그렇지. 다들 그것만 기대하고 있을걸? 그러니 그건 아껴두자.”

“하하, 네.”

다시 한일전 얘기로 돌아갔다.

1세트 내주고, 2세트도 내줬다. 일본은 작정하고 미친 공격력과 수비력으로 1세트와 2세트를 가져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패색이 짙었다. 시청자들도, 선수들도 머릿속에 패배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배구계의 영원한 캡틴, 김인경 선수가 경기장에 뒤늦게 도착해 커다랗게 악을 쓴 거다.

[야 이년들아! 지고 나오면 진짜 다 뒤진다!]

정말 거짓말처럼, 스탠드 가장 아래로 내려와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중계 카메라에 그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서 침울한 캐스터와 해설이 놀라서 순간적으로 말문을 잃었을 정도였다.

선수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그쪽을 돌아보자.

[해! 가진 거 다 하고 나와! 져도 후회 안 남게! 있는 힘 다 짜내!]

다시 김인경이 외친 투박한 그 말이, 선수들을 바꿔 놓았다. 진짜 불을 제대로 질러버렸다. 양효선은 그걸 얘기하며 이른 아침인데도 눈시울을 붉혔다.

“진짜…… 인경 언니가 그렇게 외쳐줘서, 얼마나 힘이 났는지 몰라요.”

“에이, 언니는 솔직히 맞을까 봐 힘이 난 거잖아?”

후배의 장난에 양효선은 푸힛! 하고 바보같이 웃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무섭긴 했어요. 인경 언니가 얘네는 그냥 둬도, 저는 진짜 궁디팡팡했을 거니까. 제 나이가 몇인데…… 궁디팡팡 당할 수는 없잖아요?”

하하!

양효선의 말에 분위기가 부드럽게 다시 풀렸다.

“그래서 진짜 이 악물고 했어요. 진짜, 와. 진짜 이틀은 꼼짝도 못 할 정도로 진을 싹 뺐던 것 같아요.”

“맞아. 그래 보이더라. 효선이 너는 정말 무섭긴 했나 본데? 그날 아주 블로킹 장난 아니었잖아?”

“그건 좀…… 걔네는 이상하게 제가 패턴이 맞더라고요. 눈빛만 봐도 각도가 보여서 혹시? 하고 슥 팔을 옆으로 옮기면 기가 막히게 거기다가 때리는 거예요.”

“맞아요! 언니 진짜 신들린 듯 막았어요!”

오죽했으면 일본 올림픽 배구를 김인경이 세 번이나 막더니, 이번엔 양효선이 다 망쳤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그만큼 양효선이 3세트부터 보여준 블로킹은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일본을 잡고, 결승 진출.

무려…… 은메달 확보.

한국은 사실 구기 종목은 전통의 약자였었다. 배드민턴, 탁구 등도 예전의 명성을 잃은 지 좀 됐고, 축구나 농구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배구가 극적인 결승 진출로 은메달을 확보했다.

“미국전은…… 어땠어?”

장세리의 질문에, 양효선을 포함한 배구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돼요. 이런 말 하는 건 선수로서 자격이 없는 거지만, 진짜 차원이 달랐어요. 그렇게 점수를 낸 것도 진짜…… 그날 미국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예요.”

“맞아요. 합이 조금 안 맞더라고요. 그런데도…… 엄청났어요. 효선 언니 손가락 틈에 살짝 찢어지기도 했다니까요?”

“헐, 진짜? 만화나 그러는 거 아니었어?”

“조금인데, 진짜요. 와……. 살벌해요. 얼굴은 조막만 하고, 예쁜 애들이 공 때리는 건 진짜…….”

기가 질렸는지, 고개를 젓는 모습들을 보면 뭔가 패자의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근데 또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잘 보니, 말과 표정은 다르다는 게 보였다.

‘제대로 자신감이 찼네.’

은메달을 딴 자부심에,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해도 미국과 혈전 끝에 3세트를 다 내주고 패했다. 그 경기 결과가 선수들의 뇌리에 자부심이 제대로 심어줬다. 즉, 지금 저 말은 예능식 엄살이었다.

배구 얘기가 끝나자, 식사가 다 준비됐다는 사인이 들어왔다.

유도팀 차례였지만, 만든 음식이 식게 두는 건 또 예의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 배고프다. 일단 먹고 얘기하자. 음식 들여주세요. 얼른!”

장세리의 말에 음식이 바로 들어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 산채 전문점답게 90% 이상이 산나물이었다. 그중 다시 절반이 버섯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버섯도 좋아했다. 어머니가 채소를 파시다 보니까, 거래하는 곳에 가끔 좋은 버섯이 들어오면 그걸 사와 지영에게 달여서 먹이기도 하고, 생으로 먹이기도 했다.

그래도 산나물과 버섯만 있지는 않았다.

간장 불백도 있었고, 소불고기도 있었다. 매콤하게도 나오지만, 아침인 만큼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기로 해서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잘 먹겠습니다!”

음식은 맛있었다.

간이 딱 적당했다. 싱겁지도, 짜지도 않은 적정선이 뭔지, 이 음식이 딱 말해줬다. 지영은 이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늘 점심도, 저녁도 먹는다.

목발을 짚고 최대한 같이 움직이긴 할 거지만, 그래도 계곡이나 바다 같은 곳은 못 간다. 그러면 몸을 쓰는 시간이 줄고, 열량 소모는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어서, 먹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왜 그걸 걱정하냐고? 당연히 체중 때문이었다.

지영의 지금 체중은 77㎏이 넘었다.

한동안 운동을 하지 못해 몸도 무겁고, 그 결과 얼굴에 살도 좀 붙었다. 뭐 그래도 소두파에 들어가는지라 부어도 퉁퉁 부은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지영은 아쉽게도 작품에 들어간다. 일주일 안에는 출국할 터, 그게 부담이었다.

지금도 재와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그래서 지영은 이번 촬영이 끝나면 천천히 운동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물론 강도가 센 러닝이나 웨이트는 못하겠지만, 요즘은 좋은 훈련 기계들이 많다.

예를 들면 물속에서 달리는 자전거나 러닝 머신 같은 것들이 있다.

장세리 대표가 주문했고, 내일 회사로 들어온다.

출국 전까지 지영은 최대한 몸의 부기를 뺄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먹는 걸 조심해야 했다.

아침 식사가 그렇게 끝나고, 다음 스케줄 장소로 이동했다.

밥 먹는 내내 떨어져 있던 박세인은 어느새 다시 임효중의 옆에 있었다. 임효중은 몰라도, 박세인은 임효중에게 마음이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았다.

그것도 팬심 이상의.

잘하면 친구의 이번 가을과 겨울은 춥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임효중과 박세인을 예의 주시하며 다음 스케줄 장소에 도착한 지영에게 일단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강지영 씨?”

“네, 누구시죠?”

“잠시 시간 좀 내주시죠?”

“네?”

이건 또 뭔…….

좋았던 현장 분위기가 정장을 입은 사람들로 인해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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